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생각보다 공평하지 않다. “악의는 없었다.”“자신의 본성은 그게 아니다.”라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세상은 타인의 본심을 알아봐 줄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전달하는 사람이 이길 때가 많다. 더 뛰어난 사람이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더 신뢰를 주는 사람이 선택받을 때가 많다. 똑부러지게 말하고 싶다면 핵심(용건)부터 말해야 한다.
서론이 길어질수록 듣는 사람은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의 진을 빼놓고 뒤늦게 용건을 꺼내는 화법이 최악이다. 예를 들어 상사에게 보고를 시작하는 두 직원이 있다. 자신이 팀장이라면 어느 쪽을 더 유능하다고 평가하게 하게 될까?
A:“ 팀장님, 그 저번에 주신 기획안 있잖아요, 제가 오늘 오전에 자리에 앉아서 그걸 좀 쭉 봤는데....다시 보니까 몇 가지 좀 걸리는 부분도 있고 해서.....”
B: “팀장님, 지난번에 주신 기획안 수정 건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마 대부분 망설임 없이 B를 훨씬 더 유능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첫 문장만 듣고도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될까? B의 말에는 대화의 ‘목적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목적지를 모르면 본능적으로 불안과 피로를 느낀다.
화면이 까맣게 꺼진 내비게이션을 보며 낯선 길을 운전한다고 상상해보면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얼마나 더 달려야 하는지, 언제쯤 도착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때 운전자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운전 그 자체가 아니다. ‘예측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사람의 정신을 피로하게 만든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A처럼 용건을 갖춘 채 서론을 길게 늘어놓으면,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그래서 결론이 뭐지?’라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이야기를 들을 때 인간의 뇌는 다음 맥락을 추측하고 정보를 조합하느라 엄청난 에너지를 쓰게 된다. 상대가 말을 할 때 듣지 않고 같이 말을 한다면, 조금만 들으라고 해도 듣지 못하는 사람은 정작 본론이 나올 때쯤엔 집중력이 없기 때문에 뇌에 단 한 가지 정보도 입력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언제나 상대에게 손해를 보게 되고 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