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덤은 ‘행복의 계산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창시자 중 하나인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의 ‘윤리학적 계산학‘에 힘입은 바가 많았습니다.
윤리적인 문제를 수학적으로 접근했던 허치슨의 저서 《덕과 미의 기원》에는 ‘도덕적 영향력=자비심x능력‘ 같은 ‘윤리적 주제의 정량적 방법론‘ 등식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지금 보면 엉뚱해 보이지만 도덕 문제까지 과학적인 시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가 그시대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주는 듯합니다. 이런 허치슨의 사상은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 같은 당시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미친 영향이 지대했다고 전해집니다. - P113

루카 파치올리FraLuca Bartolomeo de Pacioli라는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보통 ‘회계학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회계학의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1447년부터1517년까지 르네상스의 절정기를 살았던 그는,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승이기도 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생활하며 공동 연구도 하고 수학도 가르치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나눴다고 합니다. - P114

르네상스 시대의 학문적, 문화적 발전에 다방면으로 기여한 그는 과학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사람의 가장 유명한 저서 《산수, 기하학, 비례와 비례적인 것들의 대전> 덕분입니다. 굉장히 긴 제목이지요. 1494년에 출판된 책으로, 산수, 대수, 기하 등 당대의 수학적 지식을 집대성했고 회계에 관한 내용도 다루고 있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이 그를 회계학의 창시자로 꼽는 이유입니다. - P114

이 책에는 ‘복식부기법DoubleEntry Book Keeping‘ 이라는 방법론이 회계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계정을 자본 계정, 현금 계정, 부채 계정 등으로 구분하기 위해 각 계정마다 들어있는 돈을 2가지 방식으로 나눠서 기록하는 방법을 말하는데요, 돈 거래가 있을 때마다 한쪽 계정에는 차변, 다른쪽 계정에는 대변을 이중으로 기록하면서 ‘자산 자본+부채‘ 와같은 등식이 항상 만족하게끔 장부를 정리하는 기법입니다.
이 책은 재미있게도 ‘어떻게 해서 베네치아의 상인들이 현대문명을 창조했는가?‘ 라는 거창한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새로운 건축 양식과 과학기술이 활발히 창조되었던 르네상스시대에는 각종 문화 사업에 많은 자본이 필요했습니다. 그당시에는 이런 사업을 정부보다는 메디치 가 같은 사유 자본에 더 많이 의존했는데, 자금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복식부기법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이 책은주장합니다. - P115

그런데 우리가 수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 책에 회계학이나 산수, 기하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 말고도 보다 중요한 내용이 하나 더 들어 있습니다. 저는 그 내용이야말로 정말 세계 역사의 진로를 바꿔놓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점수의 문제Problem of Points‘ 입니다. - P115

따라서 A가 이길 확률은 1-16분의 3, 즉 16분의 13입니다.
페르마와 파스칼은 이런 계산을 해본 끝에 A는 16분의13 확률로 이길 수 있으므로 16분의 13 × 2만 원=16,250원을받아야 하고, B는 16분의 3×2만 원=3,750원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를 현대적인 용어로 풀면 ‘A와 B가각자 자기의 기댓값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경우의 수를고려하는 방법론도, 기댓값이라는 개념도 바로 파스칼과 페르마의 서신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대중수학의 저자로 잘 알려진 케이스 데블린Keith Devlin은 그의 책 《끝나지 않은 게임 The Unfinished Game》에서 ‘페르마와 파스칼이 17세기에 나눈 편지, 그리고 그 편지들이 세계를 현대화했다‘ 를 부제로 정할 정도로 그 파급효과를 중시했습니다. - P123

과연 확률 없이 일상생활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17세기에는 가장 뛰어난 천재들만 이해하는 개념이었던 확률, 가능성, 기댓값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매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20세기에 와서 정립된 양자역학에 의하면 원자에는 특정한 모양이나 위치, 속도가 정해진 것이 아니고원자 자체가 항상 확률적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존재 역시 원자로 구성되어 있지요? 그렇게 보면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확률적인 존재라는 말이 됩니다. - P124

이처럼 인간이 인간 자신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작업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앞서 언급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공리주의는 찰스 디킨스와 같은 지식인들에게 상당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바로 공리주의의 결과주의적 성격때문이었는데요, 그러니까 행동의 선함과 악함을 판단하는기준은 행동의 결과, 즉 파급효과의 좋고 나쁨 말고는 필요없다는 이념이었습니다.
의도, 믿음, 신앙 등 실증적이지 않은 요소들, 어떻게 보면 형이상학적인 세계관을 배척하는 철학이었지요. - P128

공리주의에 대해 가장 신랄한비판이 담긴 1854년 소설, 《어려운 시절Hard Times》을 보면그렇습니다.
주인공 토머스 그래드그라인드는 자녀교육과사회문제까지도 이성적인 방법론, 확률이나 통계로 해결할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아들 톰은 방탕아였고, 도둑질에 무고한 노동자를 범인으로 모는 악행을 저지르죠.
톰은 자신의 범죄가 밝혀진 뒤, 자신을 나무라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에는 신용을 요하는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그중에 간혹 부 정직한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막겠어요. 저는 아버지가 그런 현상을 두고 통계적인 원리라고 주장하는 것을 수백 번 들었습니다. 원리인 것을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아버지는 늘 그런과학적인 논리가 사람들한테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시잖아요. 스스로를 위로하시지요." - P129

결과주의는 항상 확률론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결과주의는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을 전제로 하는데, 결과는 미래에 벌어질 일이므로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결국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일종의 기댓값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여기서 때로는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면 그 역시 선한 행동이 아니겠느냐 하는 질문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행위에 일정 확률로 좋은 일도 일어나고, 또 다른 확률로 나쁜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어느 정도 확률을 가지고 계속해서 좋고 나쁜 산물을 낳겠죠.
그렇다면 좋은 결과를 낳을 확률을 따지며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요?
확률이라는 개념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환경에는 이런 의문들이 깔려 있었습니다. - P131

이런 종류의 결정 문제는 철학에서 상당히 오래된 문제중 하나로, ‘트롤리 문제‘ 라고도 부릅니다.
망가진 전동차가언덕길에서 내려올 때 진로를 바꾸지 않고 차 안의 5명이 죽게 내버려두는가, 아니면 진로를 바꿔서 4명의 보행자를 죽여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철학적으로 다루고 있죠.
철학에서중요한 문제로 다뤄졌던 이 트롤리 문제를 지금은 자율주행자동차를 만드는 데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윤리라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구조화, 모델화하여 알고리즘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죠.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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