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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 2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0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0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과거의 인연으로부터 탈출할 방법은 없다. 과거의 내 모습은 영원히 나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1권에서는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독립을 선언한 날, 특별한 능력을 지닌 1,001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그중 정각에 태어나 조국의 운명과 하나로 이어진 불가분의 관계이자 ‘맏형’으로서 가장 강력한 능력을 지닌 이 소설의 화자 ‘살림 시나이’가 서른한 살을 앞두고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연인 ‘파드마’에게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그 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권에서도 외할아버지의 성난 바나나 같은 큰 코를 물려받은 살림의 스러져가는 삶 속 흩뿌려진 기억이 이어지고, 인도의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쑥쑥 자라 벌써 성인의 키만큼 자란 열한 살 살림이, 봄베이(현 뭄바이) 영화계에서 유일한 사실주의 작가인 외삼촌 ‘하니프 아지즈’와 전직 여배우인 외숙모 ‘피아 아지즈’에게 잠시 맡겨진 이야기로 시작된다. 자식이 없는 부부에게 살가운 아들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곳은 석양과 소음이 어우러진 봄베이의 ‘마린 드라이브’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파트다. 이곳에서 카드놀이가 벌어지는 날이면 외삼촌의 단골들인 재즈 연주가, 가수, 화가, 사진 기자 등이 모이는데, 살림은 이곳 사람들에게서 떨어지는 흥미진진한 일화와 추악한 이야기를 줍고 또 줍는다.
인도의 신화적 삶에 휘말려버린 나는 나 자신의 불가사의한 모습을 의식하면서 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p. 20)
살림은 행상인과 거지, 노점상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발코니로 나가 둥근 목걸이처럼 가로등 불빛이 만들어낸 빛의 행렬을 바라보고 있다. 이때,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영화계 거물인 한 남성과 잠시 대화를 나눈다.
“바깥공기가 상쾌하구나.”
“네, 아저씨.”
“그래, 그래. 인생이 그럭저럭 살 만하니?”
부모님 곁을 떠나 귀양살이 중이니 그럭저럭 살 만할 리가 없는 살림의 속마음을 들어보려 했으나 순번이 틀렸다는 듯 생각도 못 한 외숙모 피아의 하소연부터 이어졌다. 신식 사고방식의 며느리에게 냉소적으로 대하는 시어머니 ‘나심 아지즈’의 잔소리로 인한 한숨과 여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의 향수가 한데 뒤섞여 눈물과 함께 흐른다. (참고로 1권부터 이어진 시어머니 나심의 독특한 화법이 꽤 웃긴데, 익숙해져서 감흥이 없을 만도 한데 어째 튀어나올 때마다 잔웃음이 나온다.)
“우리 집안은 거뭣이냐! 아니 그러니까 거뭣이냐! 내 말은 거뭣이냐!”
그건 그렇고 살림도 울고 싶은 건 마찬가지다.
다시 메솔드 단지의 부모님 곁으로 돌아와 한평생 신기하고 황당무계한 변화의 세계와 맞닥뜨리면서 여러 가지로 골칫거리가 많아 고달프기 때문이다.
1권에서 살림은 인도의 독립과 함께 태어난 아이들과 ‘한밤의 아이들 협회’를 만들었는데 살림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간 이 협회는 단순히 아이들이 모여 잡담하고 낄낄거리는 친목회가 아니라, 자신들의 특별한 능력을 인도의 미래를 위해 활용하기 위해 고민하는 제법 진지한 모임이다. 외삼촌 댁에서 귀양살이를 마치고 돌아왔으니(물론, 이보다 더 큰 이유로 미뤄두었던) 다시 회의를 소집한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뜻한다.
인도는 독립 선언 이후에도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다.
오랜 시간 식민 지배를 받으며 지내왔고 다양한 언어, 종교, 문화를 가진 나라이면서 독자적인 국가 운영 경험 또한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밤의 아이들 협회도 이런 나라 사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인지 다시 모인 아이들과 영 신통치가 않았다.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른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지역, 피부색, 종교, 계급 등의 차별과 충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로 대화조차 사라지며, 더 나아가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살림은 아이들에게 서로 ‘사랑’으로 단결하자고 호소한다. 그런데 이때, 한밤의 아이들 중 살림과 같은 시간에 태어난 ‘파괴의 신’의 막강한 힘을 가진 ‘시바’가 콧방귀를 뀌며 말한다.
“그렇게 시시껄렁한 것들을 어디다 쓰겠냐? 다들 먹고 살기도 바쁜 판국에. 지랄염병, 이 오이코 녀석아, 난 이제 너희 협회라면 신물이 난다. 재물과는 아무 상관도 없잖냐.” (p. 44)
인도는 빠른 경제 성장으로 불균형과 빈곤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시바의 시선으로 볼 때,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살림의 낙관적이고 감상적인 태도에 호의적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얻게 되는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빈민굴의 냄새와 치열한 몸부림이 만들어내는 온도를 알지 못하는 자본 계층에 속하는 살림에게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덩치만 컸지 아직도 열한 살인 살림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혈안이 되어 속이 조용할 날이 없고 안팎으로 괴롭다. 외삼촌 댁에서 유배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제는 온 가족이 파키스탄으로 건너가야 한단다. 이렇게 처음으로 내 나라라고 말할 수 없는 북녘 도시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파키스탄 군인이자 정치가인 ‘아유브 칸’이 쿠데타를 일으켜 (이제 쿠데타라는 단어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날 것 같다) 총리가 되고 대통령으로 취임하기까지 살림의 눈앞으로 폭력, 부패, 탐욕, 빈곤이라는 독립의 자식들이 줄을 지어 등장했다. 또 한참 이야기에 푹 빠져 읽고 있는데, 그런 나를 훤히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능구렁이 같은 살림이 한 마디 툭 던진다.
지금까지 나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 소홀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나의 청취자가 감정이입의 능력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p. 122)
어휴 못 말린다, 정말...
이처럼 독자와 호흡을 같이 함으로써 인물과의 정신적 교감이 깊어지고, 이 감정적 연결은 소설을 더욱 생동감 있고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한다. 지루해질 만하면 살림이 또 곁길로 새거나 음란 마귀가 씌어 쓰잘머리 없는 소리를 던지고 가는데, 우리가 이해해 줘야 한다. 이 녀석은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누울 자리를 보고 뻗는다고 신들의 인구수조차도 국민의 인구수와 맞먹는다는 이 나라는 조용할 날 없이 어수선하여 사춘기 따위는 명함도 못 내민다. 불쌍한 녀석...
또다시 봄베이로 돌아온 살림의 가족.
살림은 탄생과 함께 인도의 운명과 함께한다고 밝혔으니, 변화가 있다는 건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1962년 10월 20일, 국경 문제로 인도는 중국과 군사적 충돌을 벌였다.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중국은 위기를 맞이했고, 제3세계 싸움에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인도와 중국이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국 전쟁이 터진 것이다. 6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이 분쟁과 관련하여 얼마 전 “일부 희망적인 합의가 있을 것”이라는 인도 무역부 장관의 기사를 읽었다. 내 나라 문제도 어수선하지만, 참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기적처럼 고통을 순식간에 벗어던질 수 있기를 바라는 건 아니라지만, 질긴 잿빛 운명이 참 길기도 길다.
살림의 가족들이 비극에 대처하기 위해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나가는 모습은 다양했다. 불안으로 인해 악화하는 갈등 속에서 겪는 고통에 대한 공감 때문인지 각자의 사정을 떠나 사람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다. 어쩌면 불행했던 어린 시절도 이제는 흘러간 세월만큼 담담하게 다가오고, 가족들을 향한 측은지심이 그 당시에는 뾰족하게 올라갔던 송곳도 자취를 감추게 하여, 글을 써 내려가는 살림의 펜 끝이 뭉툭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파리처럼 무력했지만 파리보다 더 어리석었다. 거미줄에 걸렸는데도 오히려 기뻐했기 때문이다. (p. 149)
중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신앙보다는 상업의 윤리를 중시했던 살림의 집은 어머니의 요구로 봄베이에서 다시 파키스탄으로 향하게 된다. 위기에 처한 파키스탄 정부가 특효약으로 눈길을 둔 것은 전쟁이었고, 인도와 중국과의 분쟁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65년에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터졌다. 이쯤 되면 인도 현대사 전체가 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하는 살림의 비애감이 만들어 낸 주장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사방에서 집이 터지고 무너지고, 구원의 희망도 없고, 얻기 위해 빼앗아야 하는 이 전쟁은 휴... 6년 후에 또다시 일어난다.
살림이 들려주는 참혹함을 조용히 듣고 있는 그의 연인 파드마의 두 뺨에 눈물이 연실 주르륵... 주르륵... 그녀와 독자의 무거운 마음을 달래줌과 동시에 뻔한 전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혹시라도 의문을 품을지 모를 사람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그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 친절한 살림이 한 마디 덧붙인다.
“내 이야기는 아직 안 끝났어! 감전 사고와 열대우림에 대한 이야기도 남았고 골수가 흐르는 들판에 우뚝 솟은 머리통 피라미드에 대한 이야기도 남았단 말이야. 앞으로 아슬아슬한 탈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비명을 지르는 첨탑에 대한 이야기도 나올거야. 간단히 말해서 아직도 다음 상영작과 개봉박두가 수두룩하다 이거야. 부모가 죽으면 인생의 한 장이 끝나지만 그때부터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법이니까.” (p. 227)
책 읽기 전 맨 앞에 있는 ‘차례’를 들여다봤을 때, 도대체 무슨 제목이 이럴까?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다 읽고 다시 들여다보니, 제목만 봐도 머릿속에 줄거리가 떠올라서, 오! 이거 참 포인트를 잘 잡아서 정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찌나 섬세한지 독자의 기억 저장 능력을 염려하여 줄줄이 이어지는 폭풍 같은 이야기를 종종 요약해 줌으로써 기억의 조각들이 다시 척척 들어맞게 해 준다.
저자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활용한 표현이 맨정신으로는 살 수 없을 만큼 비현실적이었던 세상을 떠올리며 말하는 사람의 심정이 어땠을지를 더 생각해 보도록 해주었던 것 같다. 이 소설 속 이야기가 신화와 전설 등과 뒤섞여 있어도 허구와 환상으로 들여다볼 수가 없는 이미 드러난 뼈아픈 역사를 담고 있어서인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움과 위화감 대신 오히려 ‘본질’을 들여다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끔찍한 상황을 처참하게 그려내기보다는 순수한 아이가 단순하게 풀어내는 과정을 거쳐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그간의 삶 속에서 겪은 마법처럼 여겨질 만한 비극을 감당하면서 고통 없는 평화와 실낱같은 희망을 꿈꾸고 좌절하다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총칼을 들이대는 사실적인 표현보다 오히려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서로를 향한 불신과 적대, 그리고 침묵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읽으며 살아가야 했던 가혹한 경험으로 살림이 점점 매사에 초연해지는 현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슬픔과 참혹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살림은 그 고통스러운 꿈과도 같은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사랑이 결여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일으켜 세워 준 초월적 힘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가장 멋진 기적은 사랑이었다. (p. 130)
다 읽고 나니, 후련하기보다는 아쉽다.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할 것 같은 한쪽만 검은색 렌즈를 끼운 안경을 쓴 살만 루슈디의 노여움과 울분 가득한 장황한 수다는, 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책을 내려놓는 순간 또다시 그리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