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20세기를 훨씬 더 밝게 경험했다. 미국은 점령당한 적이 없다. 미국은 점령이나 분할로 많은 시민을 잃거나 상당한 크기의 국토를 빼앗긴 적이 없다. 미국은 신식민지 전쟁에서(베트남에서, 이라크에서) 굴욕을 맛보았지만 패배의 결과로 고초를 겪은 적이 없다. 최근에 벌인 일들에는 양면성이 있지만, 대부분의 미국인은 여전히 자국의 전쟁이 <선한 전쟁>이었다고 생각한다.......그 결과 미국은 오늘날 선진국으로는 유일하게 군대를 칭송하고 찬양하는 나라다. 이 같은 정서는 유럽에서는 1945년 이전에는 익숙했지만,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많은 미국인 평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에개 지난 백년이 주는 메시지는 전쟁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이렇게 해석하는 함의는 2003년 이라크 침공 결정에서 이미 감지되었다." (토니 주트, 재평가)


"서구의 전쟁방식은 사실 도덕과 무관하기 때문에 그만큼 치명적이다. 즉 관습, 전통, 종교, 윤리 등과 같은 군사적 필요성과 관련이 없는 요소들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이다."

"서구인들은 오래전부터 전쟁을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라 여겼으며, 방해가 되는 자는 누구든 억누르거나 모욕을 가하기보다 아예 제거해 버리고자 했다."

"그리스 특유의 전투 방식 - 개인적 자유 허용, 철의 규율, 무적의 무기, 평등한 동지애, 개인의 창발성, 전술적 적응성과 유연성, 중장보병의 육박전에 대한 선호 - 은 그 자체로 그리스 문화 전체의 잔혹한 측면을 이룬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빅터 데이비스 핸슨, <살육과 문명>

서구 특유의 문명이 서구의 전쟁 방식에 스며들어 있고, 그래서 서구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단 것.



"니키아스는 전략가로서 원정 실패의 핵심 원인이 된 실수를 저질렀다. 쉬라쿠사이를 점령하려면 기병이 꼭 필요했다. 아테나이군이 처음부터 기병을 보유했다면 쉬라쿠사이는 항복할 도리밖에 없었다. 외부에서 어떤 도움을 얻더라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니키아스 본인이 원정대 출발 전에 기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테나이군이 기병 부대를 원정대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것은 특히 놀라운 일이다......아마도 이러한 착오는 판단을 잘못 내린 탓이 아니라 목적을 잘못 설정한 탓이었을 것이다. 니키아스는 시켈리아를 공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억지로 이 작전에 참가한 뒤에도 최소한의 행동만 하고 제대로 된 교전은 피하려 했다. 니키아스는 아마 쉬라쿠사이를 직접 공격하는 심각한 상황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으리라. 그러다가 그는 전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자신에게 작전에 필요한 병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니키아스는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심하면 더 좋지 않은 결과도 맞이해야 했다......펠로폰네소스 전쟁 내내 아테나이인은 기대를 저버린 장군들에게 가차없는 모습을 보였다. 위대한 페리클레스조차 정책과 전략의 결과물이 시민들을 분노하게 하자 모욕당하고 처벌받았다. 니키아스는 분명히 귀환하자마자 심한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니키아스는 자신의 명성과 안위를 염려해 아테나이인에게 자기 뜻대로 철수하거나 아니면 1차와 같은 규모로 추가 원정대를 보내라고 요청했다. 니키아스는 애초에 아테나이인이 원정에 나서지 못하게 막으려고 꼼수를 부리다가 실패한 경험에서 아무 교훈도 배우지 못한 듯하다. 아테나이인은 이번에도 니키아스의 바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추가 함대와 병력을 보내기로 결정했고 니키아스를 해임하지도 않았다."

도널드 케이건, <투퀴디데스, 역사를 다시 쓰다>

시켈리아 원정의 잘못은 전쟁 자체가 아니라 잘못된 계획이 문제였다는 것




미국의 두 거물 우파 학자의 전쟁 인식은 기분 나쁘게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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