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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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한민국, 중도시, 저녁시간, 단란한 네 식구, 선선한 저녁 바람이 내 귓가를 울리는, 지금 내가 앉아있는 컴퓨터 앞. 스무살의 나는 이렇게 한가로이, 행복하게 살아가고있다. 1963년생인 신경숙님은 나의 엄마와 동갑인, 지금은 4학년 7반의 중년의 여인이다. 그녀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고 잊고싶은, 그러나 잊을 수 없고 지금의 그녀를 있게한 그 시기를 그녀는 이 책 <외딴방>에서 그려내고있다.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 장 그르나에 (본문 13쪽)

 

열여섯에서 열아홉까지의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성적, 그리고 입시였다. 성적은 아마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의 모두의 걱정거리일 것이다. 내 꿈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막연함과, 앉아서 공부만 강요하는 현실이 답답하고 자꾸만 벗어나고 싶은 마음... 헌데, 신경숙님은 그 나이 또래에 나와는 조금 다른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산업체특별학급이 개설되어있는 영등포여자고등학교에 다니는 그녀! 자신의 고향인 시골에서는 나름 부유하게 살아가면서 남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그녀는 서울로 올라와 큰오빠와 외사촌과함께 외딴방에서 생활하게된다. 외딴방이라는 작고 비좁은 공간에서 그녀는 작가라는 꿈을 키워오면서, 그 당시 같이 일하고 공부했던 노동자들의 힘든 상황을 이 소설에서 열여섯살 소녀의 눈에 비친 모습들로 이야기한다.

 

글쓰기란, 그런 것인가. 글을 쓰고 있는 이상 어느 시간도 지난 시간이 아닌 것인가. 떠나온 길이 폭포라도 다시 지느러미를 찢기며 그 폭포를 거슬러 돌아오는 연어처럼, 아픈 시간 속을 현재형으로 역류해 흘러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 쓰는 자에겐 맡겨진 것인가. 연어는 돌아간다. 뱃구레에 찔린 상처를 간직하고서도 어떻게든 다시 목숨을 걸고 폭포를 거슬러 처름으로 돌아간다. 그래 돌아간다. 지나온길을 따라, 제 발짝을 더듬으며. 오로지 그 길로. (본문 37쪽)

 

작가는 특이한 방식으로 사건을 진술하고 있다. 현재와 과거가 뒤죽박죽 섞여서 진행되는 것은 물론, 이야기가 즉흥적으로 쓰여졌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또한 그녀는 현재는 과거형으로, 과거는 현재형의 시제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가 같지만 같지않은 아이러니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과거의 '나'가  더 친숙할 정도로... 나는 신경숙님을 <엄마를 부탁해>에서 처음 접했다. 2008년에 쓰여진 이 소설과, 1995년에 처음 쓰여진 <외딴방>... 신경숙 그녀가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에서 끄집어내는 것과 같이, 나는 그녀의 현재의 삶에서 과거의 삶을 접하게 된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에서 여섯 남매가 잃어버린, 아니 잊어버린 '엄마'의 모습을 나는 <외딴방>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소 눈을 닮았다는 그녀의 모습이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다. 이따금씩 작가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던 희재언니처럼.

 

나는 끊임없이 어떤 순간들을 언어로 채집해서 한 장의 사진처럼 가둬놓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문학으로선 도저히 가까이 가볼 수 없는 삶이 언어 바깥에서 흐르고 있음을 절망스럽게 느끼곤 한다. 글을 쓸수록 문학이 옳은 것과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고통을 느낀다. (본문 67쪽)

 

독재정권, 총살, 새로운 정부, 독재자, 대통령, 5.18, 공장, 노조, 야간학교, 강제 연행 등. 신경숙님이 보낸 열여섯에서 열아홉까지의 청소년기는 시대적으로 암울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이 있었기에, '작가'라는 자신의 꿈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벗어나 날개를 펴고 지금까지 날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날아갈 것이다. 

 

내가 문학을 하려고 했던 건 문학이 뭔가를 변화시켜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었어. 그냥 좋았어. 문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에선 불가능한 것, 금지된 것들을 꿈꿀 수가 있었지. 대체 그 꿈은 어디에서 흘러온 것일까. 나는 내가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해. 문학으로 인해 내가 꿈을 꿀 수 잇다면 사회도 꿈을 꿀 수 있는 거 아니야? (본문 206쪽)

 

나는 이 책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회고하고 반성하는 작가라는 이름의 신경숙님을 만날 수 있었다. 작가 중에서도 소설가인 그녀. 나는 중고등학교 때 국어시간에 소설의 대표적인 특징은 허구성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 <외딴방>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한편의 수필과 같은 느낌을 준다. 소설과 수필의 애매모호한 경계선을 타고 흐르는 이야기들... 1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의 아픈 기억을 더듬으면서 완성한 그녀의 기억의 한 조각인 이 소설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외딴방>을 쓰면서 자신의 아픈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가는, 희재언니의 울타리 속에서 벗어나는 신경숙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래도 문학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끊임없는 생각과 수정 끝에 만들어지는 하나의 문학작품은,,, 그녀의 말처럼 작가가 문학으로 인해 꿈을 꿀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도 꿈을 꿀 수 있을것이다.

 

내 영혼이 일러주었네.

나는 난쟁이보다 더 크지 않고, 거인보다 더

작지 않음을, 나는 모든 사람이 만들어지던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음을.

                                      - 칼릴 지브란 (본문 109쪽)

 

'너와 나는 틀리다'라는 생각을 버리고, '너와 나는 다르다'는 생각으로...

'외딴방'이면 어떻고, '호화 저택'이면 어떠리...

우리는 모두 다 같이 평등한 사람들이다.

이 점을 다시한번 깨우치게 해준, <외딴방> 그리고 신경숙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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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Y 2009-08-09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해피스마일 2009-08-10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네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