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세트 - 전13권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요코야마 미쓰테루 그림, 이길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가끔 깊은 상념에 빠지곤 한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의 인생이 과연 얼마나 보람 있는 인생인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일상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서도 늘 부족함을 불평하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한 삶이 내가 진정 추구했던 이상이었던가? 아니 원대한 포부와 희망은 아니더라도 내 스스로에게 납득할만한 진진한 삶의 목표가 과연 있었던가? 이런 상념에 빠지다 보면 한없이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내 앞에 스스로 부끄러워 거울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그래서 대리만족일 망정 위대한 영웅들의 일대기를 자주 찾는다. 그들의 삶속에는 용광로처럼 들끓는 불꽃이 있고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에너지가 전이되어 내가 바로 그 영웅의 위치에 서있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 책이 바로 나에겐 며칠간의 삶의 활력소였다. 책을 읽는 동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나에게 삶의 호흡을 불어 넣어주었다. 그가 그의 자녀들을 호되게 꾸짖을 때는 그것이 나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느낌이었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쩌면 그렇게 안이하고 나태하게 살아가느냐고 다그치는 아버지 같은 느낌. 이런 호된 질책이 전혀 반감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은 그의 삶이 그만큼 치열하고 진지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결코 회피하거나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인생의 멀고 험난한 길을 정면으로 돌파해 나갔던 진정한 영웅이었다.

독자는 이 책 속에서 여러 명의 시대가 낳은 영웅들을 만나게 된다. 다케다 신공, 오다 노부나가, 다이코(토요토미 히데요시)등이 그들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오고쇼(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들을 회고한다. 다케다 신공은 자기에게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오다 노부나가는 사람을 믿게 만들어 주었으며, 다이코는 시대의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진정한 영웅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그는 그 이전의 영웅들이 걸어간 발자취를 세밀히 검토하고 그들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나름대로 그들이 지닌 장점을 취하여 자기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 반면 그들의 실패를 거울삼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점은 그가 변함없는 삶의 이상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이상은 바로 평화였다. 지긋지긋하게 계속된 가문간의 전쟁과 인질교환, 전쟁에 동원되어 헛되이 사라지는 소중한 생명들, 그리고 그로 인해 황폐화된 민초들의 고통을 종식시키고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생전에 그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는 끝까지 인내했고 자신의 안위와 가문의 영화에만 얽매이지 않았다. 이것이 그 이전의 영웅들과 그를 구분짓게 한다. 일본 통일을 추진했던 걸출한 영웅들은 결국 오만에 빠져 무리수를 두거나 애초의 이상을 잃고 가문을 유지하는데 급급하다 최후엔 살육전쟁으로 인해 멸문을 당한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최대한 신중을 기해 행동했고 힘이 미약한 다른 가문을 무시하거나 그들을 궁지로 몰아 살육하지 않았다. 이런 그의 인간적인 포용력이 전쟁이 아닌 인간적 존경으로 적을 굴복하게 하는 큰 효과를 거둔다.

그래서 그는 결코 죽지 않았다. 일본 평화라는 큰 나무에 튼튼한 밑둥이 되어 살아 있는 것이다. 생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그는 말한다. 다케다 신겐도 오다 노부나가도 다이코도 결코 죽지 않았다고. 지금 그들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큰 나무의 가지로서 활약했고, 큰 나무가 다시 꽃을 피우는데 비료가 되었노라고. 지금의 평화는 바로 그들의 비료를 양분으로 해서 이룩되었노라고. 이제 그 평화의 꽃이 다시 시들지 않게 하는 것은 후세들의 몫일 것이다. 우리 후세들이 그 큰 나무의 정신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그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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