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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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전쟁사는 "모두 남자들이 남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준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은 전쟁 국가 중 여성 전투원이 가장 많은 국가였다. 그런데 여자들의 전쟁 서사는 침묵당하고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억압받았다. 저자는 이러한 여성들의 전쟁 체험과 증언을 기록하면서 일종의 대안적 서사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여자의 전쟁". 거기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로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저자는 참전 여성들의 회상을 있는 그대로, 녹음 테이프에 녹음된 그대로 망설임 하나까지 살려서 서술하였다. 저자는 이런 서술방법을 택함으로써 영웅주의적 서사에 가려진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의 한 조각인 개별자들의 "감정"과 "저마다 자신의 진실"을 생생히 되살려내려 하였다. 회상은 문학도, 역사도 될 수 있다. "과거가 생생히 반추되는 그 목소리 속에" 원초적인 인간의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저자가 성취하려는 최종적 목표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복원된 "감정의 역사"를 쓰는 것이다. 이로 볼 때, 저자는 개개인의 일상적 삶의 경험가지 있는 그대로 묘사해내는 것을 역사 서술의 완성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2.

저자의 서술방법론을 판단하기 이전에 역사 서술에 관한 기본적인 논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역사서술은 사료를 소재로 삼아 이루어진다. 사료로 기록된 사실의 보고를 통해 역사가를 역사를 서술할 수 있다. 사료 없는 역사서술은 허구의 창작에 가깝다. 이로부터 "인간의 행위와 고통에 대한 역사가의 보고가 진실에 입각해야 한다"(라인하르트 코젤렉, <지나간 미래>)라는 역사가의 첫 번째 의무가 부여된다. '사실에 입각한 보고'라는 소박한 사실주의적 역사 서술은 자신의 서술에 근거를 부여하여 신뢰성과 설득력을 높이려는 모든 역사가의 방법론적 자기약속이다. 이 입장에 서서 역사를 대하는 이들은 '사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즉, 코젤렉이 지적한 것처럼 "목격자의 보고는 18세기까지 아주 신빙성 있는 주요 문헌이었다. 이전 시대에 일어난 일을 전해주는 전래된 역사의 높은 사료가치가 여기에 있다." 사실은 생생하기 때문에 사료적으로 가치가 높다. 일어난 일을 꾸밈없이 역사적 사실이 그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는 소박한 사실주의자들, 이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랑케이거니와, 이들은 일어난 일을 묘사하는 사료와 사실들에 근거하여 사실의 기록으로서의 '역사'(Historie)를 다룰 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인식한 역사가 바로 이러한 사실주의적 역사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역사가 취급하는 것은...모든 사건이 것이며, 각 사건은 상호 간에 필연적인 연관이 없어도 무방할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알렉시예비치의 서술은 사실들의 생생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는 점에서 사실주의의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겠다.

3.

그런데 단순한 사실들의 집적으로 '역사'(Geschichte)를 구성할 수 있을까? 단적으로 말해 불가능하다. 지역, 성별, 인종, 사회적 위치에 따라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체험한 정도가 너무도 크며, 이것은 하나의 균질적 서사로 엮는다는 것은 애초에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이다. 저자가 남성들의 서사에 가려진 여성들의 서사를 강조한 것은 개인이 처했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체험 구술을 상기시키는 강점이 있으며, 저자가 비판하는 소련의 역사 서술보다 훨씬 역사적 서술에 가까운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의 이 책은 저자의 바람과 달리 역사(Geschichte)로 나아가지 못했다. 사실과 체험을 생생히 옮겨적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는 헤겔이 <역사철학강의> 서문에서 분류한 역사 고찰의 종류 중 최하위에 속하는 '근원적 역사', 즉 "직접, 간접으로 보고 들은 사건, 행위, 상황을 기록하는 데 머무르는 것으로서 역사가 자신이 사건의 정신에서 살고 이것을 넘어서지 않는"(<헤겔 사전> 중 역사) 즉자적 서술이다. 위 인용문을 두 부분으로 정리해보자. '직접, 간접으로 보고 들은 사건...을 기록하는 데 머무르는 것'. 이것이 사실의 객관적 기록으로서의 역사이며 사실주의자들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이다. 객관적 기록은 역사 서술의 소재가 되기는 하지만, 아직 사태에 대한 전체적 조망을 갖지 못한다. 이것이 '역사가 자신이 사건의 정신에서 살고 이것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이다. 역사가는 사실을 충실히 기록할 뿐만 아니라 그 사건으로부터 벗어나 사태를 객관적으로 관조하고 재구성하여 대자적 서술을 쓸 수 있어야 한다.

4.

"사료는 우리가 오류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지만,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코젤렉) 서술된 역사는 절대로 이 역사의 재료가 되어 역사를 증명하는 사실들과 동일하지 않다. 내재적 사료 해석만으로는 한 사건이 가지는 장기구조, 과정, 인과를 알 수 없으며 사료가 말하는 사건이 가지는 의의 또한 알 수 없다. 아주 간단한 예로 사실은 '혁명'과 '쿠데타', '민족해방전쟁'인지 '침략전쟁'인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이를 판단하는 것은 사실을 재구성하는 역사가의 사회적 올바름과 이론, 즉 당파성에 달려 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제2차 세계대전, 그중에서도 독소전쟁 기간의 여성들의 전쟁 체험을 다루고 있다. 앞서 논한 역사 이론을 이 책에 대입해보자. 그녀들의 수많은 증언과 회상을 집적하면 과연 저자가 원하는 대로 여성의 '감정의 역사'를 쓸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책은 전쟁 당시 소련 사회사적, 사상사적, 구조적 연관의 충족이라는 요구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저자가 끄집어내는 '생생한 원초적 감정'은 시각적, 청각적 증인에 의존하고 "역사의 진리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코젤렉)는 사실주의적 역사 서술의 생각을 현대적으로 다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알렉시예비치의 글이 "창조적 혼종"을 보여줬다는 정희진의 추천사의 찬사는 재론의 여지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녀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에 슬퍼하고 분노하고 동감할 수 있지만, 그 모든 체험을 조망하여 보다 넓은 범위에서 여성의 전쟁 체험을 해명하는 설명은 접할 수 없다. 그것을 쓰려면 저자가 간과한 전술, 무기, 전장의 영웅들에 대한 지식도 요구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생생함, 영웅주의적 전쟁 서사에 대한 통렬한 비판, 전쟁으로 고통받은 이들에 대한 저자의 동정적 시선, 참혹한 전쟁에 대한 비판, 인간에 대한 사랑과 평화에 대한 강렬한 지향이라는 매력적인 강점들에도 불구하고 아직 본격적인 경험 단위를 넘어서는 역사적 서술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그녀들의 증언을 진심으로 의미 있는 역사로 만들고자 한다면, 단순한 증언의 나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사료가 생생히 말하게 하려면 역사의 이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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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7-28 18: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민우님의 역사적 서술에 관한 관점에 공감하지만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애초에 기존 방식의 역사를 쓰려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 부분에서 목적을 충분히 완수했고, 차별화되었고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Redman 2022-07-28 19:15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이렇게 비판적으로 평가했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저작인 것 같아요

다락방 2022-07-28 1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다 읽으면서 좋은 책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은 아니다, 라고 친구에게 말했는데 친구는 어느 지점에서 그랬냐고 제게 물었어요. 저는 어떻게 말해야할지 몰라 ‘일어난 일들의 나열만 있고 더 나아가지 못함’ 이라고 애매하게 얘기했는데, 제가 느낀게 민우님의 지적과 같은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다만, 저는 이 책이 이 책 그 자체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참전했던 여성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침묵(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것만으로도 이미 큰일을, 세상에 없던 일을 했다고요.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시작을 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주 큰, 높은 시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Redman 2022-07-28 19:13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의 생각에 저도 적극 동의하고,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라 생각합니다. 이 책이 나온 1983년이라면 저도 저자의 시도 자체만으로도 큰 찬사를 보냈을 테지만 벌써 출간된지 40년이 되었고 여성사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발전이 이루어진 현재에 와서는 비판적 평가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이란 논지의 서평을 써보았습니다 ㅎㅎ 그럼에도 읽어볼 책이라는 것엔 변함이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