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 - 2000년을 이어온 작업의 정석
오비디우스 지음, 김원익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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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은 플라톤의 <향연>이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처럼 철학적이지 않다. 또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목적으로 하는 책도 아니다.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정보들로 가득한 실용서다.그렇다고 그 정보들이 얄팍한 것은 아니다. 사랑에 대해 성찰에서 나온 정보들이다. 결국 이 책은 통찰과 깊이를 지니면서도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무척 놀라웠다. 로마 시대에 쓰여진 연애 서적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사랑에도 합리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로마 시대에 체계화된 연애 서적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오늘날 연애 서적의 기초 전제도 바로 '사랑은 기술'이라는 것이다. 철학적인 성찰이 가득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부터 얄팍한 연애 서적까지 말이다.

또 로마의 일상생활을 알려 주는 역사적 정보들도 많아 재미있다. 이를테면 로마의 목욕탕이 복합문화시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쨌든 사랑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준비한 자에게만 사랑은 찾아온다. 이 책은 그 준비를 잘 하게 도와준다. 예로 든자면, '작업 걸 시점을 잘 선택하라'는 충고다.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의 생일이나 아프로디테 여신과 그녀의 애인 아레스 신의 결합을 기념하는 4월 1일에는 작업을 거는 것을 삼가라. 어차피 그날은 여자가 선물을 받는 날이다. 극장 앞이 예전처럼 자잘한 인형을 파는 잡상인들로 붐비는 게 아니라, 왕가의 휘황찬란한 보물들로 전시되는 날도 작업을 걸지 마라. 그날은 선물을 해도 빛이 나지 않는다."(81쪽)

그렇다. 오비디우스의 충고는 정말 적절하다. 오늘날 이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밸런타인 데이나 화이트데이 때 선물을 주곤 하는데, 그것은 정말 효과가 없는 일이다. 오비디우스의 통찰은 참으로 놀라움 점이 있다. '체위는 체형에 맞게 정하라'는 조언도 인상적이었다. 오비디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얼굴에 자신 있는 여자는 반듯하게 누운 자세가 좋다. 등에 자신 있는 사람은 등이 보이는 자세가 좋다. 히포메네스는 아탈란데의 다리를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는 자세를 취했다. 다리가 매끈한 사람은 이런 자세가 좋다. 키가 작은 여자는 기마 자세를 취하라."(246쪽)

그 외에도 오비디우스는 많은 유용한 충고를 준다. 이런 많은 유용한 정보를 그 어떤 책에서 또 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유용한 정보를 접하는 재미 외에도 오비디우스의 뛰어난 문장을 보는 것도 재미나다. 오비디우스의 문장은 무척이나 유려하다. 아름다운 문장을 잘 보여 주는 부분을 인용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파티도 여자들에게 접근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파티에서는 포도주 말고도 덤으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곳에서는 얼굴에 홍조를 띤 사랑의 신 에로스가 부드러운 손으로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끌어안는다. 포도주가 에로스의 마른 날개를 살짝 적시면, 신은 제자리에 그래도 서 있기가 힘들다. 그는 젖은 날개를 재빨리 털어보지만, 이미 사랑으로 촉촉하게 적셔진 그의 심장은 도저히 말끔하게 털어낼 수가 없다."(62쪽)

그렇지만 오비디우스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다. 이는 시대의 한계라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남자들의 욕망은 분수를 알고 광적이지 않다. 남자들의 욕망에는 신체적으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여자들의 욕망은 끝을 모른다."(67쪽)고 하는 부분이나, "여자들은 한 남자만을 사랑하는 게 아주 힘든 모양이다."(73쪽)하는 부분도 그렇다.

또 "이 모든 범죄는 여자의 정욕 닷에 일어난 것이다. 여자의 정욕은 우리 남자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거의 광기에 가깝다."(78쪽)거나 "여자들은 완력을 좋아한다...... 여자는 갑자기 기습을 당해 사랑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즐긴다."(106~7) 하는 부분도 그렇다. 특히 마지막 인용은 잘못하면 강간을 합리화하는 논리가 될 수도 있어 위험하다.

어쨌든 오비디우스에게는 이러한 편견이 있어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 책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은 많은 장점이 있다. 1, '훌륭한 해제' 2, '읽기 편한 번역' 3, '우아한 문장' 4, '뛰어난 심리묘사' 5, '로마의 일상생활 재현' 6, '다채로운 도판과 그에 대한 친절한 해설'이다.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은 단지 여성을 꼬시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얄팍한 책이 아니다. 여성에게 필요한 기술과 이미 얻은 사랑을 지키는 방법도 알려 준다. 그리고 상처받은 사랑을 잊는 방법도 알려 준다. 순고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배워야한다.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도 그에 도움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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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번역가는 현대 연애 서적이 오비디우스의 책에 비해 통찰과 깊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소개한다. 그렇지만 그건 오늘날 서적을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몇 가지 예만 들어도, <똑똑하게 사랑하라>(필립 맥그로), <사랑은 어떻게 시작하여 사라지는가>(스턴버그), <사랑의 색깔>(알란 리) 등의 주옥 같은 책들이 있다. 성찰과 실용이 모두 겸비된 책들이다. 

심지어 최근엔 청소년용 책도 나왔다.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이남석)가 그것이다. 이 또한 청소년용임에도 깊이 있는 성찰과 실용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책들은 나름대로 다들 가치가 있다. 이 책 역시 오늘날에도 공감할 만한 정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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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정원 - 어느 미술사가의 그림 에세이
정석범 지음 / 루비박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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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기억의 보물창고 만들어

우리나라 미술 책은 보통 정형화된 작품 해설과 관련 사상, 예술사적 지식 등을 소개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신선하다.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림에 대한 이야기와 분석, 미술 이론을 설명한다.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등의 서양 화가부터 나빙, 거렴, 안도 히로시게 등의 동양 화가까지 섭렵하며 그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저자는 군인인 아버지 때문에 전국 곳곳을 떠돌며 이방인으로써 지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들과 어린 시절의 예민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이 책은 저자의 추억을 읽는 에세이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준다. 그에 더해 명화를 연결시켜 이야기를 더욱 진행시켜 글 읽는 재미를 더욱 배가한다.

이 책은 저자의 최초의 기억, 네 살의 기억부터 시작해 열두 살이 되는 사춘기의 문턱에서 끝난다. 저자는 어린 시절을 애써 외면했다고 말한다. 힘겨운 시절을 떠올리기 싫었다며. 그런데 그림을 보면서 다시금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어린 시절을 좀 더 낙관적인 시선으로 보고 어려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도 찾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어린 시절 기억의 편린과 명화의 이미지를 함께 보는 버릇이 생겼고, 이런 책으로도 나오게 되었다.
저자는 사라져가는 자신의 기억을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하는 되살려 기억의 보물창고를 만든다.
그곳에는 케테 콜비츠의 <죽음의 위로>도 있고, 클로드 모네의 <생 라자르 역>도 있다. 

그림 보는 눈도 열어 주는 책 

이런 신선한 시도에 이끌려 이 책을 펼치면 다음에는 깔끔한 그림 해설에 사로잡히게 된다.
클로드 모네의 <생 라자르 역>에 대한 설명을 예로 들어 보자. 

저자는 이 그림이 화가가 파리의 기차역에서 발견한 개인적인 인상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그림에서 사물의 고유한 색채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대상은 청색과 밤색의 단 두 가지 색조로 환원된다. 형태도 뚜렷한 윤곽을 잃은 채 흐물흐물 대기라는 용광로 속에서 녹아 해체된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한다.

결국, 이 그림은 유리 지붕 아래로 쏟아지는 햇빛과 그 위의 맑은 하늘, 그리고 역동적인 기관차가 뿜어내는 연기의 충돌로 빛어진 대기의 변화무쌍한 인상에 주목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설명은 그림의 인상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었다. 모네의 그림은 전에도 본 적이 있고, 해설도 본 적이 있지만, 이 책만큼 명쾌하게 마음에 쏙드는 설명을 접하지는 못했다. 

칸딘스키의 <즉흥6-아프리카>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전통적인 회화 원리에서 벗어나 색채 추상이 시작된 그림이라고 설명한다. 사물이 구체적인 형상을 상실하고 추상적인 색채의 면들로 전화되어 가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물론 이런 설명은 일반 미술책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설명 전에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 즉 놀이공원에서 겪은 일을 연결시켜서 가슴에 와 닿는 설명을 만든다. 

그 외 기리코의 <거리의 우울과 불가사의>, 앙리 마티스의 <음악>, 그로츠의 <사회를 지탱하는 사람들> 등에 대한 설명도 명쾌하다. 저자가 지닌 그림을 읽어내는 눈이 참으로 뛰어나며, 그것을 매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또다른 커다란 매력이다. 마치 내가 그림을 보는 눈이 성장한 듯한 착각마저 주는 책이다. 짧은 글이지만, 많이 배운 듯한 뿌듯함을 준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어릴 적 이야기가 단순 소재로 머무는 것이다. 어렸을 때 메뚜기 볶음을 싫어했다는 얘기를 하고, 이어서 메뚜기가 있는 초충도를 보여 주는 글에서 특히 그러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그림 해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지는 않은 것이다. 이런 약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글 읽는 재미와 그림을 보는 눈을 열어 주는 이 책의 매력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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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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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A는 오대양 사건을 모티브 삼아 쓰여졌습니다. 23년 전 1987년 8월 29일, 신도 32명이 한꺼번에 사망해 당시 시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입니다. 종교적 문제와 관련있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정확한 내막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죠. 하성란은 이를 시멘트 공장 기숙사에서 24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사건으로 그립니다. 하지만 오대양사건을 소재로 쓸 뿐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거나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소설의 줄거리를 이렇습니다. 시골마을에 시멘트 공장을 세워 단기간에 급성장한 신신양회에는 대표인 '어머니'와 회사 내 기숙사에서 20년째 함께 지내온 여자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여자들은 서로 자매처럼 지내며 '어머니'를 따릅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처지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어머니'가 신신양회를 무리하게 확장하려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채를 끌어쓰다가 신신양회는 풍지박살이 나게 되고, '어머니'는 궁지에 몰립니다. 결국 이들은 집단자살을 합니다. 아무런 저항 없이 목을 졸려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목을 조른 사람은 마지막으로 밧줄에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게 해서 죽은 이는 여자가 21명, 남자가 3명.
 
주인공 '나'는 당시 현장에 있었으나, 후천적 시각장애로 겨우 살아남게 됩니다. 하지만 볼 수 없기에 목격 또한 할 수 없었습니다. 주인공은 어둠속에서 유일하게 범인의 목소리와 손만 기억합니다. 그리고 사건 당일 학업 때문에 다른 지역에 있던 신신양회 아이들도 살아 남습니다. 
 
사건 후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지지만, 어른이 되어 홀린듯 서로를 찾습니다. 그리고 다시 신신양회로 모여듭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엄마들이 했던대로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듭니다. 여성의 왕국 아마조네스처럼. 이들은 마음에 드는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뒤 임신한 후 신신양회로 돌아와 아이를 낳아 키웁니다. 결혼은 하지 않으니, 남편도 없고 아버지도 없습니다. 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한동안 잘 살아갑니다. 무너진 신신양회를 멋지게 재건시키고, 아이들을 잘 키웁니다. 
 
한편 소설 속 시간과 화자는 순환하면서 반복됩니다. 그래서 소설은 복잡하게 읽힙니다. 일관된 서사가 아니라 인물의 기억과 현실의 삶을 교차되면서, 신신양회의 과거와 현재가 부딪힙니다. 그리고 똑같이 반복됩니다. 이러한 구성이 때로는 소설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점이 있지만,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작가의 의도임은 분명합니다. 어쨌든 과거의 신신양회가 개인의 욕망에 의해 무너졌듯 현재의 신신양회 또한 끝임없는 욕심으로 평화가 무너집니다. 

줄거리를 정리하면 소설 'A'는 간단해 보입니다. 하지만 글은 단편으로 잘려 흩어져 있습니다. 화자와 시간도 계속 바뀝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의미있어 보입니다. 독자에 따라 다양한 재구성이 가능해지니까요. 즉 작가는 일부러 간단한 줄거리를 제공하지 않고, 독자가 스스로 '놀이'를 즐기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골치 아픈 놀이를 즐기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대중성보다는 새로운 시도에 집중한 저자의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천사, 아마조네스, 간통의 뜻이 되는 A의 정체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을 계속 생각하게 만듭니다. 새로운 구성에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미덕을 지닌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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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기억하는 세계 100대 사상 역사가 기억하는 시리즈
리즈쉬안 지음, 최인애 옮김 / 꾸벅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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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잡학형 독서'(?)를 하는 터라, 여러 사상에 대해 전체적으로 쭉 한번 정리를 해 볼 필요를 느껴 잡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이렇다.

1, 철학부터 문학, 예술, 역사, 경제까지 한권으로 O.K.
철학 사상부터 문학 사조, 예술 사조, 역사 사상, 경제 사상에 대해 한 권으로 끝낸다는 점이다. 이 어찌 간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깔끔한 요점 정리
이 책은 항목마다 도입글-생생 배경-형성 과정-주요 관점-시대에 미친 영향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주요 인물과 특징에 대해서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필요할 때 간간이 참고하기에 딱 좋다. 

3, 다채로운 도판
이 책은 도판이 다채롭게 들어가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러한 장점 가운데 가장 유용한 점은 아무래도 '깔끔한 요점 정리'일 것이다. 만약 어떤 책을 읽다가 '현상학'에 대해 나온다고 해 보자. 현상학에 대해 잘 모른다면 독서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이 책을 펼쳐 해당 항목을 참고하는 거다. 그러면 요점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어서, 단번에 현상학이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곤 읽던 책을 마저 읽어나갈 수가 있게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유용성이 바로 이런 것일 테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철학부터 경제 사상까지 전체적으로 쭉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는 특징도 있다.

1, 서구 사상 + 중국 사상
이 책의 제목에는 '세계 사상'이라는 말이 들어 있지만, 사실 서구 사상을 다루고 간혹 중국 사상을 끼워넣은 정도다. 경우에 따라서는 차라리 서구 사상만 다루었다면 책의 완성도가 높았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평소 접하기 쉽지 않은 중국 사상이 들어간 것이 특색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2, 근대 위주의 항목 구성
이 책은 백과사전의 형식을 지닌다. 이런 책은 항목 구성이 매우 중요한데, 이 책은 항목 구성이 근대 위주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주 접하는 사상을 모아서 좋다고 할 수도 있고, 또 근대에 치우쳐 전체 사상을 다루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3, 오늘날 중국의 관점
이 책의 저자는 중국인으로 '추정'된다.(이 책에는 저자 소개가 없다.) '오늘날 중국의 관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자에 따라 오늘날 중국의 관점이라는 게 문제가 되기는 할 테다. 이를테면, 도가를 변증법으로 보고 유가를 계급관념이 담긴 것으로 보는 관점은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생소할 것이다. 

사실 나는 도가를 변증법으로 읽는다는 것은 중국 마오이즘의 이데올로기라고 본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중국의 관점을 접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종합하자면, '따져볼 요소가 있는' 흥미로운 책이라는 거다. (이를테면, 이 책에 '일러두기'와 '저자 소개'가 왜 없는 것일까?)

그렇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철학부터 경제 사상까지 깔끔하게 요점 정리를 할 수 있다는 거다.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든 부분은 경제 사상 정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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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의 탄생
오지 도시아키 지음, 송태욱 옮김 / 알마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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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의 탄생>은 중세와 근대 초의 세계 지도에 숨어 있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 커다란 즐거움을 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지도를 예사로 보지 않게 된다.


이 책은 먼저 지도의 구성 요소로 사상성, 예술성, 과학성, 실용성을 제시한다. 걸작 지도는 이들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지도가 단지 과학적인 구성에 실용적인 정보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일깨워 주고, 기존에 보지 못했으나 지도에 담겨 있던 다채로운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 준다.


그래서 그 눈으로 커다란 지도 곳곳에 담긴 다양한 정보를 해독해 내고, 그 과정에서 독자는 흥분되는 기분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각 문명과 문화를 대표하는 중세 세계도 4개를 비교하고 중세 세계도에서 벗어난 칸티노 세계 지도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지도가 세계관을 표현하는 ‘세계도’에서 세계를 표현하는 ‘세계 지도’로 바뀌어 온 큰 흐름을 보여 준다.


불교의 이상 세계를 그린 오천축도


중세 시대를 대표하는 4개의 세계도는 기독교 세계의 헤리퍼드 세계도, 이슬람 세계의 이드리시 세계도, 중국의 고금화이구역총요도, 일본의 오천축도다. 모두 12~14세기 초에 제작되었다.


먼저 일본 호류지 소장 오천축도. 오천축도는 일본에서 그려진 현존 최고(最古)의 세계도다. 오천축이란 불교 세계관에 따라 인도를 동, 서, 남, 북, 중 다섯 지역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 세계도에는 인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이 그려져 있다.


오천축도를 언뜻 보면 이상화된 형태의 원형 대륙과 그를 둘러싼 바다, 크게 소용돌이치는 파도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러나 책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오천축도에는 불교의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과 열망이 수준 높게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독교 세계관을 나타낸 제단화, 헤리퍼드 세계도


다음은 헤리퍼드 세계도. 기독교 세계관을 제시하고, 지상의 성지를 묘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는다. 성지는 실제보다 크게 그려져 있는데, 지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다. 그러니까 팔레스타인 부분을 굉장히 비대하게 그리고, 모세, 예수, 바울과 관련된 성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성당에 비치되는 제단화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이다.


또 제작 시기가 십자군 원정이 있던 때인 만큼, 십자군의 거점과 일찍이 동방을 정복한 알렉산드로 대왕의 업적도 중요하게 보여 준다. 이 세계도에는 이슬람과의 대결 의식이 나타나 있다. 이 책은 헤리퍼드 세계도의 곳곳을 꼼꼼하게 분석하여, 그것에는 중세의 사상, 역사, 경험, 환상 등 온갖 것이 담긴 흥미로운 세계도임을 알려 준다.


중세 세계도 중에서 근대를 선취한 이드리시 세계도


이드리시 세계도는 1149년 시칠리아 왕국의 로제르 2세의 명령 아래 만들어졌다. 로제르 2세는 종교나 민족을 구별하지 않고 학자들과 여행 경험자를 궁정에 모아 놓고 정보를 수집했으며, 그들의 논의를 기초로 제작했다.


이 책은 이드리시 세계도가 드물게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이나 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세계도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호류지 소장 초천축도와 헤리퍼드 세계도는 각각 불교와 기독교의 세계관을 기본 구도로 한다. 그리고 고금화이구역총요도는 중국의 왕권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이에 반해 이드리시 세계 지도는 특정한 세계관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드리시 세계 지도는 근대를 선취한 중세 세계도다.


한편 이 책은 중국의 ‘고금화이구역총요도’에 대해서도 분석하는데, 이는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보아 온 화이사상이 담긴 지도다.


세계지도의 성립을 알리는 지도, 칸티노 세계 지도


이 책은 칸티노 세계 지도가 앞선 중세 세계도나 동시대의 세계 지도와는 전혀 다른 획기성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지도의 구성 요소로서 제기한 사상성, 예술성, 과학성, 실용성,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줄 수 있으며, 세계 지도의 성립을 알리는 지도라는 것이다. 이 책은 칸티노 세계 지도는 지도사를 대표하는 걸작 가운데 하나라고 추켜올린다.


칸티노 세계 지도는 세계관에 기초한 세계도가 아닌 측량에 기초한 세계 지도다. 과학적 진전을 보여 주며, 대항해시대에 이루어진 이른바 ‘신대륙 발견’의 성과가 담겨 있다.


그렇지만 칸티노 세계 지도에도 세계관이 있다. 바로 세계에 군림하는 해양 제국 포르투갈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은 빛나는 컴퍼스 로즈(원형 방위도)에서 잘 나타난다. 이전 세계도에는 성모자 상을 비롯한 종교적 상징이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칸티노 세계 지도에는 세속적 왕권의 상징인 태양을 그렸다. 지도 곳곳에는 소형 컴퍼스 로즈가 있는데, 이는 포르투갈이 세계에 걸쳐 있는 제국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대항해시대를 연 포르투갈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세계 지도다.

세계관을 나타내는 ‘세계도’에서 ‘세계 지도’로 바뀌어


<세계 지도의 탄생>은 각 문명을 대표하는 세계 지도를 분석함으로써 많은 즐거움을 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 책은 고대와 중세의 지도에는 사상성과 예술성이 중요하게 여겨졌으나, 근대에 이르러 과학성과 실용성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큰 흐름을 분석한다. 즉 세계관을 표현하는 ‘세계도’에서 세계를 표현하는 ‘세계 지도’로 바뀌어 온 큰 흐름을 보여 준다. 그렇지만 저자는 걸작 지도는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꽤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읽기에 어렵지는 않다. 친절하게도 저자가 쉽게 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지도에 관한 일본의 뛰어난 학술적 성과와 그것을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보여 부러워지기도 한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지도 전체 모습을 보여 주는 도판도 있고 세부 그림을 보여 주는 도판도 있기는 하지만, 설명에 비해 세부 모습을 보여 주는 도판이 적다. 그래서 글을 읽다가 앞뒤로 넘겨 가면서 지도를 다시 확인하는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런 약간의 아쉬움은 이 책이 주는 커다란 즐거움에 비할 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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