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의 희생은 한국 노동계급 형성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수백만명의 노동자들, 그들의 가슴속에 저항과 반항의 정신을 심어주었고, 그때까지 집단적인 목표를 위해 노동자들을 고취하고 동원할 수 있는 성스러운 상징과 존경할 만한 전통이 없었던 한국의 노동계급에 강력한 상징을 제공했다. 이 사건은 또한 급속한 수출주도형 산업화과정이 만들어낸 노동문제가 산업영역에서 감추어진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긴장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폭발적인 요소가 된다는 사실도 보여주었다. 한국에서 산업노동자들이 사회적 갈등과 사회변혁의 핵심세력으로서 역사의 장에 들어선 것이다. - P112

청계피복노조의 뒤를 이어 자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서너개의 주요한 투쟁이 1970년대에 발생하였다. 흥미롭게도 이런 노조건설 투쟁의 대다수는 여성들이 주도한 것이었다. 이 시기 잘 알려진 두 가지 사례는 1972년, 원풍모방과 동일방직이라는 두 개의 대규모 방직공장에서 일어났다. - P116

여성노동자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다는 점을 떠나서 노동운동의 초기 단계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노조활동가와 교회조직 간의 긴밀한 결합이었다. 거의 예외없이, 여성 노동운동가들은 진보적인 교회지도자들의 보호 아래 조직된 소그룹활동이나 노동자야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던 사람들이다. (중략) 중소기업에 고용된 여성들이 주도한 1970년대 자주노조운동이 주로 수도권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이 지역에 노동지향적 교회활동이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 P117

고용주는 자주노조를, 특히 외부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받는 노조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자주노조의 설립이나 어용노조의 개혁시도를 막고자 했다. 노조결성을 막지 못했을 때, 회사측의 다음 전략은 독립노조를 어용노조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흔히 사용한 방법은 여성중심의 민주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남성노동자들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 P123

회사에 매수당했다는 것 이상의 더 깊은 이유가 있었다. 여성 노조활동가들에게 동정적이었던 한 남성의 고백처럼, 남성들이 여성이 주도하는 노조지도부를 지지하지 않은 것은 "남자들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여성 노조지도부를 지지하는 몇 명의 남성들은 동료 남성노동자들에 의해서 배척당했고, 노조활동에서 물러나거나 결국은 여성노동자들의 믿음을 배반해야 했다. 분명히 뿌리깊은 성차별 이데올로기가 주된 장애물이었다. - P132

한국 민주노동운동과 노동계급 형성의 기반을 제공한 것은 용감한 여성노동자들의 개척자적인 역할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970년대 남성노동자들의 역할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분신자살을 통해 강력한 저항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결국 남성재단사인 전태일이었고, 최초의 자주노조를 조직해서 민주노조운동으로의 길을 열어준 사람들도 전태일의 동료인 평화시장의 남성재단사들이었다. 또한 유동우와 방용석 같은 다른 남성노동자들도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민주노조운동의 횃불을 든 것은 여성노동자들이었다. - P141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한국 노동운동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보여준 예외적인 역할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인가? 나는 경공업 여성노동자들과 진보적인 교회조직 간에 형성된 긴밀한 연계에 그에 대한 대답이 있다고 믿는다. (중략) 만약 교회조직들이 노동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여성노동자들이 한국 노동운동에서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인가 하는 것은 흥미로운 질문이다. 추측컨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 P145

배제적 국가조합주의 노동통제체제는 노동자들이 공식적인 노조조직 외부에서 출구를 찾도록 강요했다. 그 시점에서 기독교지도자들과 지식인집단들은 국가의 무서운 억압을 무릅쓰고 노동운동을 지원하고자 했다. 교회조직들은 1970년대 노동계급운동의 발전에 몇가지 뚜렷한 기여를 하였다. 무엇보다도 진보적인 교회들은 노동자들이 모여서 그들의 문제와 관점을 공유할 수 있는 피난처와 사회적 공간을 제공했다. - P151

우리는 투쟁의 실제 주체가 누구였는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교회조직이 아니라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의 놀랄 만한 연대활동을 가능케 한 것은 잔인한 노동조건과 그들의 노동경험 그리고 공통의 사회적 배경에 바탕을 둔 강한 유대감이었다. 교회지도자와 지식인들의 역할은 구조적으로 결정된 잠재성을 현실로 전환하는 촉매제 역할이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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