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결국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을.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4336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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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은 결국 하나의 섬이 아닐까 생각해요. 섬처럼 혼자고, 섬처럼 외롭다고요. 혼자라서, 외로워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도 생각해요. 혼자라서 자유로울 수 있고, 외로워서 깊어질 수 있으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섬처럼 그려진 소설이에요.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소설은 섬처럼 살고 있던 각각의 인물들이 서로를 발견해내는 소설이고요. 어, 너 거기 있었니? 응, 난 여기 있었어, 하는 소설들 말이에요. 혼자여서 실은 조금 외로웠는데 이젠 덜 외로워도 될 것 같아, 너 때문에, 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이 소설은 저에게 이런 기쁨을 맛보게 해줬어요.’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4336 - P15

서점 오픈 전까지 영주는 소설을 읽는다. 소설은 그녀를 그녀만의 정서에서 벗어나 타인의 정서에 다가가게 해줘서 좋다. 소설 속 인물이 비통해하면 따라 비통해하고, 고통스러워하면 따라 고통스러워하고, 비장하면 영주도 따라 비장해진다. 타인의 정서를 흠뻑 받아들이고 나서 책을 덮으면 이 세상 누구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4336 - P22

어차피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 영주가 스스로 생각해낸 답이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이다. 영주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4336 - P25

영주는 민준과 한 공간을 사용하며, 침묵이 나와 타인을 함께 배려하는 태도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어느 누구도 상대의 눈치를 보며 일부러 말을 지어낼 필요 없는 상태. 이 상태에서의 자연스러운 고요에 익숙해지는 법 또한 배웠다.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4336 - P33

그런 영주 옆에서 민준도 이따금 영주처럼 생각에 잠겼다. 생각의 끝에서 막연한 꿈같은 데 가닿기도 했다. 장래 희망이나 목표로 전환되는 꿈이 아니라 진짜 꿈. 남자가 포르투갈행 열차를 타고 갈 때, 그 남자를 움직이게 했던 그런 꿈. 민준은 그 남자가 도착한 곳에서 행복했을지 불행했을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는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누군가에겐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의 삶과 완전히 다른 내일의 삶.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 남자의 내일은, 꿈을 이룬 이의 전형이지 않을까 싶었다.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4336 - P40

책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 앞이나 위에 서게 해 주지 않는 거죠. 대신, 곁에 서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4336 - P45

책은 뭐랄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니면 기억 너머의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기억나진 않는 어떤 문장이, 어떤 이야기가 선택 앞에 선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하는 거의 모든 선택의 근거엔 제가 지금껏 읽은 책이 있는 거예요. 전 그 책들을 다 기억하지 못해요. 그래도 그 책들이 제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러니 기억에 너무 집착할 필요 없는 것 아닐까요?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4336 - P46

책이 잘 읽히지 않을 때는 먼저 지금 자기가 무엇에 관심이 있나 생각해보셨으면 해요. 우리 본능은 우리가 관심 있는 대상엔 한없이 흥미를 발휘하거든요. 요즘 퇴사하고 싶은 분들 많잖아요. 그런데 퇴사한 분들이 쓴 책도 많아요. 그럼 그 책을 읽으면 되지요. 이민을 가고 싶나요? 그럼 이민에 관한 책을 읽으면 되고요. 자존감이 낮아졌나요? 절친하고 관계가 끊겼나요? 우울한가요? 관련 책을 읽으면 돼요. 그런데 책을 안 읽다가 읽으려다 보니 집중하기가 어렵거든요. 자꾸 딴짓하게 돼요. 전 그럴 땐 스마트폰 타이머앱을 맞춰놓고 읽어요. 기본은 20분. 타이머가 울리기 전까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만 읽자, 하고 생각하고 읽으면 돼요. 제약이 우리를 긴장하게 하고 긴장이 우리를 집중하게 하는 거죠. 20분이 지났다면? 선택하시면 돼요. 오늘은 20분 읽었으니 이만하면 됐다 싶으면 그만 읽고 즐겁게 다른 일 하시고요, 조금 더 읽자 싶으면 타이머 한 번 더 돌리면 돼요. 타이머 세 번만 돌려도 한 시간이에요. 우리 하루에 타이머 세 번만 돌려봐요. 하루 한 시간 독서는 이렇게 달성됩니다.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4336 - P48

고트빈을 나오던 민준은 문득 날씨가 변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느덧 찌는 듯한 더위가 물러나고 더워도 시원한, 그러니까 가을이 오고 있었다. 더위 때문에 지난여름 내내 민준은 고트빈에서 서점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날이 조금 더 풀리면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동하고, 일하고, 영화 보고, 쉬고. 민준은 이 단순한 사이클이 이젠 제법 사이좋게 잘 맞물려 굴러가고 있다고 느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이 정도로 살아도 될 것 같았다.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4336 - P56

대신, 민준은 쉬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1학년이 시작되고부터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다. 한번 우등생이 되자, 계속 우등생이 되어야 했고, 우등생은 늘 노력해야 했다. 노력하는 게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력의 결과가 이럴 거였으면 노력하지 않는 게 더 나았을 뻔했다. 그렇다고 지난 시간을 후회하긴 싫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또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4336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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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서 위안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관계가 생계와 연결될 때는 더더욱 안정적으로 느껴지겠지. 그러나 연구소 로비에 잠시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 일하러 올라가기 전에 나는 어쩐지 무섭고 슬프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지고 가야 할 먹고사는 걱정, 밥줄에 대한 집착이 무섭고, 그 집착이 앞으로 198주년, 298주년, 398주년…이 지나도록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이, 그리하여 나는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이 연구소라는 곳에 발목 잡힌 채 끝없이 허덕여야 하리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슬프고 무서웠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영생불사를 하건 안 하건, 자기 생계를 자기 손으로 벌어야 하는 사람은 누구나 나와 같은 처지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딱히 위안이 되는 건 아니지만.

-알라딘 eBook <그녀를 만나다> (정보라 지음) 중에서 - P36

세상엔 정말로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 사람들은 자기들 관점에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 관점을 고려해서 합산하면 세상의 이상한 사람 숫자는 대략 그만큼 더 불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결론은 똑같다. 세상에는 정말로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알라딘 eBook <그녀를 만나다> (정보라 지음) 중에서 - P38

그래서 나는 기계는 믿지 않았다. 내 몸을 돌보는 일은 내 손으로 해야만 했다. 내가 기억하는 기계는 사람을 죽였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서 멀쩡한 청년이 죽었고 크레인이 무너져서 밑에 있던 사람을 깔아 죽였고 혼자 운행하던 지하철이 광고판 고치던 사람을 치어 죽였고 배가 가라앉고 독극물을 뿜어내고 치고 떨어뜨리고 밀어내면서 장비는, 기계는, 기계로 가득한 생산설비는, 공장은, 작업장은, 일터는 사람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였다.

-알라딘 eBook <그녀를 만나다> (정보라 지음) 중에서 - P44

절대 잊지 않는 건 그 순간순간의 감정이었다. 기억도 논리도 이성도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이 다 사라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감정이다.

-알라딘 eBook <그녀를 만나다> (정보라 지음) 중에서 - P48

"바흐친은 인간이 주관적인 시선으로 객관적인 외부 세계를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간을 대할 때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는 모습, 즉 거울상의 모습과 타인이 나를 볼 때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는 모습,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타인의 모습, 이렇게 세 가지 시선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알라딘 eBook <그녀를 만나다> (정보라 지음) 중에서 - P58

"그리고 인간은 타인이 자신을 볼 때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습, 자신이 되돌아보는 자신의 모습에 맞추어 자신을 계속해서 변화시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타인을 바라볼 때 그 시선 안에는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타인이 나를 볼 것이라고 상정하는 시선들이 함께 들어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알라딘 eBook <그녀를 만나다> (정보라 지음) 중에서 - P58

"이런 관계 이론에 딥페이크 기술을 적용하여 저희는 작가님의 얼굴에서 여러분이 보고 싶은 모습, 본인이 작가님에 대해 상상한 모습, 본인이 투영한 모습만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화면은 여러분의 시선과 뇌파를 추적하여 여러분이 작가님에게서 어떤 모습을 추정하는지를 예측한 뒤에 거기에 맞춰 딥페이크로 여러분의 추정에 맞는 모습을 내놓게 됩니다."

-알라딘 eBook <그녀를 만나다> (정보라 지음) 중에서 - P59

혐오는 너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눈앞의 화면은 그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자신이 상상하는 모습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추상화한 개념의 모습이 그 화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화면을 본다는 것은 자신도 지금껏 알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몰랐던 내 마음속에 있는 모습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알라딘 eBook <그녀를 만나다> (정보라 지음) 중에서 - P60

그때는 음악 선생님도 죽지 않았고 활동가도 죽지 않았고 전차조종수도 죽지 않았다. 모두가 살아 있었고 모두가 춤추던 날이었다. 모두가 행진하고 고함치고 평등을 외쳤고 그래도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았고 그래서 그 뒤로 2년이 더 지난 어느 잔인한 봄날에 차별이 사람을 죽였다. 차별은 언제나 사람을 죽였다. 여러 명을 연달아 죽였다.

-알라딘 eBook <그녀를 만나다> (정보라 지음) 중에서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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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장생은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것이고 영생불사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인데 ‘오래’와 ‘영원히’는 과연 같은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으며 당연히 ‘영원히’가 ‘오래’보다 훨씬 오래 지속된다.

-알라딘 eBook <그녀를 만나다> (정보라 지음) 중에서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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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절망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복수가 아니었다. 최소한 이런 복수는 원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마을 전체가 ‘그것’의 존재에 기대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었다.

합당한 결말이라 해도, 그는 밀려오는 상실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타인들의 주술과 환상과 잘못된 믿음에 빼앗겨 버린 어린 시절, 매일이 생사의 기로였으나 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어져 버린 그때의 오랜 고통과 절망을 애도하며 그는 폐허가 된 마을에 멈추어 서서 울었다.

그리고 마침내 눈물이 멈추었을 때, 세상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그는 해가 뜨는 쪽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저주토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6406814 - P172

자신이 ‘요령’이 없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런 ‘요령’을 남들은 대체 어디서 배워오는 것인지, 그녀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돈을 최대한 빨리 많이 벌어서 더 넓은 집과 더 비싼 차를 사고 자식을 수업료 비싼 영어 유치원과 경쟁률 높은 사립 학교에 집어넣고 계절마다 온 가족이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남 보기에 ‘번듯한’ 삶일 수는 있어도 그녀가 원하는 인생은 아니었다. 그녀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원했고 이웃과 사이좋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동네 공동체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런 동네를 찾아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저주토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6406814 - P176

남편은 ‘자본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했다. 그녀 또한 대학 시절에 학점과 스펙에 매달리고 대기업이나 공무원 취업으로 대표되는 안정적인 직장을 최고로 치는 주위 사람들의 천편일률적인 압박을 지겹게 여기고 경멸했기 때문에 남편이 원하는 삶의 지향점이 자신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고, 졸업과 동시에 그녀는 취업했다. 아주 상세하고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한 ‘대안적 삶’이라는 말만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고 ‘자본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직장이란 대체로 직원에게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얼마 못 가서 깨달았다. 그녀가 대안 없는 생계를 걱정하며 직원들의 정상적인 근무가 아니라 일방적 희생으로 운영되는 대안적 직장에서 하루하루 시달리며 부스러져 가는 동안 남편은 그녀의 대학 선배였지만 그녀보다 늦게 학교를 졸업하고 딱히 내놓을 만한 직업 없이 ‘대안적인 삶’을 찾아 떠돌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그녀 모르게 빌려 쓴 이천만 원이었다. - <저주토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6406814 - P188

아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자기 나름대로 파악한다. 어린아이의 지각에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에 대한 세상의 호의와 인간의 신뢰 여부를 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한다. 왕자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친절하고 예의 바르지만 진심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왕자가 아는 한, 그것은 세상과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었다.

- <저주토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6406814 - P203

황금 배의 남자가 제안했다.

"공주에게 인간의 삶은 줄 수 없지만, 대신 인간이 알지 못하는 평온과 무한을 약속하겠다."

공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텅 빈 왼팔 소매가 움직였다. 공주는 산들바람과도 같이 시원하고 부드러운 공기가 오른쪽 뺨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 - <저주토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6406814 - P220

밝은 미래 따위는 믿지 않았다. 먹고 살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언제나 지금보다는 조금 전이 가장 좋은 순간이었고, 앞날보다는 지금이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돌아가면 아마도 여기서 이렇게 태평하게 앉아 느릿하게 저물어가는 햇살을 즐기며 시간을 낭비하던 때가 그리워질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애썼다. - <저주토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6406814 - P229

폴란드어 교과서의 원래 제목은 Kiedyś wrócisz tu (너는 언젠가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였다. 나는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내가 이곳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삶에 기회는 흔하게 주어지지 않으며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뜬 채로 언제까지나 지낼 수는 없었다. - <저주토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6406814 - P230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나는 어색해질 거야

무엇을 빌어야 할까

나쁜 시간을 아니면 좋은 시간을.. - <저주토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6406814 - P230

...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나는 아주 조금만 행복해지고 싶어

너무 많이 행복해지면

슬픔이 그리워질 테니까


- <저주토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6406814 - P235



나는 삶을 사랑해

…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기대하지


- <저주토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6406814 - P235

좋은 시간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으나 나쁜 시간을 소원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미래는 없었다. 그와 내가 알았던 모든 삶의 유형들은 전부 과거에 갇혀 있었다. - <저주토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6406814 - P242

아무도 묻지 않았지, 우리가 아직 무명이었을 때

우리가 살고 싶은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

이제 나는 큰 도시를 홀로 헤매다니고

문과 창문으로 집의 거실을 엿보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어….


이제 내가 기다릴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계속 욕실에 서 있었다. 누군가 기적처럼 찾아와서 이 삶에 묶인 나를 풀어주기를 기다리며. - <저주토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6406814 - P243

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고 모든 존재는 혼자이며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혹은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조그만 희망이다. - <저주토끼>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6406814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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