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 참 예쁘다 - 아들을 오빠라 부르는
김수복 지음 / 어바웃어북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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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한파에도 죽지 않고 땅 속 깊이 살아 있다가 봄에 꽃을 피우는 수선화

뿌리처럼 어머니의 기억에도 봄이 찾아와 다시 꽃을 피울 수는 없을까?"

 

삼십 대를 넘어서까지 방황과 좌절을 거듭하던 김수복을 위로했던 것은

'글쓰기'와 '어머니'였다.

주위 사람들은 글을 쓰겠다는 그에게 우려의 눈길을 보냈지만 어머니는

"무엇이든 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야지." 라고 하셨다.

그러던 어머니가 몇 해 전 모든 기억을 잃었다.

전등을 켜는 법, 좋아하던 나물 이름, 아들의 이름과 얼굴,

옷을 입는 법 등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책 <울 엄마 참 예쁘다>는 치매에 걸린 엄마와 같이 사는 저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텃밭과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서 엄마와 같이 살며 부대끼는 현재의

시간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 여긴다.

책에 표현하지 못하는 저자의 수많은 고통과 아픔이 느껴진다.

예전의 엄마가 아닌 기억을 잃어버린 엄마, 내 아픔을 털어놓고 위로받지

못하고 거꾸로 내가 엄마가 되어 모든 것을 아기처럼 돌봐주어야 하는 엄마를

옆에서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아프고 힘든 일일까...

그 지난한 삶의 이야기들이 눈물짓게 하고 때로 웃음을 주면서 사계절 변화하는

자연과 함께 저물어가는 인생의 뒤안길을 엿보게 한다.

아들을 오빠로, 도련님으로, 주인아저씨라고 부르고 민들레를 쑥이라 여기며

광주리 안에 담아 넣는 엄마, 모든 기억을 저편 깊숙이 묻어버린 엄마에 대한 

아들의 사랑이 쓸슬하고 아프다.

책의 곳곳에 작고 초라한, 등이 굽은 어머니의 모습을 담았고 

들풀, 나무와 꽃들의 사진이 있어 서정과 운치를 더한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듯이 그는 어머니와

살면서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삶의 이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같은 것을

발견하고 전율한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한 것이 참으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찌 어려움이 없겠는가... 도리를 다하는 그가 존경스럽다.

연결이 끊어진 어머니의 아지랑이 속같은 기억을 잡아주기 위해 소풍을

가고 바닷가 모래사장을 거닐며 어머니의 기억 하나를 살리고 기뻐하는

모습에서 저자의 간절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도란도란 얘기하며 메주를 쑤면서 곰팡내 나는 메주 냄새를,

그리고 삶의 냄새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아따 우리 오빠 재주도 참 좋으시네에. 으찌케 그렇게도 이쁘게 메주를

잘도 만드시까아."

"에이, 또 오빠라고 하시네 거."

"음마, 오빠를 오빠라고 안 하믄, 글믄, 뭐라고 한다요?"

 

어머니의 머리를 자르면서 까닭없이 눈물이 나온다.

"아 가만 좀 있어 봐아."

"나 암 것도 안 했어어."

"안하긴 뭘, 귀 자를 뻔 했구만."

'알았어, 가만히 있을게." 

풀밭 위에 내려앉은 봄꽃송이들이 희끗 희끗한 어머니의 머리카락 같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커다란 가위를 들고 아들의 머리를 싹둑싹둑 자른다.

"아 가만 좀 있어봐, 써글놈아."

"아 써글놈아 가만 좀 있어야. 귀때기를 기냥 칵 짤라 벌랑게."

귀를 건드려 피가 비치면 놀람과 슬픔으로 버무러진 그 목소리 속에 어머니의

애간장이 녹아 있다.

 

칠 년 전에 얻었던 호두와 어머니는 닮았다.

껍질이 단단하고 개미 한 마리는 커녕 먼지 한 톨 들어갈 틈이 없는 호두는 

칠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알맹이의 무게감과 존재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속이 텅 비어가는 호두와 같은 어머니와 헤어질 날을 그저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가. 인간에게 혼이 있다면 어머니의 혼과 자신의 혼이 구천에서

다시 만났을 때 무엇으로 서로를 알아볼 것인가 하는 생각만으로도 슬프다.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가는 어머니와 하루 스물네 시간을 거의 함께 지내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죽음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옷을 갈아입혀 줘서 고맙다고 하실 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연거푸 '고맙다'고 진정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실 때 저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싶어집니다. "내가 죽어서도 안 잊어먹을라요, 이 고마움을.........."

죽어서도 안 잊겠다는 어머니의 이 말씀이 저를 숙연하게 합니다.

지난 삼 년여 동안 아마 삼천 번은 들었던 것 같은데, 들을 때마다 새로워서

한동안 멍해지곤 합니다.

도대체 죽어서도 안 잊겠다는 이 말씀은 어떤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차 계십니다.

아들은 의심할 필요없는 오빠이고, 까마득한 과거에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니는

지금 어딘가에 살아 계시고 자신은 아주 작은 소녀입니다." ~ 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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