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의 신화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것은 대동맥에서 피가 더 빨라지기 시작하는 듯싶은 새로운 장단에 맞춘 음악적 흥분이었다. 마치 원하지 않는 어떤 외적인 실체가 내 혈관으로 들어온 듯, 나는 풀기 어려운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을, 현기증과 열기를 느꼈다.

영혼의 자서전 (하) |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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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와, 운율과, 비유가 침투한 씨앗 둘레를 당장 맴돌고, 둘러싸고, 태아처럼 영양분을 주기 시작했다. 희미한 추억들이 되살아났고, 잠겼던 기쁨과 슬픔과 웃음과 격한 대화가 모두 떠올랐다. 우리들이 함께 지낸 수많은 나날이 우아하고 하얀 비둘기처럼 요란하게 끼룩거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추억은 진실보다 한 층 높이, 거짓보다 두 층 높이 올라갔다. 조르바는 서서히 변신하여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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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문턱 너머에서 한숨짓는 바다 소리를 들으면서, 마당의 레몬나무와 삼나무에는 첫 비가 내리는데, 몸속 한가운데서 씨앗이 자라는 느낌이 주는 엄청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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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조개에게는 진주가 병이면서도 가장 숭고한 업적이듯이, 내 핏속에서 열병처럼 소용돌이를 일으키던 진주는 나를 잉태했던 ― 머지않아 나를 잉태하게 될 ― 심오한 원천으로부터, 내 생애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나한테 전해지는 비밀스러운 말씀이라고 느꼈다. 이 씨앗, 이 아들을 바탕 삼아 내 운명은 결정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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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性)이 바뀌어 대지처럼 여자가 되어, 씨앗에게 〈말씀〉의 젖을 먹이며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오, 만일 내가 〈말씀〉 속에 모든 고뇌와 희망을 담아, 대지의 문을 열고 떠나야 할 때 뒤에 〈말씀〉의 아들을 남기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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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올리브나무에서 유충을 떼어 손바닥에 놓았던 기억이 난다. 투명한 꺼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보였다. 그것이 움직였다. 비밀스러운 과정은 틀림없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서, 미래의 나비는 아직 갇힌 채로 껍질을 뚫고 햇빛으로 나올 성스러운 시간을 조용히 떨며 기다렸다. 그 나비는 서두르지 않았다. 신의 영원한 법칙과, 따스한 공기와, 빛을 자신 있게 믿고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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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조급했다. 어서 빨리 기적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기를 바랐고, 육체가 무덤에서 나와 어떻게 영혼이 되는지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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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이 뒤집혔다. 내가 서둘렀기 때문에, 영원한 법칙을 감히 어겼기 때문에, 나는 나비를 죽였다. 내 손에는 시체만 남았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나비의 시체는 그 후 줄곧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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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서두르지만 신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작품은 불확실하고 불완전하지만, 신의 작품은 결점이 없고 확실하다. 눈물을 글썽이며 나는 영원한 법칙을 다시는 어기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나무처럼 나는 바람에 시달리고, 태양과 비를 마음 놓고 기다릴지니, 오랫동안 기다리던 꽃과 열매의 시간이 마침내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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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라.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맹세를 어기던 참이었다. 조르바의 유충이 아직 다 자라지 않았는데도 나는 서둘러 껍질을 벗기려고 했다. 스스로 수치를 느낀 나는 원고지에 긁적거린 모든 글을 찢어 버리고 밖으로 나가 바닷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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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흉내 내려는 시도야말로 (나는 물고기를 기억하겠지만) 단 한순간이나마, 털끝만큼이라도, 인간의 범주를 초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육체 속에 갇혀 살아가는 한, 우리들이 유충으로 남는 한, 신이 우리들에게 내려 준 가장 고귀한 명령은 이것이다 ― 인내하라, 명상하라,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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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는 해를 지켜보았고, 앞의 무인도는 입맞춤을 받은 뺨처럼 기분 좋게 장밋빛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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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흐름. 땅속의 씨앗, 새, 별 ― 모두가 순종한다. 인간만이 손을 들고 반항하여 법칙을 어기고 순종을 자유로 바꾸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피조물들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죄를 범할 능력을 부여받았다. 죄를 범한다 ―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조화의 파괴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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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천국이나 지상의 기쁨이 인간의 육체와 영혼보다 더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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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해적 그리스도와 붓다는 사라지지 않았고, 환희에 찬 의미를 지니고 장식적인 상형 문자들처럼 기억의 여명 속에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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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일하던 시간 또한 내 위로 흘러갔고, 내 몸속의 씨앗이 영글었다. 새와 별들과 더불어 나는 영원한 수레바퀴에 몸을 묶었고, 평생 처음으로 무엇이 참된 자유인지를 알았으니, 그것은 신의 밑에서, 그러니까 조화의 밑에서 스스로 멍에를 지는 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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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슬픔, 여행, 미덕과 악, 나의 다른 모든 존재는 그 외침을 향해서 전진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스도와 붓다는 도중의 정거장이었다. 나는 정거장들을 거쳐야 했고, 그런 과정은 숨은 새가 지나간 자취였으며, 내가 외침을 끌어내도록 도와주는 조수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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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둘이고 털 뽑힌 작은 수탉과 같은 인간에게 인사를 드린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든지 간에) 아침에 네가 울지 않으면 해가 뜨지 않는다는 말은 정말로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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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동안에 내 주변의 사람들과, 집과, 나무들 그리고 모든 사물이 줄어들었다. 아버지만이 어릴 적에 본 그대로 항상 거인으로 남았다. 내 앞에 우뚝 솟은 아버지는 내가 받을 몫의 햇빛을 막아섰다.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 사자의 굴에서 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비록 내가 갈팡질팡하고, 떠돌아다니고, 힘든 지적인 모험에 몸을 던져도, 아버지의 그림자는 항상 나와 빛 사이를 막아섰다.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일식(日蝕) 밑에서 항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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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쟁은 절대로 끝이 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완전히 패배를 당하지도 않았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도 못했다. 나는 끊임없이 투쟁한다. 당장이라도 나는 전체가 파멸할 터이며, 당장이라도 나는 전체가 구원을 받으리라. 아직도 나는 심연 위의 〈아슬아슬한 다리〉를 건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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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고 단순한 물은 변형되어 영원한 삶의 물이 되어서, 인간을 새롭게 한다. 물에서 나온 개종자에게는 세상이 달라 보인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으니, 항상 신기하고 무서우며, 간악하면서도 아름다움이 넘친다. 하지만 영세를 받고 난 지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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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662- P559

인간 영혼과 박쥐의 모험은 똑같다. 인간의 영혼도 한때는 생쥐였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육체를 먹고, 성찬식을 신과 함께 나누며, 날개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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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백지가 아니라 내 얼굴이 보이는 거울이었다. 나는 내가 쓰는 모든 글은 고백이 되리라고 믿었다. 이것은 중대한 시간, 최후의 심판이었다. 보이지 않는 심판자 앞에 서면 마음은 스스로 지은 죄를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며 떠들어 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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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아직도 똑같은 책략과 변함없이 이기적인 기도(祈禱)를 사용하며, 영혼은 육체가 너무 무거워 자유롭게 날개를 펼칠 힘이 없어서 육체의 길을 걸어서 따라가야만 하는 까닭에, 우리들은 변함없고 세련되지 못한 계략으로 보이지 않는 자를 상대로 위협하고, 애원하고, 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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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토록 깊은 공감을 느끼며 누에의 말없는 고민과 안도감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누에가 먹은 모든 뽕나무 잎사귀들이 드디어 변화를 일으켜 비단실이 되면, 창조의 과정이 시작된다.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누에는 발작적인 경련을 일으켜 꽁무니를 내밀고는 가느다란 비단실을 한 가닥 한 가닥 뽑아서 인내와 신비로운 지혜로 하얗고 황금빛인 자신의 관을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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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전체가 비단실로, 육체 전체가 영혼으로 변하는 과정보다 더 절박한 의무나, 더 감미로운 고민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또한 신의 일터를 지배하는 법칙을 그보다 더 충실하게 따를 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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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하는 동안 작가는 줄곧 배 속의 아들에게 영양분을 주는 여인처럼 입덧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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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키마이라〉, 〈희망〉, 〈확실성〉이라는 세 세이렌들 가운데 어느 마녀 앞에 걸음을 멈추고 영혼을 바쳐야 할지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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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나는 신의 세 가지 피조물인 나비가 되려는 벌레와, 본성을 초월하려고 물에서 뛰어오르며 나는 듯한 물고기와, 배 속에서 비단실을 뽑아내는 누에에게 늘 매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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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세이렌들과 그리스도와 붓다와 레닌처럼 죽은 다음에도 불멸한 자들만이 나를 매혹시켰다. 젊었을 적부터 나는 그들의 발치에 앉아 사랑이 넘치는 그들의 유혹적인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전혀 거부하지 않으면서, 이들 세이렌들로부터 구원을 받으려고 평생 투쟁했으며, 서로 싸우는 그들의 세 가지 소리를 결합시켜 조화롭게 변형시키려고 투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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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환상과 사람들은 싸움을 벌인다. 가장 무지한 사람들은 선과 악이 적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선과 악이 같은 편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모든 진실을 파악하는 경지에서 세상의 삶과 죽음이 벌이는 시합을 둘러보고는, 그들이 이루는 조화에 기뻐하며 말한다 ― 선과 악은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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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비밀 말인가?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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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순종하지 않고 다스리니 형식을 파괴하는 악마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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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깨운다는 것! 그것이 인간의 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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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되기는 하겠지만, 너하고 나는 달라. 세 종류의 인간이, 세 가지의 기도가 존재하니까. 첫째, 나는 당신이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이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이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한껏 당겨 주소서, 주님이여.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겠나이까!

선택은 스스로 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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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視角),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지성 ― 나는 내 연장들을 거둔다. 밤이 되었고, 하루의 일은 끝났다. 나는 두더지처럼 내 집으로, 땅으로 돌아간다. 지쳤거나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피곤하지 않다. 하지만 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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