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중간이라는 것은 없다. 스캔들도 용서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을 혐오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든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누가 감히 신에 대한 증오를 택할 수 있단 말인가?

"여러분," 하고 마침내 파늘루는 결론을 짓겠다는 어조로 말했다. "신을 사랑하는 것은 몹시 힘든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전적인 포기와 자기 인격의 멸시를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만이 어린애의 고통과 죽음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 사랑만이 그것을 필요한 것으로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저 바라는 길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과 같이 나누고자 하는 교훈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보기에는 잔인하지만 신이 보기에는 결정결정적인 신앙인데, 우리는 거기에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 무서운 이미지와 어깨를 겨누어야만 합니다.
그 가운데서 모든 게 서로 융합하고 동등해져 정의가 아닌 것에서 진리가 솟아 나올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프랑스 남부 지방의 수많은 성당에서는 페스트로 쓰러진 사람들이 벌써 수세기 전부터 내진(內陣)에 깔아놓은 돌 밑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승들은 그들의 무덤 위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이 선포하는 정신은 어린애들의 재도 한몫 낀 그 죽음의 재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성직자에겐 친구가 없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신에게 맡겨야 하니까요."

열이 높아졌다. 기침 소리는 점점 더 쇠졌고, 온종일 환자는 고통으로 괴로워했다. 신부는 마침내 저녁에 그의 호흡을 틀어막고 있던 그 솜방망이를 토해냈다. 그것은 새빨간 것이었다. 그런 발열 상태에서도 여전히 파늘루는 무관심한 눈빛을 유지했다. 이튿날 아침, 침대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죽어 있는 그의 눈에서는 아무 표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카드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병명 미상.’

그러나 페스트는 이제 그 정점에 편안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자기의 살인 일과를 착실히 관리하는 정확성과 규칙성을 과시했다.

박쥐들이 천막 위에서 푸드덕거리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전차 한 대가 담 너머에서 선로 위를 삐걱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붉은 머리털의 올빼미 씨하고 결말을 지어보고 싶었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는 이른바 정치 운동을 하게 됐어요. 나는 결코 페스트 환자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뿐이죠.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사형선고라는 기반 위에 서 있으니, 그것과 투쟁함으로써 살인 행위와 싸우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사형 집행을 구경한 그날까지 (그것은 헝가리에서의 일이었어요) 어린애였던 나를 휘어잡은 그 현기증이 어른이 된 나의 눈을 캄캄하게 만들었어요.

수형자가 두 걸음만 앞으로 나가면 가슴에 총부리가 닿는 것을 아시나요?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사격수들이 심장 근처에 집중사격을 가하면 저마다 굵직한 탄환들이 한데 뭉쳐서 주먹이라도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놓는 걸 아시나요?

인간의 잠이라는 것은 페스트 환자들이 생각하는 생명보다 더 신성한 것입니다. 선량한 사람들이 잠자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악취미가 필요한데, 취미란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무렵부터 잠을 잘 자지 못했습니다. 악취미를 버릴 수가 없었고,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늘 그 생각만 하고 지냈단 말입니다.

그때 나는 그야말로 내가 온 힘과 정신을 기울여 페스트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페스트에 걸리지 않은 적은 결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가 간접적으로 몇천 명 인간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 숙명적으로 그러한 죽음을 가져오게 한 그런 행위나 원칙들을 선(善)이라고 인정함으로써 그러한 죽음을 야기하기조차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그 붉은 머리털을 한 올빼미, 페스트균에 전염된 더러운 입이 쇠사슬에 매인 어떤 남자를 향해서 너는 죽는다고 선고를 내려 그로 하여금 여러 날 밤을 고뇌 속에서 뜬눈으로 보내며 살해당할 그날을 기다리게 해놓은 다음에, 결국 그가 죽을 절차를 마련하는 그 더러운 일이었습니다.
내가 할 일은 가슴에 구멍을 뚫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곤 했어요.
그래도 최소한 나로서는 그 진저리가 나는 도살 행위에 대해 단 하나라도, 오직 하나라도 논리를 부여하는 것은 절대로 거부하겠다고요.

그렇습니다.
나는 여전히 부끄러웠으며, 우리 모두가 페스트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평화를 잃고 말았습니다.
나는 오늘날도 그 평화를 되찾아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누구에게나 철천지원수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나는 다만 이제 다시는 페스트에 전염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꼭 해나가며, 살아감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떳떳한 죽음을 바랄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편하게 만들어주며, 비록 인간을 구원해줄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그들에게 되도록 해를 덜 끼치고 때로는 약간의 선을 행하도록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걸 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그렇습니다, 리외, 아시다시피 나는 인생 만사를 알고 있지요)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피고 있어야지, 자칫 방심하다간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밖의 것, 즉 건강, 완전함,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훌륭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의 긴장을 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결코 긴장을 풀지 않기 위해선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외,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피곤해하지요.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다소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안 되려고 애쓰는 몇몇 사람들이 죽음 이외에는 해방구가 없는 극도의 피로를 체험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는 데서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정도를 걸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나는 재화와 희생자가 있다고 말할 뿐 그 이상은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록 내 자신이 재화가 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그것에 동조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차라리 죄 없는 살인자가 되길 바랍니다.
보시다시피 그리 큰 야심은 아닙니다.

"암요. 오늘날에 내가 알고 싶은 단 하나의 구체적인 문제는 신의 도움 없이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고 의사가 대답했다. "어쨌든 나는 성인들보다는 패배자들에게 더 연대 의식을 느낍니다. 아마 나는 영웅주의라든가 덕성 같은 것에는 취미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은 그저 인간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리외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슬픔은 리외 자신의 슬픔이었고, 그때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모든 인간이 같이 나누고 있는 고통과 마주 섰을 때 느끼는 견딜 수 없는 분노였다.

그래서 리외가 읽었다.
"5월 어느 아름다운 아침에, 어떤 날씬한 여인이 눈부신 밤색 말에 몸을 싣고, 꽃이 만발한 사이를 뚫고 숲의 지름길을 달리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과거 생활의 온갖 편의가 대번에 회복될 수는 없으며, 파괴하기란 건설하기보다 훨씬 쉽다는 생각에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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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랑베르가 말을 꺼냈다. "나는 떠나지 않겠어요. 여러분과 함께 있겠어요."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게 아닙니다"라고 랑베르가 말했다. "나는 늘 이 도시나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나 이제 볼 대로 다 보고 나니, 나는 내가 싫건 좋건 간에 이 고장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관련된 일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서 몸을 돌릴 만한 가치가 있는 건 이 세상에 없지요. 그런데도 나 역시 왜 그러는지 모르면서 거기서 돌아서 있죠."

어린애는 임시 병원에 이송되어 침대 여섯 개가 설비되어 있는 옛 교실에 수용되었다. 약 스무 시간이 지나자, 리외는 아주 절망적인 케이스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 작은 몸은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병균에 침식되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그러나 거의 드러나 보이지 않는 작은 멍울들이 가냘픈 사지의 마디마디에 퍼져 있었다. 이미 진 싸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외는 카스텔의 혈청을 그 어린애에게 시험해볼 생각을 한 것이다.

물론 그 무죄한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언제나 그들에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일로 보였다.

어린애는 마치 누가 위장을 잡아 뜯기라도 하듯 가냘픈 신음 소리를 내면서 다시 몸을 구부렸다. 어린애는 한참 동안 그처럼 몸을 구부리고, 마치 그 연약한 뼈대가 휘몰아치는 페스트의 바람에 꺾이고 끊임없는 열풍에 삐걱거리듯, 오들오들 떨면서 경련적으로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 발작이 지나가자 몸이 약간 풀리고 열이 가시는 듯이 보였고, 헐떡거리면서 축축하고 독기 있는 모래사장에 내던져진 듯싶었는데, 편안해진 모습이 벌써 주검과 같았다.

타오르는 듯한 열의 물결이 세 차례나 밀려와서 몸이 약간 솟아오르더니, 어린애는 바싹 오그라들어서 그를 불태울 것 같은 불꽃의 공포에 싸여 침대 밑바닥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러고 나서 이불을 차내며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뜨거운 속눈썹에서 솟아 나오는 구슬 같은 눈물이 납빛 얼굴 위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린애는 그 발작이 끝나자 기진맥진해서, 뼈가 드러나 보이는 두 다리와 48시간 만에 살이 완전히 빠진 두 팔을 오그라뜨리면서 흐트러진 침대 위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듯한 괴상한 자세를 했다.
타루는 몸을 굽히고 그의 두툼한 손으로 눈물과 땀으로 흠뻑 젖은 그 조그만 얼굴을 닦아주었다.

리외는 가끔가다가 별로 그럴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 자기의 무력한 교착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어린애의 맥을 짚어보곤 했는데, 눈을 감으면 그 요란한 맥박이 자기 자신의 피의 동요와 뒤섞이는 것을 느꼈다.
그때 그는 고통받는 그 어린애와 한몸이 되었으며, 아직 성한 자신의 온갖 힘을 다해서 그 애를 지탱해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일치되었다가도 두 사람의 심장 고동은 서로 엇갈리게 되어 어린애는 그에게서 빠져나가는 것이었고, 그의 노력은 허공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아이는 이때 처음으로 눈을 뜨고, 앞에 있는 리외를 보았다.
이제는 잿빛의 찰흙처럼 굳어버리고 만 그 얼굴의 움푹한 곳에서 입이 벌어졌다.
그러더니 곧 한마디의 비명, 호흡에 따른 억양조차 거의 없이 갑자기 단조롭고 어색한 항의로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그리고 마치 모든 인간에게서 동시에 발해진 듯싶을 만큼 비인간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리외는 여전히 골이 난 태도로 몸을 돌리더니 격렬한 어조로 내뱉었다.
"허, 그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아닙니다, 신부님" 하고 그가 말했다.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달리 생각하고 있어요. 어린애들까지도 고통을 당하는 이 세상을 사랑하기란 죽어도 싫습니다."

"그야 뭐 어떻습니까?" 하고 리외가 말했다. "내가 증오하는 것은 죽음과 불행입니다. 그것은 당신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원하시든 원하시지 않든 간에 우리는 함께 그것 때문에 고생을 하며 그것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리외는 파늘루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렇잖아요?" 이렇게 그는 파늘루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하느님조차도 이제는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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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은 어떤 주장 A와 그에 반대, 또는 모순되는 주장 B가 있을 때 어느 쪽도 부정하지 않고 통합하여 새로운 주장 C로 진화해 가는 사고 과정을 말한다. 이때 통합과 진화는 직선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나선형으로 일어난다. 나선형은 옆에서 보면 지그재그로 상승하는 운동으로, 위에서 보면 원형의 회전 운동으로 보인다. 요컨대 발전과 복고가 동시에 일어나는 형국이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야마구치 슈, 김윤경 저

과거 철학자들이 마주해 왔던 물음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What의 문제’와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How의 문제’ 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직면한 문제는 다를지라도, 비즈니스맨은 철학을 배움으로써 자기 행동과 판단을 무의식중에 규정하고 있는 암묵적인 전제를 의식적으로 비판하고 고찰하는 지적 태도와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그들은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구체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과제가 있어서 일을 했다.

이처럼 중요한 과제 설정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열쇠는 ‘교양’에 있다.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현실로부터 과제를 선택해 끌어내려면 반드시 상식을 상대화해서 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식을 의심하는 행위에는 사실 상당한 비용이 든다.
반면 혁신을 실행하려면 상식에 대한 의문이 필요하므로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이 역설을 푸는 열쇠는 하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를 몸에 익힐 게 아니라,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과 의심해야 하는 상식을 판별할 줄 아는 안목을 갖추는 일이다.
이러한 안목을 길러 주는 것이 바로 공간축과 시간축에서 지식을 확산하는 일, 즉 교양을 갖추는 일이다.

눈앞의 세계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객관적으로 고찰해 보자.
그럴 때 떠오르는 보편성의 부재, 거기에 그야말로 마땅히 의심해 볼 만한 상식이 존재한다.
그 상식을 교양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실무자는 대부분 실패한 경제학자의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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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하고 랑베르는 돌연 신중한 태도로 물었다.
"일반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 그것은 나의 직책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때는 이미 개인적인 운명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었고, 다만 페스트라는 집단적인 역사적 사건과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느끼는 갖가지 감정만이 존재했다.

물결이 높아져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해초와 소금 냄새가 올라왔다. 먼지로 인해 뿌옇게 되고 바다 냄새가 넘쳐흐르는 그 쓸쓸한 도시는 바람의 외침이 윙윙거리는 가운데 마치 불행한 하나의 섬처럼 신음하고 있었다.

페스트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보면 형무소장부터 말단 죄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은 유죄였으며, 아마 처음으로 절대적인 정의가 감옥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처럼 외관상으로는 시민들에게 포위된 상태로서의 연대책임을 강요하고 있던 질병은, 동시에 전통적인 결합을 파괴하고 개개인을 고독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왜냐하면 페스트는 모든 경제생활을 파괴했고, 그 결과 상당수의 실업자를 내게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간부층의 충원 대상은 안 되었지만, 막일에 관한 한 그들 때문에 일이 쉬워졌다. 그 시기부터는 사실 곤궁이 공포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늘 볼 수 있었고, 일은 위험성의 정도에 따라서 임금을 지불하게 마련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요컨대 그 시기에 그들에게 기억력은 있었지만 상상력은 부족했다. 페스트의 2단계에서는 기억력조차 상실하고 말았다. 그 얼굴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결국은 같은 이야기지만, 그 얼굴에서 살이 없어져 자기들의 마음속에서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처음 몇 주 동안은 자기들의 사랑에 있어서 이제는 망령밖에는 상대할 수 없다는 데 슬퍼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 후 그들은 추억을 통해서 간직되어온 최소의 얼굴빛마저 잊어버림으로써 그 망령의 살이 더욱 깎이고 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길고 긴 이별을 치르던 끝에 그들은 마침내 둘이서 누리던 그 무르녹은 정분도 상상할 수 없게 되었으며, 또 언제든지 손을 얹을 수 있던 상대가 어떻게 자기 곁에 살고 있었는지도 상상할 수가 없게 되었다.

기억도 희망도 없이 그들은 현재 속에 머무르고 있었다. 사실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현재가 되어 있었다. 페스트는 모든 사람에게서 연애의 능력과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버리고 말았다는 사실도 말해야겠다. 왜냐하면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래가 요구되는 법인데, 우리에게는 이미 순간순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가는 눈을 뜨고 잠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들이 실제로 그 운명에서 벗어나는 건 이따금 밤중에 겉으론 아물어 보이던 상처가 갑작스레 되살아나는 때였다.

우리 모두는 시의 문에서 울리는 총소리나 우리의 삶 또는 죽음을 구별하는 고무 도장 소리 한가운데서, 화재와 카드, 공포와 절차 속에서, 굴욕적이지만 등록된 죽음을 예약당한 채 무시무시한 연기와 구급차의 침착한 사이렌 소리 속에서, 우리는 똑같은 유배의 빵으로 요기를 하며, 무의식중에 어처구니없는 똑같은 재회와 평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틀림없이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건만 무용지물이 되어 지니고 다니기에만 무거웠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기를 잃어 마치 죄악이나 유죄판결과도 같이 불모의 존재였다.

그 사랑은 이미 장래가 없는 인내와 좌절된 기대에 불과했다.

그것은 끝이 없는 동시에 착각도 없는 똑같은 체념과 똑같은 인내심이었다.

그래서 리외도 거기에 동의하면서, 다만 별거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서, 자기가 곁에 있으면 아내가 병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 아내는 정말 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입을 다물었고, 그랑의 물음에 대해서도 피하려는 듯 마지못해 대답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심약해진 자신을 보고 리외는 자기가 얼마나 피곤한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의 감수성은 걷잡을 수 없었다. 대개의 경우는 엉겨서 굳어지고 메말라 있던 감수성이 때때로 풀어져서 억제할 수 없는 감정 속에 리외를 몰아넣곤 했다.
그의 유일한 방어는 그 경화(硬化) 상태 속으로 피신하여 자신의 내부에 형성되고 있는 그 매듭을 도로 단단히 졸라맸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만이 견디어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또 피로 때문에 가지고 있던 환상마저도 빼앗겨버렸다. 왜냐하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기간에 자기가 맡은 역할은 이미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역할은 진단하는 일이었다. 발견하고, 조사하고, 기록하고, 등록하고, 그리고 선고를 내리고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아내라는 여자들은 그의 손목을 쥐고 울고불고했다. "선생님, 저 사람 좀 살려주세요!"
그러나 그는 살려주기 위해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격리를 명령하기 위해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그 증오심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결국 페스트는 그에게서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페스트는 고독하면서도 고독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을 공범자로 삼는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히 하나의 공범자이며, 그것도 기꺼이 그러기를 원하는 공범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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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퇴직 후 얻은 일터에서 ‘임계장‘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 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임계장은 ‘고 다 자‘라 불리기도 한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고 해서 붙은 말이다.
고용주들에게 이 고다자 임계장들은 시급만 계산해 주면 다른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없는 매력적인 노동력이다.
석 줄짜리 구인 광고를 내면 일자리를 원하는 노년의 노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고용주는이 중에서 "고분고분한 자, 뼈와 근육이 튼튼한 자"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 (7p)

나는 삶에 대해 낙관적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삶에는비상구가 있기 마련이고, 살고자 하면 살아남는 법‘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갈 날들을 근심하지 않았고 노후에 대해서도 크게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퇴직하자마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들이 연달아 돌출했다. 언제 어디서나 있을 것이라 믿어 왔던 삶의 비상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15p)

모든 일자리는 최저임금을 주는 단기 비정규직이었다.
"급여는 상담 후 결정" 이라 적은 곳은 최저임금 이하로 준다는뜻이었다. 화물차 운전직은 구인은 많았지만 경력이 필요했다.
택배 기사, 대리 운전, 오토바이 음식 배달, 주방 설거지와 김밥 말기, 두루치기, 회 뜨기, 밤 까기, 북어포 다듬기 등은 할 수있을 것 같았지만 대부분 최소 1년 이상의 경력자를 원했다.
"왕초보 환영" 이라는 곳은 주로 보험 관련 직종들이었다. 내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단순 노무직은 모두 "근골격이 좋으신분"을 요구하고 있었다. (18p)

"버스를 운행하려면 운행 노선 1개당 배차원과 탁송원, 이렇게 최소 두 명이 필요해. 우리 회사는 운행 노선이 한 개뿐이지만 경력이 30년 넘는 나도 혼자서 감당하기가 어려워. 근데당신네 회사는 운행 노선이 세 개 아니오? 아무리 적게 잡아도세 명이 필요한 건데 당신 같은 초짜가 배차랑 탁송까지 다 한다고? 어림없지." (25p)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저기 공동 화장실 가서 씻어요.
그 밥값으로는 수도 요금도 안 나와요. 배차 계장들이 무슨 밥을 저리도 많이 먹어 대는지 원." 그리고 숨기는 기색 없이 잔반을 상에 올렸다. 4000원짜리 밥을 먹는 몇 명의 군소 버스 회사 배차원들은 습관처럼 서로에게 물었다. (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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