어쨌든 나는 여기에서 어린아이의 그 질문을 지금 당장에는 내가 그 아이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제대로 채워주지는 못하겠지만 기꺼이 하나의 명구로 기억해둘 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아이의 질문을 소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질문은 아주 적절한 것 같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가지는 난처할 정도의 정직함과 함께 그 질문 속에 제시되어 있는 문제는 다름 아닌 역사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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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로 비밀의 화원은 가수 이상은 님이 ‘우울증이 걸린 친구를 위해 만들었던 노래’ 였다고 한다. - P46

그냥 해본 적이 없었다. 일흔 살 할머니도, 열 살 나도 생일 파티는커녕 생일 축하 한 번 해보지 못했다. 무서웠다. 치킨 하나 잘 못 시키는 우리를 친구들이 거지라고 놀릴까 봐. - P59

그 옛날, 10살의 나는 뭐가 그렇게 무섭고 창피했을까. 눈 딱 감고 솔직하게 말했으면 됐는데… 올해는 나도 생일파티를 해보고 싶다. 처음이라 어색하고 서툴 테지만, 가족들과 함께 말하고 싶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 - P60

혹자는 말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고.
내 경우엔 떡볶이를 먹기보단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었다.
직업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작가로 활동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도 쉽사리 시작하지 못했던 이유는 브런치 작가가 되려면 작가심사라는 걸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 P63

올해 가장 슬픈 소식이 시력이 나빠졌다는 것이라면, 올해 가장 마음에 드는 소비는 그 안경테를 산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P70

그렇다. 강다니엘 앨범 전시용 책장이나 LP 턴 테이블이나 사치품인 건 똑같지만, 결정적이 차이가 있었다. 책장은 그것만 사면 사치가 끝나고, 턴 테이블은 그것을 사면 사치가 시작되었다. 반박할 수 없이 완벽한 논리였다. - P74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이런 광경을 보고 산다. 고요한 아수라장이라고 할까. 떠드는 사람 하나 없는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출근하기도 전에 지친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사실이다. 물론 그러든 말든 지하철은 제 길을 간다. - P82

마음대로 살아본 적 있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인생의 커다란 선택들을 떠올려봤다. 대부분 내 의견보다는 상황들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커다란 결정에서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작은 순간들을 떠올려봤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앞으로도 살면서 선택의 순간은 계속 올 것이고 커다란 선택들은 여전히 누군가를 고려해야 될 것을 안다. 그래도 지내다 보면 작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순간들도 분명 올 것이라 믿는다. 나는 그런 작은 순간들 만큼은 온전히 내 선택들로 채워 나가고싶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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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많지, 아가씨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을 책망할 사항들을 적은 목록이 늘어난다는 걸 잘 모를 거요. - P871

그들은 서로 마주보고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멀어버린 눈이 멀어버린 눈을 응시했다. 그들의 얼굴은 감동으로 불그레하게 달아올랐다. 한 사람이 그 말을 했고, 두 사람이 그것을 원했으므로 그들은 삶이 함께 살라는 결정을 내렸다는 데 합의했다.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는 두 손을 내밀었다. 앞을 더듬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상대에게 내어주려고 내밀었다. 두 손이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의 두 손과 만났다. - P876

만일 우리가 있는 곳이 눈먼 사람들의 땅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백색 어둠의 한가운데를 뚫고, 쓰레기, 파편, 돌조각, 화학 폐기물, 재, 타버린 기름, 뼈, 병, 내장, 납작한 건전지, 비닐 봉투, 산더미 같은 종이를 가득 싣고 오는 유령 같은 짐마차와 트럭들을 볼 수 있을 텐데. - P883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입에 들어갈 걸 빼앗은 거야, 우리가 너무 많이 빼앗았다면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거지, 이런저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살인자야. - P896

슈퍼마켓을 나섰을 때, 그녀는 힘이 없어 비틀거렸고, 그는 눈이 멀어 비틀거렸다. 누가 누구를 부축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 P897

이 눈물을 핥아주는 개의 조상들은 성자들이 성자로 인정이나 승인을 받기 전에 그들 몸의 곪은 상처들을 핥아주며 선하고 충실하게 봉사했다. 이것은 성자의 명성에 기대고자 하는 사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오로지 이타적인 동정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몸에 아무리 상처가 많다 해도, 그리고 개의 혀가 닿을 수 없는 영혼에 아무리 상처가 많다 해도, 모든 거지가 다 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눈물을 핥아주는 개는 그런 혈통에 힘입어, 신성한 공간으로 들어갈 용기를 냈다. 문은 열려 있었고, 문지기도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눈물을 흘렸던 여자가 이미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 P900

그렇지 않아요, 성상들은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눈을 통해 봐요, 다만 이제 실명이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되는 바람에 성상들도 못 보게 된 거죠. - P906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미리 알 수 없는 거예요, 기다려봐야 해요, 시간을 줘봐야 해요,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시간이에요, 시간은 도박판에서 우리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예요, 그런데 혼자 손에 모든 카드를 쥐고 있어요, 우리는 삶에서 이길 수 있는 카드들이 어떤 것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죠, 그게 우리 인생이에요. - P909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가 마침내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했다고 느꼈을 때, 갑자기 눈꺼풀 안쪽이 어두워졌다. 내가 잠이 들었구나, 그는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그는 잠이 들지 않았다. - P921

순간 그의 영혼에 커다란 공포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하나의 실명에서 다른 실명으로 옮겨갔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빛의 실명 상태에서 살았는데, 이제 어둠의 실명 상태로 옮겨가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공포로 인해 그는 몸을 떨었다. - P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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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물은 단단한 돌도 먹어치우나니.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시를 짓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도록 하자. 이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눈만 먼 것이 아니라 이해력마저도 뿌연 상태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비비 꼬인 추론을 통해, 이런 빗속에서는 그들이 바라 마지않는 음식이 도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들에게 그 전제가 틀렸으며, 따라서 결론 역시 틀린 것이 분명하다고 납득시킬 방법이 없었다. - P623

그들은 서로 붙잡고 줄을 섰다. 맨 앞에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여자가 섰고, 그 다음에 눈을 가지고 있지만 볼 수는 없는 사람들이 섰다.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 검은 안대를 한 노인, 사팔뜨기 소년,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의 아내, 그녀의 남편, 그리고 맨 마지막에 의사가 섰다. 그들이 택한 길은 도심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의사 아내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빨리 안전한 곳을 찾아, 뒤따르는 사람들을 그곳에 두고, 혼자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가는 것이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다. - P625

그녀는 일행을 보았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들은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어린아이들처럼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이 사람들을 실망시킨다면,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무엇에든 익숙해진다는 것, 특히 사람이기를 포기했을 경우에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그녀 역시 눈이 멀어야 했다. 물론 그들은 아직 사람이기를 포기할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이제 엄마를 찾지 않는 사팔뜨기 소년도 조건에 익숙해지는 사람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 P639

젠장, 난 절대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상황의 힘과 특성이 사람의 언어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항복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제기랄, 하고 내뱉는 군인을 생각해 보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그후로 내뱉는 욕설들은 무례하다는 지탄을 면제받게 된다. 그보다 덜 위험한 상황에서라면 당연히 그런 지탄을 받겠지만. 젠장, 난 절대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 그녀는 다시 생각했다. - P645

그녀는 조금씩 감각을 회복했다. 뱃속에서 둔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의 몸에 살아 있는 다른 기관은 없는 것 같았다. 다른 기관들도 틀림없이 존재했지만, 존재한다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그녀의 심장, 그래, 그녀의 심장만은 큰북처럼 울려댔다. 어둠 속에서 맹목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 P651

모든 어둠 가운데 첫 어둠, 즉 자신이 만들어진 자궁 안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일을 그만둘 마지막 어둠에 이를 때까지. - P652

정신은 스스로 창조해 낸 괴물에 굴복할 때 망상을 겪게 되는 것이니까. - P654

이제 그녀는 세련된 표현을 사용하자면, 하늘에서 내리는 물로 번들거리는 젖가슴을 드러낸 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가득 차 있는 봉투들은 너무 무거워서 그녀는 그것을 자유의 여신의 깃발처럼 들어올릴 수도 없었다(으젠느 들라크르와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다:옮긴이). - P662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인내심을 가져라. 시간이 제 갈 길을 다 가도록 해주어라. 운명은 많은 우회로를 거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아직도 확실히 깨닫지 못했는가. - P667

그들은 자기가 돌이 된 꿈을 꾸고 있었다. 돌이 얼마나 깊은 잠을 자는지는 우리 모두가 아는 일이다. 시골에 나가 산책만 해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돌들은 땅에 반쯤 묻힌 채 누워 잠을 자면서 깰 때를 기다리고 있다. 돌이 깨어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누가 알겠냐만. - P669

개들이 그렇게 많은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일부는 이미 하이에나를 닮아가고 있었다. 개의 몸에 박힌 점들은 꼭 부패한 자국처럼 보였다. 개들은 꼬리를 안으로 말고 뛰어다녔다. 그들이 뜯어먹은 시신이 살아나, 방어할 수 없는 자들을 뜯어먹은 수치스러운 일을 추궁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 P686

다른 사람들은 시력을 잃었는데 나는 내 시력을 잃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책임감. - P713

그러나 우리가 심한 고난을 당해 통증과 괴로움에 시달릴 때, 그때는 우리의 본성이 지닌 동물적 측면이 가장 분명하게 부각된다. - P718

그들이 진흙과 배설물로 뒤덮인 신발을 신고 안으로 들어간다면, 천국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바뀔 것이다. 능력 있는 권위자들의 말에 따르면, 저주받은 영혼들이 고약하고, 구리고, 구역질 나고, 유독한 악취를 견뎌야 하는 또 하나의 장소가 바로 지옥이다. 그 악취에 비하면 불타는 화젓가락, 역청이 펄펄 끓는 솥 등 주물이나 주방과 관련된 물건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 P767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냐고는 묻지 말아주세요, 눈먼 것이 드문 일이었을 때 우리는 늘 선과 악을 알고 행동했어요,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해요, - P782

의사만 한마디했다, 내가 다시 시력을 회복한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주의깊게 볼 거야, 마치 그들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방금 그들의 영혼이라고 했소,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이 물었다. 아니면 그들의 마음일 수도 있고요, 이름은 상관없습니다. 바로 그때, 마치 별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서 예상치 못한 지혜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놀라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우리 내부에는 이름이 없는 뭔가가 있어요, 그 뭔가가 바로 우리예요. - P784

그들은 온전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여자를 끌어안는다. 쏟아지는 비 아래 미의 세 여신이다. - P800

아니오, 난 그럴 힘도 없는 나이요, 설사 내가 젊어서 힘이 있다 해도, 나는 그런 신속한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사람은 못 되는 것 같소, 작가란 삶에서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인내나 얻는 사람이오. - P828

이윽고 작가가 말했다, 자기 자신을 잃지 마시오, 자기 자신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두지 마시오. 이것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상황에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말이었다. - P837

조직이 있어야지, 인간의 몸 역시 조직된 체계야, 몸도 조직되어 있어야 살 수 있지, 죽음이란 조직 해체의 결과일 뿐이야. - P841

스스로를 조직해야지,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눈을 갖기 시작하는 거야. - P841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 - P847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희망은 얘기 안 했구려. 그게 뭔데요. 시력을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 - P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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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침대 하나를 건널 때마다 뉴스는 점점 왜곡되었다.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의 개인적 낙관주의나 비관주의에 따라 세부 사항이 축소되기도 하고 과장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 P424

그녀 자신의 내부로 움츠러들고 싶은 갈망 때문인 것 같았다. 눈, 특히 눈이 안을 향하여, 좀더 안으로, 좀더 안으로, 좀더 안으로 들어가, 마침내 그녀 자신의 뇌의 내부에 이르러 그곳을 관찰하고 싶은 갈망. 보는 것과 못 보는 것의 차이가 맨눈에는 드러나지 않는 그곳을 관찰하고 싶은 갈망. - P449

사실 우리가 이기주의라고 부르는 그 제 이의 살갗 없이 태어난 인간은 없으며, 제 이의 살갗은 너무 쉽게 피를 흘리는 원래의 살갗보다도 훨씬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 P484

역시 우리가 생각한 것이 옳았다. 우리가,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우리가, 행동한 사람 자신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 P491

둘 사이에 누워 있는 남자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상식적인 관념이나 현실 세계를 벗어난 논리로 남자를 포용하는, 짧고 음모적인 대화였다. - P495

눈물은 그곳에서 사라져, 인간의 불가해한 기쁨과 슬픔이 형성하고 있는 영원한 순환 주기 속으로 다시 편입될 터였다. - P496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정신병원에서 몸의 정결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직도 의미가 있다면. 어차피 영혼의 정결은, 우리가 알다시피, 누구도 다다를 수 없는 것이고. - P521

언제 살인이 필요할까, 그녀는 생각하면서 현관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이미 죽은 것이 될 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그게 무슨 뜻일까, 말이야, 그저 말일 뿐이야. - P545

누가 한 말인지 몰라도, 그 말은 맞소, 늘 수치심이 없어 배를 채울 수 있었던 자들이 있었소, 하지만 우리는 우리 분수에 맞지 않은 마지막 한 조각의 존엄성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소, 이제 우리에게도 마땅히 우리 것이어야 하는 것을 찾기 위해 싸울 능력 정도는 있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 P554

어떤 사람들은 이보다 작은 일에도 목숨을 걸었소. 나는 다른 사람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내 목숨을 내놓을 생각은 없어요. 그럼 당신은 누군가 당신에게 먹을 걸 주기 위해 목숨을 잃었을 때, 그걸 먹지 않고 굶을 생각은 있소.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이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상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P555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말을 받았다, 여자들은 번갈아가며 다시 태어나요, 점잖은 여자는 창녀로 다시 태어나고, 창녀는 점잖은 여자로 다시 태어나죠. 이어 긴 침묵이 흘렀다. - P577

그것은 그들의 첫 두목의 비극적 죽음 뒤에 그 병실에서 모든 규율과 복종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총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권력을 찬탈할 수 있다는 생각은 눈먼 회계사의 심각한 실수였다. 결과는 그 정반대였던 것이다. 그가 총을 쏠 때마다 총알이 거꾸로 튀고 있는 셈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총을 쏠 때마다 조금씩 권위를 잃어갔다. 따라서 총알이 다 떨어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보자. 수도사의 옷을 입었다고 해서 수도사가 되는 것이 아니듯, 왕의 홀을 쥐었다고 해서 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 P593

여기서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실명은 또 이런 것, 모든 희망이 사라진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 P594

그러나 지금은 눈이 보여도 결과는 똑같았다. 죽으면 모두가 똑같이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니까. - P595

각 병실 내부는 수펄들이 살고 있는 벌집 같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질서와 조직에는 별 관심이 없이 윙윙거리기만 하는 곤충들 말이다. 이 곤충들은 평생 무슨 일을 한다는 증거도 없으며, 미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한다는 증거도 없다. - P598

다행히도, 인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악에서도 선이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선에서도 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들을 잘 하지 않는다. 어쨌든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순들이며, 경우마다 둘 가운데 어느 한쪽을 더 많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선은 병실마다 문이 하나밖에 없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 P606

어쩌면 라이터를 들고 있던 여자가 노인의 입을 통해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눈먼 회계사가 마지막으로 쏜 총알에 맞아 죽는 행운을 얻지 못했던 여자. - P610

눈먼 사람에게 말하라, 너는 자유다. 그와 세계를 갈라놓던 문을 열어주고, 우리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말한다, 가라, 너는 자유다. 그러나 그는 가지 않는다. 그는 길 한가운데서 꼼짝도 않고 그대로 있다. 그와 다른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 P615

도시의 미로에서는 기억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란 어떤 장소의 이미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것뿐이지, 우리가 그 장소에 이르는 길을 생각나게 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P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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