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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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으로 불려지길 원하는 사람일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타인의 생각과 시선을 그토록 신경 쓰며 살아왔던 내가, 이제는 잘 하지 않는 생각들이다.
그런데 권여선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다시 이런 상념에 빠지게 된다.


단 한번뿐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8편의 단편으로 담아냈다.


한 사람의 내면으로 천천히 다가가 들여다 본 그들의 여정은, 낯선 거리감 속에서 마치 조금씩 반짝거리는 빛 줄기를 만난 듯 한 발 나아간 앞 날이 예상되는 누군가도 있었고, 세상과는 고립되어 자신은 겪어보지 못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을 통해 더욱 더 깊은 어둠으로만 빠져들어가는 누군가도 있었으며, 서글픈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적응하고 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기에 세상에 뿌려진 수 많은 타인들을 만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을, 감정들을 파고 들어가며 살아가야 했던 누군가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마주했다.

<모르는 영역> 편에 담긴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는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관계 속에서의 위태로움을 가까이에서 바라봤던 입장으로써 안타까움과 불안감을 가진 채 들여다 봐야 했지만, 서서히 느슨해지는 이들의 변화에 묘한 반가움도 느낄 수 있었기에 괜시리 뭉클하기도 했다.

각자의 사정을 더는 이해하고 싶지 않게 된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포기는 하지말라고 하는 듯, 서로를 헤아리는 마음을 어떻게든 심어주고 싶었던 노력과 애달팠던 마음이 헛되지만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의 그 기쁨을 저버리지는 말라고 하는 듯.


물론, 때로는 포기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참 씁쓸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오히려 당장에 불행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예쁘고 화려한 포장지로 감싼 내용물을 꺼내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그 속에 뭐가 들어 있을지 조심스럽게 뜯어보는 그 순간의 행복도 물론 좋다.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마음이 얼마나 좋은가. 기대감을 가져본다는게.

그런데 나와 우리 주변 사람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보기 좋게 포장한 것이, 그들의 실제 음성이 들려오듯 그 감정 그대로 전달되는 공감의 글을 볼 때만큼 와닿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번에 다시금 실감했다.


엄마가 떠넘기고 간 그 빚을 고스란히 받은 언니가, 또 다시 어린 동생인 소희에게 주고 떠나버린 이야기를 담은 <손톱> 편은 어린 소희에게 이 세상과 상황이 너무나 가혹했다.

어떻게든 또 감당하고 살아내야 했기에 남들 눈에는 모지락스럽게 보일지언정, 다른 방법이 없다.
먹는거 입는 거 줄이고 줄여서 돈만 미친듯이 벌고 살아야 된다. 그럼에도 이 상황이 도대체 언제쯤에야 끝날지, 자신의 나이가 얼마나 더 들어야 좀 나아지는건지 까마득하기만 한 소희의 이야기는 쉽게 다가가고 안아줄 수 없을만큼 조심스러웠다.
사람에게 마음을 많이 다쳤을 그녀에게 무슨 수로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섣부른 위로는 소희의 마음을 더 다치게 할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사람들이 안절부절 못하게 할 만큼, 그렇게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안절부절 못하게 할 만큼 불쌍한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라고 느끼게 하는 가혹함을 줄까봐.

그러니 이 순간의 감정들을 담아 내는 저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얼마나 조심스러웠을까.

그럼에도 우연히 만난 자신과 닮은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가 던진 웃음에 같이 웃어주는 소희다.
어느 날 운 좋게 앉아서 갈 수 있었던 버스 안, 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따뜻하다’ 느끼며 이 순간의 좋음을 느껴보는 그런 소희다.


기대되는 미래를 바라보며 행복을 꿈꾸는 사람이 있듯이, 당장에 고통이 덜 한 삶, 덜 불행한 삶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저자는 알아주고 있었다. 이렇게 드러내기 보다는 덜어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도 박탈감 느끼지 않도록 인간의 정신을 곰곰이 들여다 본 사람처럼 생각해주는 저자의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용기가 생긴다.
이 용기가 어디서 왔는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잘 살고 싶어졌다. 더 잘 살아내고 싶어졌다.

바닥에 떨어졌다고 그대로 포기하지 말고, 그럼 그 바닥에 맞닿아진 채로 또 살아보자 생각하면서 표면적인 변화가 없더라도 그냥 잘 살아보자라고 하는 그 힘을 얻었다.
주어진 삶을 만끽하다가 괴로운 날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면, 그럼 그 삶 마저도 살자. 잘 살자. 더 잘 살아내보자.


그들은, 우리는,
비록 자신들이 원하던 것이 아닐지라도 주어진 대로 또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드러내기를 주저하며 덜어내는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면서 느꼈을 서글프고 애달픈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섬세하게 담아준, 또 그렇기에 쓰라린 마음으로 읽을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준, 하지만 섣부른 희망을 말하지 않아도 위로를 받음으로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만들어 준 <아직 멀었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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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껍데기 속에 갇힌 느낌, 바삭하게 구워지는 과자처럼 겉은 점점 검고 단단해지는데 속은 끓는 시럽처럼 뜨거운 핏물이 휘도는 느낌. 겉과 속이 분리된 느낌이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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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날갯짓의 급격한 감속, 날개를 접고 사뿐히 가지에 착지하는 모습, 가지의 흔들림과 정지...... 그런 정물적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새는 돌연 가지를 박차고 날아갔고 그 바람에 연한 잎을 소복하게 매단 나뭇가지는 다시 흔들리다 멈추었다. 멍하니 서서 새가 몰고 온 작은 파문과 고요의 회복을 지켜보던 그는 지금 무언가 자신의 내부에서 엄청난 것이 살짝 벌어졌다 다물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새가 날아와 앉는 순간부터 나뭇가지가 느꼈을 흥분과 불길한 예감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새여, 너의 작은 고리 같은 두 발이 나를 움켜잡는 착지로 이만큼 흔들렸으니 네가 나를 놓고 떠나는 순간 나는 또 그만큼 흔들려야하리. - P28

그게 무엇인지 알수 없지만 그에게 왔던 것은 이미 사라져버렸고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고 영영 지울 수도 없으리라고 그는 침울하게 생각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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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ㅣ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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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흘러가는 전개로 인해 트릭이나 놀라운 반전의 대해서는 기대에 못 미쳐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자신의 쾌락과 이익에 가려져 ‘타인의 고통’은 따지지 않는 ‘악의’를 갖은 자들의 대한 심리 표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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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ㅣ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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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자기전에 영화 한 편씩 보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바쁜 업무를 마치고 퇴근 한 후에 즐기는 꿀맛같은 시간이다.
주로 범죄 스릴러 액션 전쟁 미스터리를 즐겨보는 것 같고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는 잘 안 보게 된다.

그런데 책을 읽을 때는 전쟁을 제외하고는 영화 볼 때의 취향과 거리가 조금 있는 편이다. 책으로는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감정들에 내 삶을 덧대어 보며 공감도 해 보고, 그 안에서 위안이나 깨달음을 얻고 싶은 심리가 좀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추리소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와이더닛 방식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X의 헌신>을 읽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들여다보는 범인의 심리와 사건을 파헤치는 인물의 예리한 직감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으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 기억에 오래 남았던 부분은 겉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마른 낙엽과도 같은 주인공 ‘이시가미’의 마지막 절규였다. 꽤 임팩트 있었다.

철저히 숨기며 보호하고 싶었던 첫눈에 반한 여자를 향한 이시가미의 ‘단심’이 얼마나 절절했는지를, 포효하며 처절하게 무너지는 그 한 장면 만으로도 알게 해줬고 무모해 보였던 그의 선택들이 납득이 되었기에 여운이 오래 갔다.


이번에 읽은 <악의>도 범인이 누구인지가 초점이 아니라 범죄동기를 쫓고, 밝혀지는 진실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심리를 알아보는 내용등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사건의 전개를 기대하며 읽는 재미도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보다 더 기대한 것은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소설이기에, 범죄의 동기나 범인이 밝혀지기 전후로 나눠지는 그 인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변화, 감정들이 더 궁금했다.


전직 교사이자 작가로 전업한 노노구치와 그의 어릴 적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히다카. 이 둘은 ‘고스트 라이터’라는 복잡한 관계로 맺어져 있는데, 노노구치가 히다카를 살해한다.
이 둘 사이에 발생한 살인사건을 담당한 형사 ‘가가’가 냉철하면서도 섬세한 추리로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간다.

대필작가로서 친구에게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작품들을 넘겨야 하는 노노구치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히다카의 부인과 사랑에 빠졌던 것.

첫 만남에서의 그 짧은 찰나에 사랑에 빠져버린 노노구치가 그 여자를 지키기 위한 무모한 선택은 납득할 만한 사유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읽다가도 맥이 좀 빠지게 되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확실히 궁금증을 자아 내도록 글을 써내려가기 때문에 술술 읽혀지긴 했다.

어느 날, 히다카의 부인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고, 히다카는 시간이 흘러 다른 여성과 재혼을 한다. 친구 부인과의 불륜이라는 약점이 사라졌음에도, 노노구치의 대필작가로서의 역할은 계속 이어나간다.

도대체 왜? 이들에게는 무슨 악연이 있는 것일까?

원룸맨션 한 칸의 작은 집에 살며 아내도 없는 노노구치와 달리 히다카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어린시절 모두의 꿈이었던 곳에 집이 있고, 아내도 있고, 심지어 노노구치 자신의 일자리도 히다카의 인맥으로 얻었기에 그동안 쌓인 열등감과 질투심으로 살인이라는 선택을 한 것일까?


이 책은 단순히 범죄와 그 동기만을 다루지 않고 성장배경의 문제점과 왕따, 선입견, 무관심, 방관 등의 사회문제도 함께 다루고 있다.

인물묘사를 통해 우리는 ‘선입견’을 갖게 마련이다.
이 선입견이라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심리 중 하나인데, 자칫 자신의 생각을 거치지도 않은 채로 편견을 갖고 판단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무런 죄도 없는 인물에게 선입견을 갖고 한번도 본 적 없는 그의 얼굴과 표정과 행실(물론 가상의 인물이지만)을 내 멋대로 상상하고 있었다.


다소 예상대로 흘러가는 전개로 인해 트릭이나 놀라운 반전의 대해서는 기대에 못 미쳐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자신의 쾌락과 이익에 가려져 ‘타인의 고통’은 따지지 않는 ‘악의’를 갖은 자들의 대한 심리 표현이 좋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다른 책인 <편지>와 <기도의 막이 내릴 때>를 주문 했는데, 이 두 책들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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