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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희망 ㅣ 유재현 온더로드 6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빠름과 느림의 차이가 뭘까? 일상적인 사고로는 빠름이 좋은 것이고, 느림은 늘 비난 받아야 하는 것으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승패의 갈림을 추구하는 스포츠라면 남보다 앞서 빨리 달려야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고 결국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겠지만 인생살이에서 빠름이란 결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지로 우리를 안내하지는 않는다. 그 빠름이 발전과 개발의 의미로 받아들여 진다면 더욱 그렇다. 오히려 느림이 삶을 깊이 있게 음미하게 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타를 잃지 않게 하고 인간적인 가치를 보존하여 살맛나는 세상을 유지해 갈수있게 하는 면도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바라는 세상이 바로 느리지만 본성을 잃지 않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쿠바에서 그 가느다란 희망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위기에 봉착한 쿠바의 농업이 '인민을 땅과 함께' 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후 각종 유기 농법을 적용하여 땅에 새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는 평가에서 단적으로 저자의 생각은 드러난다. 그 쿠바의 농업으로 잃은 것은 개발과 계획, 환경의 파괴, 땅의 물신화 이지만 그들은 생산의 어머니인 땅과 녹색의 초원을 얻었다. 인류 문명은 개발과 계획만이 잘사는 것의 전부인양 경제적인 잣대로 세상을 평가해 왔다. 자본주의의 물신화는 극에 달해서 더 이상 인격은 인간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지 못한다. 거기엔 경제적 잣대만이 남아 있다. 결국 그 종착점이 어디일 것인가? 아마도 노동의 가치에 눈을 감고 달러 몇푼에 자신의 영혼을 팔고 있는 쿠바의 국영 식당의 종업원과 같은 의식을 지닌 세상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저자의 생각이 투영 되어서 인지 이 책의 호흡은 상당히 느리다. 지금껏 살벌한 경쟁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온 불쌍한 중생들에게 쉼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주기 라도 할것처럼 이 책은 여백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고 있고 먼발치로 내다 볼만한 화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넘쳐 흐르고 자연의 경치에는 가슴이 트이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커피향이 은은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따라서 문장도 괜히 장문을 사용하여 마음을 심란하게 하지 않는다. 짤막한 문장으로 긴 여운의 맛을 주고자 한다. 또한 한컷 한컷의 사진들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호흡을 잠시 멈출수 밖에 없도록 독자를 유도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를 제대로 맛 볼수 있게 한다. 굳이 쿠바에 가지 않더라도 그와 동반자가 되어 멋진 여행을 했다는 정신적 충만감을 느끼게 한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나는 혁명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쿠바 혁명이 이념적 대결이 세계적 추세였던 지난 시대에 일어 났다고 해서 단순히 공산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혁명의 목표는 외적으로는 외세의 침략과 간섭을 뿌리치고 자주적 국가 건설을 이루는 것이고, 내적으로는 인류가 지향하는 살기 좋은 세상을 이룩하는 것이다. 1959년 쿠바 혁명은 단지 외적 혁명에 불과하다.
진정한 혁명은 그 이후 그들이 걸어온 길에서 실현 되어야 할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진정한 혁명을 이룩했는가? 아직 진행 중이라고 말해야 할것 같다. 살기 좋은 세상이란 단지 풍요로운 의식주가 배급되고 개발을 통한 부의 축적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환경을 담보로 이룩된 경제 개발이라면 결코 우리가 원하는 유토피아는 실현 될수없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벌한 경쟁이 인간관계를 규정한다면 아무리 경제적 지수가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결코 살기 좋은 세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쿠바의 진정한 혁명은 현재 시험대에 올라있다. 자본주의적 경쟁 논리가 침투하지 아니한 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들 나름대로 생태적 환경에 대한 의식 전환을 확산 시키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꾀하고 있는 쿠바는 진정한 의미의 유토피아적 실험 대상 일수있는 것이다. 쿠바는 더디지만 느린 발걸음으로 우리 인류가 지구와 환경에 진 빚을 갚아 나가고 있다. 저자는 그 느린 발걸음에서 먼 장래의 승리의 실마리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룩해야 할 진정한 혁명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