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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신경숙님의 ‘외딴방’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살아온 시대도 견뎌낸 아픔의 무게도 각각 다를 테지만 꼭 내 마음속의 외딴방을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아무도 보지 못할 나만의 외딴방.
열여섯의 그녀는 노란 장판에 앉아 오빠에게 글을 쓰고 있다. 여기서 데려가 달라고. 그러다가 그녀는 어떤 의식처럼 발바닥을 쇠스랑에 찍혀버리고 만다. 아픈 발을 이끌고 쇠스랑을 우물 속에 던져 넣었던 밤. 그 밤은 단지 쇠스랑을 던져 넣었던 평범한 날이 아니라 생의 어떤 전환기가 되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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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편지를 기다리다가 내 발바닥을 쇠스랑으로 찍어버렸던 열여섯에, 나는 생은 독한 상처로 이루어지는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 독함을 끌어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순결한 한 가지를 내 마음에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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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던 시절, 나는 이미 방황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잘할 것만 같았던 철없는 시절이 지나가자마자, 무겁기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느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되고 싶었던 것도 없었다. 중학교 때 상위권을 유지하던 성적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녀가 마침내 다니고 싶었던 학교에 가고서도 방황했던 것처럼.
그 시절 공순이라 불렸던 그녀들은 일도 하면서 공부도 병행하는 철인 이였다. 하지만 주간 학생들에게 늘 무시당했다. 마음 놓고 노래도 부르지 못하면서, 혹은 체육복을 훔쳐갔다는 오해를 받으면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시절은, 모든 것이 성적으로 평가되었다. 무엇을 하든 일등과 꼴찌로 나뉘는 각박하고 차가운 시선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으로 학생으로 취급받지 못했던 그 시절에 난 반항하듯, 뛰쳐나가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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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이 필요했었다. 내가 학교에 가기 위해서, 큰오빠의 가발을 담담하게 빗질하기 위해서, 공장 굴뚝의 연기를 참아낼 수 있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소설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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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처럼, 내게는 소설만이 숨막히는 현실을 참아낼 수 있는 공기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책을 찾아 헤맸다. 읽고, 읽으면서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꼭 일등하지 않아도, 일류대학에 가지 않아도 넌 충분히 사랑받고 꿈을 찾아갈 존재라고 말해주는 수많은 책들. 그녀에게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이 있었다면 내겐 그녀가 썼던 책들이 늘 교과서 맨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부터 문학과 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만약 그때 그녀의 ‘외딴방’을 읽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만약...그랬다면 내 친구 J처럼 옥상에서 뛰어내리진 않았을지. J는 옥상위에서 무엇을 바라봤을까. 무엇이 그녀를 시험 도중에 옥상 위로 내몰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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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산다는 것이지. 살아 있다는 것. 우리가 그 골목에서 간이숙박소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야. 일상에 매여 일 년을 통화 한번 못 한다고 해도 수첩 속에 오래된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 내 손을 뻗어 다른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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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열하는 친구의 어머니와 동생을 보며, 끝까지 살아내지 못한 친구를 원망했다. 그 녀석에게 살아갈 꿈이 정녕 없었던 건지. 그녀가 희재 언니의 방문을 잠근 것을 평생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 녀석의 힘없는 어깨가 눈앞에 선연히 떠오른다. 만약 내가 그때, 그 녀석의 어깨를 돌려세워 어딘가로 달아났다면, 그 녀석은 옥상위로 쫓기듯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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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별을 향해 높고 아름답게 잠든 새들을 언젠가는 보러 갈 거야. 아무리 우리를 업수이 여겨도 내 이 마음 버리지 않을 거야. 언젠가 그들을 내 눈으로 보러 갈 그날을 기약하며 나는 살아갈 거야. 별을 향하고 숲속에서 자고 있는 새들은 나를 용서하겠지. 숲을 평화로운 잠으로 아름다이 뒤덮고 있던 백로들의 무리를 내 눈으로 보러갈 거야. 너도 같이 가겠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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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외딴방을 다시 들여다보기가 겁이 났다. 다시 외딴방 안으로 들어가면 J가 깊고 깊은 눈으로 나를 들여다 볼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꽁꽁 잠근 외딴방 언저리만 빙빙 돌아가 다시 되돌아 나오기 일쑤였다. 그때 신경숙님의 외딴방을 다시 읽을 수 있어서 다행 이였다. 마냥 순수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었던 그때 그 시절, 그 기억만으로도 이미 살아갈 힘을 얻었노라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기억이 있더라도, 가슴속에 묻어두기 보다는 외딴방의 문을 열고 기꺼이 과거를 껴안아 함께 하자고. 그렇게 외딴방의 문이 열렸을때, 비로소 J와 함께 아름다운 백로들의 모습을 보러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방안에서 홀로 외로웠을 J에게 말할 수 있다. 너도 같이 가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