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세상의 이치를 말하는 이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세상의 속도를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로부터, 아직도 철이 없냐는 질책으로부터 가장 멀리 가는 기차를 탔다.

-알라딘 eBook <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지음) 중에서 - P50

‘항다반사恒茶飯事’는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 늘 있어서 이상하거나 신통할 것이 없는 일이란 의미다.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말도 같은 의미로, 보통 있는 예사로운 일, 흔한 일을 말한다. 흔한 일, 늘 있는 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몸에 익은 일은 우리의 일상을 지탱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항상 곁에 있어 긴장하지 않는 일과 사람이 특별한 힘을 지닌다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다.

-알라딘 eBook <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지음) 중에서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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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유물과 함께한 시간보다 유물을 바라보는 사람을 보아온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다른 이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박물관에 매일 출근하기에 누리는 즐거움이다. 뭔가를 가만히 바라보고 온 이를 만나면, 그는 평소의 그가 아닌 것 같다. 내 앞에는 조용히 머물며 맑아진 한 사람이 있다. 두런두런 건네는 몇 마디 짧은 대화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시간을 내어 만난 사람이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그가 바라본 유물이 그를 물들이고 내게 옮겨오는 느낌이 좋다. 사람마다 느끼는 지점이 다르며, 각자에게 닿아 만들어질 이야기는 한 가지 톤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알라딘 eBook <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지음) 중에서 - P6

오래 만나지 못한 이에게, 함께 있으면 편안한 이에게 같이 보고 싶은 전시가 있다며 말을 걸어보자. 박물관 문을 나올 때 그 이전과는 다른 어떤 공기가 당신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지음) 중에서 - P7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된다知則爲鎭愛愛則爲眞看看則畜之而非徒畜也"는 말이 그의 문장에서 나왔다.

-알라딘 eBook <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지음) 중에서 - P14

그림을 사랑하게 된 이는 마음에 공간이 생긴다.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내 안에 고정되었던 시선이 바깥을 향해 열린다. 대상을 더 섬세하게 느끼고 알고 싶다는 열망이 커진다. 그림 한 점 앞에 오래 서서 머물기도 하고, 이미 본 그림을 또 보러 가기도 한다. 화가의 시선이 도달한 공간, 붓을 잡은 이의 시간에 스치던 생각과 감정에 닿는다. 어떤 의도나 목적 없이도 무언가로 향하는 마음 그대로를 인정하게 된다.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다. 언제나 그랬지만 느낌이 먼저다.

-알라딘 eBook <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지음) 중에서 - P15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을 때는 그저 들어준다. 우리는 항상 곁에 있는 사람에게 쉽게 소홀해지는데, 어느 때는 자신을 외롭게 하는 진짜 주범이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인 것 같다. 시간을 내어주고, 기다려주고,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조금은 나아진다.

-알라딘 eBook <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지음) 중에서 - P20

여전히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의 책꽂이가 궁금하다. 그가 읽어온 모든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을까. 한때 밑줄을 그었던 문장이 모여 있는 방에는 제목이 보이지 않는 책이 놓여 있다. 꽂지 못한 책이 가 있는 곳을 서성일 이에게 호기심의 책꽂이가 놓여 있다.

-알라딘 eBook <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지음) 중에서 - P26

기억의 서랍을 열어 자신이 지나온 공간에서 어떤 향이 나는지를 찾아보는 시간. 아이들의 얼굴에 머무는 표정을 바라보고 대답을 기다릴 때 내 마음에도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같은 것이 스친다. 지금도 가장 기억나는 답은 빵집을 지나갈 때 갓 구운 빵에서 나는 향, 그리고 엄마가 미역국을 끓일 때 맡았던 향이었다.

-알라딘 eBook <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지음) 중에서 - P28

오늘은 행복에 대해 써야겠다. 내게 있어 행복은 함께 있는 느낌이다. 함께하는 마음은 두려움을 없앤다. 녹차 티백 뒷면에는 차를 우리기에 적정한 온도는 섭씨 70도라고 쓰여 있다. 끓인 물을 컵에 붓고 기다렸다. 섭씨 70도라……. 어느 정도 기다리면 되는 온도일까. 너무 뜨거우면 찻잎이 놀라 떫고 씁쓸해지고, 너무 식으면 차향이 우러나질 않는다. 이런저런 상황을 터득해야 알게 되는 물 온도와 같은 사랑의 온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적절한 온도는 몇 도일까? 차의 색을 보고 향을 맡는다. 오늘은 섭씨 70도를 잘 맞췄다. 차의 색과 온기가 참 좋다.

-알라딘 eBook <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지음) 중에서 - P30

유물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기억한다. 과거를 보여주는 유리 구슬처럼 우리는 갈 수 없는 어떤 곳을 보여주다가도 어떤 날은 거울이 되어 우리를 비춘다. 거울 앞에 반사되는 대상뿐 아니라 내 앞에 있었으면 하는 대상과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보여준다. 유물과 거울은 서로 통한다. 유리와 거울에 비친 대상은 우리의 믿음으로 인해 현존하게 된다.

-알라딘 eBook <멈춰서서 가만히> (정명희 지음) 중에서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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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과 약탈은 무보수로 끌어모은 병사에게 보상하는 방법이자 정복자에게는 적을 응징하고 굴복시킴으로써 승리를 확인하는 방법, 곧 로마인이 "Vae victis(정복당한 자에게 비애를!)"라는 어구로 표현한 방법이었다. - <관통당한 몸>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1228 - P27

"자신의 성기를 공포를 낳는 무기로 쓸 수 있다는 남자의 발견은 최초의 조악한 돌도끼와 불의 사용과 함께 선사시대의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평가될 것이다." 미국의 저자 수전 브라운밀러Susan Brownmiller가 1975년 강간을 다룬 획기적인 책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Against Our Will》에서 내린 결론이다. - <관통당한 몸>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1228 - P28

1949년 채택된 제네바협약 27조 2항은 이렇게 명시한다. "여성은 그들의 명예에 대한 침해, 특히 강간, 강제 성매매 또는 기타 모든 형태의 외설 행위로부터 특별히 보호되어야 한다." - <관통당한 몸>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1228 - P33

2008년 6월 19일 국제연합United Nation(UN) 안전보장이사회는 "강간과 기타 형태의 성폭력은 전쟁범죄, 인도주의에 반한 범죄, 또는 제노사이드genocide의 구성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라고 규정한 ‘전시 성폭력에 대한 1820호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 <관통당한 몸>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1228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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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게 바로 촉수가 붙은 자동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거기 닿은 사람들은 뭔가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감염되는 방식으로,손상되는 것이다. 지금 저 여자를 통해 매니에게 말을 거는 존재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 어딘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촉수 괴물 TV 전파를 내보내고 있고, 이 여자는 거기 초고속 케이블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도시가 된다>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중에서 - P106

"그래, 넌맨해튼이구나. 돈이면 뭐든 다 되는 곳! 잠을 자기는 하니, 애송아? 실크와 새틴을 걸치고 있진 않네.19)"

-알라딘 eBook <우리는 도시가 된다>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중에서 - P108

"브롱크스." 여자의 입술이 곡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간다. "그래, 저것도 그중 하나지. 맨해튼도 그렇고. 나랑 싸운녀석이 심장이라면 너희들은 머리고 팔다리지. 그 녀석은 너희들 없이도 우리랑 싸울 수 있을 만큼 강했지만 전투가 끝난 뒤에 멀쩡히 서 있을 정도로 강하진 못했어. 나를 쫓아내지도 못했고. 그래서 발가락 하나가 이젠 발 전체가 된 거야."

-알라딘 eBook <우리는 도시가 된다>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중에서 - P111

죽는 거나 다름없겠지. 매니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그리고 매니의 일부는 이미 죽음의 문턱에 가 보았기에 — 이제야 깨달았는데, 그래서 이토록 차분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는 결코 죽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도시가 된다>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중에서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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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모형은 무계획적인 데이터 수집과 허위상관spurious correlation●에 의해 작동하고, 제도적 불공평institutional inequity에 의해 강화되며,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에 의해 오염된다. 인종차별은 이런 방식을 통해 이 책에서 소개하는 WMD들과 비슷하게 기능한다. - <대량살상수학무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8780 - P67

퀀트들이 시장 비효율성market inefficiency이라고 부르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은, 보물찾기와 비슷한 재미가 있다. - <대량살상수학무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8780 - P89

균열은 2007년에 나타났다. 2007년 7월 은행 간 금리가 급등했다. 2001년 9·11 테러로 인한 경기 침체 이후의 저금리 기조는 주택 건설 붐을 부추겼다. 누구라도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을 수 있었다. 건축업자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준準교외지역, 황무지, 평야를 대규모 주택 단지로 탈바꿈시켰다. 은행들은 노다지 같은 건축 붐과 결합된 온갖 종류의 금융 상품을 놓고 수십억 달러의 도박을 벌였다. - <대량살상수학무기>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8780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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