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알라딘 eBook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중에서 - P6

어머니의 손길이 닿으면 그나마 덜했지만 문자로 짓는 아버지의 농사는 번번이 망했고, 그해 겨울에도 내 부모는 망한 농사의 후유증으로 남은 벌레 먹은 밤을 일삼아 까는 것으로 기나긴 겨울을 견디는 중이었다.

-알라딘 eBook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중에서 - P7

"글제! 글먼, 머리는 둿다 뭣혀! 생각혀봐. 사람은 하나님이 여개 사람이 있어라, 고런 시답잖은 말 한마디 했다고 하늘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먼지로부터 시작됐다 이 말이여. 긍게 자네가 시방 쓸고 담고 악다구니를 허는 것이 다 우리 인간의 시원 아니겄어? 사회주의자는 일상에서부텀 유물론자로 살아야 하는 법이여."

-알라딘 eBook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중에서 - P12

바짓가랑이에 붙은 먼지 한톨조차 인간의 시원이라 중히 여겨 함부로 털어내지 않았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마침내 그 시원으로 돌아갔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참으로 아버지답게. 마지막까지 유머러스하게. 물론 본인은 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그 순간에도 전봇대가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민중의 한걸음, 한걸음이 쌓여 인류의 역사를 바꾼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아버지는 진지하게 한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다만 거기, 전봇대가 서 있었을 뿐이다. 무심하게, 하필이면 거기. 이런 젠장.

-알라딘 eBook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중에서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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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알라딘 eBook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중에서 - P11

나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가 훌륭한 국가라고 생각한다.

-알라딘 eBook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중에서 - P16

주권자의 어떤 행위도 백성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입법권과 사법권, 전쟁선포권도 모두 주권자의 것이다. 주권은 분할할 수도 없고 견제를 받아서도 안 된다. 주권자의 명예는 백성 전체의 명예보다 위대하다. 주권자 앞에서 백성은 태양 앞의 별빛과 같다.

−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알라딘 eBook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중에서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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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준 미끼인지도 모른다. 한번 물리면 어디까지라도 따라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미끼…… 그러나 눈부신 미끼, ‘최후의 유혹’인 희망이란 옷을 눈부시게 펄럭이는.

-알라딘 eBook <꽃을 끌고> (강은교 지음) 중에서 - P19

사랑법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알라딘 eBook <꽃을 끌고> (강은교 지음) 중에서 - P21

나타나는 순간 소멸하는 것, 현재인 순간에 과거이며 미래인 것, 꿈인 것, 희망–하나인 순간에 절망이며 다시 두울의–희망인 것, 영원이며 불멸인 것…… 그 외에도 무수한 반어들과 유사어들…… 그리고 추억.

-알라딘 eBook <꽃을 끌고> (강은교 지음) 중에서 - P24

나는 그녀를 보았다. 맨드라미빛 치마를 입고 허공을 걸어가는 그 여자를.
그 여자에게선 정오의 냄새가 났고, 그 냄새는 길 위에 서 있는 나에게도 풍겨 왔다.
나는 그 내음을 맡는다.
발레리나처럼 연립주택 옥상 빨랫줄 곁에서 출렁거리는 그 여자.

순간 그 여자는 무늬가 되었다. 하늘에 맨드라미빛 소리로 매달려 있는 그 여자.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토시를 신은 발레리나처럼 연립주택 옥상을 걷는 그 여자.

우리는 모두 한때의 발레리나인가. 무대배경은 누추한, 어여쁜 삶의 모든 것.

가장 멀리, 그러므로 가장 가까이 펄럭이는 흩날림. 세상의 무늬가 되어 구름을 묶는 그 여자.

인류의 아기를 낳는 그 여자.

-알라딘 eBook <꽃을 끌고> (강은교 지음) 중에서 - P26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상태란 진실로 말하자면 절망의 평면에 서 있을 때이며 가능한 성취란 이런 절망 속에서만 희망되어지는 것이다. 안주한다는 것은 결국 성취를 포기하는 것이며, 사소해지는 것이다. 절망과 성취의 동질성은 이런 차원에서 진실한 것이다. 즉 절망을 포기한다면 어떤 성취도 불가능하다. 성취를 꿈꾸기 위해선 절망해야 한다.

-알라딘 eBook <꽃을 끌고> (강은교 지음) 중에서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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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덕분에 또 다른 구체적인 미래의 목표를 가슴에 품게 되었다. 언젠가는 나도 언니들처럼 전후반 풀타임을 다 뛰고도 체력이 남는 사람이 되어 이 정도쯤은 거뜬히 뛰어다닐 것이다. ‘그 나이’가 되면 할 수 있을 것이다. 꼭 그럴 것이다. 그날이 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이야기해야지. "봐, 바로 앞 문장에 쓰여 있잖아. 내 나이 되면 너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날이 오면 B버스에게도 반드시 이야기할 것이다. "내가 다시는 너를 기다리나 봐라!" - <다정소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8886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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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힘들어한다. 더워서라기보다는 소란스러워서다. 뜨겁게 내리꽂히는 햇빛, 햇빛이 만들어내는 열기, 열기를 품고 왕성해지는 생기, 생기가 돌아 선명하고 또렷한 자연의 색깔, 그 색깔을 따라 같이 알록달록해지는 여름의 옷, 옷들 아래에서 흘러내리는 땀, 땀이 수시로 일깨워주는 살아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이 붕붕 띄우는 마음,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조금 지나치게 소란하다. 단지 비유가 아니라 실제 청각의 문제라 여름이면 자주 가만히 귀를 막곤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온갖 힘이 넘치는 것들에 휩싸이는 일은 쉽지 않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머릿속을 눅눅하고 흐릿하며 몽글하게 만드는 게 싫다. 겨울의 적요와 긴 어둠과 정신을 바짝 들게 하는 추위를 매일 그리워한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 보라색인지도 모르겠다. 뜨겁고 붉은 것이 얼어붙은 듯한 색. - <다정소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8886 - P7

하지만 글 쓰는 일이란 결국 기억과 시간과 생각을 종이 위에 얼리는 일이어서 쓰면서 자주 시원했고 또한 고요했다. - <다정소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8886 - P7

여름 동안 정성껏 얼려 가을에 내보낼 글들이 나의 산문집을 방문해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잘 녹으면 좋겠다. - <다정소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8886 - P8

매사에 두괄식이기보다 미괄식인 인간이었다. - <다정소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8886 - P10

타인이 더 나은 경험을 해보길 진심으로 바라서 하는 조언과, 무작정 던져놓는 냉소나 멸시는 분명 다르다. ‘세상의 빛을 보자’는 게 ‘관광(觀光)’이라면, 경험에 위계를 세워 서로를 압박하기보다는, 서로가 지닌 나와 다른 빛에도 눈을 떠보면 좋지 않을까. - <다정소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48886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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