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 - 천연기념물 나무에 얽힌 사연을 통해 알아본 한국사의 비밀!
박상진 글.사진 / 왕의서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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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무나라에서 천연기념물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땅에 수백 년을 살아 오면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아름드리 고목나무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이다.

대부분의 천연기념물 나무들은 제사를 받드는 신목(神木)이면서 마을의 정자나무이다.

기나긴 세월 동안 마을을 지키며 사람들의 흥망성쇠를 지켜 본 나무들에는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 세상살이의 이런 저런 사연들이 얽혀 있다.

병이 낫고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간단한 소망을 비롯, 마을을 지키고 나라의 운명을 예감하고

역사의 소용돌이를 지켜 본 고목나무의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나무들의 이야기가 전설로 승화되고 그 전설에서 역사의

조각들을 찾아 맞추는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나무들은 지형적인 이유로 홍수 등의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서, 왕족과 권문세가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마을의 화평과 안녕을 위해서, 풍수지리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한 집안이나 특정한 지역에서 벼슬아치들이 많이 나오게 하기 위한 이유 등으로 심어졌다.

 

우리나라에는 문화재청에서 지정. 관리하는 250여 군데의 천연기념물 나무와 숲이 있다.

저자 박상진은 무려 14년에 걸쳐 답사하고 조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천연기념물 고목나무와

그 나무들의 자람터에 대한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몇 군데의 자람터에서 살고 있는 나무들은 여행하면서 보았던 나무라서 더욱 애정이 갔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저자의 지극한 노고와 사랑으로 탄생한 이 책을 들고 전국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책의 구성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특별한 가치가 있는 73곳을 골라 4부분으로 나누었다.

첫째, '역사 현장의 나무' ~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 본 헌법 재판소의 백송, 나라의 큰 일을

예언한 영월의 은행나무, 하늘과 땅이 만나는 제주 천지연 난대림, 왜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한 나무 등 14곳

둘째, '문화 유적의 나무' ~ 유적지에 자라는 천연기념물 나무들로 단종이 유배된 청령포 관음송,

의병 곽재우 생가의 나무, 왕릉의 나무, 오죽헌의 율곡 매화 나무 등 18곳

세째, '전통 사찰의 나무' ~ 대웅전 부처님과 만나는 서울 조계사 백송, 보은 법주사 정이품송,

장성 백양사의 비자나무 숲, 삼별초의 최후를 지켜 본 진도 쌍계사의 상록수 숲 등 24곳

네째, '선비와 장군의 나무' ~ 망국의 한을 심은 양평 용문사의 마의태자 은행나무,

유배지에서 신산한 마음을 달래던 추사 김정희의 백송, 임진왜란을 지켜 본 남해의 왕후박나무,

나라 잃은 공양왕의 삼척 음나무 등 17곳

 

각각의 나무들에 얽힌 이야기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때로 애절하게, 때로 장엄하게, 허무하게도 느껴지는 나무와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만개한 초여름의 옛 운교역 터 밤나무 꽃. 천연기념물 제498호



 제주 천지연 폭포 난대림. 천연기념물 제 379호



눈 내린 오죽헌 지붕 위의 설중매. 천연기념물 제 484호



 정이품송의 초라한 모습. 보조물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 103호



 피어날 순간들을 얌전히 기다리는 백양사 매화꽃 봉오리들. 천연기념물 제 486호



 단종의 혼이 서려 있는 웅장한 관음송. 천연기념물 제 349호

 

청령포에 유배됬던 단종은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의 은행 몇 알로 자신의 운명을 점쳤다고 한다.

단종의 시 한 수가 애절하다. 

"원통한 새 한마리가 궁궐을 나온 후 외로이 푸른 산 속에 갇혀 버렸네.

하늘마저도 애절한 저 하소연 듣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시름 젖은 내 귀에만 들리는가."

얼마 후 세조에 의해 최후를 맞은 그의 시신을 은행나무를 심은 엄임의의 후손인 엄홍도가

수습한다. (당시로서는 죽음을 무릎쓴 용기이다)

은행나무는 1910년 한일합방, 1945년 해방, 1950년 전쟁 때에 굵은 가지를 하나씩 부러뜨려

큰 일을 예고한 상서로운 나무이다.

 

청령포는 배를 타지 않으면 들어 갈 수도 없고 나올 수도 없다. 뒤편은 가파른 절벽이기 때문이다.

귀양 온 단종은 청령포 솔숲 관음송에 걸터 앉아 서울을 바라 보면서 통곡했다고 한다.

관음송은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 보았다고 해서 관(觀),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음(音)

자를 붙인 이름이다. 그의 혼이 담긴 듯한 관음송...

 

함양에 있는 느티나무는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있을 당시, 마흔이 넘어 얻은 5살 짜리 아들을

홍역으로 잃고 일찍 하늘나라로 보낸 아들을 위해 뭔가 남기기 위해 심은 나무이다.

" 내 사랑 뿌리치고 어찌 그리 빨리도 가느냐. 다섯 해 생애가 번갯불 같구나..." 라는

그의 시는 읽는 이를 마음 아프게 한다.

아들의 이름은 목아(木兒) 였으니 나무와의 인연은 운명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자람터는 초등학교 바로 앞인데 나무의 뿌리목 가까이 두꺼운 책을 옆으로 세워 나무를

받치는 듯한 특이한 모양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학자의 아픔과 소망을 오롯이 담아 놓은 듯하다.

 

단종을 폐하고 무리하게 집권한 세조는 14년의 치세 기간 동안 종양과 피부병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전국의 약수와 온천을 찾아 다니던 세조는 속리산 법주사의 복천암을 찾는다.

임금의 가마 대연(大輦)이 4~5m의 소나무 가지를 통과할 수 없었는데 여기서 전설이 만들어진다. 

세조가 "무엄하구나! 연이 걸린다" 고 꾸짖으니 소나무 가지가 들리고 이에 세조가 나무에

정이품이라는 파격적인 벼슬을 내린다.

세조는 하늘이 내린 임금, 나무같은 미물도 알아 보는 임금이라는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등나무는 아름다운 보라색 꽃과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나무이다.

그러나 나무나라에서는 숲속에서 지켜야 할 공생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말썽꾸러기이다.

다른 나무의 줄기를 휘감아 양분이 흐름을 차단하고 광합성 공간을 빼앗아 버린다.

배은망덕은 인간세상의 일만은 아니다.

부산 범어사의 등나무 군락, 나무의 특성은 얄밉지만 만개했을 때는 보라색의 향연이 일품이다.

 

강화도의 갑곶돈대 주변에는 탱자나무가 심어져 있다. 임진왜란 이후 나라에서는 왜적을 막기

위해 성 아래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로 성의 울타리를 쌓았다. 손가락 길이만한 험상궂은

가시를 뚫고 성벽을 기어 오르는 일은 녹녹치 않은 일이다.

탱자나무는 조상들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실증적 증거이며 역사성을 가진 유물이다.

 

백양사의 비자나무 숲 이외에도  남부 지방의 절 주위에는 사람들이 일부러 심은 비자나무가 많다.

촌충, 십이지장충 등 사람의 몸 속에 기생하는 벌레들을 없애는 데 비자열매가 특효약이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비자 열매를 구충제로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기름을 짜서 절의

살림에 보탤 수가 있었다.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기 전 명산들을 다니며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모든 명산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이성계를 받아 주었으나 광주의 무등산 산신만은 소원을 거절했다고 한다.

화가 난 그는 무등산 산신을 지리산으로 귀양 보내고 무정한 산이라고 해서 무정산(無情山)으로

이름을 바꾼다. 그러나 뒷날이라도 자신의 소원을 들어 달라는 바램과 함께 지금의 담양에

1000년을 넘겨 사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정성스레 심는다.

전설이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600년 뒤 쿠데타를 일으킨 5공 실세 신군부에게도 무등산은 고개를 돌려 버린다.

 

사람이 나이 들면 기운이 없고 쇠하듯이 오랜 세월 비바람과 병충해에 시달리던 나무들이

노쇠하고 쇠락해 가는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쇠꼬챙이로 연결되어 있고 우레탄으로 구멍이 메워지고 보조물에 의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인간과 동고동락하면서 기쁨과 슬픔, 오욕의 세월까지 살아 낸 산 증인으로서의 나무들이

자연적인 수령이 다할 때까지 보호받고 사랑받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아무리 오래 사는 나무라 해도 생이 다하면 소멸하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죽음이

있으니... 백년도 못 사는 인생... 참으로 허무하다.

 

"나무의 자람터는 대부분 한적한 시골마을 어귀이다.

시간을 멈춰버린 듯 느긋함이 있는 곳, 도시의 번거로움을 털고 조용히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자리에 터를 잡고 있다.

그 앞에 서면 세월의 길이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200~300년은 오히려 젊은 나무다. 700~800년이 장년의 나이다.

적어도 1000년이 넘어야  정말 노인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을 압도하듯 사방으로 펼쳐진 가지 뻗음으로 만들어진 나무의 거대함은 그것 자체로도

위엄이 있다.

이에 하찮은 세상사에 매달리다 번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우리들을 넉넉하게 감싸 준다.

그래서 언제나 무심히 덤덤하게 맞아 줄 뿐인 천연기념물 고목나무들을 찾아 천릿길도

마다 않고 달려가게 된다." ~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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