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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포터 ㅣ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7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김희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7월
평점 :
은행나무의 세계문학 에세 시리즈 중 구젤 야히나의 <나의 아이들>에 이어 두 번째로 읽게 된 작품인 이 소설은, 과거를 끌어올려 현재와 미래에 의미를 찾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대조적인 감정선이 툭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줘서 서서히 스며들다가 완전히 빠져들었다.
기억, 말하자면 역사, 덧없는 회상, 일어났던 모든 일을 모은 미덥지 않은 집합체는 그들을 방치해두지 않았다. (p. 30)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어머니에게 전해 들은 말이 전부인 ‘일레인 신시아 포터’라는 이름을 가진 ‘나’는 지금 앤티가 세인트존스시의 묘지에 서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버지 ‘로더릭 포터’ 씨의 무덤을 찾고 있다. 어떤 결심이 들었기에 그녀의 무거운 발걸음이 이곳으로 향하게 된 것일까?
일단, 포터 씨의 삶부터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서인도 제도의 앤티가섬에서 태어난 그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이 곳 주민들의 대부분은 제국주의 시대의 노예무역이라는 잔혹한 역사를 지닌 아프리카 흑인 노예 후손이며,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 역시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고, 그럴 줄 아는 아이를 하나도 만들지 않았기에 당연히 내 아버지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으며, 읽고 쓸 줄 알고 심지어 그런 일을 사랑하기까지 하는 존재인 ‘나’는 그들이 살았던 세상, 그들이 존재했던 세상 속에서 그들이 남기지 못한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간다.
앤티가섬이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일단 탁 트인 에메랄드빛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가슴이 뻥 뚫리는 해변과 미세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은 하늘은 보기만 해도 여유롭게 쉴 수 있을 만한 곳 같아 보인다. 그렇다. 나는 지금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앤티가섬의 절경을 즐기는 사람들과 달리 포터 씨는 자연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않고, 그래야 할 이유조차 모른다. 고단한 일상에 아무것도 그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은 없다.
앤티가섬에서 택시 운전사로 살았던 포터 씨의 일과는 어떤 모습일까.
1922년 1월 7일 세인트폴구의 잉글리시하버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아버지의 열한 번째 아들이었던 그는, 승객을 태우고 짐을 내려주며 명령과도 같은 말을 듣는 내내 벗은 모자를 손에 쥐고 고개를 깊이 숙인 채 위안이 되는 바닥만 내려다본다. 그리고 도무지 헤아릴 수 없을 영겁의 세월이 깃든 껍데기 같은 양손으로 운전대를 쥐고 세상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듯 저마다의 역사와 고통을 안고 있는 마을을 지나가 자신의 고용주 ‘슐’ 씨에게 그의 차를 고스란히 그의 집에 갖다 놓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가 끝이 난다.
어느 날, 포터 씨는 택시 승객으로 ‘바이쳉거’ 박사를 만나게 된다. 고향 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전 세계를 떠돌며 소용돌이치는 일들을 겪다가 앤티가섬에 오게 된 그가 본 세상은 폭력이 만연했고 혼란 그 자체였다. 이제는 과거의 기억이 기적처럼 여겨지고, 전쟁으로 어둠이 내려앉기 전 끝없이 따뜻했던 햇빛을 그리워하며 “사무엘”이라 자신을 불러주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행복하게 하는 존재였던 소년 시절을 떠올리는 바이쳉거 박사에게서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깊은 한숨이 느껴진다. 반면,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은 포터 씨에게는 그저 맥없이 내쉬는 숨소리만 들리는 것 같다.
저자는 자연스럽게 포터 씨의 아버지, 즉 ‘나’의 할아버지 ‘너새니얼 포터’의 삶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면서 원한 적은 없지만 어쩌다 보니 스물한 명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마저도 아는 것은 열한 명뿐이라고 한다. 자신이 어떤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듯 아버지를 따라 어부가 된 포터 씨의 아버지. 세상사 그 어느 것에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가 궁금한 것이 있다면 통발과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마릿수 정도가 되겠다. 자기 손과 발을 보고 아무런 느낌을 갖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햇빛과 낮과 밤, 이 모든 것은 그를 이루는 일부였으며 자연이 곧 자신이었다. 매일의 고통과 위험은 숨쉬기처럼 당연했고, 그것이 정상이었던, 고통 그 자체의 삶이었던 것이다.
사랑은 그의 삶에 들어올 수 있었고 그보다 더 사랑이 필요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 사랑은 꼭 그의 삶에 들어왔어야 했지만, 사랑은 너새니얼 포터의 삶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 세상은 그의 앞에도 뒤에도 놓여 있지 않았다. 그는 자기 세상을 이루는 바로 그 땅 위에 서 있었고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런가 하면 모든 것을 영원히 잃었다. (p. 47)
저자는 다시 우리의 시선을 ‘나’의 아버지 포터 씨에게로 옮긴다. 그는 늦은 밤 짙은 어둠과 이른 아침의 엷어지는 어둠 속에서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며 매일의 위험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을 보낸, 자신의 아버지 그 자체였다.
70년의 생 시초에 70년은 포터 씨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세월로 여겨졌을 것이며, 생의 끝 무렵에는 그가 살았던 모든 날 이 하루,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하루와도 같이 느껴졌다. (p. 63)
대책 없이 자신처럼 읽을 줄 모르고 쓸 줄 모르는 자식을 많이도 낳았다. 고통을 낳듯이 낳은 자식 중 원하는 자식은 하나도 없었고, 사랑이란 건 받은 적이 없어 줄 줄도 몰랐다. 누가 누구를 무력하고 불쌍한 존재로 바라볼 필요도 없이 내 인생과 자식의 인생은 경계가 없고 거리가 없이 그저 똑같을 뿐이었다.
차라리 분노든 증오든 좌절이든 같이 감정을 나눌 수 있도록 표출해 주면 읽는 마음이라도 덜 불편할 텐데,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겉으로 감정을 내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 그래야 할 이유조차 모르는 사람들처럼, 심지어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처럼 아무런 감정도 내보이지 않는다. 경외감이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에 대해 포터 씨와 그의 아버지는 쩍쩍 갈라지는 나무껍질과도 같은 건조한 모습으로 그 무엇도 궁금해하지 않고, 인생의 절망감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으며, 그런 이들을 떠올리며 글로써 담담하게 담아내는 ‘나’의 심정을 헤아려보자니 무연한 마음만 들었다.
왜 부양할 능력도, 의지도 없으면서 자식을 많이 낳았느냐고, 왜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의지를 보이지 못 했느냐고 소리쳐 원망하고 분노하지 않는 모습에서, 허약한 나라에서 나고 자란 운명이 물려받아야 할 업보처럼 인생의 비등점 없이 오랜 세월의 풍파를 떠받치며 연약한 모습으로만 살 수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삶 자체를 연민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연민 안에는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처럼 더 이상 원치 않는 고통을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엄마가 된 ‘나’의 간절함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순전히 내 속마음 일 뿐이지만, ‘나’라는 인물은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았기에 연민으로 들여다 볼 수 있기까지의 시간이 덜 걸렸을 것 같고,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았기에 글을 읽을 줄도 알고 쓸 줄도 알게 되었을 것 같다. 이제는 얽매이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거미줄처럼 그어진 줄을 스스로 거둬내 가슴 속에만 쌓고 지냈던 그 응어리를 세상 밖으로 당당히 드러냄으로써 ‘나’ 자신이 가진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고통, 그리고 그들의 고통까지 전부 토해내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내가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하죠?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나요? 내게 당신의 이름은 뭔가요? 당신의 관심을 원할 때 어떻게 하면 관심을 받을 수 있죠? (p. 169)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스스로 설명할 수 없어, “내가 태어난 것은……”으로 시작하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하는 포터 씨와 그의 아버지는 과거를 끌어올려 현재와 미래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갔던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은 이 세상 모든 포터를 위해 ‘나’는 과거를 끌어올려 글로써 적어 내려갔다. 분명, 그녀는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글 속에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어 하며 자기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또 다른 저메이카 킨케이드를 향한 위로의 마음도 담았을 것이다.
이 소설 내용 중에서, 포터 씨 탄생의 순간부터 그의 어머니이자 ‘나’의 할머니가 바닷가에서 맞이한 죽음을 담은 64쪽부터 84쪽까지의 이야기도 절대 빼놓을 수 없을 만큼 기억에 많이 남는다. 태어난 것이 죄가 되고, 고통으로부터 마침표를 찍는 것이 죽음뿐인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의 애석함이 너무 슬프고 먹먹해서 나의 몰입도가 최고조에 이르게 만들었다.
원망과 서글픔이 없을 수가 없는 ‘나’의 마음을 조심스레 헤아려보자면, 이 소설이 아버지를 기억하기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햇빛과 낮과 밤, 이 모든 것의 일부로서만이 아닌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그 사이에 일어났던 모든 일 끝에 존재했던 포터 씨, 로더릭 포터로서의 인생을 끌어내 준 것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은 결코 한 적이 없었던,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 자체의 일부였던 적이 없었던 황량한 삶을 살아간 사람을 향한 연민의 마음으로 말이다.
포터 씨 자신은 아무 말도, 전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는 듣지 못함은 얼마나 슬프며 애초부터 목소리를 갖지도 못했던 것은 얼마나 더 슬픈가. (p. 1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