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통해 필자가 제시하려는 주장은 단순하다. 개화당은 처음부터 외세를 끌어들여 정권을 장악하고 조선사회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려고 한 역모집단 또는 혁명비밀결사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1871년 신미양요를 전후해서 오경석과 유대치가 김옥균을 포섭함으로써 결성되었으며, 그 사상적 기원 또한 의역중인의 철저한 현실 비판과 과격한 사회변혁사상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 P7

집권세력에 의해 추진된 문호개방은 기본적으로 당시 국제정세에 순응해서 기존의 권력구조와 질서를 유지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에 반해 개화당의 정치적 목적은 어디까지나 외세를 끌어들여서 정권을 장악하고 조선사회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양자는 본질적으로 정적의 관계에 있었다. - P11

개화당의 사상적 기원을 북학파의 종장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에게서 구한 기존의 통설은, 일본인의 입장에선 자발적 부역자라고도 할 수 있는 개화당에게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식민사학과 1960년대 이후 조선사회의 주체적/내재적 근대화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을 그 소명으로 삼았던 민족사학의 의도치 않은 합작으로 이루어진 신화에 불과하다. - P12

개화당과 가장 큰 관계가 있었던 것은 기술직 중인이다...그중에서도 핵심은 의역중인이었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폐쇄적인 혼인관계를 형성하고 또 요샛말로 하면 서로 자제들이 과외교습을 해주면서 기술직을 독점적으로 세습했다...하지만 아무리 많은 재산과 고상한 식견, 뛰어난 재주가 있더라도 의역중인은 조선사회 안에선 출세와 활동이 제한된 한계인일 뿐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조선을 벗어나 중국의 명망 높은 문사 및 관리들과 신분 차별 없이 인간적인 교유를 나누는 데서 더할 나위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개화당이 같은 조선인보다 서양인이나 일본인을 더 신뢰해서 스스럼없이 자신들의 정체와 음모를 털어놓고 도움을 청한 데는 이러한 중인의 계급적 심성이 일정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 P15

개화당은 수백 년 동안 누적되어 화석처럼 단단하고 난마처럼 얽힌 조선사회의 온갖 폐단을 척결하고, 무능하고 무지하고 몰염치하면서도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지키는 데는 놀랄 만한 능력과 단결력을 발휘하는 양반들의 폐쇄적 카르텔을 깨뜨리기 위해선 비상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조선 후기의 수많은 민란과 역모사건 중에서도 개화당의 그것이 단연 이채를 발하는 것은, 그 수단을 임진왜란 이후 누대의 원수인 일본이나 전통적으로 금수로 멸시해 온 서양의 힘에서 구한 사실에 있다. - P376

개화당의 근본 목적은 후쿠자와 유키치류의 문명개화, 즉 서구화나 근대 문물의 수입에 있지 않았다...‘개화‘라는 말은 원래 이 비밀결사가 갖고 있던 고유한 문제의식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갑신정변을 공모한 후쿠자와 및 고토와의 유대를 상징하는 기능을 했을 뿐이다. 후쿠자와가 설파한 ‘개화‘와 개화당이 생각한 ‘개화‘의 의미는 반드시 같지만은 않았으며, 또 같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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