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잔소리로 말하고, 불안해서 통제하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먼저 문을 닫는 일이 반복될 때 마음은 조금씩 멀어진다. 부부가 서로를 대하는 말투와 표정은 자녀와 관계를 배우는 첫 장면이 되므로, 부부 관계와 부모∙자녀 관계는 따로 떼어 볼 수 없다. 아이들 학원비나 병원비를 결정할 때는 늘 계산기를 두드리던 사람이 자기 취미에는 쉽게 지갑을 연다.
어떤 부부의 얘기를 들어보면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찾아와 도와 달라고 부탁하면 거절을 못하고 아내와 의논하지 않고 홀랑 벗어 던져주는 사람이다. 남편은 남의 마음도 자신의 마음 같은 줄 알고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이런 소비가 먼 후일에 어떤 불안으로 돌아올지 계산을 못한다. 남편은 지금 이 순간 겉으로 좋은 말을 하며 착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것이 진짜인줄 알고 속는다.
사람은 결국 그들의 이용가치가 없으면 주소도 지워버리고 연락이 되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린다. 그들이 어렵다는 부탁을 다 들어주다 보니 결국 우리 가계부는 언제나 뻥 뚫린다. 남편이 말을 꺼내면 이번에는 어떤 일이 나올지 몰라 몸에 힘이 들어간다. 오늘의 문제를 이야기하다가도 예전에 있었던 일, 남들의 부탁을 들어주어 아내에게 큰 상처를 입힌 일 등 어느 순간부터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보다 누가 더 오래 상처받고 잘못했는지를 겨루게 된다.
처음에는 하나씩 설명하면 풀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의 이야기가 늘어날수록 지금의 문제는 점점 뒤로 밀려난다. 싸움을 키우지 않으려고 말을 삼키면, 그 순간은 지나가는 것 같지만, 해결되지 않은 마음은 그대로 남는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한 번의 싸움 안에 꺼내 놓는다고 해서 상처가 저절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오래전 기억을 가볍게 꺼낸 것뿐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내의 귀에는‘그 사람은 무던했는데 당신은 까탈스럽다’는 비교로 들린다. 대화를 이어갔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아내가 보지 못한 옛사람의 장점과 지금의 아내를 견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너무 예민한가 싶어 웃어넘겼다. 과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남편이 좋아할 만한 방식으로 맞춰 보기도 했다. 참아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