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은 프랑스만을 근대국가로 전환시킨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낡은 전제주의 유럽 여러 나라에 자유와 평등, 국민주의와 자유주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새 씨앗을 뿌렸다. - P20
영국은 1689년의 명예혁명으로 성취한 입헌 군주주의의 기반 위에서 의회 민주주의를 발전시켰고, 미국은 1776년의 독립 혁명으로 달성한 공화주의의 기반 위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 P21
이 같은 상황에 놓인 18세기 프랑스 사회를 앙시앵레짐Ancien régime이라고 한다. 앙시앵레짐하에서 부르주아는 기회 있을 때마다 몰락하는 귀족의 토지를 사들였다. - P30
18세기 프랑스의 사회질서는 제도상으로는 봉건사회의 피라미드형 신분 구성이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다. 신분은 세 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제1신분은 가톨릭교회의 성직자이고 제2신분은 세속 귀족이고 나머지는 모두 제3신분이었다. 앞의 둘은 면세를 비롯한 여러 가지 봉건적 특권을 향유하는 특권 신분이고, 이 특권 신분의 꼭대기에 국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국왕을 꼭대기로 하는 피라미드형의 신분 질서였던 것이다. - P38
이와 같이 제3신분 안에는 노동자, 농민, 부르주아지의 세 가지 사회적 요소가 뒤섞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지 안에서도 빈부의 차와 이해관계의 대립이 일어나고 있었다. - P49
마티에Albert Mathiez는 《프랑스 혁명사La Révolution française》에서 혁명의 궁극적 원인은 번영 속에서 불거진 계급 간의 불균형이라고 말한다. 혁명은 쇠퇴하는 나라에서 일어나기보다는 오히려 발전하고 번영하는 나라에서 일어난다. 가난은 더러 봉기를 일으키게 하나 사회를 전복시키지는 못한다. 사회 전복은 언제나 계급 간의 불균형에서 생긴다. - P50
그들은 봉건제도하에서는 봉건적 부과를 영주에게만 바치면 되었으나 이제 절대주의 체제에서는 새로 국왕이 부과하는 각종 세금까지 바쳐야 했다. 농민이 부담하는 이 이중 조세 체계야말로 앙시앵레짐의 이중적 성격을 말하는 동시에 그 모순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 P56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삼부회의 소집과 함께 국왕에게 제출된 농민들의 진정서를 분석해 보면 지방에 따라 사정이 다르지만, 농민은 대략 수입의 80~90퍼센트를 세금으로 빼앗기고 있었다. - P59
그러나 농민의 무지를 깨우쳐주는 자들이 있었다. 제1신분의 최하층을 형성하고 있던 농촌 교회의 사제들이었다. 농촌에서는 사제들만이 글을 읽을 줄 알았는데, 계몽사상이 그들의 생각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 P61
근세의 기계론적 우주관은 철학 사상에서 경험론과 합리주의를 낳았고, 이 두 철학의 흐름은 하나로 결합하여 이른바 계몽사상을 낳았다. - P79
계몽사상이 앞세우는 유일한 최고의 기준은 이성인데, 이 이 이성은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수학적 이성인 동시에 베이컨Francis Bacon의 실증적 이성이었다. - P80
계몽사상은 이 불합리와 모순에 찬 현실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며, 그 모순을 제거하여 합리적인 사회를 실현하려는 실천철학이었다. - P80
이에 반하여 루소는 모든 국민의 평등을 주장하였다. 그는 절대 왕정을 계몽적인 입헌군주제로 개량하는 미온적인 개혁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인간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계약에 의하여 성립되고 모든 주권은 그 계약에 동의한 인민에게 있었다. - P85
그의 사회계약론에 의하여 비로소 사람은 누구나 나면서부터 천부의 권리를 갖는다는 인권 사상과 앙시앵레짐의 반자연적 신분제를 부정하는 평등사상이 대두하였다. 루소는, 몽테스키외가 귀족계급에게 유보시키고 볼테르가 상층 부르주아에게 유보시켰던 정치권력을 민중 전체로까지 확대하였다. - P86
루소의 평등주의 원칙은 철저한 민주주의 원칙으로서 그 기초는 소규모 토지 소유자들의 평등에 있었다. 모든 시민은 제 먹을 것을 제 손으로 생산하는 소규모의 토지 소유자들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원리상 민주주의의 헌장이 되었다. - P86
18세기 프랑스는 제도에 앞서 풍속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제도는 봉건적 신분 질서가 잡고 있었으나 풍속은 부르주아의 돈과 재능을 바탕으로 한 성공을 따르고 있었다. 돈과 재능은 본질상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도는 불평등했으나 현실의 풍속은 사회적으로 평등하였다. - P96
또한 상공업을 규제와 금지에서 해방시키고, 이성과 과학을 신학과 도그마에서 해방시키고, 양심을 야만스런 편견에서 해방시키고, 토지를 봉건적 지조地祖에서 해방시키는 자유였다. - P96
하나는 1778년 미국 독립 전쟁의 참전이고 또 하나는 1786년 영−불 통상조약의 체결이다. - P113
7년전쟁(1756~1763)으로 영국에 빼앗긴 신대륙의 식민지들이 바야흐로 영국에서 독립한다고 나서자 - P113
1786년의 영−불 통상조약은 영국 공업 제품을 수입함으로써 프랑스 공업에 타격을 주고, 프랑스 곡물을 수출함에 따라 곡가의 폭등을 가져왔다. - P114
왕은 칼론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개혁안들은 고등법원에 등록되어야 효력을 발생하는데, 고등법원이 그런 개혁을 용인할 까닭이 없었다. 거기서 정치적 편법으로 강구한 것이 명사회를 소집하여 개혁안을 토의에 부치는 것이었다. 여태껏 왕이 선임한 명사회는 왕의 뜻을 거역한 전례가 한 번도 없었으므로 이 방법을 쓴 것이었다. 1787년 2월 22일 왕이 지명한 명사 14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왕족 일곱 명, 귀족 36명, 법관 33명, 주교 11명, 왕의 고문관 12명, 삼부회가 유력한 지방인 파이 데타pays d’état의 대표자 12명, 도시의 시장 25명. - P120
거기에다 부르주아지는 1614년의 삼부회와 이번 소집되는 삼부회를 동일한 성격의 것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 이번의 삼부회는 국민대표 회의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첫째, 그 구성에서는 제3신분 대표의 인원이 적어도 제1, 제2신분 대표자의 합계에 맞먹어야 하고, 둘째, 표결 방식이 신분별이 아니라 대표자 각자가 한 표식 행사하는 방식이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두 주장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미 지난 7월 21일 도피네 삼부회가 결의한 바 있었다. - P138
민중의 중론은 이제 양상이 달라졌다. 왕과 전제정치와 국가체제에 관한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고, 더 중요한 것은 특권 신분에 대한 제3신분의 투쟁의 문제였다. - P141
제3신분 대의원 총수는 621명이었는데, 약 절반이 법률가들이고 나머지 반은 여러 가지 종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나 진정으로 농민과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귀족 신분의 미라보나 성직자 신분의 시에예스Emmauel Joseph Sieyès(흔히 아베 시에예스Abbe Sieyès로 알려진) 같은 사람들이 자기 신분 회의에서는 탈락되고 제3신분 회의에서 제3신분의 대의원으로 선출된 사실이다. - P145
이제 제3신분 의회는 제3신분이라는 특정 계층의 대표가 아니라 프랑스 국민이라는 일반의지의 대표 기관이 되어 국민의회라는 명칭을 쓰게 된 것이다. - P153
테니스코트의 서약. 1789년 6월 20일 회의장에서 쫓겨난 국민의회는 베르사유에 있는 테니스코트에 모여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절대로 해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P156
이른바 ‘대공포La grande peur’가 전국을 휩쓸었다. 이 대공포는 귀족 계급에 대한 농민의 증오와 단결을 부추기고 반봉건적 농민 폭동을 격화시키는 동시에 혁명을 지키기 위한 국민의 무장을 촉진시켰다. - P171
벌판에 번진 불길처럼 무서운 기세로 번져가는 농민 폭동과 대공포를 바라보는 국민의회−헌법 제정의 임무를 스스로 걸머진 때부터는 제헌의회Assemblée Constituante−의 눈은 심상치 않았다. - P173
11일에 발표된 이른바 1789년 8월 법령Décret du août 1789 제1조는 다음과 같았다. 국민의회는 봉건제도를 전면적으로 폐지한다. 국민의회는 봉건권이나 공조권 중에서 물적 또는 인신적 노예 상태와 인신적 예속제에 관계된 것과 이러한 것들을 구현하고 있는 일체의 권리를 무상으로 폐지하고, 기타의 모든 권리는 ‘되살 수 있음’을 선언한다. ‘되사기rachat’의 액수와 방법은 차후 국민의회가 정한다. 이 법령으로 소멸되지 않는 권리는 배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 지속되어야 한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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