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모습 때문에 에두아르는 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계획이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얘기하지 말자고 생각했었고, 그러기에는 지금은 어림도 없었다. 더구나 그동안 작업한 것들이 아직은 만족스럽지 못했고, 또 지금 알베르는 이런 심각한 문제를 함께 논의할 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비밀을 최대한 나중에 밝히자는 원래의 결정을 고수해야 할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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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비밀을 털어놓기로 결심한 것은 친구가 너무도 슬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가면일 뿐, 진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실 그는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아이의 옆모습을 묘사한 데생을 완성한 이날 오후부터 그는 몸이 잔뜩 달아 있었다.

그러니 좋은 결심이고 뭐고 없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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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에두아르는 강렬한 순간을 맛보았다. 승리의 순간이었다. 알베르에 대한 승리는 아니었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의 삶이 망가진 후 처음으로 스스로의 힘이 느껴지는, 미래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되는 승리였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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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가 쓴 마스크, 거의 실물 크기에 가까운 그것은 말 대가리였다.

에두아르가 지점토로 빚은 거였다. 모든 게 거기에 있었다. 군데군데 어두운 색들이 어른거리는 갈색, 아주 보드라운 감촉의 밤색 곰 인형을 뜯어 만든 듯한 약간 거무스름해진 털의 결, 아래로 처진 야윈 볼, 이마에서부터 구덩이처럼 벌어진 콧구멍에까지 이르는 각진 등성이……. 그리고 솜털로 덮여 반쯤 벌어져 있는 큼직한 두 개의 입술까지, 그것은 환각이 일 정도로 실제의 말과 흡사했다.

에두아르가 눈을 감자, 말 자체가 눈을 감았다. 바로 그 말이었다! 알베르는 지금껏 한 번도 에두아르와 그 말을 연결지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감격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마치 어린 시절의 친구를, 형제를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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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들은 거기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지어낸 이미지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래, 이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고결한 이미지들임에 틀림없지만, 약간 지나치게 과시적이었다. 알베르는 성격이 수줍은 편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선들이 끊임없이 과장되고 있었다. 마치 형용사들을 듬뿍듬뿍 발라 놓은 것 같았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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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베르가 느끼는 슬픔은 ─ 이 순간에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 이 불쌍한 에두아르가 이 전쟁에서 모든 것을, 심지어는 그의 재능마저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오는 거였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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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적 회상



우리의 영웅들과

승리한 프랑스의 영광을 기리는

기념비, 기념물 및 조각상


카탈로그

* * *

「자네, 전사자 기념비를 팔겠다는 거야?」

맞아. 바로 그거야. 에두아르는 자신이 찾아낸 것이 너무도 만족스러운 듯, 자신의 허벅지를 탁탁 치면서 목구멍으로 그 끼르르르륵 하는 소리를 냈다.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 그 무엇과도 비슷하지 않지만, 듣기에 유쾌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한 소리였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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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팔기만 하는 거라고……!」

가장 고대하던 일은 종종 느닷없이 찾아온다. 알베르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그거였다. 미칠 듯한 기쁨에 사로잡힌 에두아르는 첫째 날부터 알베르를 끈질기게 괴롭혀 온 그 질문에 갑자기 대답하고 있었다. 그가 웃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 웃고 있었다.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정상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목구멍에서 울리는 웃음, 높은 음색의 여성적인 웃음, 트레몰로와 비브라토가 있는 진짜 웃음이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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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의 웃음이 두 번째로 폭발했다. 아까보다 훨씬 거세게.

「돈을 들고 튀는 거야!」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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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이럴 수도 있다. 한밤중에 출발해야 했고, 그의 몸에서 정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뽑아 내는 그 유대 계집년은……. 사실 그는 유대인들을 끔찍이 싫어했지만(도네프라델 가문은 중세 때부터 반(反)드레퓌스 파였다), 그 종족의 계집들은 그 짓을 할 때면 얼마나 기가 막힌지……!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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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생각에 이 모든 것은 알베르가 적당한 시일 내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느냐에 달려 있었다. 왜냐면 기막힌 아이디어는 금방 상하는 식품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신문들을 열심히 읽으며 그는 예감했다. 시장이 기념비들의 공급으로 포화되면, 이 수요에 모든 예술가들과 주물 공장들이 몰려들면, 그때는 이미 늦어 버린다는 것을.

지금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없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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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장밋빛 전망에 즐거이 빠져들었고, 그 속에서 헤엄치며 그것을 들이마셨으며, 그의 존재 전체가 거기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말썽꾼으로서의 쾌감들과 도발적인 본성을 되찾으며 그 자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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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과 부르주아들 간의 영원한 싸움이 여기서 다시 거듭되고 있었다. 아버지와 맞붙어서 그가 패배한 전쟁의 반복이었다. 예술가는 몽상가이고, 따라서 아무 쓸모없는 존재야! 알베르가 하는 말 뒤에 이 문장이 들리는 듯했다. 아버지 앞에서도 그랬지만 알베르 앞에 있으면 자신이 무슨 구호 대상자, 무익한 짓들에 시간을 허비하는 쓸데없는 존재로 폄하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참을성 있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결국엔 실패했다. 그와 알베르 사이에 가로놓인 것은 단순한 의견의 불일치가 아니요, 문화의 차이였다. 그는 알베르가 하찮고, 쩨쩨하고, 옹졸하고, 야심도 광기도 없는 존재로 느껴졌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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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마야르는 마르셀 페리쿠르의 변종일 뿐이었다. 돈만 없을 뿐 그와 똑같았다. 확신에 사로잡힌 두 사내는 에두아르가 가진 가장 생기발랄한 것을 무시해 버리고 있었다. 그를 죽이고 있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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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본 에두아르의 마지막 모습은 그의 등이었다. 선뜻 떠날 결심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배낭을 꾸리는 그의 등 말이다.

온종일 등에다 광고판을 메고 대로를 걸어다니면서 알베르는 서글픈 생각들을 곱씹었다.

그날 저녁, 단 한마디가 남아 있었다. 〈고마워, 모든 게.〉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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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는 홀로 흐느꼈다. 알베르가 살아오면서 흘린 눈물들의 이야기를 써본다면 책 한 권은 나오리라. 지금 흘리는 눈물은 절망의 눈물로, 자신의 삶을 생각하면 슬픔의 눈물이 되었고, 미래를 생각하면 오싹한 공포의 눈물이 되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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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는 옷장으로 뛰어가 말 대가리 마스크를 꺼냈다. 그는 마치 귀중한 골동품을 다루듯이 조심해 가면서 그것을 뒤집어썼다. 그러자 곧바로 어떤 안전한 곳에 들어온 듯한, 보호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모습이 보고 싶어진 그는 쓰레기통에서 그나마 큰 거울 조각을 꺼냈지만, 그걸로는 잘 보이지가 않았다. 이번에는 창유리에 자신을 비춰 보았다. 거기에는 말이 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 즉시 두려움이 가라앉았고, 어떤 포근한 따스함이 그를 감쌌으며, 근육은 스르르 이완되었다. -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 임호경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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