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한 대목을 짚어보겠다. 4장 "좌절의 정치"(Politics of Frustration)의 결말부이다.


"티베리우스는 자신이 기대한 집정관직 진출을 저지하고 그 대안으로 추진했던 입법 프로그램조차 방해하려는 체제에 좌절해서, 지난 150년 동안 공화정에서 신중한 검토와 타협의 문화를 형성해 온 정치 행동 패턴을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위협적인 분위기 조성을 통해 그 결심을 이행했다. 티베리우스는 그만의 정치적 창조성과 지지자들의 폭력 협박에 힘입어 토지 개혁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로마의 정치 논쟁을 규정해 온 제약들도 함께 무너뜨렸다. 이제 누구도 분쟁이 평화롭게 해결되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바로 지난달,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대통령직에 앉으면서 일부 측근과 공모하여 내란을 일으켜 한국 민주주의를 전복하려 했다. 그리고 다음주 국회에서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고, 현재 모든 직무 수행 권한을 정지당한 상황에서 두 번째 체포 영장이 발부되어 향후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박근혜 탄핵 사태 때와 비교하면 화가 나기도 하고, 절망감이 들 때도 많다. 뻔히 내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사태를 일으킨 그 수괴는 뻔뻔하게 '국민'을 입에 담고 있고, 나라가 위태로운데도 사적 이익만 고려하며 내란에 사실상 동조하는 정당(사실상 내란파)과 자신들만의 세계에서만 사태를 바라보고 내란을 지지하는 지지자들이 있다. 그것도 너무나 강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내건다.


이분법적 정치적 갈등 구도와 지지부진한 조사 상황을 보며, 내란수괴와 그 수하들이 정당한 응분의 대가를 받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과 조급함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냥 그런 절차를 다 어기고 저들을 끌어내버리고 싶은 생각도 강하게 든다.


티베리우스는 바로 그런 내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개혁안을 여러 반대 세력의 방해를 뚫고 관철시키기 위해 로마 공화정이 수 세기 동안 쌓아 올렸던 정치문화, 의사결정 구조를 무시하고 폭력적 수단을 동원했다. 그 여파는 티베리우스 자신과 그의 동생 가이우스의 살해로 곧장 드러났다. 그러나 티베리우스 자신의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원로원, 집정관, 민회의 투표를 거쳐야 법률이 시행되거나 명성을 얻게 되는 그 지지부진한 공화정의 정치 구조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폭력과 부에 의존하여 세력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들이 마리우스, 술라,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등이었고 그 마지막에 아우구스투스가 위치한다. 티베리우스가 100년 넘게 이어진 로마 내전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나는 이것을 현재의 대한민국의 정치상황에 '좌절'을 느끼는 나에게 주는 교훈으로 여기려고 한다. 내란 세력은 한국의 법치를 무너뜨리며 폭력을 들었지만, 시민은 그에 맞서 다시 법으로 이들을 제압하고자 한다. 법의 진행은 총과 칼보다 느리다. 그렇지만 애초에 계엄이 해제되었던 것도, 내란 수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던 것도 법적 절차상의 하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티베리우스처럼 대의는 정당하나 폭력적 수단을 추구하는 인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그런 점에서 로마공화정보다 낫다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은 다급하고 조급해도 법 위에서 움직인다. 나는 이분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다시 보게 된다.


경호 인력을 동원해 여전히 법 집행을 거부하는 그에 맞서 법이 작동하며 그를 억누를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정치 제도와 문화를 훼손시킨 그를 처벌할 것이다. 지지부진함은 어쩌면 법의 정상적인 작동을 보여주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그와 별개로 수사기관의 인물들이 무능함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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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1-09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호실 예산이 대단하더군요.
그렇게 목돈을 그런 곳에 써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문득 느꼈습니다.

Redman 2025-01-09 11:08   좋아요 0 | URL
그 정도로 감옥에 가기 싫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