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카리디[3] 바다 위에서 파도가

마주치는 파도와 함께 부서지듯, 이곳의

영혼들은 맴돌며 서로 부딪치고 있었다.

나는 다른 곳보다 많은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이쪽과 저쪽에서 크게 울부짖으며

가슴으로 무거운 짐을 굴리고 있었다.[4]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56

그분은 나에게 「이자들은 모두

첫 번째 삶에서 정신의 눈이 멀어

절도 있는 소비를 하지 못하였단다.

정반대의 죄로 서로 나뉜

원의 두 지점에 이르면, 저들은

분명한 목소리로 저렇게 짖어 댄다.

이쪽의 머리에 털이 없는 자들은

성직자로 교황과 추기경들이었는데

지나칠 정도로 탐욕을 부렸지.」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57

그들은 영원히 서로 충돌할 것이며,

무덤에서 이들은 움켜쥔 손으로,

저들은 잘린 머리칼로 일어나리라.

인색함과 방탕함으로 인해 저들은

아름다운 세상을 잃고 저렇게 싸우니,

그게 어떤 것인지 꾸밈없이 말해 주마.

아들아, 행운에게 맡겨진 재화 때문에

인류는 그토록 아귀다툼을 하는데,

그 짧은 순간의 기만을 보아라.

달의 하늘 아래 있고 또 예전에도 있었던

그 모든 황금은, 이 피곤한 영혼들 중

누구도 편히 쉬게 하지 못할 것이다.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58

단테는 〈디스의 도시〉, 즉 하부 지옥을 둘러싸고 있는 스틱스 늪에 이르러 플레기아스의 배에 올라탄다. 스틱스 늪 속에서는 분노의 죄인들이 벌받고 있는데, 그들 중에서 단테는 필리포 아르젠티를 만난다. 두 시인은 늪을 건넜으나, 하부 지옥을 지키는 악마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63

아직도 문이 열리지 않는 디스 성벽의 탑 위에 불화와 분노의 화신인 세 푸리아가 나타나 단테를 위협한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도움으로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마침내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단자들이 불타는 관(棺) 속에서 벌받고 있는 광경을 본다.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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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덤은 ‘행복의 계산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창시자 중 하나인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의 ‘윤리학적 계산학‘에 힘입은 바가 많았습니다.
윤리적인 문제를 수학적으로 접근했던 허치슨의 저서 《덕과 미의 기원》에는 ‘도덕적 영향력=자비심x능력‘ 같은 ‘윤리적 주제의 정량적 방법론‘ 등식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지금 보면 엉뚱해 보이지만 도덕 문제까지 과학적인 시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그시대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주는 듯합니다. 이런 허치슨의 사상은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 같은 당시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미친 영향이 지대했다고 전해집니다. - P113

루카 파치올리FraLuca Bartolomeo de Pacioli라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보통 ‘회계학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회계학의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1447년부터1517년까지 르네상스의 절정기를 살았던 그는,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승이기도 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생활하며 공동 연구도 하고 수학도 가르치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나눴다고 합니다. - P114

르네상스 시대의 학문적, 문화적 발전에 다방면으로 기여한 그는 과학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사람의 가장 유명한 저서 《산수, 기하학, 비례와 비례적인 것들의 대전> 덕분입니다. 굉장히 긴 제목이지요. 1494년에 출판된 책으로, 산수, 대수, 기하 등 당대의 수학적 지식을 집대성했고 회계에 관한 내용도 다루고 있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이 그를 회계학의 창시자로 꼽는 이유입니다. - P114

이 책에는 ‘복식부기법DoubleEntry Book Keeping‘ 이라는 방법론이 회계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계정을 자본 계정, 현금 계정, 부채 계정 등으로 구분하기 위해 각 계정마다 들어있는 돈을 2가지 방식으로 나눠서 기록하는 방법을 말하는데요, 돈 거래가 있을 때마다 한쪽 계정에는 차변, 다른쪽 계정에는 대변을 이중으로 기록하면서 ‘자산 자본+부채‘ 와같은 등식이 항상 만족하게끔 장부를 정리하는 기법입니다.
이 책은 재미있게도 ‘어떻게 해서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현대문명을 창조했는가?‘ 라는 거창한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새로운 건축 양식과 과학기술이 활발히 창조되었던 르네상스시대에는 각종 문화 사업에 많은 자본이 필요했습니다. 그당시에는 이런 사업을 정부보다는 메디치 가 같은 사유 자본에 더 많이 의존했는데, 자금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복식부기법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이 책은주장합니다. - P115

그런데 우리가 수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 책에 회계학이나 산수, 기하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 말고도 보다 중요한 내용이 하나 더 들어 있습니다. 저는 그 내용이야말로 정말 세계 역사의 진로를 바꿔놓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점수의 문제Problem of Points‘ 입니다. - P115

따라서 A가 이길 확률은 1-16분의 3, 즉 16분의 13입니다.
페르마와 파스칼은 이런 계산을 해본 끝에 A는 16분의13 확률로 이길 수 있으므로 16분의 13 × 2만 원=16,250원을받아야 하고, B는 16분의 3×2만 원=3,750원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를 현대적인 용어로 풀면 ‘A와 B가각자 자기의 기댓값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경우의 수를고려하는 방법론도, 기댓값이라는 개념도 바로 파스칼과 페르마의 서신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대중수학의 저자로 잘 알려진 케이스 데블린Keith Devlin은 그의 책 《끝나지 않은 게임 The Unfinished Game》에서 ‘페르마와 파스칼이 17세기에 나눈 편지, 그리고 그 편지들이 세계를 현대화했다‘ 를 부제로 정할 정도로 그 파급효과를 중시했습니다. - P123

과연 확률 없이 일상생활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17세기에는 가장 뛰어난 천재들만 이해하는 개념이었던 확률, 가능성, 기댓값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매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20세기에 와서 정립된 양자역학에 의하면 원자에는 특정한 모양이나 위치, 속도가 정해진 것이 아니고원자 자체가 항상 확률적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존재 역시 원자로 구성되어 있지요? 그렇게 보면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확률적인 존재라는 말이 됩니다. - P124

이처럼 인간이 인간 자신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작업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앞서 언급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공리주의는 찰스 디킨스와 같은 지식인들에게 상당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바로 공리주의의 결과주의적 성격때문이었는데요, 그러니까 행동의 선함과 악함을 판단하는기준은 행동의 결과, 즉 파급효과의 좋고 나쁨 말고는 필요없다는 이념이었습니다.
의도, 믿음, 신앙 등 실증적이지 않은 요소들, 어떻게 보면 형이상학적인 세계관을 배척하는 철학이었지요. - P128

공리주의에 대해 가장 신랄한비판이 담긴 1854년 소설, 《어려운 시절Hard Times》을 보면그렇습니다.
주인공 토머스 그래드그라인드는 자녀교육과사회문제까지도 이성적인 방법론, 확률이나 통계로 해결할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아들 톰은 방탕아였고, 도둑질에 무고한 노동자를 범인으로 모는 악행을 저지르죠.
톰은 자신의 범죄가 밝혀진 뒤, 자신을 나무라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에는 신용을 요하는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그중에 간혹 부 정직한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막겠어요. 저는 아버지가 그런 현상을 두고 통계적인 원리라고 주장하는 것을 수백 번 들었습니다. 원리인 것을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아버지는 늘 그런과학적인 논리가 사람들한테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시잖아요. 스스로를 위로하시지요." - P129

결과주의는 항상 확률론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결과주의는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을 전제로 하는데, 결과는 미래에 벌어질 일이므로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일종의 기댓값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여기서 때로는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면 그 역시 선한 행동이 아니겠느냐 하는 질문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행위에 일정 확률로 좋은 일도 일어나고, 또 다른 확률로 나쁜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어느 정도 확률을 가지고 계속해서 좋고 나쁜 산물을 낳겠죠.
그렇다면 좋은 결과를 낳을 확률을 따지며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요?
확률이라는 개념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환경에는 이런 의문들이 깔려 있었습니다. - P131

이런 종류의 결정 문제는 철학에서 상당히 오래된 문제중 하나로, ‘트롤리 문제‘ 라고도 부릅니다.
망가진 전동차가언덕길에서 내려올 때 진로를 바꾸지 않고 차 안의 5명이 죽게 내버려두는가, 아니면 진로를 바꿔서 4명의 보행자를 죽여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철학적으로 다루고 있죠.
철학에서중요한 문제로 다뤄졌던 이 트롤리 문제를 지금은 자율주행자동차를 만드는 데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윤리라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구조화, 모델화하여 알고리즘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죠.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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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는 막연하던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상상에 강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흑사병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살아서 생지옥을 겪었던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흑사병 생존자들은 지옥을 그린 그림을 보면서 보다 더 실감을 느끼고 무서워했을 겁니다.
참고로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도 흑사병 시대에 집필되었어요.
1350년경에 쓰인 『데카메론』은 흑사병이 발발하면서 시골로 피신한 피렌체 젊은이들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자기들이 알고 있는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는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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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마리암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더 친절한 세월이 아직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 같은 하라미는 결코 보지 못할 것이라고 나나가 말한 축복된 삶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예기치 않은 새로운 꽃 두 송이가 그녀의 삶에 피어올랐다. 마리암은 눈이 내리는 걸 바라보면서, 파이줄라 선생이 염주를 돌리며 몸을 기울인 채 부드럽고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마리암, 그것들을 심으시는 분은 신이시다. 네가 그것들을 가꾸는 것이 그분의 뜻이다. 그분의 뜻인 게야."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411

라일라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서서, 공기가 부족해 가슴이 터지려 하고 눈이 깜빡거리려고 몸부림을 칠 때까지 타리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숨을 들이쉬고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그는 기적적으로 아직도 거기에 서 있었다. 타리크는 아직도 거기에 서 있었다.
라일라는 그를 향해 한 걸음을 떼었다. 또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532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몸을 떨며 그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편지를 "수없이" 썼다는 타리크의 말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또 다른 전율이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슬프고 고독한 물결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간절하면서도 무모하게 희망적인 물결이 기도 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561

라일라는 마리암의 말에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과일나무를 심고 닭을 키우는 일에 대해 어린애처럼 조리 없이 말했다. 그녀는 이름 모를 도시에 있는 작은 집들, 송어로 가득한 호수로 산책을 나가는 것에 대해 계속 얘기했다. 결국 말이 말랐다. 그러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라일라가 할 수 있는 건 도무지 공격할 여지가 없는 어른의 논리에 압도당한 어린애처럼 백기를 들고 우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돌아누워 마리암의 따뜻한 무릎에 마지막으로 얼굴을 묻는 것뿐이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586

라일라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잘마이의 손을 잡았다. 그들이 구석을 돌기 직전, 라일라는 뒤를 돌아봤다. 마리암은 문에 서 있었다. 마리암은 머리에 흰 스카프를 두르고, 앞단추가 달린 짙은 감색 스웨터를 입고, 흰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흰머리가 이마 위로 내려와 있었다. 햇볕이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스쳤다. 마리암이 상냥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모퉁이를 돌았다. 라일라는 마리암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588

아름다운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리암은 대부분의 삶이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스무 걸음을 걸으면서 조금 더 살았으면 싶었다. 라일라를 다시 보고 싶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녀와 같이, 별들이 떠 있는 하늘 밑에서 차를 마시고 먹다 남은 할와를 먹었으면 싶었다. 마리암은 아지자가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녀가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는 걸 못 본다는 게 슬펐다. 그녀의 손톱을 헤나로 칠해주고 결혼식 날에 노쿨(사탕)을 뿌려주지 못한다는 게 슬펐다. 아지자의 아이들과 놀아줄 수 없다는 게 슬펐다. 늙어서 아지자의 아이들과 놀아주는 건 참 좋을 것 같았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05

마리암은 이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많은 걸 소망했다. 그러나 눈을 감을 때, 그녀에게 엄습해온 건 더 이상 회한이 아니라 한없이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그녀는 천한 시골 여자의 하라미로 이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쓸모없는 존재였고,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불쌍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잡초였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이자 벗이자 보호자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되어, 드디어 중요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마리암은 이렇게 죽는 것이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 나쁜 건 아니었다. 이건 적법하지 않게 시작된 삶에 대한 적법한 결말이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05

그때, 기억의 어두운 저편으로부터 바비가 카불에 작별을 하려 할 때 암송했던 두 줄의 시가 떠오른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36

그때, 땅 아래에서 무엇인가가 그것들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잡초들이 갑자기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오두막의 흙이 가시로 덮인 마지막 잎들을 집어삼킬 때까지, 점점 아래로 떨어진다. 거미줄이 기적적으로 풀어 헤쳐진다. 새둥지가 어디론가 없어지고, 잔가지들이 하나씩 부러져 오두막 밖으로 날아간다. 보이지 않는 지우개가 러시아어로 된 낙서를 벽에서 지운다.
마룻바닥이 돌아와 있다. 라일라는 두 개의 간이침대, 나무식탁, 두 개의 의자, 구석에 놓인 스토브, 벽을 따라 질러진 선반, 그 위에 놓인 다기와 냄비, 그을린 찻주전자, 컵과 숟가락들을 본다. 그녀는 닭들이 밖에서 꼬꼬댁거리고 멀리서 시내가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어린 마리암이 석유램프 불빛으로 식탁에서 인형을 만들고 있다. 그녀는 뭔가를 흥얼거리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부드럽고 발랄하다. 머리는 감아서 뒤로 넘기고 있다. 이는 모두 나 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52

라일라는 마리암이 인형의 머리에 실 가닥을 붙이는 걸 바라본다. 몇 년 후에 이 작은 소녀는 삶에 요구하는 게 별로 없는 여인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자신에게도 슬픔과 실망이 있으며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꿈이 있다는 걸 밖으로 내비치지 않는 여인이 될 것이다. 강바닥에 있는 바위처럼 아무런 불평 없이 견디고, 자신을 덮쳐오는 물살에도 불구하고 품위를 잃지 않고 나름의 형상을 갖춰가는 그런 여인이 될 것이다. 벌써 라일라는 이 소녀의 눈 뒤에 있는 뭔가를 본다. 라시드나 탈레반이 깰 수 없는 깊은 마음속을 본다. 석회암처럼 단단하고 굳은 어떤 것. 결국 그녀 자신의 삶을 끝내고 라일라에게 구원이 될 어떤 것.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52

마리암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녀는 이곳에 있다. 그들이 새로 칠한 벽, 그들이 심은 나무, 아이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담요, 그들의 베개와 책과 연필 속에 그녀가 있다. 그녀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 있다. 그녀는 아지자가 암송한 시편, 아지자가 서쪽을 향하여 절하면서 중얼거리는 기도 속에 있다. 하지만 마리암은 대부분, 라일라의 마음속에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73

하지만 이 놀이에서는 남자 아이의 이름만이 거론된다. 딸의 이름은 라일라가 이미 지어놓았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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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드와 누르가 카불을 떠나 북쪽의 판즈시르로 가서 아마드 샤 마수드 사령관 밑에서 지하드에 참여했을 때, 라일라는 두 살이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195

늘 그런 식이었다. 두 사람 다, 시치미를 떼고, 의무적인 질문에 형식적인 답변을 했다. 열기라곤 하나도 없이 똑같이 반복되는 낡고 지겨운 일종의 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198

그런데 어느 날 밤, 라일라는 거리 아래쪽에서 자그만 플래시 불빛이 비치는 걸 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녀는 침대에서 재빨리 자신의 플래시를 찾았지만 작동이 안 됐다. 라일라는 손바닥으로 플래시를 쿵쿵 치면서 닳아버린 전지를 욕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돌아왔다. 안도감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는 침대의 가장자리에 앉아 그 아름다운 노란 눈이 깜빡깜빡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204

이 방은 라일라와 타리크가 숙제를 하고, 카드로 탑을 쌓고, 서로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던 방이었다. 비가 오면, 그들은 창턱에 기대어 오렌지 맛이 나는 따뜻한 환타를 마시며 굵은 빗물이 유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212

타리크의 찡그린 표정을 보고, 라일라는 이 점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우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러한 말을 하고 싶은 충동도,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라일라는 그녀의 오빠들도 이랬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라일라는 남자들이 태양을 대하는 것처럼 우정을 대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똑바로 바라보지 않을 때, 그것의 광채를 최대한 즐길 수 있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존재. 태양.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216

이따금 라일라는 수심에 잠긴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자신의 가족에게 닥친 재앙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 느꼈다. 가능성의 부정, 희망의 좌절.
하지만 그 느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엄마의 상실감을 실제로 느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존재로 느낀 적이 없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슬퍼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에게 아마드와 누르는 언제나 말로만 듣던 사람들 같았다. 우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역사책에 나오는 왕들처럼 말이다.
피와 살을 가진 진짜 사람은 타리크였다. 그녀에게 파슈토어로 욕을 가르쳐주고, 소금에 절인 클로버 잎을 좋아하고, 음식을 씹을 때면 인상을 쓰며 낮은 신음 소리를 내고, 왼쪽 쇄골 밑에 만돌린을 뒤집어 놓은 모양의 옅은 핑크색 반점이 나 있는 타리크는 진짜였다.
그렇게 그녀는 엄마 옆에 앉아서 아마드와 누르의 죽음을 열심히 슬퍼했다. 그러나 진짜 오빠는 라일라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228

라일라는 침대에 누워 귀를 기울이며 자신은 샤히드(순교자)가 되지도 않았고 이처럼 살아 있으며, 희망도 있고 미래도 있다는 걸 엄마가 알아줬으면 싶었다. 하지만 라일라는 자신의 미래가 오빠들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그녀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죽을 때도 그녀는 그들에 가려 미미한 존재일 터였다. 엄마는 오빠들의 삶을 보관한 박물관의 큐레이터였 고 라일라는 그곳을 찾은 방문객일 뿐이었다. 그녀는 오빠들의 신화를 위한 피난처에 불과했다. 그녀는 엄마가 그들의 신화를 기록하는 데 필요로 하는 양피지일 뿐이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231

라일라는 엄마가 바비에게 언젠가, 신념이 전혀 없는 남자와 결혼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엄마는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는 거울을 들여다보면, 삶에 대한 그의 무한한 신념이 자신을 마주 쳐다볼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247

라일라가 열한 살이 되기 3개월 전인 1989년 1월, 어느 춥고 흐릿한 날이었다. 그녀는 부모와 하시나와 함께 마지막 소련군이 도시를 떠나는 걸 보러 갔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251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동안, 아니 몇 주 동안, 라일라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기억하려고 해봤다. 불타고 있는 박물관을 뛰쳐나가는 예술품 애호가처럼, 그녀는 표정, 속삭임, 신음 등 잡을 수 있는 것이면 어느 것이나 잡으려 했다. 기억의 저편으로 물러나지 못하게 잡으려는 거였다. 그러나 시간은 불길 중에서도 가장 용서를 모르는 것이어서, 그녀는 결국 모든 걸 구해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녀에게는 남아 있는 게 있었다. 저 아래에서 느껴지던 굉장한 첫 고통. 양탄자 위를 비추던 비스듬한 햇살. 성급하게 드러난 그녀의 발꿈치가 그의 서늘하고 딱딱한 다리에 닿던 감촉. 그의 팔꿈치를 감싸던 그녀의 손. 뒤집어진 만돌린 모양의 반점이 그의 쇄골 밑에서 붉게 빛나던 모습. 그녀의 얼굴 위에 떠 있던 그의 얼굴. 그녀의 입술과 턱을 간질이던 그의 검은 고수머리. 들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믿기지 않는 그들의 대담함과 용기. 고통과 섞이던 낯설고 표현할 수 없는 쾌감. 타리크의 얼굴에 어리던 무수한 표정. 불안, 부드러움, 미안한 마음, 당혹감, 하지만 대부분, 굶주린 표정.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296

"하루 종일, 카불에 관한 한 편의 시가 머리에 떠돌더구나. 사이브에타브리지라는 시인이 17세기에 썼던 시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전에는 전체를 다 외웠었는데 지금은 두 줄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구나."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310

라일라는 발밑으로 책들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때 거대한 소리가 났다.
그녀의 뒤에서 하얀 빛이 번쩍였다.
그녀의 발밑이 기울어졌다.
뭔가 뜨겁고 강력한 것이 뒤에서 그녀를 덮쳤다. 그것은 그녀에게서 샌들을 벗겨냈다. 그리고 그녀를 들어올렸다. 이제 그녀는 비틀리고 돌아가며 공중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하늘이 보였다. 그 다음에 땅이 보이고 다시 하늘이 보이고 다시 땅이 보였다. 불이 붙은 커다란 나뭇조각이 날아갔다. 산산조각이 난 유리 조각들도 날아갔다. 하나하나가 주위에서 날아가고 겹겹이 튀어 오르고 햇볕을 받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작고 아름다운 무지개들…….
라일라의 몸이 벽에 부딪쳤다. 그리고 땅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얼굴과 팔 위로 먼지와 작은 돌과 유리가 쏟아졌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건 근처에서 쿵 소리를 내며 뭔가가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피로 범벅이 된 물체. 짙은 안개 속으로 보이는 금문교의 끝이 그 위로 보였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314

대신, 그녀는 무릎에 손을 축 늘어뜨리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고 마음이 날아가도록 했다. 그녀는 그것이 아름답고 안전한 곳을 찾을 때까지 계속 날아가게 했다. 푸른 보리밭이 있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수천 개의 사시나무 씨가 공중에서 춤추고, 바비는 아카시아나무 밑에서 책을 읽고, 타리크는 가슴에 손을 얹고 낮잠을 자고, 그녀는 시내에 발을 담그고, 햇볕에 하얘진 바위로 된 불상들의 눈길 밑에서 좋은 꿈을 꾸는 아름답고 안전한 곳을 찾을 때까지.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335

하지만 마리암은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관심도 없었다. 그녀는 마음의 먼 구석에 갇혀 그러한 세월을 살았다. 희로애락과 꿈과 환멸을 초월한 메마른 불모의 땅에서 말이다. 그곳에서 미래는 중요하지 않았다. 과거는 사랑이라는 것이 해로운 착각이요, 그것의 공범인 희망은 믿을 수 없는 환상이라는 걸 깨닫게 해줬다. 독성이 있는 그 쌍둥이 꽃들이 메마른 땅에서 돋아나기 시작할 때마다 마리암은 그걸 뿌리째 뽑아버렸다. 그녀는 그것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뽑아서 시궁창에 던져버렸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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