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들 2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5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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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과 이어진다.

러시아의 볼가강 유역 독일 식민지 마을 ‘그나덴탈’에 사는 ‘바흐’는 아이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삶의 큰 흥분을 느끼지 못한 그는 시를 사랑했고, 잠들기 전 독서시간이 하루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런 바흐의 심장을 들끓게 한 ‘클라라’와의 아련한 사랑, 그리고 1918년~1938년 사이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고통 속 볼가강 유역에서 독일계 러시아인으로 살아갔던 이야기를 담은 <나의 아이들>은 읽는 재미가 상당해 1권을 다 읽고 바로 2권을 읽는 것이 기대감으로 들뜨긴 해도 마음만은 편치가 않았다.

아무래도 1918년~1938년 사이 발생한 역사적 사건들의 여파가 그나덴탈 주민의 삶을 비켜나갈 수 없을 테니 고난이 예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1편에서 그나덴탈을 떠났던 사람들이 트랙터를 갖고 다시 돌아왔다.
머지않아 농업의 집단화가 시작될 것이고 이 말은 희생양이 된 농민들이 추방당하거나 기근에 시달리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의미 아닌가.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인 흐름은 단지 등장인물들 현실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어줄 뿐이었다. 저자의 몰입하게 하는 섬세한 감각이, 이 소설을 예상 가능한 문장들로 채우지 않기 때문이다.


바흐는 그나덴탈에 새로 부임한 당 지도자 ‘호프만’을 만난다.
글재주가 없는 꼽추인데, 그래서인지 글쓰기에 탁월한 바흐를 자신의 끔찍한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로 선택한다. (이들이 만나게 된 사연은 1권에 자세히 나온다.)
그리고 바흐는 호프만을 위해 옛날이야기를 써서 갖다 주기 시작한다. 먹을 것을 글과 맞바꿔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바흐가 써 온 소설을 바탕으로 호프만은 자신의 이념에 맞게 수정의 작업을 거친 후, 그나덴탈 사람들이 보는 신문인 <볼가 쿠리어>에 싣기 시작한다. 즉, 선동을 목적으로 바흐의 글쓰기 능력을 갖고 오는 것이었다.

그나덴탈인들의 삶의 모습은 중세시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호프만은 구시대적인 삶을 사는 그나덴탈을 자신이 원하는 정부에 필요한 용도를 갖춘 도시인 사회주의 건설에 혈안이 돼 있었다. 발주처이자 공사 현장에 감독관도 되었다가 관리관도 되었다가 현장 대리인도 되어 여기저기 간섭을 하고 다녔다.

호프만이 미친개미 날뛰듯 하는 동안 누군가 ‘볼가 독일 소비에트 공화국’에 금가루라도 뿌려 놓았는지 폐허로 가득했던 그나덴탈은 이제 주민의 마당이 아닌 콜호스의 공공재산 동물농장에서 우는 낙타와, 말소리가 들렸다. 그 울타리 안에서 날갯짓하는 거위와 오리를 볼 수 있고, 주변에는 사회주의 사상에 고취되어 가슴에 빨간색 넥타이를 나부끼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농부들은 소련의 멋진 일꾼들이 되어 몹시 바빴다.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한 약속과 함께 미소를 짓고 있던 예카테리나 2세의 동상은 철거되며,

소비에트 연방의 최고 권력자는 볼가강을 바라본다.

(P. 81) 석양의 기다란 그림자는 노란 들판과 도로 위에 그려진 하얀 선에 드리워졌고, 거대한 볼가강은 천천히 흘러갔다. 그는 하늘 위에서 이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토록 광활한 대지를, 이토록 풍부한 물을 품은 강을 왜 하필 이렇게 작고 부산스러운 민족에게 선물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공평한 일인가?


1927년 스탈린의 지배기 이후로 호밀과 메밀 대신에 티타늄, 아연, 주철 등이 등장하면서 농업에 치중하던 소련은 공업화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P. 90) 졸지에 고아가 된 트랙터들은 세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것인데, 그중 일부는 붙잡혀서 용광로로 들어갈 것이며...(중략)...광활한 독일 소비에트 공화국 어딘가에 버려진 채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것이다.

이제 그나덴탈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볼가강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소리는 들리지 않고, 소련의 공산주의 청년들의 나팔소리가 채우고 있었다.

조국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타국이라 말할 수도 없는 독일제국을 향하여 그나덴탈인들은 떠났다.
왼쪽 노를 젓고 오른쪽 노를 저어가며 거센 물살을 거스르고 바람을 거슬러서 낯선 모국어와 문화가 기다리는 곳을 향해 갔다.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뛰어넘으면서도 희망을 품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현재의 삶이 행복이구나 싶다가도 궁금증이 인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 삶을 들여다본다면 도대체 무슨 생각이 들까. 정신없이 쏟아지는 차와 어딘가에서 뱉어내는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심 속에서 시뻘건 모자를 쓰고 벌떼 몰려다니듯이 해 가며 초점 잃은 눈으로 침 튀기며 무언가를 외쳐대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기괴해 보여, 그런 우리의 삶이 더 두렵게 느껴질까.

아니면 ‘이 사람네들도 우리랑 같네.’할려나.


그나덴탈에 남아있는 바흐는, 위험에 맞서기보다는 문을 굳게 닫고 피하던 예전의 우유부단한 겁쟁이가 아니다. 광기 가득한 세상으로부터 소중한 존재를 지켜주는 것만이 진정 의미 있는 삶이라 느끼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부랑자들로부터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킬 자신이 있다.
그러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남아있는 자가 떠나고 싶은 자를 가두는 모습으로 비칠 만큼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야 하는 삶을 벗어나기란 참 어려웠다.


2권까지 다 읽고 나니,
‘나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이 단순하지만, 또 이처럼 따뜻하게 들려올 수가 없다. 그리고 왠지 모를 허탈감도 든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변화를 두려워하는 부모가 소중한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어르고 달래고 품 안에 끼고 지내며 사는 모습과, 낡은 것을 뒤로하고 어수선한 세상을 향해 눈을 반짝이며 다가가는 자식의 입장까지 낯설지 않은 감정으로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역사의 과정이 볼가강의 반짝이는 윤슬이 내려앉은 물줄기처럼 힘도 들이지 않고 흐르는 듯했다.
저자의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감정으로 차분하게 써내려간 문장이 오히려 상황의 서글픔을 더 잘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굳어가는 혀가 더 이상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게 만든 기구한 삶이 아닌 행복과 희망만을 담은 글을 써내려갈 수 있는 삶 속의 바흐를 상상해봤다. 그곳에서 바흐는 클라라와 행복했던 시절처럼 주위에는 무지갯빛 비눗방울이 떠다니고 모두가 소리 내 웃고만 있다. 모든 공포는 사라지고 없다.

현실이 상상을 비웃고 있기에 다시 바흐가 살아온 삶을 떠올려본다.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생존을 향해 어린아이들과 함께 모진 삶 살아나간 어른들까지 모두가 다 서글펐고 슬픈 감정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삶을 향한 의지가 어딘가에는 숨어있는가보다. 그렇기에 생명의 숨소리를 듣고,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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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들 1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4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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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쉬는 숨결이 느껴질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로 행복했고, 그렇기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던 잔혹함이 가슴을 조이게 만들어 고통스러웠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릿속을 볼가강 차디 찬 강물에 집어넣고 흔들어도 소용이 없을 것만 같은 상황들에 무력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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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이들 1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4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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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문학의 신예 작가라고 하는 구젤 야히나의 <나의 아이들>은 총 2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권을 다 읽고 나니 2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기쁠 만큼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모든 종류의 불화를 힘들어했다는 감수성 예민한 한 남성에게 왠지 모를 내적 친밀감을 느끼면서 읽기 시작했다.

어떤 연유가 있는 걸까?

내 집안에 덜그럭 소리를 내며 잘 들어맞지 않는 창틀 빈틈도 메우지 않으면서, 더 큰 세계에는 흥미로워하고 귀를 기울이는 ‘바흐’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번개와 천둥이 치는 날 밖으로 나가 온몸으로 비를 맞는 일 외에는 삶의 큰 흥분을 느끼지 못하는 걸 보니 분명 뭔가를 갈구하는 것 같다.

러시아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볼가강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이제는 작고 보이지 않는 벽촌이 되어버린 것인가.
그가 사는 곳은 18~19세기에 독일 농민들이 많이 와서 살았다는 볼가강 왼쪽 지역의 독일 식민지 마을 ‘그나덴탈’이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다.
독일 각지에서 이민을 온 사람들이 섞여 있다 보니, 그들의 말씨가 독일 표준어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책 내용에 앞서 섬세한 묘사에 ‘볼가강 주변의 사계절은 이런 모습이겠구나.’라고 상상하는 시간부터 가질 수 있었다.
아침을 알리는 다양한 소리가 느껴지고 가축에게 어제 길어 온 물 대신, 꼭 볼가강에 가서 실컷 목을 축이게 했다는 문장은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농민들의 노력과 땀이 묻어난다.

강물의 절반 이상이 녹은 눈이라고 하는 볼가강은 눈이 많이 내려도 주민들의 집에는 썰매와 수레가 있어 든든하다.
눈이 올 때 러시아의 겨울용 전통신발 왈렌키를 신고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걷는 주민들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개울물의 차가움과 돼지, 염소똥 냄새도 느껴본다.

이렇듯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주변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섬세한 묘사 덕분에 나는 바흐 선생님께서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흥미롭고 재미있다.
투박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소박한 의자에 앉아서 코끝은 조금 시려도 가만히 먼 곳을 응시할 때 느껴지는 그 묘한 편안함처럼, 아무것도 안 해도 될 것 같은 이 느낌이 매우 좋다.


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바흐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로 배를 채우게 하고 싶어서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선생님의 이런 감성을 전달받기에는 아직은 장난꾸러기 아이들이라 인기 많은 선생님과는 조금 거리가 멀 것 같다.
학교 사택에 사는 서른두 살의 낡은 군복을 입은 이 바흐는 벌써 노화로 인해 주름살이 늘기 시작했다는데, 쇠붙이 냄새 진동하는 교실 안에서의 수업시간을 슬쩍 들여다보니 어째 주름살이 날로 늘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그에게는 쿵쾅거릴 만큼의 기쁨인 저녁 독서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P. 32) 그의 삶은 사소한 기쁨과 작은 근심으로 가득하지만 비교적 잔잔하게 흘러가고 있었고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행복한 삶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의 삶은 한 가지 일만 아니라면 꽤 괜찮은 삶일 수 있었다.


어느 날, 바흐는 다른 곳에 모여 사는 식민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열일 곱 살이 되는 자신의 딸에게 독일어를 가르쳐달라는 내용으로 바흐에게 편지를 보낸, 볼가강 오른쪽 지역에 사는 ‘우도 그림’이라는 이름의 한 남성을 만난 것인데, 사실 거의 반강제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그런데 이 바흐가 꽤 쫄보에다가 나름(?) 귀엽다.
사실,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들여다보면 살짝 열불이 터지게 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자신에게 공손하게 수업을 부탁해도 시원찮을 판에 무례하게 대하는 험상궂은 우도 그림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찌무룩한 얼굴로 눈 내리깔고 속으로만 부글부글이다. 그야말로 사람이 매우 없어 보일 만큼 초라하게 표현한 문장들이 너무 웃겼다.
혼자 계속 킥킥거리면서 읽었다.
아, 뭔가 굉장히 짠한 우리 바흐 선생님.

이렇게 바흐가 사는 볼가강 왼쪽지역 그나덴탈 마을 외에도 식민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었는데, 오른쪽 지역으로는 경사가 매우 심해서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왕래가 없었던 것 같다. 넓은 평야와 달리 이곳은 숲 속에 통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가득하고 블랙베리가 보이며, 바위와 이끼들이 보이는 곳이었다.

엄격한 수업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나름 준비를 해서 독일어 교재와 괴테의 시집 등을 챙겨 드디어 개인 수업을 위해 강 건너편 마을로 향한다. 그리고 험악한 남성의 딸 ‘클라라’를 만나게 된다.
(바흐부터 클라라까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낭만적이다.)

이 마을의 주인으로 불리는 아버지 우도 그림 외에는 아무도 밖으로 나온 적 없이 세상과는 단절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숲 속에서, 클라라가 나이 많은 유모에게 들은 옛날이야기들도 예카테리나 대제 시대 때에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들에 멈춰 있었다. 이런 단조로운 일상에서 큰 변화 없이 지낸 클라라에게 측은함을 느낀 바흐는 가르침에 대한 욕구가 샘물 솟듯이 나오지 않았을까?

아이같은 어조의 클라라에게 사투리 대신 고급 독일어를 가르치는 게 바흐가 맡은 일이다. 딸을 독일 남성에게 시집보내려는 마음에 교육을 부탁한 것을 보면, 독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인가보다.

(P. 90) 그녀의 천진난만한 입술에서는 괴테와 실러의 발라드가 이상하게 변했는데, 천사 같은 억양 덕분에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놀랍게도 부도덕한 뉘앙스를 띠었으며, 가장 무사 무시한 장면도 그 사랑스러운 억양을 거치면 어두운 분위기가 몇 배는 더 강해지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흐와 클라라는 서로의 대한 애틋함이 커지고 번개로 장식하는 강력한 뇌우 말고는 삶의 큰 흥분을 느끼지 못했던 바흐의 심장은 클라라를 향한 사랑으로 펄펄 끓기 시작했다.
순수하면서도 애틋한 이들의 수업시간과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과정은 온 세상이 무지갯빛 비눗방울 떠다니듯 했다.
바흐에게는 뭔가를 갈구하는 느낌을 초반부터 받았었는데 아마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 날, 온 식구가 독일로 떠나게 된 클라라는 독일행 기차에서 가족들까지 버리고 몰래 빠져나와 바흐의 집을 찾아온다.
축복을 받으며 그나덴탈에서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길 머릿속에 그리며 꿈에 젖었을 클라라.

주민들에게는 그저 타락한 선생과 나이 어린 소녀였나 보다.
독일어로 ‘복을 가져다주는 골짜기’라는 뜻의 그나덴탈은 아쉽게도 바흐와 클라라에게 축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주민들의 질책과 따가운 시선에 외출도 어려울 만큼 논란의 대상이기만 했던 그 둘은 어쩔 수 없이 사택을 떠나 볼가강의 오른쪽 강변 마을, 세상과 단절된 우도 그림의 마을로 떠나게 된다.

험난한 길을 뚫고 바흐에게 온 클라라가 보여준 엄청난 용기가 바흐가 지닌 두려움을 모두 없앨 수는 없었던 것일까.
바흐는 죄책감이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숲에서의 생활은 멈춘 시계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알아차리기도 어려웠으며, 그들만의 세계를 이루고 살아나가게끔 해줬다.
더는 감수성 예민하고 노동에 서툰 바흐가 아니었고, 선생님께서 들려주던 이야기에 꺄르르 웃기만 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클라라가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한계에 다가서며 서서히 변화를 쌓아오다가 삶에 맞서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이 힘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의 중심에는 분명 클라라의 현명한 요령과 더불어 침착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세상속에 스며들고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 싶었을 클라라의 마음을 모를 리가 없는 바흐는 단 하루라도 그녀를 다시 그나덴탈에 데리고 가고 싶었다. 변화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혼자 무작정 그나덴탈로 향한다.

그런데,
바흐와 클라라가 자신들의 삶을 숲 속의 세계에 맞춰 지내고 사는 동안 이 곳, 그나덴탈은 떠나오기 전의 북적거림과 풍요로움을 잃고 폐허가 된 집들로 가득해 있었다. 깨끗한 색을 띠던 얼음 조각은 이제 검붉은 색과 선홍색을 띠었다.

바흐는 참혹함을 따라가 본다.

(P. 148) 불가강의 왼편에 있는 스텝 지역이 열정적인 튤립과 양귀비꽃 색깔로 막 변하고 투명한 하늘이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들과 별들까지 활짝 문을 열어놓았을 때, 바로 이 스텝 지역을 낯선 이들의 발자국이 어지럽히고 하늘은 쇳덩어리 새들이 어지럽혔던 것이다.


독일지역의 빈농들은 거리적으로 인접했던 러시아 지역의 비옥한 평원지대로 이주를 택했다. 이민을 장려하기 위해 예카테리나 2세는 이들에게 종교의 자유와 병역면제의 혜택과 더불어 언어, 문화 등의 보존을 약속했었다.

시간이 흘러 첫 번째 러시아 혁명 이후 발생한 분열과 갈등의 내전 속에서 볼가강 강물을 타고 식민지 마을에서 정착해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기근을 겪고 굶주림에 목숨을 잃었으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탄생이라는 큰 줄기가 만든 새로운 이념과 지도자 밑에 손님처럼 살아야 했다.

독일로 돌아간 사람들도 그나덴탈에서 살아나간 세월이 있기에 분명 독일어 사용의 어려움과 문화 차이로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낯선 이방인 취급을 받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떠올려진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소개 글에 ‘약속된 땅’을 향한 갈구와 좌절이라는 문장이 더 처연한 마음을 들게 하는 것 같다.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 또한 분명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책임감과 사랑이었는데, 그 책임감과 사랑이 강인함과 열정으로 느껴지기보단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내쉬는 숨결이 느껴질 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로 읽는 재미가 넘쳐나 행복했고, 그렇기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던 잔혹함이 가슴을 조이게 하여 고통스러웠다.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목이 메여오고 따끔했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나약해진 몸과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는 머릿속을 얼음 떠다니는 볼가강 차디찬 강물에 집어넣고 흔들어봐도 소용이 없을 만큼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는 상황들에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무력감을 느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바흐가 동네 한 바퀴만 돌아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는데, 이제 그나덴탈은 소련이라는 명칭이 붙고 사람들은 살아남으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이었다.

(P. 218)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얼굴이 매우 축축했다. 그는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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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7-01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들여 쓰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반가웠고요.
이 책은 제가 작년 2024년에 만난 작가, 작품 가운데 최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했지만 그렇지 않아서 좀 쓸쓸했던 차에 ㅎㅎㅎ 진짜 반가웠겠지요? ㅎㅎㅎㅎ

곰돌이 2025-07-01 17:57   좋아요 1 | URL
왜 쓸쓸하셨을지 그 맘 너무 잘 알 것 같아요. 이 책 읽으면서 리뷰가 많이 없다는 게 계속 의아스러울 만큼 정말 너무 잘 읽었어요. 저도 많은 분이 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흔적을 남겨봤는데 잘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꾸벅꾸벅🙇‍♀️
 
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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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녀가 서로 끌어안았다.
한 사람은 괴로움으로 안았고, 또 다른 사람은 불안감으로 안겼다.
이들의 모습은 각자 지독한 불행의 무게로 균형을 잃고 위태롭다.
모든 게 붕괴될 것만 같다.


<용의자X의 헌신>과 <악의>에 이어 세 번째 만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이번 <기도의 막이 내릴 때>는 가가 형사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데 나처럼 저자의 작품을 많이 접하지 않은, 그래서 가가 형사 시리즈를 꾸준히 읽은 사람이 아니어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읽는재미를 위해 줄거리는 간략하게만!!


‘야스요’는 자신의 술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할 ‘유리코’라는 여성을 친구로부터 소개받는다. 남편과 헤어지고 아들마저 두고 집을 나왔다고 말하는 이 여성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만의 사정이 있을 테니 야스요는 더 묻지 않는다. (자신의 단순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상대의 과거를 들추려 하지 않는 면이 참 맘에 든다.)

유리코가 손님들에게 반응이 좋아 야스요는 아주 만족스럽다.
어느덧, 유리코가 야스요의 가게에서 일한 지도 1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몸이 좋지 않았던 유리코는 가게를 그만두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그녀의 건강이 염려되었던 야스요가 유리코의 집을 찾아갔다가 이미 사망한 상태의 그녀를 발견한다.
심부전으로 보인다는 의사의 소견에 더 일찍 검진을 받도록 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야스요.

유리코가 가게 손님이었던 ‘와타베’라는 남성과 연인 관계라는 걸 알았기에 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유리코의 아들인 형사 ‘가가 교이치로’의 원룸 주소만 알려준 채, 자신은 잊어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일가친척도 없이 외로웠을 유리코에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 참 잘됐다 싶었는데 이렇게 외면을 당하다니.
망연함을 머금은 채 야스요는 유리코의 장례를 치른다.
쉽지 않은 일을 해 준 그녀가 참 고맙다.

유골과 유품 인수를 목적으로 야스요는 가가에게 편지를 썼는데 다행히도 뒷일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전화를 걸어와 이 둘은 함께 유리코가 살던 집으로 향한다.
가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물품을 정리하기 위해 옷가지들을 주워담는다. 냉철하지만 따뜻한 면이 있는 가가 형사의 고통스러웠을 삶과 기구하게 살다가 홀로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의 삶 또한 가슴이 먹먹해진다.

야스요로부터 어머니의 연인 와타베의 이야기를 듣게 된 가가.
그는 형사답게 날카로운 눈빛으로 어머니의 방 안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그 후,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한 아파트에서 타살로 추정되는 ‘미치코’라는 여성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고시카와 무쓰오’ 라는 남성의 아파트 벽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미치코. 용의자로 의심되는 고시카와는 행방이 묘연했다.
청소를 해주는 업체에 근무했던 미치코의 직장동료의 기억으로는 그녀가 “주말에는 사치 좀 부려볼까?” 라고 했다는데 과연 무슨 일인 걸까.

수사를 맡은 경시청 수사1과 소속 형사 ‘마쓰미야’는 이 사건과 연관성이 있다고 느껴지는 또 다른 사건을 떠올린다.

남의 아파트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미치코의 사건과 다른 관할 서 사건인 오두막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된 노숙자의 사건에서 인상 깊은 중요한 요소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언제라도 죽음을 맞이할 각오가 되어 있는 듯이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 바로 ‘하루살이’와도 같은 사람들의 죽음이었다는 것.

노인들을 골라 살해한 요양 보호사의 이야기인 일본 영화 <로스트 케어>처럼 타인의 도움이 절실한 빈곤층에 대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다룬 듯한 느낌을 받고 있던 즈음, 미치코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으로 추정되는 동창생 ‘히로미’가 등장한다.

미치코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각본가,연출가로서 여러 대표작을 남길 만큼 연극계에서는 꽤 이름을 날리고 있던 히로미.
하지만, 히로미에게도 지금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과거가 존재했었다.

수사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형사 마쓰미야는 한 남성을 만나러 향한다. 슬슬 느낌이 온다.
이쯤되면 가가 형사가 나와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마쓰미야의 사촌 형이자 경시청 수사 1과 선배이기도 한 가가 형사가 다시 등장했다.

이 만남에서 마쓰미야는 가가에게 히로미의 이야기를 듣는다.

검도 경력이 있던 가가는 현재 근무지인 니혼바시 서에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서에서 운영한 검도 교실에서 강사를 맡고 있었다. 이때 아역배우의 검도 훈련을 위해 찾아온 연출가 히로미와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P. 116) “마음에 깊은 어둠을 품은 여자일 거야.”


행동이 묘연한 아파트 주인과 히로미, 그리고 죽은 미치코까지.
과연 이들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걸까?
그리고 왜 가가는 경시청에서 근무하다가 니혼바시 서로 가게 된 걸까?

험난한 사건을 맡아온 가가 경부보가 이제는 동네 사람들의 사소한 사건들까지 맡으며 거리 구석구석까지 마음을 쓰는 모습에 마쓰미야는 뭔가 그에게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과 함께 착잡함을 느끼는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살인사건 피의자가 어느 정도 굳혀가던 이때, 미치코가 발견된 그 아파트에 걸려있던 달력에 적혀있는 메모와 필적과 내용이 같은 메모가 등장한다. 그건 가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이었다.

그리고 가가는 본격적으로 수사에 가담하게 된다.


용납하기 어려운 선택과 상황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사는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크게 동떨어진다 볼 수도 없어서 불편함이 이내 착잡함으로 변화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여러 장점이 있기에 찾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를 가장 자극했던 부분은 쓸쓸함이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그 짙은 쓸쓸함이 계속 생각나게 한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외로움을 타고난 존재라고는 해도, 등장인물의 몸에 깊게 밴 고독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든 상황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그 안에 가벼이 다룰 수 없는 사회문제들을 꾸준히 이야기함으로 그 무게감이 확실히 끌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하다.

저자의 또 다른 소설 <용의자X의 헌신>의 주인공 이시가미는 생을 마감하려는 그 절망적인 순간에 다정한 모녀의 인사 하나로 기적처럼 다시 삶을 살기로 했었다. 고독감을 느끼며 사람들에게서 멀어져만 가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모른 척할 수 없었기에 더욱 가슴 아프게 들여다본 소설이었다. 말 그대로 다정함이 기적을 낳은 것인데, 난 절대 이게 소설 속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던 시기가 분명히 내게도 존재했었고, 그럼에도 사람으로 인해 또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문제들로 편견에 쌓인 시선을 받거나 그 모습을 관찰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지속적으로 등장시키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 왔으며, 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다 알지는 못해도 딱 한 가지 선명하게 느낀 것은, 결국 우리 삶 너머, 행복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외면하지 않는 우리들의 시선이 머무르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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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일
서보 머그더 지음, 진경애 옮김 / 프시케의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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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기다리는 소녀 기너, 그리고 사람들의 운명을 도와주는 존재 아비가일의 신비로움까지 애잔하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소설은 다음 장, 그다음 장 계속해서 넘겨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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