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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와 선비 - 오늘의 동양과 서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8년 7월
평점 :
신사와 선비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책을 읽어보니 직접적으로 비교와 대조를 통해 심도있게 분석해보는 내용은 아니었고 또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컨셉만큼은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기사도 이야기가 등장하고 일본의 부시도(무사도) 이야기도 나오다가 산업혁명을 거쳐 신사도이야기로 전개된다. 그리고 2부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선비에 대한 이야기. 일단 짧은 글들의 모음이라 크게 지루함 없이 읽을 수 는 있었는데 생각보다 신사도에 대한 이야기의 분량이 이게 끝인가 싶을 정도로 짧아서 다소 아쉬웠다. 2부에서 등장하는 여러 선비들의 삶속에서 보여지는 인생철학은 여러 사례들이 등장해 낯익은 이름, 그렇지 못한 이름들과 더불어 괜찮아보이기는 했으나 신사도와는 분리되어 있어 마찬가지로 한번더 아쉬웠고. 특히 매천 황현사례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그가 죽기전 '자식들에게 남기는 글'을 보니 이건 기사도와도 연결지어 설명해주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싶더라는.
"나는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그런데 국가에서 500년이나 선비를 길러왔는데, 나라가 망하는 지금 이 국난을 당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원통하지 않은가? 나는 위로 황천이 상도를 굳게 지키는 아름다움을 저버리지 못하노라. 아래로는 평소에 읽은 글을 저버리지 못하겠구나."
3부에서는 저자의 생각이 좀 더 담겨있는 부분이라 눈길이 더 닿는 부분이 많았다. 선비의 절대다수가 벼슬과 인연이 없었다며 증거로서 언급하는 부분이 18세기 후반 기록을 보면 문무관을 통들어 3000개쯤의 벼슬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전국인구 중 30%정도가 양반이었는데 이중 3000명만 벼슬을, 즉 오늘날로 치면 직업군인을 포함한 공무원이었다는 건데 이건 주제(대체로 가난했으나 지적, 문화적으로 계몽된 존재가 선비였다는)와는 별도로 좀 너무 작은게 아닌가 싶다. 각 고을의 사또는 물론 이방, 형방 같은 것들도 모두 포함한 숫자였을까?
또 18세기 실학자 안정복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실학과 성리학을 서로 정면 충돌하는 것으로 '오해'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p.256) 당시 시대 속에서 순기능이 전혀 없지는 않았겠으나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재차 정독해보아도 솔직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선비들이 성리학만을 교조적으로 맹신하지 않았더라면, 실학을 적극적으로 받았들였더라면 농업중심의 사회경제체제를 근대화 시키는데 조금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조선의 미래도 어쩌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히려 성리학을 받아들인 선비 중심의 사회질서 때문에 일제강점기에도 시골마을들은 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동의하기 힘들더라는. 게다가 일제 말기 무자미한 일제의 징병, 징용, 위안부를 비롯한 강제동원을 겪은 뒤에야 마을에 평화가 사라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순기능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표현이 있는데(p.261) 이걸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단편적으로만 보고 해석한거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책 가장 말미에 인용한 문구처럼 선비들이 이 같은 생각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성리학 중심의 사회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데에만 집중했던, 그 밖에서 틀을 깨고자 하지는 못했던 것은 아닐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을 중심으로 적긴했지만 양반사회, 아니 조신시대 선비사회를 중심으로 선비들의 삶을 엿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던 책이기도 했다.
"좋은 사회란 자신이 속한 사회가 결코 현재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 지그문트 바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