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도의 탄생
오지 도시아키 지음, 송태욱 옮김 / 알마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세계 지도의 탄생>은 중세와 근대 초의 세계 지도에 숨어 있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 커다란 즐거움을 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지도를 예사로 보지 않게 된다.


이 책은 먼저 지도의 구성 요소로 사상성, 예술성, 과학성, 실용성을 제시한다. 걸작 지도는 이들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지도가 단지 과학적인 구성에 실용적인 정보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일깨워 주고, 기존에 보지 못했으나 지도에 담겨 있던 다채로운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 준다.


그래서 그 눈으로 커다란 지도 곳곳에 담긴 다양한 정보를 해독해 내고, 그 과정에서 독자는 흥분되는 기분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각 문명과 문화를 대표하는 중세 세계도 4개를 비교하고 중세 세계도에서 벗어난 칸티노 세계 지도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지도가 세계관을 표현하는 ‘세계도’에서 세계를 표현하는 ‘세계 지도’로 바뀌어 온 큰 흐름을 보여 준다.


불교의 이상 세계를 그린 오천축도


중세 시대를 대표하는 4개의 세계도는 기독교 세계의 헤리퍼드 세계도, 이슬람 세계의 이드리시 세계도, 중국의 고금화이구역총요도, 일본의 오천축도다. 모두 12~14세기 초에 제작되었다.


먼저 일본 호류지 소장 오천축도. 오천축도는 일본에서 그려진 현존 최고(最古)의 세계도다. 오천축이란 불교 세계관에 따라 인도를 동, 서, 남, 북, 중 다섯 지역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 세계도에는 인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이 그려져 있다.


오천축도를 언뜻 보면 이상화된 형태의 원형 대륙과 그를 둘러싼 바다, 크게 소용돌이치는 파도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러나 책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오천축도에는 불교의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과 열망이 수준 높게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독교 세계관을 나타낸 제단화, 헤리퍼드 세계도


다음은 헤리퍼드 세계도. 기독교 세계관을 제시하고, 지상의 성지를 묘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는다. 성지는 실제보다 크게 그려져 있는데, 지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다. 그러니까 팔레스타인 부분을 굉장히 비대하게 그리고, 모세, 예수, 바울과 관련된 성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성당에 비치되는 제단화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이다.


또 제작 시기가 십자군 원정이 있던 때인 만큼, 십자군의 거점과 일찍이 동방을 정복한 알렉산드로 대왕의 업적도 중요하게 보여 준다. 이 세계도에는 이슬람과의 대결 의식이 나타나 있다. 이 책은 헤리퍼드 세계도의 곳곳을 꼼꼼하게 분석하여, 그것에는 중세의 사상, 역사, 경험, 환상 등 온갖 것이 담긴 흥미로운 세계도임을 알려 준다.


중세 세계도 중에서 근대를 선취한 이드리시 세계도


이드리시 세계도는 1149년 시칠리아 왕국의 로제르 2세의 명령 아래 만들어졌다. 로제르 2세는 종교나 민족을 구별하지 않고 학자들과 여행 경험자를 궁정에 모아 놓고 정보를 수집했으며, 그들의 논의를 기초로 제작했다.


이 책은 이드리시 세계도가 드물게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이나 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세계도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호류지 소장 초천축도와 헤리퍼드 세계도는 각각 불교와 기독교의 세계관을 기본 구도로 한다. 그리고 고금화이구역총요도는 중국의 왕권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이에 반해 이드리시 세계 지도는 특정한 세계관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드리시 세계 지도는 근대를 선취한 중세 세계도다.


한편 이 책은 중국의 ‘고금화이구역총요도’에 대해서도 분석하는데, 이는 우리가 이미 익숙하게 보아 온 화이사상이 담긴 지도다.


세계지도의 성립을 알리는 지도, 칸티노 세계 지도


이 책은 칸티노 세계 지도가 앞선 중세 세계도나 동시대의 세계 지도와는 전혀 다른 획기성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지도의 구성 요소로서 제기한 사상성, 예술성, 과학성, 실용성,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줄 수 있으며, 세계 지도의 성립을 알리는 지도라는 것이다. 이 책은 칸티노 세계 지도는 지도사를 대표하는 걸작 가운데 하나라고 추켜올린다.


칸티노 세계 지도는 세계관에 기초한 세계도가 아닌 측량에 기초한 세계 지도다. 과학적 진전을 보여 주며, 대항해시대에 이루어진 이른바 ‘신대륙 발견’의 성과가 담겨 있다.


그렇지만 칸티노 세계 지도에도 세계관이 있다. 바로 세계에 군림하는 해양 제국 포르투갈의 위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은 빛나는 컴퍼스 로즈(원형 방위도)에서 잘 나타난다. 이전 세계도에는 성모자 상을 비롯한 종교적 상징이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칸티노 세계 지도에는 세속적 왕권의 상징인 태양을 그렸다. 지도 곳곳에는 소형 컴퍼스 로즈가 있는데, 이는 포르투갈이 세계에 걸쳐 있는 제국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대항해시대를 연 포르투갈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세계 지도다.

세계관을 나타내는 ‘세계도’에서 ‘세계 지도’로 바뀌어


<세계 지도의 탄생>은 각 문명을 대표하는 세계 지도를 분석함으로써 많은 즐거움을 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 책은 고대와 중세의 지도에는 사상성과 예술성이 중요하게 여겨졌으나, 근대에 이르러 과학성과 실용성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큰 흐름을 분석한다. 즉 세계관을 표현하는 ‘세계도’에서 세계를 표현하는 ‘세계 지도’로 바뀌어 온 큰 흐름을 보여 준다. 그렇지만 저자는 걸작 지도는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꽤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읽기에 어렵지는 않다. 친절하게도 저자가 쉽게 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지도에 관한 일본의 뛰어난 학술적 성과와 그것을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보여 부러워지기도 한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지도 전체 모습을 보여 주는 도판도 있고 세부 그림을 보여 주는 도판도 있기는 하지만, 설명에 비해 세부 모습을 보여 주는 도판이 적다. 그래서 글을 읽다가 앞뒤로 넘겨 가면서 지도를 다시 확인하는 약간의 수고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그런 약간의 아쉬움은 이 책이 주는 커다란 즐거움에 비할 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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