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형 어떤 연산이 내부에서 수행되는 상자가 있다고 하자. 이 상자에 입력으로 x를 넣으면 y가 출력된다고 한다. x1을 넣으면 y1이, x2를 넣으면 y2가 나온다면, 상자에 두 입력을 더해 x1+x2을 넣으면 어떤 양이 출력될까? 만약 y1+y2가 출력되면, 이 상자의 내부에서 수행되는 연산을 선형이라고 한다. 상자에서 수행하는 연산을 함수 f(x)로 적으면, f(x)=ax의 꼴로 직선 모양(선형)일 때만 이 조건을 만족하기 때문이다. 스프링에 매달린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 F=-kx의 꼴이면 선형조건을 만족하지만, 실에 매달린 진자의 경우처럼 F=-mgsinθ의 형태면 선형이 아니라 비선형이 된다. 실제의 자연현상 중에는 비선형이 선형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37-338/389p)
영화 <컨택트>는 테드 창의 소설집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직역하면, 『당신과 다른 이들의 인생 이야기들』) 안에 있는 단편 「Story of your life」(「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원작이다. 단편 제목의 ‘story’는 단수형인데, 소설집 전체의 제목은 ‘stories’로 복수형인 것이 흥미롭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0/389p)
2016년에 영화화한 테드 창의 단편은 다르다. 소설 제목의 ‘이야기’는 분명하게도 단수형이다. 외계인의 언어를 익힌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듯이 미래도 같은 방식으로 ‘기억’한다. 과거에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수 없듯이, 미래에 생겨날 일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다. 미래를 이미 알고 있어도 그 미래를 바꿀 수 없다. 줄거리는 미래를 향해 진행하지만, 모든 것은 그렇게 되도록 이미 정해져 있다. 미래를 ‘기억’하는 존재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 마치 과거를 바꿀 수 없듯이 말이다. 소설의 제목에서 단수형 ‘story’를 쓴 것은 이 소설에 바꿀 수 없는 오직 하나의 이야기만이 있다는 의미일 거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0-341/389p)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우주는 영어로는 유니버스universe다. 그리고 앞에 붙은 ‘uni-’는 ‘하나’를 뜻한다. 우주는 그 정의에 따라 하나일 수밖에 없다. 외계인이 우리와 다른 우주에 살고 있다면, 우리 우주로 와서 지구를 방문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 우리에게 어떤 신호도 보낼 수 없다. 즉,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 이상, 외계인도 우리와 똑같은 우주에서 똑같은 물리법칙을 따르며 살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 <컨택트>의 외계인은 자연법칙을 우리 인간과는 다르게 파악한다. 이 부분은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1/389p)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운동’이다. 앞서 말한, 뉴턴의 고전역학의 중심 주제는 물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때, 미래에는 어디에 있을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1/389p)
시간을 잘라 조금씩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것이 바로 뉴턴의 고전역학이다. 이처럼, 고전역학에서 뉴턴이 택한 사고의 틀은 시간을 잘게 나누는 ‘미분’을 이용한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2/389p)
고전역학을 기술하는 두 번째 방법이 있다. 바로 ‘적분’을 이용하는 거다. 적분의 꼴로 주어지는 어떤 양을 생각하고 이 양이 가장 작은 값을 갖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전체 경로를 한 번에 생각하는 거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2/389p)
위에서 설명한 고전역학의 두 다른 틀 중 어떤 것을 택해도, 즉, 미분 꼴로 운동경로를 구하나, 적분 꼴로 표현한 어떤 양이 극값을 가진다는 조건으로 운동경로를 구하나, 두 답이 항상 똑같다는 거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3/389p)
양자역학에서도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의 파동방정식의 방법이 미분 꼴이라면, 파인먼Richard Feynman이 제안한 경로적분의 방법은 적분 꼴이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3/389p)
영화 <컨택트>는 자연법칙을 기술하는 미분 꼴과 적분 꼴의 두 방법에 얽힌 세계관의 차이를 묻는다. 바로, 인과율과 목적론의 차이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3/389p)
우리에게 미래는 아직 가보지 못한 가능성이라면, 외계인에게 미래는 한 번에 전체가 보이는 경로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처럼 적분의 꼴로 물리현상을 기술하는 방식은 하나같이 일종의 목적론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4/389p)
손에서 놓은 돌멩이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매 순간 돌에 작용하는 중력에 의해 조금씩 돌멩이가 아래로 힘을 받아 움직인다고 설명하는 것이 인과율의 형태를 취한 미분의 방법이라면, 돌멩이가 가진 중력에 의한 퍼텐셜 에너지(혹은 ‘위치에너지’라고도 함)가 작은 값을 갖기 위해 돌멩이가 아래로 떨어진다고 설명하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적분 꼴의 목적론을 닮았다. 힘으로 설명하나 에너지로 설명하나 돌멩이가 아래로 움직인다는 사실, 그리고 운동의 경로는 정확히 동일하다. 물리학 교과서는 보통 여기서 멈춘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4-345/389p)
대개의 물리학자가 멈춘 곳에서도 테드 창의 소설이 묻는 질문은 이어진다. 과거에서 미래를 한 번에 관통하는 딱 하나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어떤 목적 함수를 갖느냐고, 미래를 과거처럼 기억해 미래에 닥칠 끔찍한 고통을 이미 알고 있어도 당신은 그 피할 수 없는 외길을 따라 걷겠냐고.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5/389p)
시간 뉴턴의 역학 체계에서 공간과 시간은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도입되는 변수일 뿐이다. 물체의 운동 상태에 따라 바뀌는 양이 아니다. 이처럼 물체의 운동과는 독립적으로 선험적으로만 취급되어온 시간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에서 그 의미가 근본적으로 변하게 된다. 정지해 있는 사람이 보는 시간과 이 사람에 대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등속운동을 하는 사람이 보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 알려졌다. 나아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은 물체의 질량이 주변 시공간의 곡률을 변형시킨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현대 물리학에서의 시공간은 그 안에 놓인 물질에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물질의 영향을 받는다. 양자역학과 우주론에서의 시간, 열역학에서의 시간 등 시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여러 연구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5-346/389p)
"Life is a matter of direction, not speed" 물리학에서는 벡터인 속도velocity와 스칼라인 속력speed을 명확히 구별하기 때문이다. 크기와 방향을 모두 가진 것이 속도고, 속력은 속도의 크기다. "인생에서는 얼마나 빨리 나아가는지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나아가는지가 중요하다"가 원뜻이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8-349p)
속력은 속도의 크기고, 속도는 위치의 변화를 시간으로 나눈 양이다. 이 말을 "과거에 있었던 곳과 지금 있는 곳의 차이가 인생에서 중요하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49/389p)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은 충족되어야 행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소득이 어느 이상 늘어나면, 사람들의 행복감은 더 이상 소득에 비례해 늘지 않는다. 바로 이스털린의 역설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50-351/389p)
행복에는 ‘다름’이 중요하지만, 나의 어제와의 다름이지, 다른 이의 현재와의 다름이 아니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진행하는 시간의 흐름에서, 어제와 다른 내일의 나를 만드는 오늘에 충실한 것이 행복의 첩경이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51/389p)
인생이나 행복이나 결국 요점은 어제와 다른 나다. 사랑하는 이들과 더불어, 매번 새롭고 멋진 경험을 하려 노력하라. 로또 당첨보다 훨씬 확실하고 빠른,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인생을 빛살"로 만드는 첩경이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52-353/389p)
생각도 물질에서 비롯하니, 뉴턴역학의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 정보가 주어지면 미래는 딱 하나로 ‘결정’되어 있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54/389p)
기계적 결정론을 따르는 뉴턴의 고전역학에서 모든 것은 필연이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55/389p)
이후, 모든 것이 필연으로 보이는 물리학에 우연의 숨통을 틔운 사건이 두 번 있었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그리고 카오스이론의 예측 불가능성이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55/389p)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불확정성원리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55/389p)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가 주어지면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이 고전역학이다. 양자역학은 이 문장의 가정, "입자의 위치와 속도가 주어지면"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였다. 하나를 알면 나머지는 알 수 없다. 입자의 위치와 속도가 동시에 정확히 결정될 수 없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원리는 뉴턴 고전역학의 결정론이 아주 작은 세상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줬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57/389p)
처음 상태의 아주 작은 차이가 증폭되어 미래에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 카오스이론의 한 줄 요약이다. 그렇다면 결정되어 있다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정론과 예측 가능성은 다른 얘기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58/389p)
"입자의 위치와 속도가 주어지면 미래가 하나로 결정되어 있다"라는 19세기 물리학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양자역학은 위치와 속도를 함께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카오스는 위치와 속도를 아무리 정확히 측정해 알아내도 결국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줬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58/389p)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인 일반상대론은 우리가 매일매일 사용하고 있는 자동차 위치 추적 장치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정확도를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근거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64/389p)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철학은 명료하게 사유하려는 특별히 완고한 노력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 "철학은 사유의 극한, 혹은 경계limit of thought에서 형성되는 행위"라고도 말했다. 현재 사람의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모은 커다란 덩어리에서, 철학은 가장 바깥의 얇디얇은 경계선에서 시작된다는 뜻일 거다. 인간 사유의 범위의 확장에 따라 철학의 경계는 밖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으니, 철학은 영원히 인간 지성의 최전선일 수밖에 없다는 말도 되리라. 그것도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하는. 이렇게 생각해보면, ‘철학’을 통해 우리가 성찰하는 사유가 하루하루 세상을 살아가는 데 유용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유용’하게 된 부분은 경계 밖에서 안으로 넘어와 내부에 포섭되고 따라서 더 이상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은 사유의 경계에서 외부를 향해 다시 한 발짝 나아가 세상 밖을 겨눈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66-367/389p)
더 이상 철학이기를 멈춘 인간 사유의 대상은 우리가 보고, 재고, 실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현실성’의 옷을 입는 순간, 물리학의 대상이 된다. 인간 사유의 최전선에서 물리학은 철학과 등을 맞대고 사유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함께 애쓰는 동반자가 아닐까. 확장된 철학의 경계선에 의해 내부로 편입된 사유의 대상은 이제 물리학의 대상이 된다. 물리학은 그 경계에서 세상의 안쪽을 겨눈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67-368/389p)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에 의하면 물리학은 선험적이면서 동시에 종합적인 학문이다. 물리학의 보편타당성은 그 선험성에서, 물리학의 확장 가능성은 그 종합적 성격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선험적 종합판단의 예로 칸트는 형이상학과 함께 물리학을 꼽는다. 그는 또, "형이상학은 이성의 체계가 아니라 이성의 한계에 대한 학문"이라는 멋진 말도 했다. 필자가 존경하는 물리학자 김두철은 한 강연에서 "현대 과학의 역사는 과학 자체가 지닌 한계의 발견의 역사"라고 했다. 물리학과 철학은 사유의 경계에서 쌍생성雙生成, pair creation하는 걸까.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68/389p)
물리학자 파인먼이 제안한, 따라 하기만 하면 어떤 문제라도 풀지 못할 것이 없는, 기발한 문제 해결법이 있다. 바로, 딱 세 단계로 이루어진 파인먼 알고리듬이다. 1)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종이에 쓴다. 2)골똘히 생각한다. 3)답을 쓴다. 이 방법이 실없는 우스갯소리로만 들린다면 한번 직접 적용해보라. 늘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놀랍도록 성공적인 방법이다. 흥미롭게도, 파인먼 알고리듬은 ‘씀’에서 시작해 ‘씀’으로 끝난다. 세 번째 단계의 ‘씀’이 읽는 이를 향한다면, 첫 단계의 ‘씀’은 쓴 이를 향한다. 쓴 이가 깨친 ‘앎’을 읽는 이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세 번째 단계의 ‘씀’이라면, 첫 단계의 ‘씀’의 역할은 쓴 이 스스로의 깨우침이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377/389p)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참된 앎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는 『논어』의 구절도 마찬가지 이야기다. 공자님의 이 말씀을 실천하려면 질문을 써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면 우리는 아무것도 더 배울 수 없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78/389p)
난, 과학의 방법이 가진 특성으로 투명성, 합리성, 그리고 객관성을 꼽는다. 소통을 통한 과학의 누적적 발전이 이루어지기 위해 꼭 필요한 특성들이다.
-알라딘 eBook <관계의 과학> (김범준 지음) 중에서 (381/3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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