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는 트로이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두 명의 전쟁 영웅,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 사이의 경쟁이 서사의 중심에 있다.
이 둘은 판이한 성격의 영웅이었다. 아이아스는 말 그대로 전사 중의 전사였다. 위압적인 체구에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무장으로,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뛰어난 군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오디세우스는 몸보다는 머리를 쓰는 사람이었다. 지략과 전술의 대가로, 전투 외에도 전쟁중 발생하는 다양한 요구에 적재적소의 기지를 발휘하며 위기를 막았다. 실제 전쟁이라면 두 사람 모두 꼭 필요한 유형의 인물이었다. - P120

이기는 법은 이미 충분히 배웠다. 이제 아름답게 지는 법을 배울 차례다. 그것이 나를 진정한 삶의 강자로 만들어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과거의 처절했던 승리와는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승리를 이루는 날도 올 것이다. - P127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지금은 ‘여신‘이라 불리는 최고의 셀럽들이 그 이상을 대변한다면 유럽 역사에서는 ‘진짜 여신‘이 오랫동안 그 역할을 도맡았다. 바로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였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비너스의 이미지는 시대마다 뭇 남성들이 사모하고 여성들이 동경하는 미의 기준이 되었다. - P130

고대 그리스인들은 ‘좋은 몸의 소유를 매우 중시했다. 이들의 사고관에서 육체는 정신의 거울이었다. 그래서 신처럼 아름다운 몸은 그의 정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표지라고 믿었다. 반대로 뚱뚱함은 외관상의 추함만이 아니라 정신적 불균형까지 의미하는 결함이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일찍부터 다이어트에 힘썼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비만을 여러 질병의 원인으로 꼽으며, 비만인들에게 엄격한 식단 관리, 강도 높은 운동, 심지어 구토를 추천하기도 했다. - P134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 교리의 영향으로 신체를 향한 태도가 크게 달라진다. 고대세계에서 인간의 몸은 신과 그 형상을 공유하는,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중세인들에게 육신은 죄의 근원이자 타락의 결과물이었다. 육신 자체가 영혼 구원의 방해물로 정죄되자 뚱뚱함은 아주 속되고 불경한 상태가 되었다. 고대와는 사뭇 다른 이유로 비만은 중세 유럽에서도 악으로 남았다. - P139

변화된 신체관은 식생활에도 영향을 주었다. 고대인이 아름다운 몸을 위해 절제된 식습관을 추구했다면, 중세인은 성스러움을 위해 금식을 마다하지 않았다. 음식은 종교적 수행을 저해하고 육신을 태만과 정욕으로 이끄는 지름길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성직자들은 늘 굶주림의 고행을 통해 영적인 충만함을 유지하려 했다. 물론 금식은 평신도에게도 해당했다. 중세 말에는 공식 지정된 금식일만 약 150일에 달할 정도였다. - P139

중세 말 근대 초, 인간의 몸은 다시 예술의 중심에 섰다. 여기에는 여러 사회경제적 요인이 있었다. 문화적으로는 단연 르네상스의 역할이 컸다. 부활, 재생을 뜻하는 ‘르네상스는 14~16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문예부흥운동을 일컫는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그리스·로마 문화에 대한 재탐구가 이루어지며 다시금 인간성을 향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스 예술의 영향을 받은 르네상스 화가들은 인체를 형이상학적 아름다움의 결정체로 다루었다. 예술 향유층의 다양화도 중요한 변화였다. 교회는 여전히 강력한 예술 후원자였지만, 경제적으로 성장한 부유한 평신도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예술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성속에 걸친 다방면의 작품이 제작되자, 그 안에서 인간의 몸은 상품가치를 띠게 되었다. - P141

이 시기에 비너스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중세 내내 터부시되고 성모마리아의 이미지에 감춰져 있던 비너스는 다시금 나체의 모습으로 인간 앞에 나타났다. 그 시작을 알리는 작품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탄생」이었다. 서양화 최초의 여성 전신 누드화로, 금욕적인 중세 천년을 보낸 15세기인들의 ‘동공 지진‘을 일으킬 만한 작품이었다. 이것이
‘몸‘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제 예술가들은 저마다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신체를 비너스라는 이름 아래 자유롭게 표현했다. 회화·조각·연극·오페라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 P141

그러나 비너스 같은 몸매를 원하는 이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16세기를 기점으로 유럽의 먹거리가 풍족해지는 사회경제적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는 대부분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도입된 쌀, 감자, 옥수수 등 고칼로리 작물 덕분이었다. 염장 기술의 발전으로 고기와 생선을 장기간 보존할 수 있게 된 점도 한몫했다. 이때부터 유럽은 과거보다 훨씬 더 ‘잘 먹는‘ 사회로 나아갔다. 여기에 중세인을 굶주리게 했던 종교적 규율도 완화되어 근대인은 더 자유롭고 균형잡힌 식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 P144

역사를 보면 호모사피엔스들은 미에 관해서만큼은 참 변함이 없었다. 그들에게 외면은 항상 중요했고, 늘 모두의 신체를 선악의 구도에 넣어 선의 잣대로 악을 평가했다. 역사가 정말로 진보한다면, 그 역사의 연장선에 살고 있는 우리는 건강한 아름다움에 대한 더 나은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뾰족한 수는 없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 P150

창작물 속 ‘나‘는 나의 여러 모습 중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나를 취사선택한 결과다. 문제는 이를 얼마나 진솔하고 담담하게 풀어가느냐였다. 나의 전체를 담을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내가 아니어서도 안 됐다.
온갖 감정과 생각을 토로하며 지나치게 솔직하고 싶지도, 과도한 연출로 행복하고 멋진 나를 꾸며내고 싶지도 않았다. 양극단의 선을 넘는 즉시 내 모습이 민망하고 낯설었기 때문이다. - P153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 그림을 볼 때면 작가의 자기표현과 관련해 많은 귀감을 얻는다. 젠틸레스키는 17세기 초중반 바로크시대에 활동한 흔치 않은 이탈리아 여성 화가이다. 예술가길드인 아카데미아 디 아르테 델 디세뇨Accademia di Arte del Disegno의 높은성별의 벽을 넘은 첫 여성 회원이었다. 여성은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없던 시절, 예술의 중심지 피렌체에서 미술가로 인정받을 만큼 그녀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 P153

젠틸레스키의 시대는 ‘자아‘와 ‘개인‘의 개념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때였다. 이러한 흐름은 14세기 말에서 15세기를 거치며 서서히 진행되었다. 이 시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중세의 신학적·철학적 권위에서 벗어나 보다 주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자했다. 이들에게는 자기 자신도 객관화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깊은 자아성찰을 통해 자기라는 존재를 뚜렷이 인지하려 했다. 그 결과 자서전,
일기, 편지, 소설 등 개인의 삶과 감정을 기록하는 작업이 활발해졌다. - P158

미술계에서도 개인을 주제로 삼은 예술이 부상하며 초상화의 시대가 열렸다. 15세기 이래 군주부터 부유한 시민에 이르기까지 ‘돈 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존재를 역사에 영원히 새기기를 원했다. 이들에게 초상화는 단순한 기록이 아닌 자신의 권력, 명예, 아름다움, 성격,
취향 등을 개성껏 표출하고 불멸의 상태로 각인하는 수단이었다. - P158

이렇게 개인의 인생을 담을 만큼 정교한 초상화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회화 기법의 획기적 발전이 있었다. 바로 유화의 등장이다. 중세 미술에서 주로 쓰인 프레스코나 템페라는 원료가 빠르게 굳고 수정이 불가하다는 치명적 단점으로 인해 화가가 충분한 시간을 들여 대상을 묘사할 수 없었다. 그런데 15세기 초 얀 반에이크에 의해 유채의 활용이 본격화되면서 미술계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건조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추가 수정까지 가능한 유채의 발견은 그야말로 회화법의 혁신이었다. 덕분에 화가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가 보는 세상을 자기 실력만큼 정밀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 P158

젠틸레스키가 여러 번 반복해 그린 여성 중에는 구약성서 외경 유디트서의 주인공 유디트가 있다. 유디트는 조국을 정복한 아시리아의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미인계로 유혹하고, 그의 목을 칼로 베어버린 신화적 여성이며, 카라바조를 비롯한 저명한 화가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온 주제이다. 그중에서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가장 강렬하고 극적인 연출로 유명하다. - P160

피렌체에 정착한 첫해에 젠틸레스키는 첫번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를 완성했다(두 버전이 제작되었는데, 하나는 1612년, 다른하나는 1614~20년 사이에 그려졌다). 작품을 본 이들은 백이면 백, 유디트에 화가의 자아가 이입되어 있다고 믿었다. 홀로페르네스는 젠틸레스키가 당한 폭력의 실체를 표현하고, 유디트는 그 폭력을 직접 심판하는 작가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읽혔다. - P164

상이한 방식으로 젠틸레스키를 표현하는 ‘유디트‘와 ‘카타리나‘이지만, 두 여인 모두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오히려 스스로 고통을 처단하고 억제하는 통제자의 모습이다. 고통을 이기고 전설로 남은 것은 그녀에게 고통을 준 대상이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아마 이것이 젠틸레스키가 말하고 싶은 바였을 것이다. "내게 고통을 안긴 이들에 나는 굴하지 않아 두고 봐, 고통을 꺾고 전설이 될 나의 모습을." 젠틸레스키의 자화상은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품이자 그녀 삶의 투지를 표명하는 대변인이었다. - P166

왜 작품의 제목이 ‘회화의 상징으로서의 자화상인지부터 살펴보자. ‘회화‘는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당시 ‘회화를 의인화하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통용되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이탈리아 도상학자 체사레 리파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다음은 그의 책 『도상학Iconologia』(1603)에 등장하는 ‘회화‘의 외형에 관한 설명이다.

‘회화‘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의 머리는 완전히 검고 부스스하며 여러 갈래로 꼬여 있다. 창의력을 보여주는 반달 같은 눈썹을 지녔고, 그녀의 입은 귀까지 연결된 천으로 덮여 있다. 그녀의 목에는 가면이 달린 금목걸이가 걸려 있다. - P169

자기 취향을 좇는 일이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의 경험에 따르면, 덕질은 큰 몰입과 기쁨을 선사하는 동시에 예기치 않은 물리적·정서적 출혈도 수반한다.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고, 덕질이 아니라면 없었을 감정 소모도 발생한다. 그래서 덕후 주변에는 그를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철없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꼭 있기 마련이다. 덕후 이전에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 마니아 mania, geek 등의 표현에도 그들을 향한 비호감의 시선이 깔려 있다. - P174

오스트리아 화가 요제프 하우저Josef Danhauser의 「피아노 치는 리스트」라는 작품은 그 부제를 ‘리스트와 덕후들‘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리스트의 음악에 흠뻑 빠져든 청중을 묘사하고 있다. 리스트를 포함한 그림 속 인물은 모두 동시대를 산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다. 워낙 유명인사들인지라 이들이 실제 한자리에 모였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작가의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상상력을 토대로 그려진 그림이다. - P176

단하우저는 저명한 문학가들이 책을 떨군 채 리스트에 빠져드는 모습을 통해 리스트의 실력을 치켜세우고, 리스트의 인기가 문학계를 능가할 만큼 엄청났음을 보여주었다. 그 시대 문학의 성과도 대단했지만, 예술계 전체의 가장 큰 화두는 리스트였고, 리스트야말로 스타 중의 스타였다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다. - P178

이런 흐름과 함께 ‘비르투오소Virtuoso‘의 시대가 열렸다. 본래 ‘덕망높은‘ ‘능력 있는‘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였던 비르투오소는 19세기부터뛰어난 기교를 자랑하는 솔로 연주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19세기 연주회는 더이상 궁중이나 교회가 아닌, 유럽 도시의 콘서트홀에서 성행했다. 유명 연주자들은 도시를 순회하며 연주회를 열었고,
여기서 벌어들이는 티켓값이 그들의 주수입원이 되었다. - P179

1832년 4월 20일, 처음으로 파가니니의 연주회를 관람한 스무 살청년 리스트는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은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성공적으로 해낸다.
리스트는 각종 클래식 명곡을 기교 넘치는 피아노곡으로 편곡해 연주했는데, 파가니니의 곡에는 더 심혈을 기울였다. 리스트가 1838년에 발표한 「파가니니에 의한 초절기교 연습곡」은 "도저히 인간이 연주할 수 없는 곡"이라는 비난에 직면할 만큼 끔찍한 난도를 자랑했다. 비판을 수용한 리스트는 난도를 대폭 낮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을 1851년에 새로 발표했다. 지금 우리가 많이 듣고 연주하는 리스트의 파가니니 곡이다. 그중 3번 곡 라 캄파넬라는 광고나 대중음악에 자주 등장하며 ‘가장 세련된 클래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 P181

하지만 리스트는 피아노 공연이 마치 연극과 같다고 생각했다. 연주자는 음계만 정확히 누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그 선율에 따른 감정적 체험까지 선사해야 했다. 그러니 연극배우가 대본을 숙지하고 무대에 오르듯, 피아니스트도 곡 전체를 체화한 상태로 공연에 임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는 피아니스트 최초로 과감히 악보 없이 무대에 올라 바흐에서 쇼팽에 이르는 장대한 레퍼토리를 완벽히 소화했다. 그 모습에 반하지 않을 관객은 없었다. - P183

오른쪽 그림은 폴란드 역사화가 얀 마테이코 Jan Matejko가 그린 코페르니쿠스다. 작품에 대해 전혀 몰랐을 때 이 그림이 자아내는 신비감에 단번에 매료되면서도 동시에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신과의 대화‘라는 작품 제목 때문이었다. - P192

코페르니쿠스는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기독교 정통의 천체관이 부정확하다고 판단하고, 그것이 어떻게 섭리를 오해하게 하고 어떤 실질적 불편을 야기하는지 지적했을 뿐이었다. 잘못된 진리가 있다면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이 신의 뜻에 더 부합한다고 코페르니쿠스는 생각했다. - P195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출간 후 73년이 지난 1616년에야 로마 가톨릭의 공식 금서로 지정되었다. 때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시데레우스 눈치우스』(1610)을 통해 태양중심설을 강력히 지지한 이후였다.
갈릴레이는 앞선 코페르니쿠스주의자들과 몇 가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는 최초로 망원경을 이용해 태양중심설의 증거들을 실제 관측했다. 그랬기 때문에 태양중심설을 단지 수학적 도구가 아닌 물리적 현실로 믿었다. - P201

앞으로 나이가 들어 새로움이 귀찮아지고, 익숙함에 안주하게 될때마다 나는 이 그림을 기억의 서랍에서 꺼내보려 한다. 코페르니쿠스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주변에 있을 코페르니쿠스들을 상기하며 타인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설령 그것이 나를 향한 도전이 될지라도 열린 마음으로 토론할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어서다. - P207

모네에게 런던에서의 나날은 본의 아니게 동료들과 오랜 시간 함께하며 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화풍을 탐구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모네와 피사로는 영국의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의 작품을 감상하며 자신들의 신념에 더 큰 확신을 얻었다. 모네는 터너의 몽롱하면서도 과감한 빛과 안개 처리 방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 P217

파리로 돌아온 모네는 같은 화풍을 공유하는 화가들과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873년 12월,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알프레드 시슬레, 세잔, 드가 등이 모여 ‘화가·조각가·판화가 익명 협회‘를 설립하고 그들의 스타일을 보여줄 독립 전시회를 준비했다. 1874년 4월,
드디어 첫 전시회가 열렸다. 루키들을 향한 혼재된 반응이 존재했으나모네에게는 특히 격렬한 비판이 쏟아졌다. 평론가 루이 르루아는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서 ‘인상‘이라는 단어를 따와 모네와 동료들을
"인상파"라고 조롱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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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카데스Giuseppe Cades 의 그림 <아이아스의 자살>은 고대 그리스 비극 아이아스의 한 장면을 묘사한 작품으로 중앙에 자살을 감행하는 남자가 극의 주인공 아이아스다. 한눈에 봐도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비극적 정서가 느껴진다. - P113

『아이아스』는 고대 아테네의 시인 소포클레스의 대표작이다. 『오이
디푸스왕』 『안티고네』 등으로 유명한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로 꼽힌다. 모두 기원전 5세기 아테네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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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모습 때문에 에두아르는 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계획이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얘기하지 말자고 생각했었고, 그러기에는 지금은 어림도 없었다. 더구나 그동안 작업한 것들이 아직은 만족스럽지 못했고, 또 지금 알베르는 이런 심각한 문제를 함께 논의할 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비밀을 최대한 나중에 밝히자는 원래의 결정을 고수해야 할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40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비밀을 털어놓기로 결심한 것은 친구가 너무도 슬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가면일 뿐,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실 그는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아이의 옆모습을 묘사한 데생을 완성한 이날 오후부터 그는 몸이 잔뜩 달아 있었다.

그러니 좋은 결심이고 뭐고 없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41

여기서 에두아르는 강렬한 순간을 맛보았다. 승리의 순간이었다. 알베르에 대한 승리는 아니었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의 삶이 망가진 후 처음으로 스스로의 힘이 느껴지는, 미래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되는 승리였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41

에두아르가 쓴 마스크, 거의 실물 크기에 가까운 그것은 말 대가리였다.

에두아르가 지점토로 빚은 거였다. 모든 게 거기에 있었다. 군데군데 어두운 색들이 어른거리는 갈색, 아주 보드라운 감촉의 밤색 곰 인형을 뜯어 만든 듯한 약간 거무스름해진 털의 결, 아래로 처진 야윈 볼, 이마에서부터 구덩이처럼 벌어진 콧구멍에까지 이르는 각진 등성이……. 그리고 솜털로 덮여 반쯤 벌어져 있는 큼직한 두 개의 입술까지, 그것은 환각이 일 정도로 실제의 말과 흡사했다.

에두아르가 눈을 감자, 말 자체가 눈을 감았다. 바로 그 말이었다! 알베르는 지금껏 한 번도 에두아르와 그 말을 연결지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감격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마치 어린 시절의 친구를, 형제를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43

이 그림들은 거기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지어낸 이미지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래, 이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고결한 이미지들임에 틀림없지만, 약간 지나치게 과시적이었다. 알베르는 성격이 수줍은 편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선들이 끊임없이 과장되고 있었다. 마치 형용사들을 듬뿍듬뿍 발라 놓은 것 같았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48

지금 알베르가 느끼는 슬픔은 ─ 이 순간에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 이 불쌍한 에두아르가 이 전쟁에서 모든 것을, 심지어는 그의 재능마저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오는 거였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49

애국적 회상



우리의 영웅들과

승리한 프랑스의 영광을 기리는

기념비, 기념물 및 조각상


카탈로그

* * *

「자네, 전사자 기념비를 팔겠다는 거야?」

맞아. 바로 그거야. 에두아르는 자신이 찾아낸 것이 너무도 만족스러운 듯, 자신의 허벅지를 탁탁 치면서 목구멍으로 그 끼르르르륵 하는 소리를 냈다.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 그 무엇과도 비슷하지 않지만, 듣기에 유쾌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한 소리였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52

「그냥 팔기만 하는 거라고……!」

가장 고대하던 일은 종종 느닷없이 찾아온다. 알베르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그거였다. 미칠 듯한 기쁨에 사로잡힌 에두아르는 첫째 날부터 알베르를 끈질기게 괴롭혀 온 그 질문에 갑자기 대답하고 있었다. 그가 웃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 웃고 있었다.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정상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목구멍에서 울리는 웃음, 높은 음색의 여성적인 웃음, 트레몰로와 비브라토가 있는 진짜 웃음이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56

에두아르의 웃음이 두 번째로 폭발했다. 아까보다 훨씬 거세게.

「돈을 들고 튀는 거야!」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57

피곤해서 이럴 수도 있다. 한밤중에 출발해야 했고, 그의 몸에서 정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뽑아 내는 그 유대 계집년은……. 사실 그는 유대인들을 끔찍이 싫어했지만(도네프라델 가문은 중세 때부터 반(反)드레퓌스 파였다), 그 종족의 계집들은 그 짓을 할 때면 얼마나 기가 막힌지……!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59

에두아르 생각에 이 모든 것은 알베르가 적당한 시일 내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느냐에 달려 있었다. 왜냐면 기막힌 아이디어는 금방 상하는 식품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신문들을 열심히 읽으며 그는 예감했다. 시장이 기념비들의 공급으로 포화되면, 이 수요에 모든 예술가들과 주물 공장들이 몰려들면, 그때는 이미 늦어 버린다는 것을.

지금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없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75

그는 이 장밋빛 전망에 즐거이 빠져들었고, 그 속에서 헤엄치며 그것을 들이마셨으며, 그의 존재 전체가 거기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말썽꾼으로서의 쾌감들과 도발적인 본성을 되찾으며 그 자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77

예술가들과 부르주아들 간의 영원한 싸움이 여기서 다시 거듭되고 있었다. 아버지와 맞붙어서 그가 패배한 전쟁의 반복이었다. 예술가는 몽상가이고, 따라서 아무 쓸모없는 존재야! 알베르가 하는 말 뒤에 이 문장이 들리는 듯했다. 아버지 앞에서도 그랬지만 알베르 앞에 있으면 자신이 무슨 구호 대상자, 무익한 짓들에 시간을 허비하는 쓸데없는 존재로 폄하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참을성 있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결국엔 실패했다. 그와 알베르 사이에 가로놓인 것은 단순한 의견의 불일치가 아니요, 문화의 차이였다. 그는 알베르가 하찮고, 쩨쩨하고, 옹졸하고, 야심도 광기도 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91

알베르 마야르는 마르셀 페리쿠르의 변종일 뿐이었다. 돈만 없을 뿐 그와 똑같았다. 확신에 사로잡힌 두 사내는 에두아르가 가진 가장 생기발랄한 것을 무시해 버리고 있었다. 그를 죽이고 있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91

그가 본 에두아르의 마지막 모습은 그의 등이었다. 선뜻 떠날 결심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배낭을 꾸리는 그의 등 말이다.

온종일 등에다 광고판을 메고 대로를 걸어다니면서 알베르는 서글픈 생각들을 곱씹었다.

그날 저녁, 단 한마디가 남아 있었다. 〈고마워, 모든 게.〉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495

알베르는 홀로 흐느꼈다. 알베르가 살아오면서 흘린 눈물들의 이야기를 써본다면 책 한 권은 나오리라. 지금 흘리는 눈물은 절망의 눈물로, 자신의 삶을 생각하면 슬픔의 눈물이 되었고, 미래를 생각하면 오싹한 공포의 눈물이 되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544

알베르는 옷장으로 뛰어가 말 대가리 마스크를 꺼냈다. 그는 마치 귀중한 골동품을 다루듯이 조심해 가면서 그것을 뒤집어썼다. 그러자 곧바로 어떤 안전한 곳에 들어온 듯한, 보호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모습이 보고 싶어진 그는 쓰레기통에서 그나마 큰 거울 조각을 꺼냈지만, 그걸로는 잘 보이지가 않았다. 이번에는 창유리에 자신을 비춰 보았다. 거기에는 말이 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 즉시 두려움이 가라앉았고, 어떤 포근한 따스함이 그를 감쌌으며, 근육은 스르르 이완되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0748683 - P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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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무거워서 자꾸 뒤로 넘어지려고 하는데 왜 굳이 일어나 앉아 있으려고 하니. 율이에게 물었다. 네가 어디에 부딪칠까 봐, 넘어질까 봐 나도 계속 너를 보고 있어야 하잖아. 저거 봐, 너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너희 엄마 얼굴이 핼쑥해졌어. 이렇게 움직이면 한눈을 팔 수가 없잖아. 내가 너라면 누워 있을 수 있는 동안에는 계속 누워 있을 거야. 엄마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려고 자는 척이라도 할 거야. 내 뒤통수가 납작한 건 내가 얌전한 아기였던 증거라고 했어. 우유는 하루에 세 번만 먹을 거야. 별것 아닌 일로 울지 않을 거야. 너희 엄마는 사는 동안 계속 네 걱정을 할 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조금만 몸부림치고 조금만 아파야 해. 나도 그럴 거거든.
사람이라기보다는 그저 새로운 생명 그 자체 같은 아기 앞에서, 나는 건방지게 생각했다.
나는 너희 엄마가 나를 챙겨 준 것보다 너를 더 예뻐해 주려고. 네가 친구가 없어도, 선하지 않아도, 그런 거 상관없이 같이 놀아 줄게.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39

나는 우리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어른스러운 게 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자란다면, 수현과 함께라면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동시에 서글프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글픈 감정이라는 건 누군가에게 들은 적도 입 밖으로 꺼내 본 적도 없는 감정이었지만 왠지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느낌은 서글픔이라는 감정과 가장 가까울 것 같았다.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46

나는 한때 세상에서 나를 가장 미워했던 아이의 어깨에 기대어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편안했다.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49

성적이 떨어진 이유에는 수현의 탓도 있는 것 같았다. 수현을 만나고부터 내 삶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단순한 일상을 벗어나 이것저것을 하느라 시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내 성적의 특징은 노력하는 것에 비해 획기적으로 오르진 않아도 잠시 한눈을 판다고 눈에 띄게 하락하지도 않는다는 거였는데. 은연중에 그걸 믿고 너무 마음대로 돌아다닌 것 같았다.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51

"아빠가…… 해로운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야.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아빠의 행동에 이유를 찾아 주게 되거든. 아빠도 아빠다운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라서 그런 거라고, 혹은 한 번도 여유를 갖고 살아 보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살면서 누군가를 도와 본 게 처음이라, 은인이 되어 본 것도 처음이고 그런 식의 대접을 받아 본 것도 처음이라 거기서 아직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아빠를 가련한 사람으로 만들거든."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54

수현은 아빠의 비겁함, 구질구질함, 위선, 아빠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아빠를 아이 달래듯 달래 가며 격려하고, 다독이는 것, 아빠에게 또다시 실망하는 일련의 일들에 지쳐 있었다.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55

"아빠 생각은 너보다 내가 더 많이 해 봤어. 궁극적인 질문은 이거지. 그래서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기에 이럴 수 있는 걸까. 나는 왜 아빠의 다른 면을 보지 못한 걸까. 아빠는 왜 남들처럼 정직하게 살지 못하고, 누군가를 착취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지? 아빠 속이 궁금해, 나도. 아빠는 얼떨결에 널 구하고 영웅이 됐지. 아빠는 그날 널 구하지 않았던 게 아빠 인생을 위해서 더 나은 일이었을 수도 있어."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55

그러면 나는 죽었겠지. 잔인한 말이었지만 수현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화를 내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수현이겠지. 자신의 아빠를 참아 왔듯이 수현이 나라는 존재 또한 참아 왔음을 알게 되었다.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55

아저씨를 변호하려 애썼던 내 모습이 수현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거라는 사실을 외면했다.
나는 아저씨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이 아니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걸음걸이는 바뀌지 않더라도 아저씨의 삶이 바뀔 수는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야 내가 편하게 사니까. 눈에 띄지 않아야 마음이 편하니까. 이따금 아저씨가 휘청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내 삶 전체가 기울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랐다. 그게 수현에게는 잔혹한 일이라 할지라도.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56

죄책감의 문제는 미안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처럼 번진다는 데에 있다. 자괴감, 자책감, 우울감.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 가게 했다. 그런 내가 너무 무거워서 휘청거릴 때마다 수현은 나를 부축해 주었다.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67

언니를 생각하니 언니가 내 위에 앉아 있었다.
"언니, 하나도 안 무섭지?"
"응."
나는 처음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언니의 용기를 닮고 싶었다. 이 모든 것들을 누리게 해 준 언니를.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알라딘 eBook <유원> (백온유 지음) 중에서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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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이들의 감성에 잘 공감하지 못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낭만적일 때도 있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일단 집을 나서면 비는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별다른 짐이 없어도 최소한 한 손에는 휴대폰, 다른 손에는 가방을 들고 다니는 내게 우산은 또 하나의 성가신 짐짝이다. 원래도 그리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으나 조금 불편한 수준이었던 비가 어느 순간 내게 정서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을 발견했다. - P14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의 「우산」 속 풍경은 얼핏 보면 축제의 한 장면으로 착각할 만큼 경쾌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중앙에 반쯤 가려진 여자가 하늘을 확인하며 우산을 펴는 것을 보면이제 막 비가 오기 시작한 듯하다. 파리 시민들은 모두 동일한 색채의 파란 우산을 꺼내들고 각자의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겹겹이 겹쳐진우산들은 마치 하늘로 팡팡 튀어오르는 모양새다. 비 오는 거리의 칙칙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 속 인물들에게서 옅은 미소와 함께 알 수 없는 설렘이 묻어난다.
비 오는 날의 설렘이라. - P17

똑같이 비로 시작된 하루라도 꼭 한 번은 해가 뜨는 여름날과 달리, 11월부터 거의 3월까지 런던은 늘 축축하고 그늘진다. 거기에 해까지 짧아지니 사람들은 쉽게 우울감에 빠져든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유럽의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그로 인한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한 안쓰러운 노력의 일환이다. 시끌벅적한 연말이 지나고 다시 휑한 거리에 비만 오는 1월이 찾아올 때 가장 많은이들이 무력감을 호소한다. 오죽하면 ‘1월 우울증January Blues‘이라는 말이 다 있을까. - P17

르누아르는 19세기 후반 인상주의의 대가로, 일상에서 마주치는 순간의 인상을 화폭에 담아내는 화가였다. 그가 우산 속 장면을 목격했을 때 비를 맞는 파리 시민들에게서 경쾌한 설렘이 뿜어져나왔고, 그 인상을 작품으로 기록했다. 흔하디흔한 비, 너무 자주 내려 우울까지 안기는 비가 뭐 그리 좋았을까? 작품의 제목에서 힌트를 얻을 수있다. 사실 원제는 ‘우산들 Les Parapluies‘이라고 번역해야 더 정확하다. 르누아르가 주목한 것은 비 오는 날의 ‘비‘가 아닌, 하나둘씩 펼쳐지는
‘우산들‘이었다. 사람들을 설레게 한 것도 비 자체가 아닌, 비 오는 날펼 수 있는 우산이었다. - P18

인류가 날씨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만큼, 우산은 문명이 시작된 이래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그러나 그 형태와 용도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우산을 뜻하는 영어 단어 ‘Umbrella‘는 그림자 혹은 그늘을 뜻하는 라틴어 ‘Umbra‘에서 파생했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역사적으로 우산은 비를 막는 용도보다는 햇빛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등장했다. - P19

1852년, 새뮤얼 폭스가 개발한 강철 튜브 우산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다. 폭스는 강철의 속을 뚫은 튜브 형태의 우산살로 우산을 대폭 경량화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강철은 이전의 재료들보다 훨씬 튼튼하면서도 저렴했다. 폭스의 발명 덕분에 19세기 후반, 진정한 우산의 대중화가 실현되었다. 당시 예술작품에서 우산 쓴 모습이 급증하는 이유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 P25

르누아르의 우산이 그려진 1880년대는 우산의 대중화가 실현되어 귀족과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파리 시민 다수가 값싸고 가벼운 우산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였다. 우산 속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설렘은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다. - P27

르누아르가 우산을 그리던 때는 달랐다. 이때의 파리 시민들은내심 비가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 구입한 우산을 챙겨다니다가,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우산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소한 기쁨을 안고 우산을 펼쳐들었을 것이다. 날은 어둡고 칙칙했을지 몰라도 빗속에서 잔잔한 즐거움이 피어났다. 르누아르는 이 장면을 포착했다. - P28

미술관에 들어올 때 바깥에는 검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쯤이면 비가 다 그쳤기를 바랐다. 르누아르의 우산이 내뿜는 행복한 기운을 받은 걸까. 이제 꼭 그렇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밖에 폭우가 내리든, 보슬비가 내리든, 아니면 다시 해가 비추든 남은하루를 충분히 화사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 P30

태생적으로 공간지각능력이 부족한 길치이자 방향치인 나는 살면서 나만큼 운전을 못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자동차는 고사하고 모든 종류의 운전이 그랬다.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탈 때면 혼자 줄곧 벽을 박으며 끙끙댔다. 균형감각을 상실한 안타까운 몸뚱이로 인해 자전거 배우기도 실패했다. 지금도 지하철을 내릴 때 오른쪽 왼쪽을 의식적으로 따지는 수준이니 운전면허 따기는 또 얼마나 험난했을까. 두 번의 낙방 끝에 겨우겨우 얻은 면허증을 고이 장롱으로 모시며, 평생 운전할 일 없는 서울에만 살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다. - P31

창희의 말이 귀에 들려올 무렵, 나는 인생 최대의 노잼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여느 때보다도 바빴다. 그러나 열심히만 살고 있을 뿐, 사실은 뭘 해도 재미가 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재미보다는 걱정과 스트레스가 앞섰고,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도 알 수 없는 허무를 느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져도 집 나간 재미의 감각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불길함에 있었다. 인생 30년 차가 되니 기쁨에도 내성이 생긴 것일까. - P32

장 베로Jean Béraud는 19세기 후반 벨 에포크 파리를 그린 인상주의화가다. 언젠가 파리의 한 기념품 가게에서 파리 풍경이 담긴 엽서를고르고 있었다. 그러다 내 손에 들린 대부분의 그림에서 ‘Jean Béraud‘ 라는 동일한 서명을 발견했다. 이 화가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장 베로는 주로 패션과 문화로 북적이던 19세기 파리의 거리를 그렸다. 현장감 넘치는 그의 작품들은 마치 그 시절의 패션 잡지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 P33

기념품 가게에서 고른 엽서 중 특히 내 눈을 사로잡은 그림은 「샹젤리제의 원형교차로」였다. 당시에는 작품의 제목도 몰랐지만, 샹젤리제 거리를 달리며 쿨하게 인사하는 두 여인, 특히 빨간 타이에 중절모를 쓰고 직접 마차를 운전하는 그 힙한 모습에 ‘이게 파리의 스웨그인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 P33

운전 연수를 시작하고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두 여인에게서 정해진 삶의 공간을 벗어나는 이들의 기대감과 짜릿함을 읽었다. 나 스스로 운전을 노잼 극복의 비책으로 여겼기 때문인지, 도심으로 향하는 두 여인에게서 새로운 재미를 찾아 집구석을 박차고 나오는 설렘이 느껴졌다. 특히 왼쪽의 여성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복장을 하고 운전석에 올라타며 ‘정통‘으로부터 더 멀리 달아난다. 외출을 한다 해도 한껏 꾸민 드레스에 에스코트를 받는 편이 당시 여성에게는 더 어울리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역할을 모두 이탈해 자신이 설정한 방향대로 인생의 마차를 운행하고 있다. - P35

남녀의 성역할 구분이 뚜렷했던 19세기 유럽에서 더 무료한 일상을 보낸 성별은 분명 여성이었다. 가정에 귀속된 여성의 삶을 공적 공간으로 확장시키며 재미를 불어넣은 데에는 도시, 상업, 자본주의의 역할이컸다. 19세기 후반, 유럽 수도들이 본격적으로 대도시로 성장할 무렵,
사회는 하층계급 여성을 핑크칼라Pink collar 노동 수요의 공급자로서, 중상류층 여성을 새로운 소비문화의 주도자로서 집밖으로 불러냈다. - P36

상황이 바뀐 것은 1870년대부터였다. 1853~70년 사이 파리는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의 도시 개조사업을 통해 오늘날의 세련된 외관으로 변신했다. 일명 ‘오스만화Haussmanization‘라 불리는 이 유명한 사업으로 도로, 건축, 위생 등이 근대적인 탈바꿈을 이룬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대로의 신설이었다. 중세의 골목길은 널찍하게 직선화된 도로로 바뀌었고, 개선문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열두 개의 방사형대로가 도심과 외곽을 이어주었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됨에 따라 마차의 운행이 수월해졌다. 깔끔해진 도로변에는 카페, 상점, 극장, 광장, 백화점 등 근대적 건축물이 줄지어 들어섰다. - P37

일상의 답답함을 해소할 수단으로 자동차를 원했던 창희, 그리고 인생 최대 노잼의 위기를 겪으며 운전을 결심했던 나의 마음과 그림 속 그녀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자면,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품었던 그 시대 여성들에게 더 온전한 해방감을 선사한 수단은 따로 있었다. 바로,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 100퍼센트 혼자만의 운전을 즐길 수 있게 해준, 자전거였다. - P41

자전거가 남녀노소의 스포츠로 자리잡은 것은 1890년대부터였다.
결정적으로 1885년에 영국의 발명가 존 켐프 스탈리가 ‘안전 자전거를 개발하면서 자전거를 향한 부정적 인식을 크게 바꾸었다. 현대 자전거의 시초로 여겨지는 이 모델은 이후 추진력과 편리를 보완한 차기 모델들에 이르러 대중적인 이용자층을 확보했다. 가볍고 저렴한 자전거가 빠르게 보급되자 처음에는 상류층부터, 곧 중하류층까지 자전거를 즐기는 여성이 늘어났다. 물론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있었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려면 다리를 벌리는 ‘저속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문제와 더불어, 더 중요하게는 보호자가 외출에 동행하기 어렵다는 문제 때문이었다. - P44

이렇게 자전거가 선사한 물리적 해방감은 여성들의 자신감을 북돋아 더 큰 정치적·경제적 해방까지 열망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혹은 그 반대로, 오랫동안 노잼 상태에 머물러 있던 여성들의 해방 욕구가 이미 포화점에 도달해 어떤 형태로든 표출될 수밖에 없는 상태였기에 자전거라는 물리적 수단이 등장했을 때 그녀들이 누구보다 더 열렬한 수용자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 P45

삶의 운전도 그러하지 않을까. 잡념을 뒤로한 채 마음 가는 곳으로달리다보면, 분명 즐거움이 두려움을 능가하는 순간이 올 터이다. 달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훨씬 더 살아 있음을 느낄 테고 그 순간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은 설령 잘못된 길에 들어서더라도 이내 올바른 방향으로 재정비하는 현명함을 가져다줄 것이다. - P48

MBTI를 포함한 각종 성격 유형 검사는 나 같은 사람을 내향형 인간으로 분류한다. 외향인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힘을 얻는다면, 내향인은 혼자만의 시간으로부터 힘을 얻는다고 이 기준으로 보자면 나는 확고한 내향인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일단 사람 속에 있으면 마치 충전기를 꽂지 않은 휴대폰처럼 서서히 배터리를 소모한다. 불편한 사람 앞이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배터리 광탈 현상‘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나의 무탈한 일상과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도 때때로의 고독은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 그 고요함속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자원을 얻느냐에 따라 삶의 에너지가 확연히 달라진다고 할까. 그러니 ‘내가 집에 안 가면 내 가정이 무너진다‘는그 말이 그저 농담만은 아니다. - P51

코로나 시대에 유난히 자주 언급된 화가가 있다. ‘미국식 사실주의‘
의 선구자라 불리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다. 호퍼의 작품들은 팝아트를 연상시키는 색채감, 영화 같은 극적인 화면 구성과 빛의 사용을 공통적인 특징으로 한다. 그 미적인 외관 아래 대도시의 단절과 고독의 실상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호퍼는 지난 한 세기 동안 ‘현대인의 내면을 가장 예리하게 표현한 화가‘라는 칭송을 받았다. - P53

우리 도시가 뜻밖의 바이러스로 불가항력적 단절을 경험할 때, 여러 지면에서 호퍼를 ‘코로나 블루‘를 대변하는 작가로 소개했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었다. 거리가 텅 빈 늦은 밤, 잠들지 않는 뉴욕을 그린 작품이다. 한낮 도시의 불빛과 소음은 소거되고, 정적이 드리운 배경에 한 심야식당의 조명만 거리를 밝히고 있다. 바의 손님들은 과묵하고 무심한 얼굴로, 어떤 교류나 대화 없이 그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모습이 멍때리는 것 같기도 피곤한 듯하기도 한데, 분명 일말의 열심이나 역동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 P54

호퍼의 다른 작품에서도 작중 인물들은 대개 이와 흡사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로 인해 그들의 내면은 항상 쓸쓸함, 외로움, 우울 등의 멜랑콜리한 정서들로 해석되어왔다.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소외된 20세기 도시인들의 불안과 공허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가 호퍼를 향한 가장 흔한 찬사였다. 코로나 시대에 호퍼가 더 자주 소환된 까닭은 고립과 우울이 현재를 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주며 ‘그러니 힘내자‘는 나름의 위로를 전하기 위해서였을까? - P54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니, 작품에 흘러넘치는 단절과 적막에서 외로움보다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호퍼의 피사체들은 늦은 밤 드디어 찾아온 고요한 시간을 가장 익숙하고 편한 장소에서 휴식하며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관계에 지쳐 있던 때, 내가 갈구하던 시간을 그들이 누리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 P55

‘초연결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온전히 자기에게 집중할 고요의 시간이 때때로 필요하다. 누군가 고독을 누리는 나에게 "넌 왜 이렇게 고립되어 있어? 그러니까 네가 외롭지"라고 충고한다면, 고독을 그저 부정적으로만 취급하는 태도에 기분이 상할 것이다. 호퍼 그림의 인물 중 그런 억울함을 가진 이들이 있지 않을까? 그저 무표정으로 앉아 있었을 뿐인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조용히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는데, 100년 가까이 ‘우울한 뉴요커‘로 기억된다면 무척이나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안락함을 느끼는 나와 같은 내향인을 위해, 내 마음대로 호퍼를 읽는 지금의 시각에 그냥 머무르고 싶다. - P56

호퍼에 대한 통념적인 해석은 그가 활동했던 시대와 직접적으로맞닿아 있다. 모든 예술이 자기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호퍼의 작품은 그보다 더 나아가 그 시대 자체를 ‘상징‘한다. 호퍼를 해설하는 글들은 거의 항상 호퍼 개인의 삶 이상으로 그가 살았던 시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는 그만큼 호퍼가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 당대 사람들이 호퍼의 그림을 이해하고 수용했던 방식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의미다. - P56

미국이 본격적인 성장 가도에 오른 것은 제1차세계대전(1914~18)이후였다. 유럽이 전쟁의 상처에 허덕일 때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자 수출국으로 명실상부 최고 호황기를 누렸다. ‘광란의 20년대Roaring 20s‘라고 불릴 만큼 이 시기 미국은 새로운 산업과 문화의 잭팟을 팡팡 터트렸다. 2차 산업 기술 혁신으로 자동차를 비롯한 새로운 제조업이 융성했고, 유전의 잇따른 발견으로 버젓한 산유국이 되었으며, 높아진 삶의 질을 따라 스포츠,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가 꽃폈다. 1920년대의 분위기는 재즈음악에 몸을 맡기고 신나게 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대변된다. - P57

그러나 호화로운 외관의 이면에는 반드시 어둠이 존재한다. 소득불균형과 양극화, 인종·지역·성별 간의 불평등, 버블 붕괴의 위험 등 지금은 우리가 예견할 수 있는 급격한 팽창의 부작용이 당시 미국 사회에 편재해 있었다. 결국 ‘광란의 20년대는 1929년 10월 29일 ‘검은 화요일‘의 주가폭락으로 막을 내리며, 그동안의 징조와 불안이 괜한 망상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켰다. 대공황의 최고조에서 미국의 실업률은 25퍼센트까지 치솟았고, 전 세계 GDP는 15퍼센트 이상 하락했다. 미국은 비교적 이른 1933년부터 회복세를 보였지만, 불과 10년 사이 최절정과 밑바닥을 오간 미국인들의 정신 상태는 혼미할 수밖에 없었다. - P58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의 명명에 따르면, 이 시대 미국인들은 집단으로부터 고립되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도 결국 내면의 고립감으로 번뇌하는 ‘고독한 군중‘이었다. 이들이 호퍼의 작품에서 소외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꽤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 P58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공개된 1942년의 상황은 더 극단적이었다. 그때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1939~45)의 한중심에 놓여 있었다. 미국 참전의 도화선이 된 일본의 진주만공습이 1941년 12월이었으니 그다음해의 분위기는 상상 이상으로 살벌했다. 사실 결과적으로 세계대전은 미국 경제의 돌파구이자 진정한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연 일등공신이었지만 그렇다고 전쟁의 긴장과 공포까지 비껴갈 수는 없었다. 특히 1942년은 미국 본토가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 시대 정서를 더 피폐하게 만들 때였다. - P59

이토록 불안정한 시대에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호퍼의 그림은 당시 대세였던 추상주의 회화보다 훨씬 쉽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덕분에 대중에게 접근성이 좋았고, 강한 정서적 몰입감을 유발했다. 첫 전시 때부터 관객들은 당대의 불안과 단절이 투영된 듯한 작품에 아낌없는 관심을 보냈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작품이 재생산되며 호퍼는 쏟아지는 국민적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그렇게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호퍼는 감추어진 미국의 진실을 그려내는 ‘가장 미국적인 화가‘로 각인되었다. - P59

나로서 나답게 존재하기 위해 가끔 사람들을 떠나 안으로 침잠해야 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만 들리는 진짜 내 목소리가 있었다. 그 진실 위에 중심을 잡고 설 때 나는 비로소 ‘주체‘가 되어 관계의 풍랑에서도 요동하지 않았다. 나에게 좋은 사람들을 더 잘 알아보았고, 그들을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나를 갉아먹는 관계에 집착하거나 나를 바꾸면서까지 사랑받으려 하지 않았다. 고독은 나를 나로 만들었고, 그런 나를 지키고 사랑할 이들이 누구인지 알려주었다. 그래서 여전히 자기를 위해서나, 자기 곁의 사람들을 위해서나 때때로 고독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 P67

내게 진정한 휴식은 산책과 독서다. 이 둘을 합쳐 좋아하는 길을 따라 걷다가 서점에 들러 이 책 저 책 훑어보는 시간이 최고의 휴식이다. 늘 입버릇처럼 ‘한양에 살고 싶다‘라는 말을 하고는 하는데, 종로의고즈넉한 길을 거닐다가 잠시 고궁에도 들렀다, 새로운 독립서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다녀오는 이 코스를 너무나 사랑한다. 무념무상으로 걷다보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생각이 정리되고, 우연히 펼친 책에서 잔잔한 위로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렇게 새책을 몇 권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 크고 작은 휴식시간을 채워줄 양식이 책장에 추가된 데 만족감을 느낀다. - P70

성 제롬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대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제롬은 정말로 ‘골방‘이라 불릴 법한 공간에서 책 읽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곳은 비좁고 흐트러진, 세상과 단절된 듯한 장소다. 제롬에게서 학자로서의 고뇌와 예민함이 느껴진다. 성경을 번역하고, 수많은 책을 쓰기 위해 그는 종일 난해한 텍스트에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그의 사명과 위치를 생각할 때 이런 어두운 골방이 나름 잘 어울린다. - P72

그러니 누구보다 더 많은 책에 시달렸을 성 제롬이 책과 함께 휴식하는 모습이 아주 낯설고도 부러웠다. 마음의 쫓김 없이 읽고 싶은 책을 읽을 때 채워지는 기분좋은 에너지를 안다. 그러나 온갖 핑계로 그러한 시간을 갖지 못한 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 P76

서양사에서 독서의 대중화를 논할 때마다 언급되는 두 가지 사건이 있다. 하나는 기술적인 사건인 금속활자 인쇄술의 발명이고 다른 하나는 이 기술의 힘을 빌려 발생한 종교개혁이다. 인쇄술이 책의 신속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면, 종교개혁은 실제로 그 기술이 사용되는 수요를 만들었다. 기술의 등장으로만 보면 아시아가 유럽보다 앞섰지만, 인쇄술을 향한 대중적 수요가 존재한 유럽에서 인쇄술은 훨씬 더 급격하고 강한 충격을 일으켰다. - P80

시작은 종교적 관심이었더라도 대중의 독서는 곧 종교 지도자들이 바라는 한계선을 넘어 훨씬 더 세속적인 영역으로 들어갔다. 그들 손에 잡힌 책의 종류가 무엇이었든, 과거처럼 타인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지 않고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즐기고 판단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외부의 정보와 이야기를 자기 내면에서 처리해, 그로부터 추출되는 사유와 감정을 온전한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었다는 점. 이것이 중대한 변화였다. - P85

‘독서가 휴식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놀랍게도 휴식이 된다.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을 물리치고 서서히 문장에 빠져들다보면, 뇌리가 번쩍이고 심장이 쿵 하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그때 감도는 진한 엔도르핀은 다른 어떤 휴식보다 더 상쾌하고 또렷한 쉼을 건넨다. 거기서 얻은 비전과 용기로 내 앞을 가로막은 문제의 장벽을 가볍게 넘어서기도 한다. - P87

19세기 말 파리 예술계에서 ‘가장 친구로 사귀고 싶지 않은 화가‘
를 투표한다면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r가 1위 후보에 오를 확률이 높다. 대쪽 같고 괴팍한 성미로 유명한 드가는 편히 다가갈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다. 모두가 인정을 갈망하는 세계에서 그는 어떤 인정도, 성공도, 명예도 바라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당연히 사교성이나 처세술은 없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촌철살인 돌직구로 어디를가나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그였다. 그의 기준에서 ‘무늬만 예술가‘인이들에게는 우월의식을 갖고 티를 팍팍 내며 모멸감을 안길 정도였다. - P91

드가는 친구들에게 따로 또 같이, 여러 번 포즈를 취하게 하며 그의 작품 중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초상화를 완성했다. 독립된 환경을 선호하는 그가 여섯 모델을 데리고 통제가 어려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친구들을 향한 애정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내 예상과 달리 작품은 멀어지는 우정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토록 즐거웠던 기억을 이렇게나 서먹하게 그려낸다는 게 한편으로는 너무 ‘드가‘다워 웃음이 난다. - P93

드가의 사연을 접하며 이 상황에 정서적으로 완전히 몰입했다. 드가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에게 가장 감정이입이 되었다. 인간관계에 미숙하고 빈틈없이 야박하면서도 자신을 포용해주는 이에게 약하고 그에게 깊이 의지하는 모습이 어딘가 나와 닮았다. 나의 성격이 드가만큼 괴팍하지는 않다고 믿고 싶지만 나 또한 그리 개방적이거나 처세술이 좋은 사람은 아니다. 한번 아니라고 판단되면 두 번의 고민 없이 마음에서 잘라내는 냉정함도 가지고 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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