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관람차 살림 펀픽션 2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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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악몽의 엘리베이터'에서 폐쇄된 공간을 이용한, 사람들의 심리를 잘 꿰뚫어 본 기노시타 한타의 솜씨에 박수를 보낸적이 있다. 인간 본성과 더불어, 폐쇄된 공간이 줄 수 있는 공포가 어떤 것인지 잘 말해주는것 같아, 숨죽이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기노시타 한타가 '관람차'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늘 높은 곳까지 아찔하게 올라가는 관람차-하지만 그 곳은 곧, 공포의 장소가 된다. 한 바퀴 돌아 무사히 지상으로 돌아오면 다행이지만 누군가에 의해 관람차가 멈춰진다면, 그 자체로서도 공포이리라.

관람차마다 각각 사연있는 사람들이 올라탔지만, 제일 큰 사연을 간직한 곳은 18호다. 시시한 건달인줄 알았던 다이지로는 데이트를 핑계로 니나를 관람차에 태운다. 그들이 탄 곳은 18호 관람차-관람차에 타자마자 다이지로는 니나에게 사과를 한다. 당신을 납치해서 미안하다고. 니나는 장난으로 받아들이지만 다이지로가 내미는 폭탄에 할 말을 잃는다. 도망갈 곳 없는 곳에서 니나는 납치된 것이다.

이제부터 시간싸움이다. 다이지로는 니나의 아버지에게서 천문학적인 돈을 뜯어내려 하고, 니나는 나름대로 납치범과 머리싸움을 하려 분주하다. 관람차가 멈춘 그 시각, 다른 관람차들도 각자의 사정으로 복잡한데, 17호에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순진한 가장이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19호에는 게이 커플(?)인 듯한 늙은 남자와 젊은 남자가 바깥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20호에는 자칭 '이별청부업'을 하고 있는 여자가 관람차가 멈춘것을 기회로 돈을 뜯어낼 궁리를 하고 있다.

이렇게 관람차마다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그들은 시간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면서 관람차에 탄 사람들의 과거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악몽의 엘리베이터를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각기 인물들에 대한 연결고리였다. 물론 목적이 있어서 단합한 그들이였지만, 엘리베이터라는 밀실공간에 어울리는 공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관람차 편에는 각 인물들에 대한 연결고리가 뒤로 갈 수록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그들의 과거 이야기는 무시무시한 '납치'라는 범죄를 왜, 일으킬 수 밖에 없었는지 진지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불어 기노시타 한타만의 '웃음'코드는 자칫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 구조를 마음 편히 읽어갈 수 있도록 쉬게 해준다. 오랫만에 책을 읽으며 깔깔 웃어봤으니 말이다. 

인간 본성은 궁지에 몰려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마음 속 심연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기노시타 한타는 폐쇄된 관람차 안에서 관람객들의 깊은 심연을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웃음도 함께 말이다. 

더운 여름, 끈적거리고 귀찮은게 싫다면 기노시타 한타의 '악몽의 관람차'를 꺼내들어보면 어떨지. 분명, 후회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그가 전해주는 관람차안의 이야기는 더운 여름조차 잊게 만들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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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들
로빈 브랜디 지음, 이수영 옮김 / 생각과느낌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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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시작은, 미나의 고등학교 첫학기의 시작과 함께 출발한다.
즐거워야 할 고등학교 시절이지만, 미나는 잔뜩 우울하다. '어떤 일'로 인해서 자신의 친한 친구와 교회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설사가상으로 부모님은 미나를 괴롭히는 친구들 사이로 미나를 보내면서 일종의 벌을 주고 있는 중이다. 집 안에서도, 학교에서도 기댈 곳 없는 미나는 쓸쓸하고 우울하다.

그러다 미나는, 실험 파트너로 별나고 특이한 케이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케이시 보다도 더 별난 생물 선생님-셰퍼드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과 짝이 되지 않은걸 안도하지만, 너무나 별난 짝의 행동을 보며 자신이 제대로 짝을 만난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하지만, 별난 짝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짝이였다. 그 짝으로 인해 생물 레포트에서 1등을 하게 되면서 미나는 점차 과학의 즐거움을 알아가게 된다.

교과과정중에 하나인 '진화론'을 수업하는 날, 교회 아이들은 단체로 선생님께 등을 돌리고 앉으며 항의의 뜻을 표한다. 자신들의 신앙에 위배되는 진화론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였다. 급기야, 목사님이 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방문하여 셰퍼드 선생님에게 압력을 넣기 시작한다. 진화론 대신, 지적설계론(창조론)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셰퍼드 선생님은 이렇게 답한다.

"과학은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말합니다. 관찰과 설명의 일이죠.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천왕이 지구를 만들었느냐 아니냐를 논하는 건 과학의 일이 아닙니다. 과학의 일은 우리가 보는 것을 설명해주고 우리 스스로 더 많은 것을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죠....과학은 그 질문들의 답을 우리 스스로 자유롭게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니까요."

과격한 근본주의 기독교 신자들은 이에 대한 답변을 무시하고 학교 안팎으로 시위를 벌이며 진화론 자체를 언급하기 거부한다. 시위를 하는 친구들을 보며 미나는 복잡한 마음에 휩싸인다. 만약 자신이 그들과 멀어지지 않았다면, 그들 사이에 섞여 시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들-그것은 곧, 성경의 말씀에만 사로잡혀 다른 시각을 갖지 못하고 편협한 자신만의 세계에 사로잡힌다는 걸 뜻한다. 그런 좁은 시각을, 미나는 바라지 않는다.

미나는 케이시와, 케이시의 누나인 케일라와 친해지면서, 자신의 집에서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을 알아가게 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에만 사로잡혀 좁은 세계관에 갇혀있던 자신을 벗어버리고, '성경 소녀'로서 자신의 의견을 전세계 많은 친구들과 나누게 된다.

이 책의 장점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예민한 문제를 건드린것에 있는게 아니다. '미나'라는 소녀가 어떻게 자신만의 껍질을 깨고, 세상속으로 나아가느냐하는 여정을 따라가는 것에 있는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테레사와 다른 교회 친구들이랑 지내왔다. 내가 그 종의 일부라는 데에 매우 만족하면서. 그런데 일-데니 피어스의 일-이 생겼고 내 안의 무언가가 변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고통이 있었지만 비로소 나는 새로운 생명체,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는 돌연변인 게 뿌듯하다. 그 덕택에 내가 이만큼 성장했으니까>

셰퍼드 선생님이 말하는 진화론은 간단하다. 태초에 생겨난 어떤 것들은 수많은 세월동안 돌연변이 현상을 거쳐, 강한 것만 살아남고 약한 것은 퇴화됐다는 것. 돌연변이라고 무조건 나쁜것이 아니라, 강한 것만이 세월의 흐름속에 순화되어 변화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돌연변이 현상은 지금, 현재, 우리들 삶속에서 혹은 미나의 삶속에서 면면이 이어져왔던 것이다. 

미나는,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대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했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미나는 그런 시간동안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그러면서 더욱더 넓은 세계를 보게 되었고,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되었다. 그런 미나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돌연변이들이 고마워졌다. 결국 그들로 인해, 세상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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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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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님의 ‘외딴방’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살아온 시대도 견뎌낸 아픔의 무게도 각각 다를 테지만 꼭 내 마음속의 외딴방을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아무도 보지 못할 나만의 외딴방.

열여섯의 그녀는 노란 장판에 앉아 오빠에게 글을 쓰고 있다. 여기서 데려가 달라고. 그러다가 그녀는 어떤 의식처럼 발바닥을 쇠스랑에 찍혀버리고 만다. 아픈 발을 이끌고 쇠스랑을 우물 속에 던져 넣었던 밤. 그 밤은 단지 쇠스랑을 던져 넣었던 평범한 날이 아니라 생의 어떤 전환기가 되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빠의 편지를 기다리다가 내 발바닥을 쇠스랑으로 찍어버렸던 열여섯에, 나는 생은 독한 상처로 이루어지는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 독함을 끌어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순결한 한 가지를 내 마음에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던 시절, 나는 이미 방황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잘할 것만 같았던 철없는 시절이 지나가자마자, 무겁기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느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되고 싶었던 것도 없었다. 중학교 때 상위권을 유지하던 성적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녀가 마침내 다니고 싶었던 학교에 가고서도 방황했던 것처럼.

그 시절 공순이라 불렸던 그녀들은 일도 하면서 공부도 병행하는 철인 이였다. 하지만 주간 학생들에게 늘 무시당했다. 마음 놓고 노래도 부르지 못하면서, 혹은 체육복을 훔쳐갔다는 오해를 받으면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시절은, 모든 것이 성적으로 평가되었다. 무엇을 하든 일등과 꼴찌로 나뉘는 각박하고 차가운 시선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으로 학생으로 취급받지 못했던 그 시절에 난 반항하듯, 뛰쳐나가기 일쑤였다.

   
  나는 꿈이 필요했었다. 내가 학교에 가기 위해서, 큰오빠의 가발을 담담하게 빗질하기 위해서, 공장 굴뚝의 연기를 참아낼 수 있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소설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그녀처럼, 내게는 소설만이 숨막히는 현실을 참아낼 수 있는 공기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책을 찾아 헤맸다. 읽고, 읽으면서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꼭 일등하지 않아도, 일류대학에 가지 않아도 넌 충분히 사랑받고 꿈을 찾아갈 존재라고 말해주는 수많은 책들. 그녀에게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이 있었다면 내겐 그녀가 썼던 책들이 늘 교과서 맨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부터 문학과 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만약 그때 그녀의 ‘외딴방’을 읽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만약...그랬다면 내 친구 J처럼 옥상에서 뛰어내리진 않았을지. J는 옥상위에서 무엇을 바라봤을까. 무엇이 그녀를 시험 도중에 옥상 위로 내몰았을까. 

   
  -……중요한 것은 산다는 것이지.  살아 있다는 것. 우리가 그 골목에서 간이숙박소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야. 일상에 매여 일 년을 통화 한번 못 한다고 해도 수첩 속에 오래된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 내 손을 뻗어 다른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  
   


오열하는 친구의 어머니와 동생을 보며, 끝까지 살아내지 못한 친구를 원망했다. 그 녀석에게 살아갈 꿈이 정녕 없었던 건지. 그녀가 희재 언니의 방문을 잠근 것을 평생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 녀석의 힘없는 어깨가 눈앞에 선연히 떠오른다. 만약 내가 그때, 그 녀석의 어깨를 돌려세워 어딘가로 달아났다면, 그 녀석은 옥상위로 쫓기듯 도망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별을 향해 높고 아름답게 잠든 새들을 언젠가는 보러 갈 거야. 아무리 우리를 업수이 여겨도 내 이 마음 버리지 않을 거야. 언젠가 그들을 내 눈으로 보러 갈 그날을 기약하며 나는 살아갈 거야. 별을 향하고 숲속에서 자고 있는 새들은 나를 용서하겠지. 숲을 평화로운 잠으로 아름다이 뒤덮고 있던 백로들의 무리를 내 눈으로 보러갈 거야. 너도 같이 가겠니?  
   

내 안에 있는 외딴방을 다시 들여다보기가 겁이 났다. 다시 외딴방 안으로 들어가면 J가 깊고 깊은 눈으로 나를 들여다 볼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꽁꽁 잠근 외딴방 언저리만 빙빙 돌아가 다시 되돌아 나오기 일쑤였다. 그때 신경숙님의 외딴방을 다시 읽을 수 있어서 다행 이였다. 마냥 순수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었던 그때 그 시절, 그 기억만으로도 이미 살아갈 힘을 얻었노라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기억이 있더라도, 가슴속에 묻어두기 보다는 외딴방의 문을 열고 기꺼이 과거를 껴안아 함께 하자고. 그렇게 외딴방의 문이 열렸을때, 비로소 J와 함께 아름다운 백로들의 모습을 보러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방안에서 홀로 외로웠을 J에게 말할 수 있다. 너도 같이 가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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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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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탐정'의 세계에 깊이 빠져든건 중학교때였다. 막, 중학교 1학년이 됐을때 엄마를 졸라서 셜록 홈즈 시리즈 전편을 선물받았다. 야금야금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던 처음은, 책을 펼치자마자 저 멀리로 사라져버렸다. 셜록 홈즈에게 빠져들었고 그가 벌이는 수사에 매료되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탐정에게 의뢰한다. 탐정은 의뢰인과 주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범인을 밝혀낸다. 자신의 범죄를 철저히 은닉하려는 범인과, 그것을 세상 속으로 밝혀내려는 탐정의 대결은 매 권마다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하라 료의 '내가 죽인 소녀'를 펼쳐들었을때, 중학교때 정신없이 읽어 내려가던 셜록 홈즈 전집이 생각났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탐정의 세계가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였다. 의뢰인이 문 앞에 서자마자 모든 걸 단박에 알아맞히는 셜록 홈즈는 아니지만, 탐정 사와자키는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책 곳곳마다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그에게, 그리고 책 속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어느 평범한 날인줄 알았던 하루, 하지만 그 날은 사와자키에게 최악의 날이였다. 사건 의뢰를 받고 찾아간 어느 집에서 순식간에 유괴범으로 몰린 것. 그것은 사건의 시작이였다. 그는 유괴범의 지목으로 인해 돈가방을 전달하게 되고, 순식간의 소녀의 목숨을 좌지우지 하게 되는 중요한 인물이 되고 만다.

결국 몸값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협상은 결렬됐다. 그리고 사와자키는 처참히 죽은 소녀를 발견한다. 그 소녀는, 사와자키가 돈가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죽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사와자키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건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 것이다.

사와자키는 탐정이다. 경찰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침투할 수 있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 그의 신분을 이용해서 소녀를 납치하고 죽인 범인의 윤곽을 그려나간다. 그러면서 소녀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조금씩 조금씩 범인의 뒷모습을 밝혀내게 된다.

흔히 추리소설에서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정작 문체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라 료의 책은 장면의 묘사와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추리소설인데, 문체가 아름답다니 아이러니한 표현일 수 있겠으나 한 편의 아름다운 소설을 읽는듯한 느낌을 받았으니, 역시 저 표현이 맞을 것이다.

또한 인간냄새 폴폴 풍기는 탐정 사와자키는 그만의 뚝심있는 역량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무능한 경찰을 비웃는 천재 탐정이 아닌, 그 역시 소녀의 죽음으로 가슴 아파하는 인간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사와자키라는 인물에 빠져들었는지 모르겠다.

사건의 결말은 꽤 충격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와 갈등이 등장하지만, 그런 결말은 사와자키가 아니면 밝혀내지 못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탐정 사와자키와 하라 료에게 깊이 매료된 나는, 그의 처녀작을 읽어볼 생각이다. 더운 여름날 밤은 사와자키의 탐정 사무실을 두드리면서 순식간에 서늘해질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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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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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주위 사람들이 숱하게 죽었다 /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나는 너무나 불행했고 /  나는 너무나 안절부절 / 나는 더없이 외로웠다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中

스무살, 가장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날 시절.
하지만 마해금과 그의 친구들이 지나온 80년대 광주는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권력은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했고, 힘없는 민중은 폭력앞에 말없이 쓰러져갔다. 멀쩡한 사람이 어느순간 총에 맞아 죽어가던 그 어느 날, 스무살 청춘들이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그 시절을.

헌혈하러 가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유탄에 죽어간 경애. 그런 경애를 바로 코앞에서 떠난 보낸 아픔에 자신도 역시 삶의 끈을 놓아버린 수경.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방랑을 선택한 승희, 어렸을때부터 세상에 대해 모든것을 책임져야했던 만영, 대학생이지만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의 현장으로 뛰어든 정신과 승규, 그리고 대학생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태용.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청춘들의 이야기.
친구가 억울하게 죽어갔어도 모두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게 너무나 이상하다고 말하던 수경은 결국 죽음을 택한다. 아무렇지 않은 세상이 이상해서, 그리고 혼자서 흔들리는 자신이 이상해서. 친구의 죽음 앞에서도 때가 되면 배고 고프고, 즐거우면 웃는게 싫어진 해금은 마냥 가슴이 아프다.

누가 웃지 말라고 해서 웃지 않는 것은 아닐진대, 꼭 누군가 웃는 것을 용서치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인가. 어쩌다가 웃음을 참을 수 없을 만치 행복한 순간에도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습관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 혹시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슬픔이 되지 않을까. 따뜻한 내 집 창 밖에 지금 누군가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지는 않은가. 노심초사해야만 겨우 안심이 되는 이 못 말릴 습성이, 노인네들처럼 온갖 세상 근심걱정 다 떠안아야만 겨우 내가 사람 노릇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이 딱한 습벽이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마음껏 웃지도 못하던 스무살의 어느 날, 그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그 시절을 이어간다. 시대와 시절을 탓하며 기꺼이 어긋난 길을 선택한 그들이지만, 그렇기에 그들의 스무살이 더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스무살들은 절대 알지 못 할 그날들을 말이다.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무슨 사건이 일어나도 내 갈길만 가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 대신, 나라를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고 친구를 생각하는 해금과 수선화회 멤버들이 훨씬 아름다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건 왜일까.

사랑을 하는 설레던 순간조차 마음껏 웃지 못하던 시절이였지만, 그래도 그들은 아름다웠다.
아직 흔들려도 아름다운 그들의 스무살 이야기는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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