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장조의 살인
몰리 토고브 지음, 이순영 옮김 / 살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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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불협화음'이란 존재를 껄끄럽게 생각할 것이다. 아름답고 순조로운 곡조속에 등장하는 '불협화음'이란 녀석은 연주하는 이는 물론이고 듣는이로 하여금 이마살을 찡그리게 만드는 못된 녀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불협화음'이 한 사람을 광기속에 몰아넣고 반평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게 만든다면?? 'A장조의 살인'에 등장하는 로베르트 슈만은 불협화음 속에 자신을 던져넣고 고통받았다.

19세기 독일에는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음악가가 있었다. 아름다운 곡을 작곡해 사랑받은 로베르트 슈만과, 아름다운 연주로 사랑받은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 하지만 로베르트 슈만은 남들은 듣지 못하는 'A장조'가 계속 귀에 들린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결국 책의 화자인 프라이스 경위에게 사건을 맡기게 된다.

남들은 로베르트 슈만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며 수근대지만, 프라이스 경위는 작은 사실까지 꼼꼼하게 짚어가며 로베르트 슈만의 문제를 되짚어간다. 온갖 더러운 살인과 사기가 판치는 어두운 곳에서, 어찌보면 로베르트 슈만의 문제는 사소하게 보였을수도 있지만, 프라이스 경위는 어떤 무서운 사건이 시작될 것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프라이스 경위에게도 '불협화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이제비우스(몽상적이고 우울한 자아)와 플로레스탄(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아) 사이를 오가며 극단적인 감정의 기복을 보이는 슈만. 그리고 그런 남편을 곁에 두고 삶의 모든 무게를 어깨에 짊어맨 아름다운 클라라 슈만. 그런 클라라를 사랑하는 브람스까지 프라이스 경위가 깊이 파고 들수록 사건은 알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기만 한다.

그러다 평론가이자 기자인 아델만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프라이스 경위는 슈만의 광기어린 행동을 분석해야함은 물론,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찾아나서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갈 수록 정신분열이 심해지는 슈만의 일련의 행동, 클라라와 브람스의 비밀스런 애정행각, 결혼했음에도 여전히 슈만을 신뢰하지 못하는 장인, 그리고 사건 사이사이 떠다니는 '불협화음 A장조'가 마지막 결말을 향해 치열하게 달려간다. 

A장조는 결국 살인을 부른다. 클라이막스를 향해가는 교향곡처럼, 살인은 예고되어 있었지만 그 결말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에 'A장조의 살인'은 또다른 추리소설적 재미를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재미는 19세기의 세세한 장면과 더불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음악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재라 불린 그들이 거닌 거리 곳곳을 상상하며 책을 읽는 재미는,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슴설레는 재미일 것이다.

피아노 앞에 앉아 'A장조'를 꾹 눌러본다. 이 음으로 인해 수렁속에 빠진 슈만을 생각하며, 또한 'A장조'가 불러온 무서운 사건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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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늑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쓰시마 유코 지음, 김훈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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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머리속에는 '늑대'에 대한 온갖 부정적 시각만 존재한다. 어렸을때 읽었던 빨간망토와 늑대 때문일까? 늑대는 음흉하고, 포악해서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늘 생각해왔다. 하지만 책의 서문에서는 늑대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한때는 신성한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던 늑대.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들의 존재는 멸종하고 말았다. 이제는 정말로 이야기속에서나 늑대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묘지 근처를 떠돌며 살다가 보호소에 맡겨진 '미쓰오' 그리고 아기였을때 아버지를 잃어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유키코'는 우연처럼 서로를 만나게 된다. 무덤 근처를 돌며 유령처럼 살던 미쓰오는 실제로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온 죽음의 존재를 알게되고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그 기억을 가지고 있다. 미쓰오에게 죽음의 존재를 알게 해 준것은 바로 유키코의 아버지. 유키코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사랑을 택해 자살한다. 미쓰오는 자신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유키코를 찾아내 함께 여행을 떠난다. 세상이 '납치'라고 불렀던 그 사건은, 사실 소년과 소녀의 자그마한 여행이였던 것이다.

패전 후의 일본은 그야말로 정글이였다. 사람들은 늘 우울해했고, 살인과 납치, 도둑질이 만연하는 정글이였던 것이다. 그 속에서 소년과 소녀는 자신들의 이름을 버리고 모글리와 아켈라로 거듭나게 된다. 늑대의 대장으로서 사람의 갓난아기였던 모글리를 무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던 아켈라. 모글리가 커서는 아켈라를 지키게 되지만, 연약한 모글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인건 아켈라였다. 소년 역시 그런 마음으로 소녀를 받아들이고 '우리는 한 피'라고 외치며 소녀를 보호한다.

가족을 버리고 자살한 아버지를 둔 소녀는 늘 우울해하는 어머니와, 정신지체인 오빠 사이에서 항상 외로웠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목말랐던 소녀는 하루하루 똑같은 삶에 이미 지쳐있었다. 아기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묘지 근처를 떠돌며 죽음과 함께 살아왔던 소년은 어머니,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소녀를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여행을 지속하며 점차 가족이 되어가는 것이다.

신화 속, 그리고 고대의 늑대는 고고한 존재였다. 신성한 존재로 추앙받던 늑대는 사람들에 의해 멋대로 흉악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소년 역시 사람들에 의해 흉악한 존재로 손가락질 받은것이 아닐까?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던 소년과 소녀의 여행은 결국 소년이 납치범으로 감옥에 가고 소녀는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게 된다. 소년의 진짜 이름도 몰랐던 소녀는 자신의 여행을 추억하며 소년을 기억하게 된다.

늑대가 웃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소년과 소녀 역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와 웃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둘은 서로 만나, 마음을 터놓고 여행하며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정글같은 세상을 고고한 모습으로 거니는 늑대의 모습이야 말로 웃는 모습이 아닐까. 그런 늑대의 모습을 동경한 소년과 소녀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한 동안 책을 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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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시절]의 서평을 써주세요.
방황의 시절 문지 푸른 문학
다치아 마라이니 지음, 천지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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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말고, 표지속 무표정한 소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 이유...알 것만 같아' 웃는것도, 우는것도, 싫은것도 아닌 그저 무표정한 소녀.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상관없다는 그녀의 무관심이 나를 책 속으로 이끌었다. 

엔리카는 캄캄한 어둠속을 걷는 소녀다. 아버지는 생활을 돌보지 않고 새장 만드는 일에 미쳐있다. 생활을 책임진 어머니는 늘 피곤한 모습을 보이다 어느날 폐암으로 세상을 등진다. 사랑하는 남자친구는 엔리카를 그저 잠자리 파트너로만 여기고 필요할때만 부르고, 세상 남자들은 엔리카를 그저 한 번 품어보고 싶은 쾌락의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집에서도, 세상에서도 엔리카가 설 자리는 전혀 없다. 

원치않는 임신과, 원치않는 남자들과의 잠자리,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방황속에서도 엔리카는 갈 곳을 모르고 방황한다. 방황의 밑바닥에는 언젠가 푸석하고 기운없는 어머니처럼 찌들고 우울하게 늙어갈지 모른다는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누군가는 엔리카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방황하면 안된다고. 그럴수록 더욱더 기운을 내서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고. 하지만 그런 판에 박힌 말이 엔리카에게 도움이 될까? 어둠속에 길을 잃은 사람에게 말로만 방향을 설명하면 결코 출구를 찾지 못한다. 엔리카에게 필요한건, 결국 한 줄기 빛일 것이다. 

무책임한 아버지, 무책임한 남자친구, 사랑에 목말라하는 백작부인, 장례식을 도와주는 척하며 어머니의 물건을 훔쳐간 윗집 아주머니등 엔리카는 방황의 시절에 여러 사람들을 경험하고 겪어낸다. 그리고 마침내, 한 줄기 빛을 발견한다. 비틀거리며 방황하던 시절을 끝내고 자신에게 비친 한줄기 빛을 향해 걸어가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가난한 여자 고등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이란, 어쩌면 극히 제한적일 것이다. 애써 빛을 향한 엔리카가 다시 방황을 시작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덮는 그 순간 희망을 발견한 것은, 방황의 시절에 엔리카가 자신을 늘 되돌아보고 되돌아봤다는 점일 것이다. 방황의 시절은, 그렇게 엔리카에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방황의 시절은, 언젠가 지나가기 마련이다. 엔리카는 그녀만의 방황을 끝내고 세상으로 들어갔다. 그녀에게...소리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어리고 가난한 소녀의 심리상태를 잘 보여주었다. 그녀가 방황의 시절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과 상황들이 가슴속에 와닿았다. 결국 그녀가 잘 이겨내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일 것이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는 청소년들. 나만의 고민이 제일 커보일 시기지만, 남의 고민도 한 번쯤 돌아보면 좋을 것이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비가 오기 시작했다. 훈훈한 기운과 함께 빗방울은 듬성등성 인도 위로 떨어졌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곧 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우선은 저택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날 것이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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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독자서평단 활동 종료 설문

•  서평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 김어준님의 '건투를 빈다'  : 그저 그런 질문과 답이 있을 거라고 넘겨버렸을 책이였지만 알라딘 서평단 도서로 읽으면서 완전 몰입해버렸다. 내가 고민하는 질문들도 있었고, 고민했었던 질문들도 있었다. 식상한 대답이 아닌 가슴속을 파고드는 시원한 대답이 참 좋았고, 남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면서 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서 좋았던것 같다. 
•  서평단 도서의 문장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구절  

<나는 엄마처럼 못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신경숙님의 '엄마를 부탁해' 중에서

•  서평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 엄마를 부탁해 (읽으면서 생각도 많았고, 눈물도 많았다)

2. 바다의 기별 (김훈 선생님의 또다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3. 건투를 빈다 (이렇게 명쾌한 답변이 있다니!)

4. 혼자놀기 (혼자놀기의 달인인 나도 수많은 혼자놀기에 놀라버렸다!)

5. 방황의 시절(내가 방황하던 그 시절이 떠올라 한동안 책장을 덮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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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을 죽였을까 - 이시백 연작소설집
이시백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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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내 친구는 이런 말을 한다. 안 되면 다 때려치고 시골로 내려갈거라고. 그러면 내가 이렇게 대꾸한다. 내려가서 뭐할건데? 그러면 친구는 이렇게 받아친다. 농사나 짓고 살지 머. 농사는 아무나 짓냐? 라고 타박을 주면 시골에는 인심 좋은 분들이 많기 때문에 다 도와줄 거라고 큰소리 떵떵친다. 그런 내 친구에게 이시백님의 '누가 말을 죽였을까'를 선물했다. 이 책 다 읽고 나서 다시 얘기해보자는 말과 함께.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시골'에 대한 몇 가지 편견을 책을 읽으면서 타파할 수 있다. 시골 사람들은 무조건 착할거야, 다 퍼주는 넉넉한 인심을 갖고 있을거야, 좋은 공기 맡으며 사니 너그러울거야...라는 생각들. 하지만 시골사람 역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우리와 다를바가 없다. 시골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는 잘못된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날려버렸다. 

땅에 모든것을 올인하는 아버지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땅을 팔아버리고 서울로 가려는 자식들의 싸움.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와서 적응하려는 피나는 노력. 골프장 등을 짓기위해 투기하는 도시 사람들과 그에 휘둘리는 시골 사람들의 모습. 외국인 노동자들과 외국인 신부들에 대한 슬픈 자화상까지 현재 농촌의 모습과 더불어 우리네 모습까지 모두 맛깔나게 담겨있다.

FTA로 인해 머리 띠두르며 데모하는 그들을 보면서도 무덤덤했던 나다. 우리것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골에서 온 몸으로 투쟁하는 그들을 보듬어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것을 사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책을 덮고 나서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들은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처럼 짭조름하기도 하고, 달달하기도 하고, 눈물나게 맵기도 하다. 그런 양념들은 하나의 이야기안에 잘 어우러져 많은 걸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한다. 

조금 더 그들에게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땅으로 돌아갈 우리다. 땅과 함께 숨쉬고 땅을 모든 것으로 알고 사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삶을 사는것 아닐까싶다. 무식한 시골 사람들이라고 무시하기 보다, 그들이 처한 현실을 같이 돌아보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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