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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별 여행자
무사 앗사리드 지음, 신선영 옮김 / 문학의숲 / 2007년 8월
평점 :
끊임없이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광활한 사하라 사막의 모래바다를 떠도는 수많은 영혼의 목소리를 담아 나의 온 마음에 슬며시 침잠해 들더니 완전히 내 영혼을 잠식해 버린다. 내 삶을 관통하는 심적 메시지가 지금껏 잠들어 있다 사막별 여행자의 호통으로 깨어나 바짝 긴장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막별 여행자는 말한다. “미래에 대한 관심이 현재를 망친다.” 우리는 늘 미래를 걱정하며 산다.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하여 미래의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행복을 쪼개어 쌓아둔다. 불확실성의 덩어리가 부풀려질수록 마음속의 불안도 커지면서 결국 현재는 점점 더 미래를 위해 조각나고 종국에는 그 전체가 미래를 위한 담보가 되어버린다. 문제는 우리의 문명이 이미 그런 지경으로 현대인들을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멀쩡하게 잘 나가던 회사가 내일 사라질 수도 있으며, 올해 잘 진행되던 사업이 내년엔 주저앉을 수도 있는 세상이다. 주식시장의 들쑥날쑥한 주가 그래프보다 더 예측 불가능한 사회에 지금 내가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급박하고 신속하게 변화하는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미 반성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자리를 살펴볼 여유가 없다. 가능한 한 잘나가는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현재적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빼앗겨 버린 인생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현재를 담보한 미래가 이내 현재가 되어버림을 자각한다면 또 더 먼 앞날을 위해 그 미래였던 현재를 소모할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추구했던 미래의 행복은 어느 시점에서나 가능할까?
해답을 암시하기 위해 사막별 여행자는 우리를 사막으로 인도한다. 우리의 문명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없기에 문명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의 순수함을 보존하고 있는 그곳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곳에선 영혼의 깊이를 추구한다. 물질문명으로 천박해진 우리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자연의 치료제가 있다. 그곳엔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 있고, 정감어린 가족의 교감이 있고, 함께 하는 이웃의 나눔이 있다. 무엇보다 사막의 대지가 그를 품는다. 그에게 있어 여행은 영혼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일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기위해 떠나는 휴양이 여행이 아니라 낯선 장소에서 익숙한 생활에 젖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잃어버린 본질을 찾는 것. 그렇다면 여행은 내 발길을 어디로 향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 영혼을 어느 곳으로 인도할 것이냐,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과 교감을 나눌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사막별 여행자는 독자를 바로 그 영혼의 발길이 머물러야 하는 곳으로 이끌고 가기에 이 책은 인생의 나침반이라 할만하다.
우리의 여행 안내자는 말한다. “사막엔 미래가 없다.” 오직 현재가 있을 뿐이다. 내가 딛고 선 자리, 드넓은 사막은 무(無)요, 침묵이다.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으로 묵묵히 있을 뿐인데 그곳엔 영혼의 깊이가 있다. 그래서 그곳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모든 게 있다. 인간의 욕망이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 자아가 추구하는 심오한 영혼이 있다. 그곳은 비어있는 게 아니요, 죽은 게 아니요, 삶의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은 현재의 찰나적 쾌락에 빠져 지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선 자리에서 삶의 궁극적 목적인 영혼의 깊이를 추구할 뿐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도대체 이러한 삶의 여유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하루하루 먹을 음식을 걱정해야 할 그들이 물질적 풍요를 주체하지 못해 비대해진 문명세계의 인간들보다 어떻게 더 여유롭게 삶을 즐길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삶의 태도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다. 우리에게 있어 성공의 척도는 물질적 조건이지만, 그들에게 있어 성공은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물질적 욕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분모가 더 커진다. 아무리 분자를 늘려도 그보다 더 부풀려진 분모가 있는 한 인간은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는 남과 나눌 수 없다. 나누는 순간 자신의 소유물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지혜는 그와 정반대이다. 비울수록 커지고 나눌수록 더 풍성해진다.
사막의 여유는 바로 그 나눔을 실천하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 깊이 있는 영혼의 교감, 그리고 지혜의 나눔은 내 삶뿐만 아니라 내 이웃의 삶도 살찌운다. 사막의 삶은 서로 나누기 위해 삶의 공간이 열려있다. 자꾸 나의 공간에 울타리를 치고 타인과 단절되어가는 현대인들은 바로 그 행복의 필수조건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공간의 닫힘은 마음의 닫힘이다. 폐쇄된 마음에서는 어떤 여유도 찾을 수 없다. 사막별 여행자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행복을 찾기 위해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