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는 저마다 그와 비슷한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들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나름대로 힘겹게 버티고 있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 사연의 주인공이 ‘나’는 아니더라도 ‘내’ 옆에, ‘내’ 앞에, ‘내’ 뒤에 ‘내’가 위로해 줘야 하고 이해해 줘야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오은영의 화해>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7700 - P4

인간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부모도 불가능해요. 그런 부모는 어디에도 없어요. 부모는 본능적으로 자식을 사랑하지만, 목숨을 바칠 만큼 엄청나게 사랑하지만, 그래서 결국은 자식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오은영의 화해>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7700 - P5

우리,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지만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잖아요. 나이와 상황, 사는 곳, 하는 일은 모두 다르지만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잖아요. 내일의 삶이 불안하고 오늘의 삶이 버겁지 않은 사람이 없잖아요. - <오은영의 화해>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7700 - P6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나’, 그런 ‘나’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보고 미워했던 ‘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 그 상처받은 ‘나’와 미워했던 ‘내’가 화해하기를 바라요. 상처의 시작은 ‘나’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것을 기억하세요. 그것을 알고 당신이 당신 자신과 진정으로 화해하기를 바랍니다. - <오은영의 화해>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7700 - P6

그렇게 아팠는데 아무렇게나 살지 않고 버틴 것, 그것은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이기도 하고, 당신 안에 엄청난 힘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 <오은영의 화해>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7700 - P8

당신은 문제를 인식했기 때문에 이 책의 첫 장을 펼쳤겠지요. 당신은 내면에 그런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인식이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상처받지 않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갈등이나 고통, 인간의 상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부분에 눈을 뜬 사람이에요. 이것은 당신의 엄청난 내적 자원이에요. 저는 당신이 그 힘을 좀 믿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어 가며 당신의 그 힘이 더 단단해져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 <오은영의 화해>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7700 - P9

부모는 아이에게 생명의 시작이자 생존의 기반이에요. 그리고 전쟁터의 방공호 같은 존재입니다. 아이는 부모가 없으면 살 수가 없어요.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습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조건 없이 수용받아 본 경험, 깊고 따뜻한 사랑으로 살아요.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 <오은영의 화해>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7700 - P16

자아의 기능 중 현실 검증력이라는 것이 있어요. 아주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나의 모습을 현실에 맞게 검증해서 인간답게 행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평생 동안 갖추려고 노력해야 하는 중요한 기능이지요. 인간은 어떤 계기로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에요. 마음은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가졌지만 행하지 않았다면 괜찮습니다. 잘 살고 있는 거예요. ‘나’의 정신은 건강한 겁니다. - <오은영의 화해>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7700 - P20

너무 힘들면 거리를 두세요. 멀어져도 괜찮습니다. 가족이 서로 관여하지 않거나, 사는 거리가 멀거나, 연락이 좀 뜸하다고 가깝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정말 잘 지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형식보다 더 중요한 거예요. - <오은영의 화해>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7700 - P53

이게 바로 ‘마음의 충족감’입니다. 마음의 충족감은 아이가 ‘와! 부모가 내 마음을 잘 아는구나’라고 느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따뜻한 느낌이 확 차오르는 거예요. 양으로는 측정이 안 되지만 물통에 물이 차오르듯이 내 마음에 사랑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그럴 때 아이는 ‘아, 행복해!’, ‘아,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 <오은영의 화해>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7700 - P74

많은 부모가 저에게 물어요. "아이에게 어떻게 해 주어야 할까요?" 부모는 아이에게 뭔가 해 주려고만 합니다. 그런 마음도 사랑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부모에게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지는 중요합니다. 어떤 것은 꼭 해 주어야 해요. 그러나 아이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어요.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하면 아이에게 해가 됩니다. 무언가를 해 주는 것보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 <오은영의 화해>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27700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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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우리를 질책하지만 우리에게 환상을 제공할 때는 보상이 될 수 있다. 매일 아침 새 삶을 시작한다는, 말은 안 되지만 꼭 필요한 환상 말이다. 시간은 우리를 끝으로 인도하는 카운트다운인 동시에 지치지 말고 다시 시작하라는 신성한 허락이다. 반복은 불모성과 생산성이라는 양가적 힘을 지녔다. 반복은 고갈시키는 동시에 변화시킨다. 반복은 시간의 지속 안에서 버티고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래서 우리 안의 두 가지 시간성, 즉 직선적으로 흐르는 시간성과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시간성은 반복을 통하여 조화를 이루고 관성에 빠진 듯 보이면서도 전진하는 느낌을 준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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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게서 사랑한 것을 담담히, 단순하게 표현해야 한다면, 네가 지녔던 자유를 사랑했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너 자신조차 예측할 수 없던 네 마음, 누군가가 너에게 느꼈을 수도 있던 정념을 거부하던 네 마음을 사랑했고, 다시 말해, 너의 사랑과 지성을 사랑했다.
그 까닭은 진정한 사랑과 관능적인 지성과 몸소 체험한 자유만이 우리에게 고동치며 비상하는 단 하나의 심장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너의 죽음에서 내가 알 수 없던 것들은 네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알 수 없던 것들이었다. 죽음은 삶을 숙명으로 바꾸지 않는다. 죽음은 마침내 해독할 수 있는 텍스트가 담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나는 너를 빛 속으로 달아나는 심장을 가진, 반항적이고 잡히지 않는 사람으로밖에는 상상할 수없다. - P43

나는 네가 바로 옆에 있을 때조차 다가갈 수 없는 존재라고 늘 생각했다. 그걸 알면서도 너를 사랑했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두 번 결혼했고, 수많은 관계로 이어져 있던 너. 나는 너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 더 자유롭고, 더 지혜롭고, 더 사랑이 깊은 사람을 본적이 없다. 자유와 지혜와 사랑은 세 단어이나 똑같은말이다. 각 단어가 다른 두 단어와 유리되면 알맹이도 의미도 없는 텅 빈 언어가 되어버리므로. - P44

네가 죽고 며칠 동안은 너무 괴로운 나머지 네 사진을 볼 수가 없었다. 지금은 사진을 보아도 담담하다.
너는 죽기 나흘 전에 사진을 찍었는데, 그것이 너의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사진들 속에서 나는 네 옆에 있다. 무덤덤하게 사진을 바라본다.
내게는 증거나 흔적이나 표식이 필요치 않다. 너는 내게 속한 적이 결코 없었다. 너는 단 한 번도 누구의 소유인 적이 없었다.
너는 네가 만난 사람들을 온전히 사랑했다. 그리고 이 사랑 안에서 빛나는 자유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사진에는 자유의 이미지가 없다. 그 이미지를 담을 수 없다. 너는 사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나의 애착 안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 그리고 앙토냉 아르도 같은 시인의 언어 속에 네가 있다. - 나는 너를 보지 않고서는, 황량한 이미지들 속에 있는 네가 아닌 더 확실한 너를 보지 않고서는 아르토의 글을 다시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 P69

‘마음에 그를 품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마음에 품는다는 건 사랑하는 자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지 않고 마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어떻게 영원히 줄 수 있는가?‘
너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답을 안다. 답은 우리가 사는 동안 질문에 스민 불안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답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지슬렌, 너처럼 춤추고 웃음을 터뜨리면서 질문 속에 영원히 머무르는 것이다. - P70

지혜로움이란 가장 소중한 것을 다른 이에게 제안하는 것이며, 만일 그가 원한다면,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모든 채비를 갖춰놓는 것이다. 지혜로움, 그것은 자유를 수반한 사랑이다. 너는 알고 있을까. 붉게 타오르는 가을 하늘 저 끝과 같이, 바닥에서 60센티미터 높이에는 늘 어디에나 네가 있다는 것을.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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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백인이었는데 잔인한 요정인 계모가 아름다운 내 모습을 질투해서 나를 검정 곱슬머리에 두 발은 마당만 하고 이와 이 사이가 넘버- 연필이 들어갈 만큼 벌어진 몸집 큰 검둥이 계집애로 만들어버렸다. -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2061259 - P11

남부의 흑인 여자아이에게 성장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라면, 추방당한 느낌을 의식한다는 것은 목구멍을 위협하는 면도날에 슬어 있는 녹이다. 그것은 불필요한 모욕이다. -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2061259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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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터 팬처럼 어른이 되기 싫은 어린이, 늙기 싫은 늙은이다.12 우리는 혈기 어린 탈선을 하며 생물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 젊은이들은 20세부터 동거를 하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부모들은 가벼운 연애를 즐긴다. 나이를 먹는다고 철이 들지는 않는다. 늦바람이 죽을 때까지 갈 수도 있다. 중년 이후의 주책맞은 애정행각이 우습거나 추접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서히 무덤이나 소독약 냄새 나는 병원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관습에 도전하는 것보다 짜릿한 게 있을까?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48

나이에서 황폐한 장식을 벗겨내고 노년을 유머와 멋으로 갈아엎어야 한다. 한계는 밀어내기 위해 존재한다. 생은 어떤 단계에서든 불가역성에 반발할 수 있다. 심연으로 가라앉기 전까지는, 언제라도 그럴 수 있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49

나이는 예고 없이 우리를 덮치고, 우리가 아닌 또 다른 자아가 우리에게서 태어나게 한다. 게오르크 헤겔은 그런 게 운명이라고 했다. 타자의 모습을 한 나 자신 말이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51

한편, 프랑스대혁명이 낳은 문제아인 낭만주의는 개인적 창조의 결실, 독창성을 높이 샀다. 시인, 음악가, 화가, 극작가는 관습을 뒤엎고 화석화된 전통을 부수고 굉음과 위반을 통해서 창조해야 했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56

그렇지만 습관은 찬양해야 한다. 습관은 우리의 행위에 입히는 옷, 우리를 구조화하는 집, 우리 일상의 정신적 소재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 된 기질로서 심리적 낭비를 크게 막아준다. 우리는 늘 습관의 피조물일 수밖에 없다. 신념보다 더 뿌리 뽑기 힘든 게 습관이다. 전위파들은 규칙성은 죽음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규칙성이 운명의 존재론적 기반이요, 생존의 조건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규칙성을 폐기하고 예측 불가능성과 영원한 창의성을 떠받들면 끔찍한 진부함은 없을지 모르겠으나 생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58

루틴은 역사 없는 존재들이 우발적으로 빚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바로 세우는 뼈대다. 이 자동적 행위들의 집합이 우리를 구성하는 동시에 억압한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59

운명이 빈약할수록 픽션은 건실해진다. 픽션이 한없이 작은 것을 파고들 때, 보일 듯 말 듯한 뉘앙스를 잡아낼 때,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을 비극의 반열에 올려놓을 때는 실로 그렇다. 성장이란 모든 것에서 찬란함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썰물의 나날에도 미세한 격랑은 일어난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서사 구조는 있다. 그게 바로 소설적인 것이다. 픽션은 이야기라는 복된 짐을 진 욕망에서 나온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61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연속성이 새로움을 이긴다. 삶의 변화를 꿈꾸기보다는 이미 있는 좋은 것들과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61

우리는 줄거리를 알면서도 같은 기대, 같은 전율을 경험하고자 한다. 그런 것이 안심되는 반복의 위안이다. 좋아했던 목소리, 늘 선호하는 장르의 영화와 음악, 익숙한 얼굴, 모국어의 울림은 위안을 준다. 향마다 고유한 화학식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우리에게 가장 잘 맞기 때문에 더는 바꾸고 싶지 않은 공식을 찾아낸다. 우리는 여전히 왁자지껄한 법석에도 마음이 끌리지만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 여전히 바라도 되는 것, 욕심내서는 안 될 것을 예전보다 훨씬 더 잘 안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63

우리 삶은 소설이 아니요, 늘 그날이 그날 같다.
뭐 새로운 것 없나?
별일 없이 사는 거지, 뭐.
그런데 인간은 일화 형식의 일상을 소재 삼아,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살아간다.
평범함의 과제는 폭풍 같지 않은 폭풍의 일상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시시해 보이는 폭풍이 계속 이어지면
가장 강인한 마음도 무너뜨릴 수 있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64

하루하루가 완전한 인간 극장이다. 하루는 삶을 잘라내 보여주는 상징체계다. 눈부신 새벽, 의기양양한 정오, 수고로운 오후, 차분한 황혼을 보라.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일상의 죽음에서 벗어나는 작은 부활이다. 아침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밤이 앗아간 기운을 돌려받는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연은 여전히 우리 삶의 리듬을 구획 짓는다. 날씨가 화창하고 흐리고에 따라서 기분이 널뛰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식으로 대우주와 우리 인간이라는 소우주는 연결된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65

신체를 전체적으로 감싸는 날씨는 부분적으로 우리의 기쁨과 번민을 좌우한다. 빛은 우리를 경쾌한 기운으로 채우고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개인적 징벌처럼 우리를 짓누른다. 해는 매일 아침 선물을 한아름 안고 떠오른다. 새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찍으면 세상에 첫걸음을 떼는 기분이 든다. 눈을 감고 잠들면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새벽이 눈부신 빛으로 솟아오르려면 어둠이 필요하다. 힘든 날들은 지나간다. 우리는 1년에 365번이나 그런 날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65

잠은 이런 면에서 망각과 소생의 놀라운 상징이다. 잠은 우리에게 다시 태어난 느낌을 준다. 푹 쉬고 난 뒤 세상을 바라볼 때 드는 그런 기분은 착각이지만 좋은 자극이다. 허물을 벗는 뱀처럼, 옛 모습을 버리고 어둠에서 빠져나와 모든 일이 다시 가능하리라 느끼는 것은 기적이다. 밤의 피조물들은 흩어지고 허깨비로 돌아간다. 떠오르는 새벽의 은근한 취기, 새들의 지저귐에 우리는 얼떨떨하다. 어제의 낡은 나를 벗고 새로운 나를 만든다. 아침의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 세상과 다시 맺은 결합의 아름다움이다. 이 아름다움이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여권이다. 침대에서 일어나고, 샤워를 하고, 커피나 차를 마시는 이 단순한 몸짓들이 사물과 내밀한 연대를 맺고 우리를 다시 세상으로 내보낸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66

프랑스 낭만파 작가 스탈 부인은 책과 사상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지만 죽기 전 몇 주 동안 계속 잠을 자지 못하자 이렇게 신음했다. "잠이 없는 삶은 너무 길다. 24시간을 때우기는 너무 지루하다."5 그러므로 단 하루가 매일매일이고 새벽부터 석양까지 단 하루가 한평생이다. 니체는 우리가 영웅처럼 매일 저녁 황혼에 죽고 이튿날 다시 나타난다고 했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66

위대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동프로이센제국의 발트해 연안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메트로놈처럼 정확한 일과에 맞춰 살았다. 그는 늘 새벽 5시에 일어나고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으며, 매일 같은 길로 산책했다. 그가 산책을 빼먹은 일은 평생 딱 두 번뿐이었는데, 한 번은 1762년에 루소의 《에밀》을 정신없이 읽느라 그랬고, 다른 한 번은 1789년에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때였다.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67

질서와 기강은 스쳐 지나는 시간의 괴로움에서 우리를 구해주고, 권태마저도 안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일과에 복종함으로써 내적 시간의 흐름을 죽이다니, 기막힌 역설 아닌가. 시간을 죽이고 싶거든 일분일초도 어김없이 일과표대로 살아가라.

-알라딘 eBook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중에서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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