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마리암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더 친절한 세월이 아직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 같은 하라미는 결코 보지 못할 것이라고 나나가 말한 축복된 삶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예기치 않은 새로운 꽃 두 송이가 그녀의 삶에 피어올랐다. 마리암은 눈이 내리는 걸 바라보면서, 파이줄라 선생이 염주를 돌리며 몸을 기울인 채 부드럽고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마리암, 그것들을 심으시는 분은 신이시다. 네가 그것들을 가꾸는 것이 그분의 뜻이다. 그분의 뜻인 게야."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411
라일라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서서, 공기가 부족해 가슴이 터지려 하고 눈이 깜빡거리려고 몸부림을 칠 때까지 타리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숨을 들이쉬고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그는 기적적으로 아직도 거기에 서 있었다. 타리크는 아직도 거기에 서 있었다. 라일라는 그를 향해 한 걸음을 떼었다. 또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532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몸을 떨며 그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편지를 "수없이" 썼다는 타리크의 말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또 다른 전율이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슬프고 고독한 물결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간절하면서도 무모하게 희망적인 물결이 기도 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561
라일라는 마리암의 말에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과일나무를 심고 닭을 키우는 일에 대해 어린애처럼 조리 없이 말했다. 그녀는 이름 모를 도시에 있는 작은 집들, 송어로 가득한 호수로 산책을 나가는 것에 대해 계속 얘기했다. 결국 말이 말랐다. 그러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라일라가 할 수 있는 건 도무지 공격할 여지가 없는 어른의 논리에 압도당한 어린애처럼 백기를 들고 우는 것뿐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돌아누워 마리암의 따뜻한 무릎에 마지막으로 얼굴을 묻는 것뿐이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586
라일라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잘마이의 손을 잡았다. 그들이 구석을 돌기 직전, 라일라는 뒤를 돌아봤다. 마리암은 문에 서 있었다. 마리암은 머리에 흰 스카프를 두르고, 앞단추가 달린 짙은 감색 스웨터를 입고, 흰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흰머리가 이마 위로 내려와 있었다. 햇볕이 그녀의 얼굴과 어깨를 스쳤다. 마리암이 상냥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모퉁이를 돌았다. 라일라는 마리암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588
아름다운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리암은 대부분의 삶이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스무 걸음을 걸으면서 조금 더 살았으면 싶었다. 라일라를 다시 보고 싶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녀와 같이, 별들이 떠 있는 하늘 밑에서 차를 마시고 먹다 남은 할와를 먹었으면 싶었다. 마리암은 아지자가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녀가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는 걸 못 본다는 게 슬펐다. 그녀의 손톱을 헤나로 칠해주고 결혼식 날에 노쿨(사탕)을 뿌려주지 못한다는 게 슬펐다. 아지자의 아이들과 놀아줄 수 없다는 게 슬펐다. 늙어서 아지자의 아이들과 놀아주는 건 참 좋을 것 같았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05
마리암은 이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많은 걸 소망했다. 그러나 눈을 감을 때, 그녀에게 엄습해온 건 더 이상 회한이 아니라 한없이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그녀는 천한 시골 여자의 하라미로 이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쓸모없는 존재였고,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불쌍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잡초였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이자 벗이자 보호자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되어, 드디어 중요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마리암은 이렇게 죽는 것이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 나쁜 건 아니었다. 이건 적법하지 않게 시작된 삶에 대한 적법한 결말이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05
그때, 기억의 어두운 저편으로부터 바비가 카불에 작별을 하려 할 때 암송했던 두 줄의 시가 떠오른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36
그때, 땅 아래에서 무엇인가가 그것들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잡초들이 갑자기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오두막의 흙이 가시로 덮인 마지막 잎들을 집어삼킬 때까지, 점점 아래로 떨어진다. 거미줄이 기적적으로 풀어 헤쳐진다. 새둥지가 어디론가 없어지고, 잔가지들이 하나씩 부러져 오두막 밖으로 날아간다. 보이지 않는 지우개가 러시아어로 된 낙서를 벽에서 지운다. 마룻바닥이 돌아와 있다. 라일라는 두 개의 간이침대, 나무식탁, 두 개의 의자, 구석에 놓인 스토브, 벽을 따라 질러진 선반, 그 위에 놓인 다기와 냄비, 그을린 찻주전자, 컵과 숟가락들을 본다. 그녀는 닭들이 밖에서 꼬꼬댁거리고 멀리서 시내가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어린 마리암이 석유램프 불빛으로 식탁에서 인형을 만들고 있다. 그녀는 뭔가를 흥얼거리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부드럽고 발랄하다. 머리는 감아서 뒤로 넘기고 있다. 이는 모두 나 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52
라일라는 마리암이 인형의 머리에 실 가닥을 붙이는 걸 바라본다. 몇 년 후에 이 작은 소녀는 삶에 요구하는 게 별로 없는 여인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자신에게도 슬픔과 실망이 있으며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꿈이 있다는 걸 밖으로 내비치지 않는 여인이 될 것이다. 강바닥에 있는 바위처럼 아무런 불평 없이 견디고, 자신을 덮쳐오는 물살에도 불구하고 품위를 잃지 않고 나름의 형상을 갖춰가는 그런 여인이 될 것이다. 벌써 라일라는 이 소녀의 눈 뒤에 있는 뭔가를 본다. 라시드나 탈레반이 깰 수 없는 깊은 마음속을 본다. 석회암처럼 단단하고 굳은 어떤 것. 결국 그녀 자신의 삶을 끝내고 라일라에게 구원이 될 어떤 것.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52
마리암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녀는 이곳에 있다. 그들이 새로 칠한 벽, 그들이 심은 나무, 아이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담요, 그들의 베개와 책과 연필 속에 그녀가 있다. 그녀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 있다. 그녀는 아지자가 암송한 시편, 아지자가 서쪽을 향하여 절하면서 중얼거리는 기도 속에 있다. 하지만 마리암은 대부분, 라일라의 마음속에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73
하지만 이 놀이에서는 남자 아이의 이름만이 거론된다. 딸의 이름은 라일라가 이미 지어놓았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중에서 - P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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