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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찬 여행기
류어 지음, 김시준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1월
평점 :
‘라오찬 여행기’는 라오찬이라는 의사가 각지를 떠돌면서 보고 들은 사건들을 기록한 청나라의 정치와 사회상을 비판한 소설이다. 저자는 제국주의의 침탈과 관료의 부패로 쓰러져가는 청나라의 실상을 생생하게 그리고 은유적으로 표현해냈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타고난 문학적 표현력과 진지한 문제의식이 돋보인다. 이 소설은 견책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견책소설이란 중국 청나라 말기에 사회개혁을 목적으로 쓰여진 소설로 봉건지배계층의 부패상을 폭로하고 질책하는 등의 사회비판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주인공인 라오찬,,, 이 라오찬이라는 말은 늙고 힘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게 보면 ‘라오찬 여행기’라는 책은 늙고 힘없는 관찰자가 각처를 떠돌아다니며 견문한 사실을 적은 여행의 기록이다. 힘없는 자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고민을 해결해주는 전개,,, 어찌보면 불가능해보이기도 하지만, 그 흉흉한 시대 속에서 민중 가운데 영웅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오찬 여행기’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 뒤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읽을 때에는 그저 하나의 전개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부분들이, 다 의도적으로 비유가 된 것들이었다. 먼저, 소설의 첫 머리에서 라오찬이 만난 부호 황뤠이허는 바로 황하를 비유해 의인화한 인물로 그의 지병은 바로 중국 최대 관심사인 황하의 수재를 상징한다. 이어 친구 두 사람과 일출을 구경하러 바다에 나가는 장면에서 묘사한 경치는 바로 러시아와 일본의 대치를 상징하고 있으며, 성난 파도에 표류하는 큰 배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감도는 전운과 서구 열강의 침략 앞에서 몸부림치는 중국을 상징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파렴치한 관리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청렴한 관리이기는 하나, 그가 자신의 청렴성을 내세워 얼마나 가혹하게 백성들을 괴롭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이 난 사자성어가 있다. 苛斂誅求(가렴주구)가 바로 그것이다. 이 사자성어는 가혹하게 세금을 징수하며,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음 이라는 뜻이다. 예기(禮記)에서 공자는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무섭다’고 했다. 춘추 시대 말엽, 공자의 고국인 노나라에서는 조정의 실세인 대부 계손자의 가렴주구로 백성들이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어제의 나는 이와 같았고, 오늘의 나 또한 이와 같다. 나의 방을 보면 침상이 하나, 탁자가 하나, 자리가 하나, 등이 한 개, 벼루가 한 개, 붓이 한 자루, 종이가 한 장 있다. 어제의 침상, 탁자, 등, 벼루, 붓, 종이도 이와 같았다. 오늘의 침상, 탁자, 자리, 등, 벼루, 붓, 종이도 여전히 이와 같다. 본래부터 명확히 내가 있고 또 이러한 침상이 하나, 탁자가 하나, 자리가 하나, 등이 한 개, 벼루가 한 개, 붓이 한 자루, 종이가 한 장 있는 것이다. 마치 꿈에 새가 되어 하늘보다 높이 날다가 깨어나면, 새도 하늘도 모두 없는 것과는 다르다. 마치 꿈에 고기가 되어 연못 속으로 들어갔다가 깨어나면 고기도 연못도 모두 없는 것과도 다르다. 더욱이 높다든가 들어간다는 말은 무엇인가? 내가 나를 보면 실지로 그러한 물건이 있으나 꿈이 꿈같지 않더라도 실지로 그러한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런즉 인생은 꿈과 같은 것, 본시 몽수의 우언만이랴!"-339쪽
춘추전국시대 말기,,, 청나라 말기,,, 대개 그 나라의 정세가 꺾이는 때에는 이렇게 관리들의 포악한 횡포가 일삼아 진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어제, 전 세계에서 약 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세계 경제가 나빠지고, 실업자는 늘어나고, 물가는 올라가고, 더불어 민심도 흉흉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애당초 그가 내세웠던 경제성장은 커녕 경제하락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년에 세금은 더 많이 걷혀졌다고 한다. 어찌된 일일까? 정부와 손잡고 있는 배후세력들의 법, 정치에 의해 우리 시민들은 허리가 휘어지고 있다. 머지않아 춘추전국시대, 청나라의 몰락처럼 우리나라의 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을 감싸주고 올바른 정치를 해나가는 정치세력들이 나와주기를 바란다. ‘라오찬 여행기’는 그 시대 상황을 잘 반영, 비판하고 있으며 단지 청나라만이 아닌 다른 나라들에게도 한 나라의 영속성에 대한 일종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