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항해일지에 마네는 절대 빠질 수 없습니다. 1863년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1865년 〈올랭피아〉. 이 두 작품으로 마네는 파리에서 욕과 칭찬을 동시에 듣는 악동이자 유명인사가 되었는데요.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려는 젊은 화가들에게 마네는 리더로 추앙받기에 이릅니다. 야심 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바티뇰 거리에 있는 마네의 집으로 하나둘씩 찾아가 새로운 미술에 대해 토론을 나누었죠. 바티뇰 그룹이라고 불리는 이 무리에는 드가, 르누아르, 세잔, 바지유, 팡탱 라투르 등이 있었고 모네 역시 멤버였습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32
마네와 매우 비슷해진 모네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차별점 또한 그림 속에 살짝 숨겨두었습니다. 바로 ‘빛’입니다. 매우 선명한 햇빛이 캔버스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34
모네의 시선은 적의 심장부를 정조준합니다. 카메라의 원리를 파고 들어가죠. 카메라는 광학과 화학 발전의 산물입니다. 광학의 발전은 빛을 모아주는 렌즈를 낳았고, 화학의 발전은 그 빛을 담는 감광판을 낳았습니다. 카메라는 그저 빛을 모으고 담아 피사체를 정확하게 찍어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직 ‘빛’만으로 풍경, 인물, 사물 등 모든 대상을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모네는 빛이 있어야 자연을 볼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마치 이런 것이죠. ‘사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에 비친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물이 지닌 고유의 색은 없다. 사물의 색은 ‘빛’에 의해 변하는 것이다. 사물이 지닌 고유의 형은 없다. 사물의 형은 ‘빛’에 의해 변하는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38
이로써 자연을 보는 모네의 관점은 180도 변합니다. 자연을 ‘빛의 반사로 탄생한 무수한 색채 조각의 총합’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38
모네는 광학을 자신의 회화론으로 끌어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반영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해 모네 자신이 카메라가 된 것입니다. 모네의 눈은 렌즈가, 손은 바디가, 팔레트는 감광판이 됩니다. 즉, 이렇게 그리는 거죠. 자연에 방금 빛이 반사되어 색이 보입니다. 모네의 눈(렌즈)은 그 색을 빠르게 포착합니다.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모네의 손(바디)은 재빨리 그 색을 팔레트(감광판)에서 찍어냅니다. 이후 신속히 단 한 번의 붓 터치로 캔버스(사진)에 포착합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39
10여 년 항해의 끝 무렵, 모네는 드디어 미술 신대륙을 발견합니다. 1874년 1월 17일, 모네는 부댕, 드가,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레, 카유보트, 모리조, 세잔 등 보수적인 살롱전을 거부하고 새로운 미술을 하겠다는 화가들과 함께 제1회 무명협동협회전을 개최합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40
원근법으로 캔버스에 실재 공간이 있는 듯한 환영을 만들려는 고정관념을 거부합니다. 대신 캔버스의 평평함을 그대로 살린 평평한 그림으로 승부합니다. 또, 수천 번의 세밀한 붓질로 실재 물체가 있는 듯한 환영을 그리려는 고정관념을 거부합니다. 대신 빛이 만든 찰나의 순간,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신속히 포착해 최소한의 붓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새로운 시대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죠. 1858년 이후, 그가 경험하며 깨우친 것들의 정수가 이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마치 기념비처럼 말이죠.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43
모네에 의해 자연의 미는 재발견됩니다. 지금껏 역사화, 인물화 등에 의해 천대받아 왔던 풍경화의 가치가 인정받게 된 것이죠. 또, 모네는 마네에게 배운 우키요에의 정수를 더욱 극단적으로 끌고 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합니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라는 기계에서 광학을 얻어 기계가 따라할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회화의 새로운 영토를 창조합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44
인상주의를 한 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오직 빛이 보여주는 세상을 솔직하게 포착해 그린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53
인상주의는 사진 기술의 근간인 광학이 반영되었습니다. 1874년 최초의 인상주의전이 초상 사진가 나다르의 스튜디오에서 열린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53
인류 3대 사과를 아시나요? 첫째는 이브의 사과, 둘째는 뉴턴의 사과, 마지막 셋째는? 바로 ‘세잔의 사과’입니다. 물론, 세잔을 심히 존경했던 후배 화가 모리스 드니의 사심 담긴 발언입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58
19세기 중반 이후, 마네가 ‘미래의 회화로 가는 문’을 발견하고, 모네가 그 문을 열었다고 말씀드렸죠? 세잔은 모네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인상주의를 ‘세잔식’으로 업그레이드합니다. 즉, 세잔식 인상주의를 만든 것이죠. 이 세잔식 인상주의는 20세기 초입부터 빅뱅급 위력을 발휘합니다. 마티스와 피카소가 20세기 회화를 혁신하는 영감의 핵심 원천이 되거든요.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59
인상주의 매너리즘에 빠진 파리 미술계에 인상주의를 넘어 전혀 새로운 미술을 하겠다는 화가들이 등장합니다. 익히 들어온 그 이름들 쇠라, 고갱, 반 고흐, 툴루즈 로트레크, 그리고 세잔입니다. 이들을 후기인상주의자라고 부릅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62
그의 롤모델이 된 대가는 바로크 시대를 연 카라바조, 사실주의 선언자 쿠르베, 낭만주의 리더 들라크루아 등이었습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64
세잔을 이해하는 핵심이기도 한 ‘무엇’은 단 두 개로 요약됩니다. ‘자연의 본질’과 ‘조화와 균형’.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74
세잔의 사과를 볼까요? 〈사과와 오렌지〉입니다. 그는 사과를 보이는 그대로 모방해 그리지 않았습니다. 모네처럼 수많은 색점을 찍어 사과를 사라지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사과의 겉이 아닌 속을 통찰하고자 했습니다. 사과에 담긴 색의 엑기스만을 추출해 담은 것이죠.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79
또 〈사과와 오렌지〉에는 그가 자연에서 추출한 ‘형태의 엑기스’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산, 나무, 집 등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통찰했습니다. ‘형태의 본질은 도형이다.’ 세잔은 모든 사물을 원기둥, 구, 원뿔 등으로 꿰뚫어보았습니다. 즉, 모든 사물의 형태에 기름기를 쏙 빼고 기본 도형으로 본 것이죠.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80
인상주의에 ‘조화와 균형’을 담자! 이것은 ‘자연의 본질’을 담자는 것과 함께 세잔의 평생 과업이 됩니다. 그는 조화와 균형을 만드는 본질마저 통찰합니다. 바로 ‘구성(Composition)’입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85
찰나의 빛에 집중하면서 인상주의가 잃어버렸던 그림 속 ‘조화와 균형’, ‘자연의 본질’을 다시 살려내려고 했죠. 이것이 바로 세잔식 후기인상주의입니다. 이런 세잔의 노력은 20세기 초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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