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9
케빈 패스모어 지음, 이지원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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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펴내는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 가운데 케빈 패스모어의 <Fascism> 개정판을 완역한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전면적으로 다시 쓰기로 생각한 것은 초판에서 제시한 파시즘의 정의는 그릇된 가정에서 출발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는 여러 이론을 종합하여 파시즘에 대한 나은 정의를 내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파시즘의 다양한 양상을 하나의 정의로 규정하기란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제1‘A이면서 A가 아닌에서는 결국 파시즘을 여러 의미를 포괄하는 편의적인 명칭으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파시즘을 어떻게 논의하고 어떻게 이에 대항해야 하는가? 그것은 당시 활동가들에게 매우 실제적인 개념이었던 파시즘은 어떻게 해석했고, 그로부터 무엇을 차용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차용한 것들을 다른 사상 및 실천과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2파시즘 이전의 파시즘?’부터는 이러한 전제를 깔고서 논의를 전개한다. 2장에서는 파시즘의 사상적 토양이 되는 19세기의 여러 사상과 정치적 맥락을 볼 수 있다. 그 사상들은, 첫째 보편적 법칙으로부터 도출된 설계도에 따라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계몽주의 사상”, 둘째 낭만주의와 그 뒤를 이은 다양한 관념론적 사조와 같은 반이성적 사유 전통, 셋째, 조르주 소렐과 귀스타브 르 봉 유형의 군중심리”, 넷째 프리드리히 니체, 다섯째, 사회다윈주의와 인종주의 등이 포함된다.

 

사회 정치적으로는 전문지식인에 대한 질시와 더불어 유대인과 여성의 전문직 진출에 대한 두려움을 거론할 수 있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맥락은 바로 대중의 약진이었다. 엘리트 지배 사회에서 대중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여 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가 화두가 된 것이다. 이 문제는 곧 새로운 정치와 사상이 대중 정치에서 태어났지만 그것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수렴되었다. 이상의 경향들은 급진적 우파에게서 발견되지만, 이것이 곧장 파시즘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급진적 우파와 파시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3장과 제4장은 이탈리아와 독일의 예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파시즘의 양상을 살펴본다. 유럽에서 파시즘의 등장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만연한 사회적 불안과 관련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전후 계속된 사회불안이 내셔널리스트들의 분노를 더욱 돋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무솔리니와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은, 대중운동을 이용하는 한편 역설적으로 더욱 권위주의적인 구체제 국가를 구축하고자 했다. 권위주의적 국가의 건설은 보수주의자, 이탈리아 내셔널리스트, 그리고 급진주의자 모두 선호했던 것으로, 서로 다른 극단적 정치체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파시즘아래 모였던 것이다. 이는 무솔리니가 총리가 된 이후의 일로, 만약 파시스트당이 집권하지 않았다면 파시즘이 흥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1차 대전의 참혹함은 이탈리아보다 독일에 더 치명적이었다.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의 붕괴는 독일 사회의 민주주의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이미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부터 많은 이들은 1920년대부터 이미 대중주의와 극단적 내셔널리즘을 옹호하고 있었다.” 감옥에 수감되었던 히틀러는 옥중에서 무솔리니의 선례를 연구하여 그의 성공 비결, 즉 선거와 협박의 결합을 간파했다.” 그와 나치는 보수정권을 비난하며 자신들은 진정한 국민의 대변자라고 선전했다.” 이러한 대중주의적 메시지는 한때 보수주의자들은 물론이요, 더 폭넓은 대중에게 위력을 발휘하였다(히틀러가 탁월한 대중 연설가였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나치가 집권하면서 그들은 독일의 모든 법치의 근간을 파괴했다. 이러면서 그들의 사상은 전체주의에 더 가까워져서 파시즘이라고 하기 힘들지만, 20년대부터 이어졌던 히틀러의 사상은 되짚어볼 만하다. 히틀러는 감옥에 갇히던 중 저술한 <나의 투쟁>에서 “‘유대-볼셰비키러시아로부터 동유럽의 생활권을 쟁취하는 것이 독일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그의 핵심 사상은 반유대주의와 같은 인종주의는 물론, 내셔널리즘, 사회다윈주의, 제국주의 등 19세기의 사상적 지류들이 모두 발견된다. 반유대주의와 생활권 확보라는 히틀러의 망상은 제2차 세계대전 내내 관철되었으며, “독일군이 괴멸된 후에도 계속되었다.”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점령지 수용소에 인원을 남겨두어 학살이 중단되지 않게 할 정도였다. 이러한 부분을 자세히 다룬 책이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이다.

 

여기서 이탈리아와 독일 파시즘의 공통점을 잠깐 정리하자. 먼저 전 사회적 영역에 걸쳤던 불안을 양분 삼아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독일은 경제적 불만이 매우 지대한 악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사상적으로 대중주의와 극단적 내셔널리즘을 옹호한 점이 눈에 띈다. 어떤 면에서 파시즘이란 대중연합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셋째로 독재자의 등장이다. 이는 파시즘이 나오게 된 정치사적 맥락이 대중 정치의 제한임을 상기하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 이러한 파시즘의 양상을 가장 유사하게 보여주는 정치 집단이 바로 이범석과 족청계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지이 다케시의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참조)

 

이렇게 전간기 파시즘의 특징을 정리하는 것은 현대의 극우파 정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6재에서 되살아난 불사조?’에서 애국운동, 국민전선, 뉴라이트 등 현대의 네오-파시즘과 극우 운동을 분석한 결과 저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극단적 내셔널리즘과 소수 종족에 대한 차별, 반페미니즘, 반사회주의, 대중주의, 기성의 사회적정치적 엘리트 세력에 대한 반감, 반자본주의, 반의회주의등에서 현대의 극우 운동과 전간기 파시즘은 연속성을 가진다. 이러한 극우가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된 원인에는 세계화와 그로 인한 남서 노동자 실업률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 이는 현실 세계에서 부유층과 전문직 여성에 대한 반감, 반이슬람주의, 자국민우선주의 등으로 나타나며, 이때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도 함께 수반된다.

 

그러나 중대한 차이점도 있다. 현대에는 준군사조직을 동원하여 민주주의를 전복하기보다는 민주주의에 잠재된 차별의 가능성을 활용하고자 한다.” (주류 정치의 장으로 진입하지 못했다는 점도 꼽았으나, 몇 년 전에 프랑스에서 국민전선이 집권한 적이 있어 이는 빼겠다)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수결이나 인민주권쯤으로 좁게 정의하면, 민주주의는 배제의 도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가들이 민주주의의 차별적 측면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바로 혐오이다. 이것이 경제적 불안과 극단적 내셔널리즘과 자국민우선주의와 결합하면 커다란 시너지를 발휘하여 그때부터는 인종주의적 배제의 정치가 시작된다. 이러한 배제의 정치가 저자가 말한 대로 과거의 파시즘보다 덜 위험한 것은 아니다.

 

여러 고민이 든다. 과연 혐오와 배제가 아니라 포용의 정치를 위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것일까? 더 근본적으로 정치적 주체가 혐오와 배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화의 흐름과 자국민의 이해는 상충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여기서 내 관심은 다시 외국인 노동자, 국제 이주민과 난민 문제로 이어진다. 이들이 실제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과연 이들과 자국민 사이에 조화를 이룰 부분은 없는 것일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고병권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그린비)에서 이미 시도한 바 있다. 이 책의 한 단락을 인용해보겠다. “민주주의에서는 지식도, 재산도, 혈통도, 성별도, 심지어 숫자도 다른 어떤 것을 억압하거나 배제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민주화 투쟁이란 그런 근거들이 전혀 근거 없는 것임을 폭로하는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근거 없이, 자격이나 조건 없이, 우리와 척도를 공유하지 않는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그들과 공동의 삶을 위한 교섭을 벌여야만 한다.” 고대 그리스 원어로 민주주의는 근거 없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무슨 근거인가? 바로 통치의 근거이다. , 민주주의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위에서 지배하고 군림할 합당한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어떤 것도 타인을 지배하거나 배제할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다스림을 정당화할 자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논의를 확장하면, 결국 국적도, 다수성도, 다른 무엇도 타자를 배제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바로 이때 배제의 정치에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세 번째 질문, '혐오와 배제의 문제''이주민 경제와 자국민우선주의 문제'는 미로슬라브 볼프의 <배제와 포용>(IVP), 폴 콜리어의 <엑소더스>(21세기북스)를 다시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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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04-29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유서가 시리즈 나란히 꽂힌 걸 흐뭇하게 보면서도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 번역물인지 모르고 있었어요^^ 늘 치열하게 공부하시는 모습!!!

김민우 2021-04-30 05:16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ㅋㅋ 저도 얼마전에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첫 단추 시리즈로 말고도 번역된 게 있는 것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