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이상
에인 랜드 지음 / 자유기업센터(CFE) / 1998년 5월
평점 :
절판


작년 이맘때쯤 <정념과 이해관계>를 읽고 서평을 썼다. 그 책은 초기 자본주의 옹호론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는데, 현대의 자본주의 옹호론을 엿보고자 에인 랜드의 <자본주의의 이상>을 읽었다. 하지만 이 독서는 실패한 것 같다.

일단 저자 소개 먼저.
에인 랜드는 20세기 후반 영미의 우파와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소설가, 사상가이다. 그녀의 영향은 정치적으로는 대처와 트럼프 같은 이들을 통해서 드러나며, 경제학 사상쪽으로도 밀턴 프리드먼 같은 자유시장 신봉자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녀의 대표작 <파운틴헤드>와 <아틀라스>는 미국에서는 지금도 많이 읽히는 소설이며, 과장 보태서 말하면 그녀에게서 영향을 받은 우파 지식인 정치인들이 오늘날의 개인주의적 제도를 형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는 소설가로서 경력을 시작했지만, <아틀라스> 이후로는 소설 집필보다는 대중을 상대로 하여 자신의 객관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것에 몰두했다. <자본주의의 이상>은 이때 강연 원고들과 그녀가 정기간행물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에인 랜드의 사상은 자본주의에 대한 옹호, 자유방임주의와 능력주의로 정리할 수 있다. 이만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니,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는 자본주의 옹호론을 썼을 거라 생각할 법하지만, 실제로는 학문적인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고 지루한 웅변조로 자본주의와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선전물이다. 딱 소설가가 몇 가지 학문 개념을 대충 익혀서 썼을 법한, 딱 그만큼에서 멈춘 문장과 사유의 깊이.

에인 랜드는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생산활동을 방해하는 어떠한 정책이나 행위를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나 부의 재분배를 책 전반에 걸쳐서 비판한다. 그러나 그녀는 ‘공유지의 비극‘은 말하지 않는다. 에인 랜드는 능력주의를 옹호하나, 능력주의 엘리트의 우연성, 능력주의적 세습과 그것이 불러올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에인 랜드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아무런 연관도 없기에 공공선 같은 실체가 불분명한 목적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희생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정치사상의 무지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에인 랜드는 자신을 객관주의자로 말하고 객관주의의 틀을 통해서 자본주의와 자유방임을 정당화한다. 그녀가 말하는 객관주의란 내가 봤을 때 대공황 이전 자유주의 경제사상과 똑같은 독창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지만, 그녀는 역사적으로 실패한 이 사상과 차별성을 주고 싶었는지 객관주의라는 조잡한 용어까지 갖다 붙인다.

진지하게 다룰 책은 아니나 나는 역설적으로 에인 랜드의 다른 책에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에인 랜드의 사상 때문이 어니라 그녀의 영향력 때문이다. 에인 랜드의 사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연구소가 있을 정도로 그녀가 남긴 유산은 적지 않으며 그 중요성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소설들은 미국에서는 고전적 지위를 누린다. 고전이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책이라고 한다면, 에인 랜드의 소설들도 1960년대 이후 미국의 시대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의 고민이 시작된다. 텍스트를 둘러싼 미국의 시대상(콘텍스트)을 읽기 위해 <자본주의의 이상>에서 일부 발췌문만 보아도 유치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소설들을, 심지어 드럽게 긴 그 소설들(<아틀라스> 번역본은 3권이나 한다)을 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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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6-2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에릭 랜드 사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연구소가 미국 랜드 연구소는 설마 아니겠죠? ^^

김민우 2022-06-26 19:27   좋아요 1 | URL
ㅋㅋ 아쉽게도 아인 랜드 연구소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