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 - 야당 분열, 알고나 욕합시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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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대다수의 예측과는 달리나왔고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두 당의 성적은 제각각이었다. 뚜렷한 정치의식이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합리적인 정치를 기대하고 있는 나로서는 정치와 종교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면 정말 비슷한점이 있어보여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읽어나갔다.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장문의 사설을 연달아 읽은 느낌이라 전체 주장을 요약할 재주는 없지만 종교의 특성을 가져와 비교한 글이라기 보다는 제목에서의 종교는 그냥 비유라고 보면 될듯. 논조 자체는 특정 정당을 편들기보다는 여권은 아예 언급을 안하고 야권에 대한 비판과 모순에 대한 지적이 중심을 이루고있었다. 몇가지 인상적인 문구를 옮겨본다.


-프레임은 보수 언론은 물론 진보 언론에도 존재한다. 문제는 힘의 격차다. 진보는 늘 보수의 프레임이 어떻다는 식의 말을 하지만 보수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강자는 약자의 프레임에 시비를 걸지 않는 법이다. 진보가 보수의 프레임을 잘 살펴보면서휘말려들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진보는 그 필요성을 오남용해왔다. 과대평가의 수준을 넘어 뻥튀기라고나 할까? 야권 분열의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알고 답을 안에서 찾으려는 게 아니라 모든걸 보수 프레임 탓으로 돌린다.


- 나는 프레임 이론이 한국의 진보 진영에 엄청난 악영항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진보의 악습중 하나인 '남탓'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 빅토르 프랭클이 남긴 명언으로 이 책을 내야했던 내 심정을 대신하고자 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 평범한 유권자들이 야당을 싫어하는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런 선악 이분법에 근거한 증오의 표출, 이에 따라붙는 독선과 오만이다.


- 허수아비 논법straw man argument을 구사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허수아비 논법이란 논쟁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쉬운 가공의 인물로 또는 상대방의 주장을 약점이 많은 주장으로 슬쩍 바꿔놓은 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허수아비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수법이다. 그렇게 하고선 상대방의 주장이 무너진 것처럼 기정사실화하는 선전을 한다. 예컨데 '어린이가 혼자 길가에 나다니게 하면 안된다'는 주장에 대해 '그렇다면 아이를 하루 종일 집 안에 가둬두란 말이냐'고 받아치는 것이 바로 허수아비 논법이다.'


- 알린스키는 '조직들의 조직organization of organizations', '강한 리더십strong leadership', '구조structure', '집권화된 의사결정centralized decision-making'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세 학생 지도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낭만화하면서 자신들을 그들과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짜증을 냈다. 지역 주민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이 곧 낭만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효과적인 조직화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기반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중략) 그들은 사회를 바꾸는 데에 관심이 없다. 아직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일,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 존재 증명revelation일 뿐 혁명revolution이 아니다.


- 몰입에 의한 터널 비전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지식인은 자신의 연구 주제에 대해 터널 비전을 가질 때에 큰 업적을 이룰 수 있다. 예컨데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란 불후의 명작을 쓴 환경 운동 선구자 레이첼 카슨은 복잡한 세계 전체를 제쳐놓고 자기한테 흥미 있는 극히 일부분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드문 능력을 가졌다. 옆을 보지 않는 이런 류의 편협한 사고야말로 카슨을 규정하는 중요한 특징이었는데, 바로 그 덕분에 '침묵의 봄'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편협한 시각 때문에 카슨은 나치 독일을 흠모한 영국 작가 헨리 윌리엄슨을 추앙하기도 했다.


-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일관성은 상상력 없는 사람의 마지막 도피처다.'라고 했다.


- 역지사지로는 부족하고 역지감지易地感之, 즉 상대방의 입장에 '느끼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자기 효능감은 개인이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자신감의 수준인데, 이 개념에서 비롯된 '정치 효능감political efficacy'즉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면 뭔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대중에게 주기 위해서는 작은 승리나 성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이치 때문이다. "작은 성공의 경험은 무게감을 줄이고(별거 아니군) 노력의 요구량을 감소시키며(이만큼만 하면 되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수준을 높인다. (난 이것도 할수 있잖아!)


- 최소 집단 패러다임minimum/minimal group paradigm이라고 하는 심리학 이론은 그런 형태가 우리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영구 사회심리학자 헨리 타지펠의 연구에 따르면 동전 던지기로 사람들을 임의로 분류해도 사람은 결국 자기가 속한 집단을 좋아하고 나아가 다른 집단과 크게 다르다고 믿고 자기 집단이 객관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략) 한마디로 집단의 소속감이 이념보다 우위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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