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삶이던가, 그럼 좋다. 다시 한 번!`
그대들의 도시를 베수비오 화산의 산허리에 건설하라. 그대들의 배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바다 한 가운데에 띄워라.
그녀는 변덕스럽고 제멋대로 군다.
그녀는 작은 악마이며 성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를 나쁘게 말하며 눈물을 흘릴 때 나는 유혹 당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다.
왜 그토록 나약한가.대체 무엇 때문에 굴종하는가. 그대들 마음 속에는 어째서 그리 많은 부정과 부인이 존재하는가.그대들의 눈은 왜 이 작은 운명밖에 볼 수 없는 것인가. 그대들은 운명을 탐하지 않는다면서 `용서할 수 없는 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서 왜 나와 함께 승리하기를 거부하는가.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을 감추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다. 사람이 무엇을 쓰는 경우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 뿐만 아니라 동시에 확실히 알아주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알아주는 것을 꺼렸던 것이다.
오늘날 `교양`이라는 것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과 자신이 직접 구입한 집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는가, 혹은 시내를 활보할 때, 유행하는 미술관에 들렀을 때 어느 정도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