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지식은 즐거움뿐만 아니라 귀찮음과 고통도 준다.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과 그에 기초하여 만든 일관된 서사와 설명틀을 폐기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바탕으로 새롭게 틀을 짜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 알게 된 사실의 증거력이 더 크고 사태를 더 정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체계를 제공한다면 공부하는 사람은 반드시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설명을 취해야 한다. 물론 이 새 것도 부분적으로, 일시적으로만 참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은 늘 (그것이 더 정합적이라는 전제하에) 더 나은 설명틀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개방적이어야 할 것이다.

서양 사상사에 관심을 가지는 여러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바로 그러한 신선함과 반성의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강의를 듣는 학생을 위한 교재이지만, "해당 강좌를 수강하지 않는 학생.독자"도 염두에 두었다. 그러므로 굳이 특정 대학의 교재라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서양 지성사를 공부하고 싶은 일반 교양 독자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입문서이다. 이 분야에 익숙하지 않거나 기초적인 지식만 가진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기존의 통념을 깨부술 수 있을 것이며, 깊이 있게 잘 정리된 통사 책이라는 점에서는 지성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머리말에서 밝히듯이 "이 책은 서구의 지성사(intellectual history) 전통을 특히 정치사상의 역사를 중심으로 조망하는 시선을 제공"하기 위해 쓰였다. 이 책 전반에서 '지성사'라고 할 때는 대체로 '언어맥락주의'(linguistic contextualism)라는 20세기 후반 영미권 학계에서 발전한 특수한 역사학 방법론을 일컫는다. 따라서 이 책은 언어맥락주의 방법론을 따라 서술한 정치사상사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언어맥락주의란 무엇인가? 이는 20세기 중반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 존 포콕(John G. A. Pocock), 존 던(John Dunn) 등 이른바 '케임브리지 학파'로 분류되는 일군의 학자들이 발전시킨 역사학의 한 분과로, 이 분야에 속한 지성사가들은 과거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과거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무슨 문제를 고민했는지, 그때 그곳에서 통용되는 지식과 문화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질문하면서 "철저한 문헌 연구를 바탕으로 과거의 사상적/언어적 맥락을 재구성"한다. (지성사 방법론에 대해서는 리처드 왓모어, 이우창 옮김, <지성사란 무엇인가>, 오월의봄 3장과 역자 해제 참조) 지성사는 특정 사상가가 어떠한 지적 맥락 속에서 어떠한 역사적 사건을 마주쳤으며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언어로 표현했는지를 질문한다. 이러한 '사상사적 방법론'은 사상이 현실에서 가진 함의를 더 잘 드러낸다.










본서는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 고대 플라톤에서 현대의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서구 지성사의 전개를 조망하는 데 매우 유용한 입문서다. 이 책의 특징은 목차 구성만 보아도 분명히 드러난다. 다른 정치사상사 저술의 목차와 비교해보자. 거의 60여년 전에 나온 쉘던 월린의 『정치와 비전』이나 비교적 최근에 저술된 오트프리트 회페의 『정치철학사』는 정치사상의 역사를 플라톤에서 존 롤스에 이르는 주요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개별 인물에 대한 심층적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반면, 텍스트에만 주목하여 그들이 살았던 역사적 배경이나 지적 맥락, 중요한 사건 등에는 무관심하여 역사적 맥락을 탈각시킬 위험이 있다(그렇기에 신뢰할 수 없는 내용 또한 들어가 있는 편이다). 또 다른 정치사상사 입문서인 우노 시게키의 『서양 정치사상사 산책』 역시 고대와 중세, 그리고 초기 근대 이후를 세기별로 구분하는 방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인물 중심의 정치사상사 서술에 머물러 있다.








반면 본서 <서구지성사 입문>은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사상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특정 인물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로크나 홉스, 애덤 스미스, 몽테스키외, 마르크스 같은 정치사상사의 정전에 포함된 인물들의 '텍스트(text)'보다는 그들이 속했던 '맥락'(context)을 보게 된다. 여러 공저자가 참여했기 때문에 하나의 통사로서의 서사는 약하지만, 장 구성을 통해서 어떠한 시대 흐름을 의도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먼저 플라톤을 시작으로 고대 그리스와 중세의 정치사상을 1~2장에서 살펴본 다음 본격적으로 근대 초기(early modern)로 들어온다. 4~8장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 지성사를 짚은 뒤, 종교개혁과 그로 인한 총체적 혼란을 당대 지식인들이 어떻게 극복하려 했는지를 살핀다. 18세기까지의 사상은 종교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고민위에서 형성되었던 것이다. 9장은 프랑스 혁명 시기에 일어난 지적 변화를 민주정 논의에 비추어 이해한다. 이로써 서양지성사에서 프랑스혁명이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장과 11장은 프랑스 혁명 이후의 흐름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두 축으로 삼아 조망한다. 12장부터는 20세기의 역사로 들어와 양차 세계대전과 이후 냉전 시대 속에서 지성사를 간략하지만 깊이 있게 조망한다. 고대에서 르네상스까지 지성사가 이후 시대 지성사와 비교하면 분량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서구 지성사를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해한다는 목표는 달성했다. 또 다른 교과서인 <서양사 강좌>(아카넷)와 함께 읽는다면 그러한 사상이 펼쳐지던 시대에 어떠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는지도 함께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내 생각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대목은 셀 수 없이 많다. 윤비가 쓴 2장 "중세 정치사상의 흐름"과 제3장 "르네상스와 정치이론의 변동"은 발터 울만(Walter Ullmann)이나 퀜틴 스키너의 저술 외에는 이 분야에 대해 거의 모르는 나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특히 3장을 읽고 인문주의자의 정치사상에 대한 내 기존의 상(像)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은연중에 (북부 르네상스는 제외하고) 피렌체 공화정의 공화주의 사상을 14~15세기 초 인문주의 정치사상 전체의 경향을 대변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인문주의는 자연철학과 의학에 치중된 학문경향에 대한 비판과 고대에 대한 동경을 제외하면 어떠한 통일된 적극적인 지향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정치사상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문주의자 자체가 공화주의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직업적 수사학자로서 인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고용주가 교황인지, 도시의 공화정부인지, 혹은 전제군주인지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이 특정 체제를 공격하거나 옹호할 때는 "이데올로기적 신념보다는 대개 분쟁의 상대방이 이쪽과 다른 정치체제를 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대 지식인들이 택한 입장을 정형화된 개념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시대적 관행과 맥락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함의를 개인적으로 얻어간다.

근대 초기 지성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4장과 6장이 특히 유용했다. 4장 "16세기 종교개혁과 그 이후"는 지성사의 측면에서 종교개혁 시기의 역사서술도 주목해야 함을 잘 보여준다. "종교개혁은 그 자체로 기억의 재구성이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저마다 자신의 교리와 신학이 정통임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하는 한편으로, 상대방의 논거와 자료를 이데올로기적일 뿐 아니라 학문적으로 상당히 정교하게 비판하면서 역사학적 기법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역사적 기반을 무너뜨리고자 자국의 역사와 종교적 상황에 집중하는 서술방식도 채택했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섭리라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관점을 고수하면서도 새로운 학문 경향이 출현하는 배경이 되었다.

종교개혁은 신앙과 신학의 문제에서 출발해 유럽 전역이 휩쓸린 전쟁과 정치적 갈등으로 확대되었다. 17세기 후반은 이 종교로 인한 정치적 갈등이 마무리된 시점이었고, 이것이 이후 사상의 특징을 결정했다. 통사적으로는 4장과 곧바로 이어지는 이우창이 쓴 6장 "18세기 유럽 계몽사상"은 밀도가 매우 높지만 몹시 즐거운 에세이다. 이 에세이는 계몽주의 사상의 실제 문제의식을 통해서 계몽의 성격을 재규정하고 있다. 저자는 주로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중후반의 시기를 아우르면서 계몽주의의 특징을 드러내는 몇 가지 주제를 취해 계몽을 설명한다. 유럽의 계몽주의는 "기독교 교회와 구체제의 지배에 맞서 자유로운 이성의 발달을 강조한 철학적.과학적 운동"이 아니었다. 계몽사상가로 분류되는 이들은 역사적으로 17세기의 "끊임없는 전쟁과 극한 대립, 그리고 이를 초래한 종교적 갈등과 야심, 야만적인 폭력은 더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어둠...을 극복하고 과거의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계몽사상가들은 인간과 사회를 올바르게 관찰하여 더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학문적 경향 속에서 이성이 아니라 정념(passion)과 본성(nature)에 근거하여 인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그에 맞는 바람직한 정부 형태를 고안했다. 통념과 달리 계몽사상가는 이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와 사회를 개혁하는 데 있어 이성 말고도 경험적 관찰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았다. 추론과 관찰은 인간과 사회의 원리를 밝힘으로써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는 낙관적 경향의 토대가 되었다.

계몽주의 사상가는 복수의 교파와 종파가 병존하는 상황에서 각 종파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면서 다양한 관용 전략을 구사했음을 밝힌 것도 이우창의 에세이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계몽사상가는 종교를 비판하고 상대화하는 주장을 취하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유지했음에 유념해야 한다. 계몽주의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이는 세속화는-그러한 과정이 실제 일어나기는 했다면- 곧바로 종교를 대체한 매끄러운 과정이 아니라 여러 우회로를 거쳐온 굴곡진 역사였다. 이승은의 "18세기 상업사회의 정치사상과 정치경제학"까지 보면은 이 굴곡진 계몽의 역사가 정치경제학 논의로 전환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홍철기가 쓴 제10장 "혁명 이후의 정치사상"은 '자유주의'(liberalism)의 개념을 역사적으로 엄밀하게 써야한다는 교훈을 주었다. '리버럴리즘'은 자유를 뜻하는 리버티(liberty)가 아닌 '관대함'이라는 뜻의 '리버럴리티(liberality)'에서 나왔다. "개인의 자유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개인이 오직 자유만 누린다면 이러한 개인들로 이루어진 국가는 지속성을 갖거나 진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개인들의 자유가 보존되고 확장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대함과 관후함의 덕성, 즉 자유로운 국가에 대한 의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3장과 14장을 같이 놓고 읽는다면, 프랑스혁명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형성된 자유주의 자체도 역사적으로 상당한 의미 변화를 겪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지식인들은 산업자본주의의 도래라는 전례 없는 현상에 직면하여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역할을 새로운 각도에서 사고하기 시작했다. 지성사의 관점에서 이는 자유주의를 19세기식 자유방임주의 전통에서 떼어 내 국가의 책임성과 접목하는 과정이었다."(13장) 냉전 자유주의란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대해야 했던 나치즘과 전체주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부상에 맞서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형성된 자유주의 사상을 이른다." (14장) 따라서 자유주의라 할 때도 어느 시대에나 통용되는 하나의 일관된 이론적 실체를 상정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을 읽은 후 누가 '역사적으로 자유주의는 이랬다'라는 주장을 한다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자유주의?'라고 되물으면 된다.

안두환은 18세기 유럽의 세력균형 논의(8장)와 전간기 국제사회의 변화와 국제질서에 대한 관념 변화(12장)를 설명했는데, 정치사상사에서 정의론과 권력론에 비해 소홀히 취급되는 국제정치사상을 포괄하여 의미가 있었다. 12장에서는 베르사유 조약 이후 전간기 국제질서의 긍정적 측면(국제사회, 국제주의 운동의 성장 등)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 소소한 성과이다. 13장부터 15장은 (케임브리지 학파식 지성사는 아니었지만) 내가 거의 공부해보지 못한 현대 미국 지성사, 냉전, 신자유주의의 지성사에 대한 글이어서 각별히 즐거웠다.

단점이 없지는 않았다. 1장 "플라톤의 <국가>: 서구지성사의 위대한 시작"은 다른 장들에 비해 생생함이나 박진감이 덜 느껴졌다. 소크라테스와 투퀴디데스의 정치사상이나 그 이전 고대 그리스에서 발달한 폴리스 사회의 정치사상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플라톤의 주장만을 특정 텍스트에 국한해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도 보론으로 언급될 뿐이다!) 정치사상사에서 플라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를 '서구지성사의 위대한 시작'으로 보기에는 플라톤 앞에도 오랜 지적 전통이 존재한다.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파두아의 마르실리우스'(Marsilius of Padua)로 표기했는데(p. 40), 같은 지역을 다른 곳에서는 '파도바'로 표기하는(62) 등 자잘한 용어 통일상의 실수도 보였다.

그렇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고 해서 본서의 가치가 줄지는 않는다.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쓰인 서양 지성사 통사를 정확하고 말끔한 한국어 문장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본서는 이미 제 소임을 다 하고 있다. 이 책에 동봉되는 워크북은 각 장의 내용을 요약 정리해주고 있어 복습할 때 요긴하다. 거기에 각 장 말미에는 저자들이 해당 주제와 관련한 더 읽을거리도 추천하고 있다. 지성사를 입문하려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충분한 교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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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해석
클리퍼드 기어츠 지음, 문옥표 옮김 / 까치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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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회 : 종교적 공동체들
막스 베버 지음, 최현종 옮김 / 박영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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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 종교사회학 선집
막스 베버 지음, 전성우 옮김 / 나남출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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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에밀 뒤르켐 지음, 민혜숙.노치준 옮김 / 한길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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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배세진 옮김 / 이학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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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주드프랑스와 비교적 최신 자료까지 반영하여 잘 정리한 푸코 입문서. 벤느의 책과 같이 읽을 필요가 있으며, 당연히 이 책을 읽고 푸코의 저술을 직접 읽는 것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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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 그의 사유, 그의 인격
폴 벤느 지음, 이상길 옮김 / 리시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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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를 권력비판의 ‘철학자‘가 아니라 사유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탐구하고자 했던 ‘역사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귀한 작업. 푸코에 대한 낡은 지식들, 잘못된 편견을 교정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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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불평등기원론>은 루소가 살고 있던 18세기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불평등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다. 이때 루소가 서술하는 역사는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흥망성쇠 원인론>처럼 실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불평등이 생겨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사회가 출현하게 된 경위에 대한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을 제시하는 추론적 역사(conjecture history)이다. , 역사적 탐구의 형식을 띠더라도 루소의 논의는 불평등의 진정한 기원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기보다는 불평등의 본성을 해명하는 데 더 집중한 작업이다.

루소는 두 가지 불평등을 구분한다. 첫 번째는 나이, 건강, 체력, 정신 혹은 마음의 능력으로 인해 생기는 자연적 불평등이다(41). 루소는 자연이 만든 불평등은 문제 삼지 않는다. 진정한 문제는 사회적(moral)” 혹은 정치적 불평등이다(42). 이 두 번째 불평등은 자연적 원인이 아닌 합의...동의...허용”(루소는 강도가 높은 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같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생겨났다. 합의, 동의, 허용을 만드는 것이 특권이고, 이 특권은 다시 부, 존경, 권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별 차이도 없었고, 불평등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형성되고 문명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간들 사이에 불평등이 생겨났다. 그래서 루소는 이 책에서 자신의 작업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세상만사가 변화해나가면서 폭력이 권력으로 이어져 자연이 법을 따르게 된 순간이 언제인지 지적하고, 수많은 경이로운 이들이 어떻게 물고 물렸기에 강자가 약자에게 봉사하기로 결심하고, 인민은 실질적인 행복을 버리고 상상 속의 안녕을 얻기로 결심할 수 있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42-43)

이를 설명하기 위해 루소는 제1부에서 불평등이 시작되기 이전, 자연상태에 놓인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고, 2부에서는 인간이 본래의 조건을 상실하고 사회를 이루게 되면서 시작된 타락의 역사를 서술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루소가 말하는 이 역사란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현재의 불평등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적으로 설정된 사고실험의 장이다. 마찬가지로 제1부에서 묘사되는 야만인의 형상 역시 현존하는 인간의 상황을 대조하기 위해 창조된 개념적 가상이다. 루소의 야만인은 인위적이라 느껴질 만큼 현대인과 철저히 대조된다. 그는 어떤 기후나 계절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육체를 지녔으며, 병에 걸리는 일도 없다. 그는 본질적으로 홀로 살아가며 무리를 이루거나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교육을 받지도, 남을 가르치지도 않으며, 정교한 예술이나 사상을 발전시키는 일에도 무관심했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선했다. 타인과의 교류가 거의 없으므로 그의 언어는 지극히 기초적인 수준에 머문다. 성생활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단순한 본능의 충족에 그치며, 따라서 가족이나 결혼이라는 제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루소는 자연상태의 인간을 자유롭고 고립된 개인으로 그린다. 17세기 이후 전개된 자연법학과 도덕철학의 전통 속에서 본다면, 루소는 인간의 자연적 사회성을 부정한 토머스 홉스의 계보에 위치한다. 실제로 루소는 제1부에서 자연법에 관해 현대인들이 내린 모든 정의에는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지적한 점에서 홉스를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81). 루소는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사회를 형성할 능력이 없다는 홉스의 전제에는 동의했으나, 자연상태의 인간이 끊임없는 전쟁상태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리바이어던이라는 절대적 주권체에게 복종하는 계약을 체결한다는 홉스의 결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홉스는 인간이 오로지 욕구에 기반하여 움직인다고 생각했기에 인간의 욕구를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상정했지만, 루소는 이러한 홉스의 사상을 반박하고자 인간에게는 연민이라는 자연적 감정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연상태에서 연민은 법이자, 풍속이자, 미덕의 역할을 한다.”(87) 연민은 푸펜도르프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회성을 대체하면서도 홉스의 자연상태론의 결론도 피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연민은 일시적으로 작용할 뿐, 인간이 사회를 이루게 할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지는 않았다.

1부에서 야만인에 대한 논의를 통해 루소는 불평등의 원인을 다음과 같다고 결론짓는다. “사실 인간들을 구분해주는 차이들 가운데, 그것이 고작해야 습관의 결과이고 사회에서 받아들인 다양한 종류의 생활방식에 기인한 것일 뿐인데, 그 여러 차이가 자연적인 것이라고 간주되고 있다는 점을 알기란 쉬운 일이다.”(94)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자연적이라고 간주하는 불평등은 사실 사회적 관습과 생활방식의 산물이다.

이제 루소는 2부에서는 자연상태를 벗어난 인간이 맞이하게 된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과 전개를 살펴본다. 지성사가 이슈트반 혼트에 따르면 초기 계몽 논자들의 사치 논쟁에서 사치는 불평등과 소유권의 부산물로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불평등기원론>은 이러한 사치 논쟁의 맥락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면서 자연적 불평등이 사회적 불평등으로 전환되는 핵심 고리로 소유권을 지적했다는 사실에서 루소가 - 주석을 제외하고 본문에서는 사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 사치 논쟁을 자신의 논의에 흡수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루소는 사치가 자신의 안락과 타인들의 존경을 탐욕스럽게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연적이지만, 국가를 망치는 가장 최악의 것으로 규탄한다(180, 저자주 9). <인간불평등기원론>은 직접적으로 사치의 기원을 설명하는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사치를 본문에서 거론하지 않았지만, 루소는 프랑수아 페늘롱으로부터 이어진 반 사치 전통에 속한다.




불평등의 시작은 법과 소유권의 마련이요, 두 번째는 행정관의 직의 설립이요, 세 번째는 합법적인 권력의 자의적인 권력으로의 변화이다(143). 소유권이 정부 형성 이전에 먼저 생겨나(이는 로크도 지적한 부분)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기제로 자리 잡은 이 역사는, 루소가 재구성하는 정부의 추론적 역사와 평행한다. 루소에 따르면, 자연상태의 야만인은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타인과 협력하게 되었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103-6). 인간들이 모여 살고 관계가 확장되면서 가족이 공동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남녀의 신체적 차이는 가정 내 서로 다른 성역할로 고정되었다여러 가족이 이웃하여 결속하면서 개별 국가가 세워졌다.

사람들 사이에 사회가 시작되고 관계가 세워지면서 사람들이 애초에 가진 체질과는 다른 특질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도덕이 인간의 행동에 들어서기 시작했다.”(114) 한 공간에 모여 살게 된 인간은 , 귀족 신분이나 지위, 권력, 개인적 자질”(146) 등을 기준으로 서로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이중 무엇 하나라도 우월하면 마땅히 존중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더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는 이상한 도덕이 시작되었다. 자신의 우월함을 대중적으로 확인받고자 하는 명예욕과 동시에 인간은 더 많은 부를 차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공세적으로 토지를 경작하기 시작했다. 로크의 소유권론은 노동과 점유를 구분하지 않는 데 반해, 루소는 소유권의 기원에서 최초의 노동을 통한 소유와 점유를 구분한다. 노동을 통해 토지의 산물에 대해 권리를 갖게 되고, 오랜 시간 관습적으로 그 땅을 점유하면 소유권이 성립된다고 본다. 이러한 소유권은 자연법과는 다른 법원(法源), 즉 관습을 통해서 형성된 권리이다(119).

루소에 따르면 소유는 사회적 관습을 통해 권리로 고착화되었다. “야금술과 농업”(115)과 같은 기술의 진보는 신체적으로 강건한 자와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졌고, 자연적 불평등이 소유의 차이를 만들어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행하게 되었다(<에밀>이나 <신엘로이즈>에서 루소는 농업을 예찬하는 듯하지만, 농업에 대한 루소의 태도가 간단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과 사회는 소유와 불평등의 법을 영원히 고정해버렸고...그것을 확정된 권리로 만들었다(127). 이제 부자가 빈자를 예속하고 지배하게 되었으며, 가난한 인민은 자신들의 예속이 당연한 상황이라고 기만당한다. 정부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생겨났다. 불평등 위에서 생겨난 정부에서, 처음에는 선출직인 행정관은 세습화되며, 여기서 강자에 의한 약자 지배가 허용되었다.

최초의 사회적 불평등에서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발생하고, 이후에 강자와 약자의 상태가 발생했다면, 정치상의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흐르게 된 결과가 군주제이다. 전제정에서는 단 한 명의 지배자와 신민 사이에 주인-노예 상태가 성립된다. 주인의 의지에 대한 복종 외에는 그 어떤 법률이나 정념도 사라져버린 이러한 사회는 두 번째 자연상태로, 그 최종 귀결은 혁명에 의한 정부의 완전한 해체(루소는 분명하게 이를 지지하지 않았다)이거나 합법적 제도의 등장(이것이 <사회계약론>의 주제일 것이다)이다. 군주제에 대한 루소의 설명은, 군주제 사회에서는 불평등과 사치가 필요악으로서 있어야 한다는 몽테스키외의 주장과 대조된다. 루소가 보기에 사치와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군주정은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자연 상태로의 회귀가 불평등에 대한 최종 해결책일까? 그렇지 않다. 애시당초 루소 자신이 그러한 해법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정념으로 인해 최초의 단순성을 영원히 잃었던 나와 같은 사람들은 이제 더는 풀과 도토리를 주식으로 살아갈 수 없고, 법 없이 수장들 없이 살아갈 수 없다.”(184, 저자주 9) 역설적이게도 1부에서 길게 전개되었던 자연상태의 야만인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이상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근대인이 현재 어떠한 조건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였다. 루소는 근대의 상업사회라는 현실을 비관적이지만 진지하게 응시했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다. 루소는 특권적 지위를 독점하는 소수(혹은 일인)에 의해 사회가 운영되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에, 사회 운영 원리를 전혀 다르게 만들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합법적 제도의 등장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회계약론>이 불평등이 아닌 다른 원리(공공의 이익)로 운영되는 사회를 구상하는 텍스트라면, <에밀>은 사회상태에서도 부패하지 않는 인간형을 구상하는 책이다.





























cf. 루소의 사상을 비교할 수 있는 텍스트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인간이 사회에 들어가면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가 된다는 루소의 비판에 대한 응답이다. 혼트의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이 루소와 스미스의 입장을 쟁점별로 상세하게 해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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