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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물꼬물 세균대왕 미생물이 지구를 지켜요 - 자연의 아이들 지구를 살리는 친구 (풀빛 지구지킴이) 1
김성화.권수진 지음, 박재현 그림 / 풀빛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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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세상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생물들의 작용 결과이다. 그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다. 꼭 미답의 세계를 탐험하는 탐험가가 된 기분이다. 전자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그 세상도 가시적 세계처럼 서로 연관관계를 맺고, 서로 결합하기도 하고 이탈하기도 한다. 또한 서로 합쳐져 놀라운 변신을 하기도 한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변신을 부리는 그들의 세계가 꼭 마술을 보는 듯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세계에 놓여있는 세균이다. 보이지 않기에 그들에게 부여된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키려는 듯 세균의 여러 가지 역할을 보여준다. 법적으로 점유권 개념을 적용한다면 지구의 주인이 단연 세균이란다. 태초에 지구가 용광로처럼 들끓던 시절 그 뜨거운 화산과 용암 속에서 세균이 살았단다. 그들의 광합성 활동이 산소를 생산해 내고, 그것이 지금의 지구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단다. 결국 지구의 모든 생물은 세균에게 생명 탄생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세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왜 생긴 것일까?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균에는 과학자들마저도 그 종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종류가 있다. 심지어 기존의 형태를 끊임없이 변화시켜 새로운 형태의 세균이 재생산되기도 한다. 그 수많은 세균들 중 인간에게 해로운 작용을 하는 세균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집단 식중독이나 이질, 혹은 각종 바이러스의 공격과 관련된 뉴스에서 그 원인으로 늘 세균이 지목되기 때문에 세균의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일반인들의 이런 부정적 인식과 달리 세균은 인간에게 유익한 일을 많이 한다. 오히려 우리 몸에 붙어 있는 세균으로 인해 여러 유해한 세균들이 침입하지 못한다. 또한 몸속 소화기관에 존재하는 세균들은 음식물의 소화 작용을 돕기도 한다. 내장에 존재하는 대장균이나 유산균 등은 몸속에 곰팡이가 피지 못하도록 막아주기도 한다. 분해자로서의 세균의 역할은 자연의 생태계 순환의 중요한 고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과학자들은 세균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전염병을 예방하는 백신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처럼 이 책은 세균을 주인공으로 세균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조목조목 전달한다. 지구의 탄생과 관련된 세균의 역할을 시작으로 세균의 다양한 성질을 알려주며, 세균과 유사한 원생생물이나 바이러스, 곰팡이와 비교해서 세균의 특징을 설명하기도 한다. 또한 인간 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세균의 의미를 설명함으로써 세균이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인간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과학 기기의 발달로 가시적 영역으로 들어온 세균을 이용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잘 보여줌으로써 미생물 분야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영역임을 잘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어린 독자들은 지금까지 막연히 알고 있던 세균의 특성과 역할을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될 것이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쉬우면서도 폭넓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세균에 대한 교양적 지식을 쌓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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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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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슬프도다. 오랑캐의 말발굽 아래 유린된 산하. 그 무참히 짓밟힌 삶의 터전 앞에 울부짖는 백성들.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민초들. 그들은 전쟁터에서 아까운 생명을 던져야 했고, 가족을 잃고 한없는 슬픔에 잠겨야 했고,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해야 했다. 이들에게 임금은 기댈 수 있는 의지처가 되지 못했고, 국가는 쓸모없는 권력에 불과했다. 백성들을 사지로 내몰아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데 연연하는 임금은 자격 없는 임금이요, 백성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지켜내지 못한 국가는 정당성을 상실한 국가이다.

백성이 곧 국가요, 임금이다. 하늘이 내린 임금이 어디 있는가? 그것은 자신의 권좌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 백성이 국가의 근본이라면 백성이 곧 하늘이다. 그렇다면 백성의 아픔은 하늘의 아픔이다. 그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임금이 되어야 하늘도 감동하여 그를 따른다. 국가 운영의 실패로 혼란이 가중되는 것은 하늘의 마음이 이미 떠났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대비하지 않은 임금은 임금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청의 침략으로 도성을 버리고 남한산성에 의지해야만 했던 조선 제 12대 인조 임금, 그는 이미 하늘로부터 버림받았다. 시대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느끼며 살아야 하는 민초들의 마음은 냉혹하다. 피부에 와 닿는 고통을 내부로 삭히기보다는 겉으로 곧바로 드러낸다. 그 고통의 인내를 요구하기 위해선 임금이나 국가 권력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초들의 고통은 곧바로 무능력한 임금이나 부패한 국가 권력에 화살이 되어 날아간다. 즉 권력의 기초이자 하늘인 민초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희생양이 되기를 거부하고 그들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임금이 그들을 버리는 게 아니라 하늘인 그들이 임금을 버리는 것이다.

민초들은 임금이나 국가 권력보다 훨씬 강인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꿋꿋하게 질긴 목숨을 연명해가며 완전히 사라지는 법이 없다. 홑겹의 옷가지에 찬비가 스미는 혹한의 추위에도 찬 기운을 견디지 못한 손발이 동상에 걸려 잘려 나가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모질게 견디어낸다. 간혹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배고픔과 추위로 쓰러지기도 하지만 이어지고 이어지는 잡초 같은 인생은 결코 절멸되는 법이 없다. 따라서 이 전쟁의 패배자는 민초들이 아니라 바로 임금일 뿐이다. 자신의 생명과 권좌에 연연하는 나약한 임금일 뿐이다. 하늘의 마음을 잃어버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강자 앞에 치욕적으로 무릎을 꿇는 일 외엔 달리 선택의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민초들이 정말 감내하기 힘들었던 것은 추위와 배고픔이 아니라 고통의 정당성이다. 평소 자신들의 의지처가 되지 못했던 임금과 사대부, 그들의 권력과 그들만의 나라를 위해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워야 하는 것인가? 내적 자발성이 분출하지 않는 한 그들에게 이 전쟁은 자신들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무능한 정권을 지켜내기 위해 더 소중한 자신들의 목숨과 가족을 버려야 하는 가치 없는 싸움에 불과한 것이다. 아마도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무너져 가는 명나라가 구세주라도 되는 양 황제를 향하여 예를 갖추고 춤을 추는 임금 앞에서 민초들이 느끼는 심정은 의리에 대한 칭송보다는 무능한 정권에 대한 분노일지 모른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가망이 없다. 깊은 상처를 남긴 역사일수록 반성은 더욱 절실하다. 과거의 슬픔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우리는 잘못된 과거를 곱씹고 곱씹어야 한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늘 주변의 정세변화를 살펴야 했던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외부의 힘에 의지해 내 영토를 지키려했던 안이함은 또 다른 외부의 힘을 불러들이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점을 망각한다면 남한산성의 치욕의 역사는 을사늑약과 한국전쟁에서 이미 겪은 것처럼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처한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간섭은 그 역학 구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본질은 그다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시든 나뭇잎 차디찬 북풍에 나불대는 황혼녘 남한산성의 성루에 섰다. 슬픈 역사의 흔적은 세월의 풍파에 자취 없이 사라졌지만 지긋 눈을 감고 아득한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가 본다. 지금은 음식점들이 난립해 장사치들의 천국이 되었지만 먼 옛날 너른 들판에 수만의 청병들이 진을 치고 노려보고 있었으리라. 그들의 말발굽 아래 스러져간 선조들의 애달픈 부르짖음이 들려온다. 귓전을 울리는 선영들의 절규는 후손들의 평화를 바라는 영혼의 경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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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캐러멜! 중학년을 위한 한뼘도서관 3
곤살로 모우레 지음, 배상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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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인공 코리에게서 사하라 위족의 모습을 본다. 코리는 선천성 청각장애로 말하거나 듣지 못한다. 다만 상대방의 말하는 입모양으로 그 의도를 짐작할 뿐이다. 그 자신에게 그의 이름은 코리가 아니고 엄마의 입모양으로 표현된 한번 약간 내밀어 동그랗게 벌린 상태, 한번 약간 가늘고 길게 옆으로 벌린 상태이다. 그는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 자신의 내면을 언어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과 교감하는 데 곤란을 겪는다. 따라서 그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가족의 품 안에서 성장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친구들은 그를 따돌리고, 심지어 괴롭히기도 한다.

이러한 처지의 코리는 사하라 위족이 처한 상황과 상당히 흡사하다. 건조하고 메마른 척박한 땅. 하마다라는 자갈 구릉이 대부분인 이 땅에 뿌리를 내린 부족은 외부의 강력한 권력과 환경 변화로 삶의 터전을 차츰 잃어간다. 본래 유목을 하며 순박하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조직화된 국가 권력은 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를 강력하게 표출해서 억압적 구속을 타파하려는 조직적 활동을 전개하지도 못한다. 제도권에서 이탈된 소외된 부족으로서 암담한 현실을 수용하며 오늘도 그렇게 살아간다. 그들의 작은 목소리는 반응 없는 외침으로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이고 그들의 의사 역시 제도 권력의 통제 하에 묵살된다. 타 종족과 섞이지 못한 그들은 복속된 이후에도 기존 제도권에 온전히 적응하지 못한다. 그들의 독특한 사막 문화가 기존 종족에 의해 무시당하고 소외당함으로서 그들과 섞이지 못한다는 점이 부적응의 근본 원인이다. 이런 점에서 코리는 사하라 위족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들은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존재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런 외적 단절의 상황은 내적 결속을 다지는 계기로 작용한다. 가족주의적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그들의 전통은 바로 이런 부적응의 반작용일 것이다. 코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가족은 탈출구이다. 외적 소통의 길이 막혀 있기 때문에 생활권의 범위가 가족과 부족내로 한정되는 것이다. 차츰 성장해가면서 코리에겐 가족 외에 또 다른 탈출구가 생겨난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통의 단절을 겪고 있는 외로운 영혼. 바로 낙타이다. 낙타는 사하라의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부의 척도이다. 그런 만큼 자신의 본성은 철저히 무시된 채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다. 따라서 낙타는 인간의 소유물일 뿐이며, 소유의 의미는 사방으로 막힌 울타리에 갇혀 평생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로운 영혼은 필연적으로 서로 통하는 감정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알아주는 또 다른 영혼에 의해 구원을 갈구한다. 코리에게 있어 낙타는 더 이상 소유물이 아니다. 사막의 운송수단 이상의 영혼을 교감하는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이다. 학교에서 따돌림 당한 코리는 방과 후 곧바로 낙타의 우리로 간다. 새로 돋은 보리새싹을 뜯어 손에 쥐고 진정한 친구를 찾아 매일 낙타 우리를 방문한다. 하루 종일 낙타와 함께 있으면 그의 영혼은 온통 충만한 기분을 느낀다. 낙타 또한 그와 대화를 시도한다. 애초 언어적 장애를 지닌 두 영혼이기에 몸짓, 발짓, 입의 씰룩거림 등 모든 것이 상대에 대한 대화의 시도로 여겨진다. 이제 코리와 낙타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다. 맑고 순수한 두 영혼은 고도의 정신적 교감을 경험한다. 코리는 낙타를 통해 자연의 소리를 읽어낸다. 그의 지적 영감이 낙타와의 교감을 통해 고양되어 분출한다.

낙타와의 교감, 즉 자연과의 교감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시적 영상이다. 그는 자연의 소리, 자연의 본질을 낙타와의 정신적 교감을 통해 얻어내고 이를 시적 언어로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코리의 언어적 한계가 낙타와의 만남을 통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 것이다. 그의 깊은 내면의 의식이 언어적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시적 언어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런 내적 성숙과 반대로 외적 조건은 그들에게 넘을 수 없는 한계로 닥쳐온다. 사막의 생활에서 낙타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소유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수컷 낙타는 일정 시기에 사막의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코리와 낙타의 관계를 아는 어른들이 고심하기는 하지만 현실적 조건 앞에서 그들은 무력하다. 코리에겐 낙타가 삶의 전부이고 영혼의 동반자이지만 어른들에겐 이것이 한갓 정신적 사치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낙타가 죽어야할 날이 점점 다가오면서 암울해진 코리는 최후의 결단을 내린다. 낙타를 몰래 탈출시켜 저 멀리 사막을 가로질러 떠난다. 하지만 사막을 떠난 낙타가 갈 수 있는 이상향이 있을까? 사막의 아들 코리가 사막을 떠나 어디에서 평온한 안식을 취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갖은 고생 끝에 그들이 당도한 곳은 사막 한가운데 나무그늘이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쓰러진 그들을 코리의 삼촌이 발견하여 다시 돌아온다. 아무리 벗어나려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의 운명. 그것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들이 짊어져야 할 인생의 무거운 짐인 것이다. 코리와 낙타는 서로를 서로의 깊은 심층 속에 시적 이미지로 묻어둔 채 작별을 고한다.

“내 생명이 꺼진다고/ 눈물짓지 마./ 우리가 함께 산 날을 생각해.

난 죽음을 받아들였어./ 난 너의 기억을 안고 하늘의 초원으로 가는 거야.

네가 사는 동안/ 난 항상 / 너와 함께 있을게.”

이처럼 이 책은 외로운 영혼이 나누는 정서적 교감이 아름다운 시적 영상으로 잘 표현된 작품이다. 코리와 낙타가 나누는 깊은 내면의 대화가 참으로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이런 깊은 울림이 어린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촉진제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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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별 여행자
무사 앗사리드 지음, 신선영 옮김 / 문학의숲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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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광활한 사하라 사막의 모래바다를 떠도는 수많은 영혼의 목소리를 담아 나의 온 마음에 슬며시 침잠해 들더니 완전히 내 영혼을 잠식해 버린다. 내 삶을 관통하는 심적 메시지가 지금껏 잠들어 있다 사막별 여행자의 호통으로 깨어나 바짝 긴장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막별 여행자는 말한다. “미래에 대한 관심이 현재를 망친다.” 우리는 늘 미래를 걱정하며 산다.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하여 미래의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행복을 쪼개어 쌓아둔다. 불확실성의 덩어리가 부풀려질수록 마음속의 불안도 커지면서 결국 현재는 점점 더 미래를 위해 조각나고 종국에는 그 전체가 미래를 위한 담보가 되어버린다. 문제는 우리의 문명이 이미 그런 지경으로 현대인들을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멀쩡하게 잘 나가던 회사가 내일 사라질 수도 있으며, 올해 잘 진행되던 사업이 내년엔 주저앉을 수도 있는 세상이다. 주식시장의 들쑥날쑥한 주가 그래프보다 더 예측 불가능한 사회에 지금 내가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급박하고 신속하게 변화하는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미 반성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자리를 살펴볼 여유가 없다. 가능한 한 잘나가는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현재적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겨 버린 인생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현재를 담보한 미래가 이내 현재가 되어버림을 자각한다면 또 더 먼 앞날을 위해 그 미래였던 현재를 소모할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추구했던 미래의 행복은 어느 시점에서나 가능할까?

해답을 암시하기 위해 사막별 여행자는 우리를 사막으로 인도한다. 우리의 문명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없기에 문명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의 순수함을 보존하고 있는 그곳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곳에선 영혼의 깊이를 추구한다. 물질문명으로 천박해진 우리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자연의 치료제가 있다. 그곳엔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 있고, 정감어린 가족의 교감이 있고, 함께 하는 이웃의 나눔이 있다. 무엇보다 사막의 대지가 그를 품는다. 그에게 있어 여행은 영혼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일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기위해 떠나는 휴양이 여행이 아니라 낯선 장소에서 익숙한 생활에 젖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잃어버린 본질을 찾는 것. 그렇다면 여행은 내 발길을 어디로 향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 영혼을 어느 곳으로 인도할 것이냐,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과 교감을 나눌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사막별 여행자는 독자를 바로 그 영혼의 발길이 머물러야 하는 곳으로 이끌고 가기에 이 책은 인생의 나침반이라 할만하다.

우리의 여행 안내자는 말한다. “사막엔 미래가 없다.” 오직 현재가 있을 뿐이다. 내가 딛고 선 자리, 드넓은 사막은 무(無)요, 침묵이다.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으로 묵묵히 있을 뿐인데 그곳엔 영혼의 깊이가 있다. 그래서 그곳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모든 게 있다. 인간의 욕망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 자아가 추구하는 심오한 영혼이 있다. 그곳은 비어있는 게 아니요, 죽은 게 아니요, 삶의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은 현재의 찰나적 쾌락에 빠져 지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선 자리에서 삶의 궁극적 목적인 영혼의 깊이를 추구할 뿐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도대체 이러한 삶의 여유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하루하루 먹을 음식을 걱정해야 할 그들이 물질적 풍요를 주체하지 못해 비대해진 문명세계의 인간들보다 어떻게 더 여유롭게 삶을 즐길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삶의 태도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다. 우리에게 있어 성공의 척도는 물질적 조건이지만, 그들에게 있어 성공은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물질적 욕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분모가 더 커진다. 아무리 분자를 늘려도 그보다 더 부풀려진 분모가 있는 한 인간은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남과 나눌 수 없다. 나누는 순간 자신의 소유물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지혜는 그와 정반대이다. 비울수록 커지고 나눌수록 더 풍성해진다.

사막의 여유는 바로 그 나눔을 실천하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 깊이 있는 영혼의 교감, 그리고 지혜의 나눔은 내 삶뿐만 아니라 내 이웃의 삶도 살찌운다. 사막의 삶은 서로 나누기 위해 삶의 공간이 열려있다. 자꾸 나의 공간에 울타리를 치고 타인과 단절되어가는 현대인들은 바로 그 행복의 필수조건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공간의 닫힘은 마음의 닫힘이다. 폐쇄된 마음에서는 어떤 여유도 찾을 수 없다. 사막별 여행자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행복을 찾기 위해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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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척 손 아저씨 이야기 - 개성톡톡 다섯 가지 감각 이야기 1
파티마 델라 하라 지음, 전기순 옮김 / 풀빛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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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이젠 4학년이 된 아들의 유아시절을 생각해본다. 4세 때부터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던 아들은 뭔가 색다른 느낌이 있어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 종류를 제일 좋아했었다. 텔레비전을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 배치된 거실 책장엔 유아용 책으로 전부 채워두었는데 우리 부부가 잠시 텔레비전을 주시하고 자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면 아들은 늘 책을 한 아름씩 골라내어 읽어달라고 성화였다. 이때부터 나는 아이에게 책 읽는 습관을 심어주는 좋은 방법은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기발한 발상이 숨어있는 책을 골라주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지금도 나의 이 결론은 유효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후 책을 고르는 과정에서 난 항상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가 이 책을 얼마나 좋아할까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부모의 지적 욕심으로 다양한 책을 구매해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거의 책꽂이를 채워주는 장식품에 불과하게 된다. 다소 편식이 되더라도 이는 차라리 아이들 스스로의 선택을 존중해주느니만 못할 것이다. 그래선지 4학년이 된 지금도 우리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스스로 찾아 읽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해서 읽는다. 내 판단으로는 아마 이 책도 유아에서 미취학 연령대 어린이들의 오감을 자극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아이들의 오감을 자극할 만한 요소를 여러 측면에서 품고 있다.

우선 이 책의 주인공들이 독특하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 중심 주제 자체가 다섯 가지 감각 이야기이다. 오감의 능력을 지닌 인체의 주요 다섯 부분인 눈, 코, 입, 귀, 손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 신체 기관의 특징이 캐릭터의 이름으로 매겨져 있다. 척척 손 아저씨, 살살 혀 아저씨, 뭉툭 코 아저씨, 초롱 눈 아가씨, 밝은 귀 아저씨처럼 각 신체 기관의 독특한 특징이 이름 자체에서 물씬 풍겨 나온다. 캐릭터의 그림도 마찬가지로 신체 기관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초롱초롱 빛나는 옅은 하늘 색 눈망울이 예쁜 초롱 눈 아가씨, 뭉툭한 코에 호기심 가득한 귀여운 눈이 돋보이는 뭉툭 코 아저씨, 수줍은 듯 지긋이 다문 입술 사이로 슬며시 밖을 엿보는 살살 혀 아저씨, 모험심이 넘쳐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척척 손 아저씨, 늘 조심스러워 우물쭈물 밖으로 나오길 꺼려하는 귀 아저씨 등 각 신체 기관이 지닌 특별한 능력이나 특징을 그대로 캐릭터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둘째로는 각 캐릭터가 지닌 신체적 특징에 맞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꾸며져 있다는 점이다. 1편은 모험을 좋아하는 척척 손 아저씨의 모험담, 2편은 음식의 맛을 느끼는 살살 혀 아저씨의 요리에 관한 에피소드, 3편은 감기 걸린 뭉툭 코 아저씨의 냄새에 대한 무감각함, 4편은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초롱 눈 아가씨의 판단력, 5편은 자신과 다른 성격의 동생을 그리워하는 밝은 귀 아저씨의 주변 소리 청취를 주제로 이야기를 구성해 놓았다.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쫓아가는 순간 우리 각 신체 부위가 지닌 특별한 능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는 이 각 신체 기관들이 서로 이웃하며 훈훈한 정을 나누고 있다는 점이다. 위험에 처한 척척 손 아저씨의 외침을 밝은 귀 아저씨가 귀 기울여 듣고 그를 구하기 위해 찾아 나선다거나, 작은 벌레들로 망쳐진 살살 혀 아저씨의 요리를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밝은 귀 아저씨) 구석구석 눈으로 살펴보고(초롱 눈 아가씨) 빗자루로 모두 쓸어 내버리기도 한다.(척척 손 아저씨) 또한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뭉툭 코 아저씨를 위해 초롱 눈 아가씨는 아름다운 초록의 봄을 선사하고, 밝은 귀 아저씨는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들려준다. 살살 혀 요리사는 오렌지 즙을 짜서 비타민이 풍부한 영양을 공급해주고 척척 손 아저씨는 코를 만져서 감기로 붉어진 코를 원래 색으로 되돌린다.

이처럼 아이들은 각 캐릭터들의 행동을 통해 오감의 의미를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각 신체 부위들이 독립되어 있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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