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알레비의 <철학적 급진주의의 형성>을 읽기 시작했다. 포스타입에서 강유원 선생님이 해설을 곁들인 통독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니 관심이 있는 사람은 포스타입을 이용하고, 여기서는 옮긴이 서문의 몇몇 부분을 옮겨본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엘리 알레비의 <철학적 급진주의의 형성>은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중심으로 영국에서 철학적 급진주의가 태어나 형체를 갖춘 과정을 추적한 연구다." 알레비는 이 책에서 벤담의 삶을 세 기기로 나누어 서술하는데, 이는 벤담의 삶의 궤적과 철학적 급진주의의 형성이 동일한 궤적을 그림을 시사한다.

제1권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1789년까지 벤담의 젊은 시절" "공리주의의 발상에 그가 도달하게 된 배경" "공리주의가 그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해서 법철학과 사법개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경제적 문제들에 관해 애덤 스미스에게서 받은 영향" "개혁운동의 갈래들 중에서 어떤 위치를 점했는지" 등을 다룬다.

2권에서는 "1789년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15년까지 벤담의 중장년기이자 유럽이 격렬한 사회변동을 겪기 시작하는 시기에 버크, 페인, 고드윈, 맬서스 등 정치와 경제에 관해 활발히 주장을 펼친 동시대 개혁가들과 벤담으 주고받은 영향, 그리고 특히 제임스 밀을 통해서 벤담주의가 맬서스의 경고와 결합함으로써 마침내 철학적 급진주의가 탄생하는 사연"을 다룬다.

제3권에서는 "벤담의 노년기를 배경으로, 벤담과 그 추종자들이 꿈꿨던 사회의 기본 질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교육에 관한 그들의 이념이 정형화되는 바탕에 인간의 지식과 행동에 관한 어떤 견해들이 있었는지, 다시 말해 그들의 인식론과 심리학"을 탐구한다.

1~2권이 사상사적 탐구라면, 3권은 인식론과 심리학을 탐구하는 구성을 취한 것이다. 옮긴이인 박동천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공리주의와 벤담의 사상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제거하고 그 사상적 풍부함을 음미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오해는 대략 다음 네 가지와 같다.

  1.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벤담의 파놉티콘이 교도소 체제에 그치지 않고 마치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중앙에서 감시하는 사회체제를 시사한다는 듯이 과장해 놓은 투사(投射)가 있다."

  2. "존 롤스가 <사회정의론>에서 그리고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마치 공리주의가 도덕을 무시하고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듯이 그려놓은 이분법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이야말로 벤담이 공리주의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벤담은 도덕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도덕의 명령이란 이익들을 균형에 맞추면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결과'라고 봤다."

  3. "공리주의가 사회주의를 배척하고 자본주의를 편든다는 생각이 있다...철학적 급진주의는 맬서스의 비관론에서 큰 영향과 많은 영감을 받아 탄생한 사회개혁 이념으로서, 자본의 힘이 세상을 지배하지 못하게 대항세력을 정부의 정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봤"다.

  4. "대를 위해 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발상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는 권력의 행사를 공리주의와 혼동하는 풍조가 있다." 벤담은 "'언제가 필요한 경우인가'라는 핵심적인 질문을 잊지 않았다...아무때나 대를 위한다는 핑계로 소의 희생을 강요하는 논법은 권력자의 편의에 굴종하는 어법에 불과한 반면에, 벤담은 권력자의 편의를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통제할 수 있는 어법으로서 공리의 어법을 개발한 것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벤담을 비롯한 공리주의는 단순히 '대를 위한 소수의 희생'으로 도식화될 수 없는 개혁 사상이었다.


애덤 스미스, 토머스 페인, 맬서스, 윌리엄 고드윈, 에드먼드 버크, 엘베시우스, 체사레 베카리아 등 수많은 사상가들과의 상호작용을 밝힌 부분은 그 자체로 18~19세기 지성사를 위한 하나의 좋은 참고문헌이 될 수 있다. 더불어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역자 박동천 교수의 꼼꼼한 각주와 치밀한 해제가 덧붙여져 개념 공부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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