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 장 자크 루소, 김영욱 옮김, 사회계약론, 후마니타스, 2018, ‘옮긴이 해제

 

서신을 제외하고 장 자크 루소가 쓴 저서에는 다음이 있다. <학문예술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5) <신 엘로이즈>(1761)) <에밀> <에밀>(1762) <사회계약론>(1762) 그리고 <폴란드 정부론>(1770) <고백록>(1782) <대화: 루소가 장 자크를 판단하다>(1780), 마지막으로 미완성 유작인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다. 이런 저술들의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학문예술론>에서 루소는 당대의 문명에 대해 급진적인 비판을 전개했다. 루소에게 계몽주의의 지성 흐름과 발전한 문명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였다. “학문예술의 빛이 지상에 떠오르니 덕은 도망친다.”(우노 시게키 <서양 정치사상사 산책>에서 인용)

 

이러한 루소의 급진적 문명 비판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바탕을 이루며 이후 루소의 모든 저술의 밑바탕을 이룬다. 루소는 <보몽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나는 말하자면 악함의 계보를 추적했으며, 본래적 선함의 연속적인 변질에 의해 어떻게 인간이 결국 지금의 자기 자신이 되는가를 보여주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자연상태의 인간이라는 추상적인 인간을 가설한 다음, 이 자연상태의 인간과 대비되는 사회상태(etat de societe)의 인간을 비판한다. 이 책의 주제는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의 이행, 자기애(amour de soi)에서 자기편애(amour-propre)로의 변질, 그리고 그로 인한 자아의 분열이다. 루소는 자연상태의 인간이라는 본래적 선함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그 계보를 추적한 것이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그러나 사회상태의 극단적인 결론은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정치이다. 정치는 인간의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변형이 이르게 된 필연적 결과이며, 이성의 발달과 인류의 역사란 타락의 역사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와 평등의 부정으로서의 정치를 인식하게 된 것은 인간이 정치를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루소는 사회상태로 인해 초래된 억압적 정치의 해결책이 자연상태로의 회귀라고 보지 않았다. 문명은 비가역적 과정이기에 타락의 역사로 얻게 된 능력과 자원을 활용하여 정치의 토대와 형식을 바꾸어야 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인류학적 역사는 루소 철학의 전제일 뿐만 아니라, 체계의 각 요소들이 배치되는 역사적 지평이다. 이후 저술된 <신 엘로이즈> <사회계약론> <에밀>은 현재의 인류와 사회 상태의 조화 불가능성/가능성을 탐색한다. <기원론>의 역사적 지평을 이어받은 세 저작은 각각 가족, 국가, 개인의 특수성에 기초하여 인간의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변형을 기획하고 이를 통해 사회상태가 분열시킨 개인의 마음을 통합하려는 세 가지 기획이다. 각기 다른 방식의 세 통합 기획의 학문적 바탕에는 근대인의 정념론, 정치학, 철학적 인간학이 놓여있다.

 

<신 엘로이즈>는 가족 공동체라는 소우주를 통해 근대인이 겪는 정념과 이념의 대립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사회계약론>은 국가라는 장치를 통해 구성원 각자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개인을 변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밀>은 교육을 통해 아이가 고독한 개인으로서 내면의 자유를 보존하면서도 사회의 도덕과 충돌하지 않게 하여 개인과 사회의 조화 가능성을 입증하려고 한다.

 

이 세 저작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역사학적 체계를 구축했다. <신 엘로이즈>는 과거에 대한 지향성을 간직한다. <사회계약론>의 중요한 결론은 루소가 이상적이라고 본 정치사회의 원리와 루소가 사는 현재의 근대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다. 정당한 권리와 국가의 가능성은 과거 어느 시점에서만 가능했으며, 사회상태의 문제점을 해결할 유일한 논리적 가능성은 역사의 전개를 통해 불가능해졌다. 그리하여 <에밀>의 개인은 동시대에 서서 <기원론>이 묘사하는 정치사회의 묵시록적 파국을 직시한다. 그가 하는 일은 이 파국 속에서 자족적인 현자의 윤리에 의지하는 것이다.

 

<고백> <대화> <몽상>에서 루소는 자신의 삶과 글을 포괄함으로써 역사적 체계를 구조적으로 완성한다. 루소는 자신의 철학적 토대인 가설적 자연상태를 시적 산문 속에서 체험하고자 하였고, 자신의 사례를 통해 개인의 자연상태로의 복귀 혹은 소멸을 실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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