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 봄 35세의 단테는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햇살이 비치는 언덕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표범, 사자, 암늑대가 길을 가로막는다. 그때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언덕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다른 길, 즉 저승 세계를 거쳐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저승 여행길을 떠난다.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7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1]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죽음 못지않게 쓰라린 일이지만,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가 거기서 본 다른 것들을 말하련다.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7

내가 낮은 곳으로 곤두박질하는 동안,

내 눈앞에 한 사람[12]이 나타났는데

오랜 침묵으로 인해[13] 희미해 보였다.

무척이나 황량한 곳에서 그를 본 나는

외쳤다.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10

그는 대답했다. 「전에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내 부모는 롬바르디아

사람들로 모두 만토바[15]가 고향이었다.

나는 말년의 율리우스[16] 치하에서 태어나

그릇되고 거짓된 신들의 시대에 훌륭한

아우구스투스[17] 치하의 로마에서 살았다.

나는 시인이었고, 오만스러운 일리온[18]이

불탄 뒤 트로이아에서 돌아온 앙키세스[19]의

그 정의로운 아들을 노래하였노라.

그런데 너는 왜 수많은 고통으로 돌아가는가?

무엇 때문에 모든 기쁨의 원천이요

시작인 저 환희의 산에 오르지 않는가?」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11

그래서 내가 너를 위해 생각하고 판단하니,

나를 따르도록 하라. 내가 안내자가 되어

너를 이곳에서 영원한 곳으로 안내하겠다.

그곳에서 너는 절망적인 절규를

들을 것이며, 두 번째 죽음을 애원하는

고통스러운 옛 영혼[27]들을 볼 것이다.

그리고 축복받은 사람들[28]에게

갈 때를 희망하기에 불 속에서도

행복해하는 사람들[29]을 볼 것이다.

네가 그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오르고

싶다면, 나보다 가치 있는 영혼[30]에게

너를 맡기고, 나는 떠날 것이다.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13

단테는 자신이 살아 있는 몸으로 저승을 여행할 자격이 있는지 의혹에 빠져 망설인다. 그러자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도와주기 위해 자신이 림보에서 오게 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한다. 단테는 천국에서 베아트리체가 자신을 보살피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스승을 따라 저승 여행을 시작한다.

신곡 (지옥) | 알리기에리 단테, 김운찬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93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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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란 결국 자력만으로는 차마 죽을 수 없어서 의료인 같은 제삼자에게 살인을 청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선 슬슬 허용하는 쪽으로 법률을 가다듬었지만 적극적인 조력 자살에 대해선 ‘촉탁과 승낙에 의한 살인에 관한 형법으로 여전히 엄격하게 금한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350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인간의 특성을 지성으로 보고, 기술을 연마하고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의 지성이 인류를 성공으로 이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그 지성이야말로 인류사회를 해체로 이끌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봤는데, 만년의 베르그송에겐 양가성을 극복할 방법을 밝히는 것이 가장 큰 철학적 과제였다. 인류를 살리는 것도 지성, 괴멸시키는 것도 지성이라니.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356

지성을 가진 도구의 인간, 호모 파베르가 그 지성으로 자살 도구를 고른다. 참으로 잔혹한 아이러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아이러니는 인간의 생사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등을 맞댔을 뿐, 사람의 생명과 죽음은 결국 한 몸통이고 그중 하나를 떼놓고는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357

나는 구름들을 보고, 또 하늘을 바라봅니다,
I see the clouds, Oh I see the sky,

모든 것이 이 세상 속에 선명합니다.
Everything is clear in our world.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368

언젠가 어머니처럼 나에게도 아버지의 좋았던 기억만 떠오르는 날이 찾아올까? 자연의 섭리처럼, 청하지 않아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밤의 장엄함처럼, 모든 왜소한 것이 사라지고 오직 사랑의 기억만이 나를 감싸는 그런 시간이 정말 찾아와 줄까?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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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시간 그 자체 말입니다.
공간과 시간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실존의 뼈대입니다.
인간의 모든 질문에 저항하는, 자연의 가장 수수께끼 같은 부분이죠.
이 문제를 생각하려면, 공간과 시간이 불연속적일‘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작고 분리된 개체가 결합하여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과 시간의 매끄러운 외관이 형성된다는 가능성을 허용해야 합니다.
그러한 가능성을100년 전에 과학자들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 P19

첫째, ‘수학은 논리학만은 아니다‘ 라는 사실입니다.
논리라는 건 어떤 실체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논리만으로 실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순전히 논리적인 개념으로부터 수학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은 그릇된 관점입니다.
논리적이지 않은 수학도 있거든요. - P27

둘째, 수학만이 논리를 사용하는 학문은 아니라는 겁니다. - P28

수학數學은 양, 구조, 공간, 변화 등의 개념을 다루는 학문이다.
현대 수학은 형식 논리를 이용해서 공리로 구성된 추상적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수학은 그 구조와 발전과정에서는 자연과학에 속하는 물리학을 비롯한 다른 학문들과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하지만 여느 과학의 분야들과는 달리, 자연계에서 관측되지 않는 개념들에 대해서까지 이론을 일반화 및추상화시킬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수학자들은 그러한 개념들에대해 추측하고, 적절하게 선택된 정의와 공리로부터의 엄밀한 연역을 통해서 추측들의 진위를 파악한다. - P32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주에 관해 쓰여 있는 언어를 배우고 친숙해져야 하는데, 그 언어는 수학적인 언어다.
가령언어의 글자들은 삼각형, 원, 기하학적인 모양 들일 수도 있다.
이런 언어가 없이 우리는 우주를 한 단어도 이해할 수 없다.
이런것들을 모르고는, 이런 언어가 없다면 어두운 미로를 방황하는것과 같다. - P35

"사람들이 가끔 이(구조주의)를 굉장히 새롭고 혁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이것은 사실은 이중오류다.
첫째, 인문학에서도 구조주의와 같은 것이 르네상스 때부터 굉장히 많았다.
이보다 핵심적인 오류는 언어학이나 인류학 같은 데서 구조주의라고 하는 방법론은 자연과학에서 옛날부터 하던 걸 그대로 가져왔다는 데 있다." - P39

수학에서의 굉장히 중요한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는 17세기 과학혁명의 시대였습니다. 이때 우리 인식의 여러 가지전환들이 이루어졌죠.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 가운데 ‘과학의 수학화‘ 에 속하는 현상과 발견이 많았습니다. 이 중 ‘페르마의 원리‘가 대표적입니다. - P44

그게 수학적 사고지요. 이렇게 지금 대화하면서 우리는 수를 다루지 않았지만, 수학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재미있는 원리라는 겁니다.
다시말해 페르마의 원리는 최적 시간, 그러니까 빛이 운동할 때,
빛의 경로를 택할 때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최적화 또는 최소화라고 표현합니다.
비슷한 뜻처럼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조금 다른 뜻으로 쓰입니다. - P48

그것이 바로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빛이 어떻게 판단을 하느냐.
그러니까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최단 거리라는 것을 빛이 ‘알고’ 간다는 것인데, 어떻게 빛이 아느냐‘, 이 문제는 철학적인 용어로는 텔로스Telos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텔로스는 목적,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 P54

물리학은 피직스Physics, 형이상학은 메타피직스Meta-physics라고 하지요.
형이상학은 물리학이라는 말에 그리스어에서 기원한 접두사 메타Meta, 즉 ‘더 높은‘, ‘초월한‘ 이라는 의미가 덧붙어 있습니다.
메타피직스를 직역하면 ‘원초물리학‘ 정도가 되겠군요.
이 단어만 봐도 두 학문 사이의 갈등이 느껴지지 않나요?
페르마의 원리가 그랬습니다.
페르마의 원리는 정설로 받아들여져서 현대까지 이어지지만, 이후의 과학자들은 텔로스를 이용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명하려노력했죠. 이 발견을 계기로 텔로스에 의한 설명과 텔로스를이용하지 않은 설명의 차이가 분명해졌습니다. - P55

페르마의 원리는 1662년 편지 형식으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 페르마의 원리를 목적성이 없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건 1678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고 합니다. 설명 방식을 찾는 데 16년이 걸린 셈이죠. - P55

아이작 뉴턴Isac Newton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보통 줄여서 ‘프린키피아Principia‘ 라고 부르는데, 이 책의 편찬을 17세기의두 번째 중요한 사건으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 유명한 뉴턴의 운동법칙, 중력장 이론을 포함하여 조금 더 순수 수학적으로는 미분, 적분 이론을 수록하고 있거든요.
때문에 역사상 중요한 수학적 발견들의 가교이자 증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이와 함께 과학적인 방법론의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수학과 물리학뿐 아니라 흙과 칸트를 통해 계몽주의 철학적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단연 현대 사상의 초석이라 할 만한 중요한 책입니다. - P59

그렇습니다. 멈춰 있는 것을 움직이게 하려면 힘이 필요하지만, 이미 움직이고 있는 건 그냥 놔두면 계속 움직이죠.
손으로 잡지 않더라도 멈추는 이유는 마찰의 힘 때문입니다.
뉴턴이 이를 정밀하게 표현한 말이 바로 ‘힘을 가하면 속도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뉴턴의 운동법칙입니다.
"힘을 가하면 속도가 바뀐다."

수수께끼를 푼 것 같은 기분입니다.
속도가 바뀌는 양을 우리는 ‘가속도‘ 라고 배웠습니다.

방금 말한 뉴턴의 운동법칙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A) 힘을 가하면 가속도가 생긴다. - P61

같은 힘을 가한다고 생각하고 큰 물체를 밀 때와 작은 물체를 밀 때를 비교해보면, 작은 물체가 가속도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수 c는 물체에 의존하는 양입니다.
물체 하나가 주어지면 그 물체에 가하는 힘과 가속도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비례상수이지만 또다른 물체에 대해서는 다른 c 값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a=cF 관계에서 F를 고정시켰을 때 물체가 작을수록 a가 커지니까 물체가 작으면 c가 커져야 합니다.
물건의 크기를 m이라 놓고 나서 뉴턴은 C=1/m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물건이 작아질 때 c가 커지게 되는 가장 간단한 관계입니다.
그래서 뉴턴의 운동 법칙은 결국 a= 1/mF, 더 흔히는 이렇게 씁니다.
F=ma - P64

자, 조금 더 순수 수학적인 얘기로 넘어가면, 뉴턴이 가속도 때문에 발견한 개념이 바로 ‘미분과 적분 입니다.
이속도가 변하는 정도를 정확히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미분입니다. 미분이란 변하는 정도를 재는 것입니다. 속도의 미분은 바로 가속도인 것이죠.

적분은 어떻게 착안한 개념인가요?

적분도 바로 중력법칙과 관련이 깊습니다.
뉴턴은 2개의 물체 사이에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고민했습니다.
결국 뉴턴이 발견한 사실은 이것이었습니다.

(g) 중력은 질량이 커질수록 커지고 거리가 커질수록 작아진다.

중력법칙이면 만유인력의 법칙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 법칙을 통해 우리는 왜 달과 같은 위성이나 혜성이 타원운동을 하는지를 정밀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뉴턴이 어떤 방식으로 중력법칙을 정밀화했는지 그 과정을 한번 직접 밟아보도록 합시다. - P67

F=mM/r²

여기서 정확히 설명은 안 하겠지만 분모 r²는 반지름 r인 구의 표면적 공식 4ㅠr²의 r²와 같습니다.
참, 보통은 앞의 공식에 상수 G를 하나 더 넣어서 이렇게 씁니다.

F=G x mM/r²

중력은 mM/r²과 정확히 같은 것이 아니라 역시 또 ‘비례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꾸 비례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이 모든 양을 측정해서 수로 표현할 때 우리가 단위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무게 단위인 킬로그램kg을 사용할 때 성립하는 등식이 있다고 합시다. 여기서 숫자는 그대로 두고 단위를 그램g으로 바꿔 사용하면 등식이 성립할 수 없겠죠.
항상 등식이 성립하게끔 단위를 강제로 결정해버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례한다‘는 개념만 등식으로 표현하고 단위에 따라 상수 G를 바꾸어가는 관례를사용하는 것입니다. - P71

행성의 운동에 대해 어떤 설명을 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케플러의 3대 법칙이었습니다.
긴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태양계의 천체물들의 궤적을 타원, 포물선, 쌍곡선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는 법칙이 가장 유명합니다.
또 행성들의 주기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 사이의 교묘한관계도 있었습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주기2(제곱) /거리3(세제곱) - P73

그렇습니다. 지구나 달의 각 표면에 굉장히 연속적으로 분포한 점과 점들끼리 사방에서 끌어당기는 이 모든 중력을 다 더해야겠죠? 양쪽에서 다 똑같이 끌어당기고 있으니까요.

여기에서 ‘연속적으로 더해준다‘는 개념이 바로 적분입니다.

정량적으로 모든 등식을 이용해서 중력장 등식과 힘을재는 등식, 운동법칙 등을 다 감안하여 적분을 해주면, 결국 달의 중간에서 지구의 중간 사이의 거리만 재면 된다는 결과를 도출하게 됩니다.
(이미 이 사설을 위에서 사용했는데 혹시 알아차리셨나요?)
지금은 당연하게 이 공식을 활용하지만, 처음에는 전혀 당연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거리를 재라는 거냐‘ 같은 질문에 먼저 답하지 않으면 지구와달 사이의 중력법칙을 구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자연스레 적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죠. - P75

지금까지 설명한 굵직한 이론들 외에도 뉴턴의 《프린키피아》에는 재미있는 내용이 참 많은데요, 특히 뉴턴이 책을서술하는 형식을 주목해볼 만합니다.
서술 형식을 보면 완전히 수학책처럼 쓰여 있습니다.
정의, 정리, 보조정리, 증명, 정의, 정리, 보조정리, 증명으로 가득 차 있거든요.
요즘 나오는물리학책보다 훨씬 더 수학적으로 쓰여 있다는 점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17세기에 쓰인 책이 이런 형식을 갖춘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요인은 17세기 영국이 아직도 르네상스 시기였다는 점입니다. 르네상스 시기는 고대문명의 재발견을 강조한 시기였고, 이를 토대로 학문과 문화를 완성하려는 움직임이 강했습니다.
그 당시에 과학적인 관점을 세우고, 이를 체계적으로 전개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고대 문헌이 있었습니다.
바로 체계적인 사상 전개법에 대한 대표적인 문헌인 유클리드(에우클레이드)의 《기하학 원론 The Elements of Geometris》입니다. - P76

유클리드 기하학은 처음으로 ‘공리公理‘ 라는개념을 창안하여 도입한 이론입니다.
이 ‘공리‘ 라는 단어를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의 사실에 대해 증명하지 않고기정사실로 받아들일 때, 이를 기초로 다른 이야기를 진행할수 있다. 공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전개될 내용도 전혀 받아들일 이유가 없으며, 이 공리가 맞다고 상정하면 앞으로 나올 결론들도 맞다고 여길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공리적인 사고체계입니다.
유클리드는 《기하학 원론》이라는 책을 통해 기하학에 대한 5개의 공리를 만들고, 그다음에 그공리만 이용해서 여러 가지 증명을 전개했습니다.
가정과 공리만 사용해서 결론을 이끌어낸 이 책은 당시 서구세계에 굉장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 P77

‘적당한 답의 틀satisfactory framework for finding the answer’.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에서 어려운 질문들은 다 그런 식의 질문들이에요.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처음에는 답을 모르죠.
이런 종류의 질문은 사실 답을 모르는것‘ 이상으로 더 난해합니다. 답을 모를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답을 원하는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 P80

그렇죠. 뉴턴 이론에서 빠진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어떻게 전달되느냐" 의 문제였습니다.
완전히 같은문제라고 할 순 없지만 앞에서 얘기한 과학의 목적성, 즉 텔로스의 문제와 비슷한 성격을 띄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어떻게 전달되느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여기에서 움직이는 걸 저쪽에서 ‘알고 있기’ 때문에 힘이 전해지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지구와 달도 마찬가지죠. 지구가 움직인다고 달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은 마치 지구와 달이 서로의 존재를알고 있어야 가능한 설명 같지 않습니까? - P82

17세기의 세 번째 큰 발견은 페르마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데카르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이라는 책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특별한부록이 3개나 붙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중 하나는현대 수학의 토대라고 할 만한 중요한 발견을 다룹니다.
정작 당사자인 데카르트는 오늘날 우리가 많이 인용하는 앞부분의 철학적인 내용은 일종의 예비 작업이고, 뒤에붙은 부록을 더 심각하게 여긴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지금의 과학자들은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현대 과학과는 다른 형식의 언어로 서술하고 있으니까요.
이 3개의 부록 중 하나인 기하학‘은 과학사에 굉장히중요한 영향을 미친 아이디어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좌표의발견이었습니다.
평면상의 점을 설명하기 위해 X축과 Y축이라는 직각선을 그리고, 그 점에서 각 축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수의 쌍으로 위치를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P라는 점이 있다면 P의 좌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P=(x, y) - P86

P=(x, y)

좌표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표현법입니다.
데카르트가 바로 이 표현법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인류의 역사에서, 그리고 수학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기하학을 대수적인 방법, 즉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이 여기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페르마도 좌표계 이론을 만들었지만 후대에 미친 영향은 데카르트의 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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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저 우연히 같은 해에 이 나라에 태어나, 당신이 좀 더 일찍 죽었고 나는 아직 살아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서둘러 경험한 죽음을 향해 나 역시 잠시도 지체하지 못하고 한 걸음씩 다가설 뿐입니다. 우리 인간 존재는 그렇게 예외 없이 죽음을 고스란히 맞이합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191

누구도 묻지 않은 죄를 스스로 지우도록, 나는 매일 밤 꿈속에서나마 용서의 순례 길을 나서야 한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205

당신이 하는 일처럼 내 일도 특별합니다.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인 귀중한 사람이 죽어서 그 자리를 치우는 일이거든요. 한 사람이 두 번 죽지는 않기 때문에, 오직 한 사람뿐인 그분에 대한 내 서비스도 단 한 번뿐입니다. 정말 특별하고 고귀한 일 아닌가요?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467306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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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 소스라쳐 달아날 테니까. 야생 칠면조를 관찰하면서 배운 교훈이었다. 포식자처럼 행동하면 상대도 먹잇감답게 행동한다. 그냥 못 본 척, 천천히 가던 길을 가면 된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83

다른 사람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멀찌감치 보이는 배도 한 대 없었다. 그래서 널찍한 어귀로 돌아 들어설 때, 똑같이 낡아빠진 보트를 탄 소년이 습지의 풀밭에 바짝 붙어 낚시하는 광경은 뜻밖이었다. 카야의 진로는 소년과 불과 6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카야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거친 습지 아이처럼 보였다. 산발로 헝클어진 머리, 먼지투성이의 뺨, 바람에 눈이 시어 흘린 눈물 자국.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85

곁눈질로 보니 소년은 몸이 가늘었고 황금빛 고수머리에 빨간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카야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다. 열한 살, 아니 열두 살쯤 되어 보였다. 다가가는 카야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소년은 따뜻하고 허물없이 웃어보이며 신사가 고운 드레스를 입고 보닛을 쓴 숙녀를 반기듯 모자챙에 손을 대 인사했다. 카야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앞만 보면서 스로틀을 올리고 지나쳤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86

태양의 영토를 빼앗고 있던 구름이 소리 없이 묵직하게 이동하며 맑은 수면에 비친 하늘을 밀어내고 그림자를 질질 끌고 와 덮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86

혼자라 무서웠지만 이제는 그 기억마저 흥분돼 콧노래를 불렀다. 게다가 또 다른 요인이 있었다. 소년의 차분함. 그렇게 찬찬히 말하고 움직이는 사람을 카야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너무나 확고하면서도 편안한 행동거지였다. 그냥 근처에만 있었는데, 그렇게 가까이 간 것도 아닌데, 딱딱하게 뭉쳐 있던 카야의 응어리가 한결 느슨해졌다. 엄마와 조디가 떠나고 처음으로 숨 쉴 때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처 말고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카야에게는 이 보트와 그 소년이 필요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91

바다를 훑어보며 아버지의 새우잡이 배 체리파이호를 찾던 테이트는 저 멀리 환한 빨간색 페인트와 파도가 높아질 때마다 흔들리는 넓은 그물을 보았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91

스코틀랜드 이민자인 스커퍼의 고조부는 1760년대에 노스캐롤라이나 연안에서 난파한 선박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는 해안까지 헤엄쳐 와서 아우터뱅크스에 상륙했고 아내를 만나 슬하에 자식 13명을 두었다. 족보가 워커 씨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으나 스커퍼와 테이트는 대체로 단둘이서만 지냈다. 테이트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있던 시절과는 달리 치킨 샐러드와 데블드 에그를 펼쳐놓고 즐기는 친척들의 일요일 소풍에도 나가지 않았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93

테이트는 사진에서 눈길을 돌리고 토마토를 썰고 베이크 빈을 저었다. 테이트만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둘 다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치킨에 양념을 바르고 캐리언은 비스킷을 잘랐겠지.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94

테이트의 아버지는 진짜 남자란 부끄러움 없이 울고 심장으로 시를 읽고 영혼으로 오페라를 느끼며,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95

방에 들어가 수업 시간에 읽을 시를 살펴보던 테이트는 토머스 무어Thomas Moore의 시 한 편을 발견했다.

……그녀는 암울한 늪의 호수로 갔네
그곳에서 밤새도록 반딧불이 등불을 벗 삼아
하얀 카누를 저었지

머지않아 나는 그녀의 반딧불이 등불을 볼 테고
그녀의 노 젓는 소리를 들을 테고
우리 삶은 길고 사랑으로 충만하리라
죽음의 발걸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그 처녀를 사이프러스 나무에 숨기리

그 단어들이 조디의 동생 카야를 떠올리게 했다. 광활한 습지에서 너무 작고 외로워 보였다. 테이트는 여동생이 습지에서 길을 잃었다는 상상을 했다. 아버지가 옳았다. 시는 무언가 느끼게 만들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96

카야는 소년을 생각했다. 친절하지만 강했어, 조디처럼. 요즘 카야가 말을 섞는 상대는 가끔 아버지 그리고 훨씬 뜸하게 피글리 위글리에서 카운터를 보는 싱글터리 부인밖에 없었다. 싱글터리 부인은 요즘 카야에게 쿼터25센트 동전, 니켈5센트 동전, 다임10센트 동전의 차이를 가르쳐주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페니1센트 동전는 카야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싱글터리 부인은 성가시게 오지랖을 부릴 때가 많았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98

카야는 갈수록 아무하고도 말을 섞지 않고 갈매기한테만 이야기했다. 아버지한테 배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으려면 어떤 거래를 해야 할까 고민이었다. 습지에 나가면 깃털과 조개껍데기를 모으고 가끔은 그 소년을 볼 수도 있을 텐데. 카야는 친구를 가져본 적은 없지만 친구가 왜 필요한지는 알 것 같았다. 매혹적인 이끌림이 느껴졌다. 강어귀도 함께 돌아다니고 소택지를 샅샅이 탐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년은 카야를 그저 꼬마라고 생각할 테지만, 습지를 빠삭하게 꿰고 있으니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줄지도 모른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99

카야는 주방으로 달려가 겨잣잎과 등뼈와 그리츠를 끓여 만든 굴라쉬를 차렸다. 그레이비를 만들 줄 몰라서 텅 빈 잼 단지에 등뼈 육수를 부었다. 하얀 기름이 국물에 둥둥 떠다녔다. 접시는 금이 가고 짝도 맞지 않았지만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포크를 왼쪽에 놓고 오른쪽에 나이프를 놓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자동차에 깔려 납작해진 황새처럼 찬장 냉장고에 딱 붙어 선 채로.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02

두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서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이런, 이게 다 뭐냐? 쬐끄만 게 갑자기 다 커버린 것 같네. 요리도 하고, 참."
아버지는 웃지 않았지만 차분한 얼굴이었다. 수염을 깎지 않아 텁수룩했고 왼쪽 관자놀이 위로 감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맑은 정신이었다. 카야는 술에 취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을 다 알았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03

카야는 아버지의 접시에 음식을 담으며 배시시 웃었다. 콘브레드로 가까워지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지금 보트를 써도 좋으냐고 물으면 아버지는 카야가 대가를 바라고 요리하고 청소했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왠지 다른 기분이 들었다. 카야는 가족처럼 함께 앉아 밥을 먹는 게 좋았다. 누군가와 말하고 싶다는 갈망이 절박해졌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05

하지만 이 보잘것없는 가족의 잔해를 지키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물고기 입장에서는 다른 얘기겠지만, 어쨌든.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08

그날 저녁 아버지는 생선을 튀겨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옥수숫가루와 검은 후추를 듬뿍 묻혀 튀기고 그리츠와 채소를 곁들였다. 밥을 다 먹고 카야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쓰던 낡은 군용 배낭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문간에 서서 의자에 배낭을 아무렇게나 휙 던졌다. 쿵 소리를 내며 배낭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카야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돌아보았다.
"너 깃털이랑 새 둥지랑 뭐 그런 거 수집하는 거, 여기다 넣으면 좋을 것 같더라."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08

카야는 낡은 배낭을 집어들었다. 평생을 써도 닳지 않을 것 같은 튼튼한 캔버스 천으로 만들어진 배낭에는 작은 호주머니들과 비밀 수납공간이 가득했다. 웬만해서는 고장 나지 않을 지퍼. 카야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한 번도 카야에게 무언가를 준 적이 없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09

"여기서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된다." 아버지가 말했다. "숲에는 백인 쓰레기들이 많으니까. 거의 다 약에도 못 쓸 인간들이라고 생각해야 해."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10

아버지는 매가 초원을 알고 있듯 습지를 샅샅이 알고 있었다. 사냥하는 법, 숨는 법, 침입자들에게 겁을 주는 법도 잘 알았다. 아버지는 카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던지는 질문들에 신이 나서 거위 사냥철, 물고기들의 습성, 구름과 파도의 이안류를 보고 날씨를 읽는 법 등을 설명해주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10

한참 후에는 포치 잠자리에 누워 소나무 숲 소리를 들었다. 눈을 감았다가 문득 커다랗게 떴다. 아버지가 틀림없이 ‘아가’라고 불렀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13

소금물 습지는 시멘트 덩어리라도 아침 식사로 꿀꺽 잡아 잡순다는 말이 있다. 벙커 같은 보안관 집무실도 갯비린내를 막진 못했다. 언저리에 소금 결정이 들러붙은 물 찬 자국들이 벽을 따라 낮게 물결 모양으로 번져 있고 검은 곰팡이가 천장을 향해 핏줄처럼 퍼져 있었다. 아주 작은 까만 버섯들이 모퉁이마다 옹송그리고 자라났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15

"내가 제때 봤어요. 고마워요, 제니. 저런 사람들은 마을 출입을 못 하게 하면 좋겠네요. 저 계집애 좀 봐요. 더러워 죽겠어. 못 배워먹어서 고약하잖아요. 요즘 장염이 돈다던데 내 생각엔 틀림없이 저런 사람들한테서 옮겨온 거 같아요. 작년에는 홍역도 옮겼잖아요. 심각한 문제라니까." 테리사는 아이를 꼭 움켜쥐고는 가버렸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27

엄마가 한 말도 또렷했다. "이제 오슨 웰스 씨의 방송을 잘 들어봐. 정말 신사답게 말한단 말이야. ain’t(ain‘t는 인칭을 구분하지 않고 쓰는 남부 사투리다.)라는 말은 절대 쓰지 말고. 영어에 그런 말은 없거든."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29

아버지는 다시는 카야와 낚시하러 가지 않았다. 따스했던 날들은 덤으로 주어진 계절이었다. 낮은 구름이 갈라져 밝은 햇살이 카야의 세상을 잠시 환하게 비추는가 싶더니 곧 어둠이 굳게 아물려 움켜쥔 주먹처럼 단단하게 죄어들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33

남들한테 뒤지지 않으려고 카야는 촛불이나 달빛에 의지해 깊은 밤에 홍합을 땄다. 은은히 빛나는 모래밭에서 카야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홍합뿐 아니라 굴도 따고, 첫 새벽이 밝자마자 일착으로 점핑에게 가려고 골짜기 근처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홍합 판 돈이 월요일 돈보다 훨씬 더 꾸준히 들어왔고, 카야는 대체로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44

그렇게 누워서 엄마는 말했다. "다들 엄마 말 잘 들어. 이건 진짜 인생에 있어 중요한 교훈이야. 그래, 우리 배는 좌초돼서 꼼짝도 못 했어. 하지만 우리 여자들이 어떻게 했지? 재밋거리로 만들었잖아. 깔깔 웃으며 좋아했잖아. 자매랑 여자 친구들은 그래서 좋은 거야. 아무리 진흙탕이라도 함께 꼭 붙어 있어야 하는 거야, 특히나 진창에서는 같이 구르는 거야."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77

부드러운 은빛 깃털, 나이트 헤론이었다. 습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다. 다음에 카야는 우유갑 안을 들여다보았다. 꼭꼭 싸서 쑤셔 넣은 몇 종류의 씨앗—순무, 당근, 그린 빈—아래, 카야의 보트 엔진에 맞는 스파크 플러그가 갈색 봉투 속에 들어 있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78

"그게 다가 아니야." 카야의 말은 속삭임에 가까웠다. "단어가 이렇게 많은 의미를 품을 수 있는지 몰랐어. 문장이 이렇게 충만한 건지 몰랐어."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90

카야 자신의 이름이 맨 아래 적혀 있고 옆에 생일이 쓰여 있었다.미스 캐서린 대니엘 클라크, 1945년 10월 10일. 명단 맨 위로 돌아가 오빠와 언니들의 진짜 이름을 읽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193

"그래, 저기 어디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 가서 꼭꼭 숨어야겠네. 누군지 몰라도 카야를 데리고 가서 키워야 되는 사람들 참 안됐다." 테이트가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202

"무슨 말이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니? 엄마도 그런 말을 했었어." 엄마는 언제나 습지를 탐험해보라고 독려하며 말했다.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203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자연의 경이와 실제 삶의 지식, 누구나 알아야 하는데, 버젓이 주위에 노출되어 있는데 씨앗처럼 은밀하게 숨어 있는 진실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207

"우리 두뇌는 아무리 써도 도저히 꽉 채울 수 없거든. 우리 인간은 마치 기다란 목이 있으면서도 그걸 안 써서 높은 곳에 있는 잎사귀를 따먹지 못하는 기린 같은 존재야."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237

그래서 테이트는 조개들을 그린 부드러운 색조의 수채화와 그레이트 블루 헤론을 골랐다. 철 따라 바뀌는 새의 모습을 그린 카야의 상세한 스케치와 휘어진 눈썹 깃털의 섬세한 유화 때문이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355

테이트는 깃털 그림을 집어들었다. 수백 회의 얇디얇은 붓질로 풍부한 색채들이 화려하게 어우러지다 심도 깊은 검정으로 절정을 이루고, 햇빛이 캔버스를 어루만지듯 빛을 반사했다. 줄기가 살짝 찢어진 디테일은 너무나 독특했기에 테이트와 카야는 동시에 깨달아버렸다. 이건 테이트가 숲속에서 처음으로 카야에게 선물했던 그 깃털 그림이라는 걸.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355

거절로 점철된 삶이 슬펐다. 머리 위에서 씨름하는 하늘과 구름에 대고 카야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374

카야는 엄마와 똑같은 덫에 걸려들었다. ‘음흉한 바람둥이 섹스 도둑들.’ 아버지는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을까. 얼마나 비싼 레스토랑에 데리고 다녔을까.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자 자신의 진짜 영역으로, 늪지의 판잣집으로 데리고 와버렸다. 사랑이란 차라리 씨도 뿌리지 않고 그냥 두는 게 나은 휴경지인지도 모른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375

외로움을 아는 이가 있다면 달뿐이었다.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378

캐서린 대니엘 클라크가 지은 『동부 연안의 바닷조개』 가제본이 나왔다. 카야는 숨을 들이쉬었다. 이걸 보여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380

그 후로 책을 아주 많이 읽었어. 대자연에, 저기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테 가혹해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 거야. 아직도 우리는 그런 유전자와 본능을 갖고 있어서 특정한 상황이 닥치면 발현되지. 우리의 일부는 언제까지나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일 거야.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에도 말이야.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418

1969년 7월의 오후, 조디가 찾아온 후 7개월도 넘는 시간이 흐른 뒤 캐서린 대니엘 클라크의 두 번째 저서 『동부 해안의 새들』이 우체통에 모습을 드러냈다. 카야는 눈에 번쩍 띄는 표지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재갈매기를 그린 그녀의 그림이었다. 미소 지으며 카야는 말을 걸었다. "안녕, 빅 레드, 표지에도 나오고 출세했구나."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434

혼자서 보낸 수백만 분의 시간으로 수련한 카야는 자기가 외로움을 안다고 생각했다. 낡은 부엌 식탁을, 텅 빈 침실 안을, 끝없이 망망하게 펼쳐진 바다와 수풀을 바라보며 보낸 한평생. 새로 발견한 깃털이나 완성한 수채화의 기쁨을 함께 나눌 이 하나 없는 삶. 갈매기들에게 시를 읊어주던 나날.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601

카야는 조수간만처럼 확실한 이런 자연적 과정의 일환으로 살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녀만큼 이 지구라는 별과 그 속의 생명체들과 끈끈하게 유착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흙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대지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서.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635

죽음의 발걸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그 처녀를 사이프러스 나무에 숨기리라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637

반딧불

그를 꼬드겨내는 건
밸런타인의 불빛을 깜박이듯 쉬웠지
하지만 숙녀 반딧불처럼
그 불빛들에는 죽음의 은밀한 부름이 담겨 있네

마지막 터치,
끝이 아니야
마지막 발자국, 덫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네
그 눈이 내 눈을 꼭 붙들다
끝내는 다른 세상을 보지

그 눈이 달라지는 걸 봤어
처음에는 질문
다음에는 해답
마침내 끝

그리고 사랑 그 자체가 스쳐지나
그게 무엇이었든 시작하기 전으로 돌아가네

A. H.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642

밤이 내리자 테이트는 다시 판잣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호소에 다다랐을 때는 높은 캐노피 밑에서 발길을 멈추고 습지의 어두운 비원으로 손짓해 부르는 수백 마리의 반딧불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깊은 곳,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으로.

-알라딘 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중에서 - P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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