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 - 학문과 지식은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김덕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법학을 포함한 사회과학의 세부학문 분야에서 베버의 주관은 초월적으로 수용되어왔다. 이러한 점에서 그를 특정하는 ‘사회학의 창시자’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편협한 것이 될 수도 있겠다. 사회과학의 분수령에 그가 있는 것이다.
본 서는 막스 베버에 대한 인물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베버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과 당대의 상황에 대하여 부연이 세심하다. 베버만을 알고자 했다면 이러한 배려가 오히려 불편할 수 있을 정도이다. 만일 막스 시대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거나 아니면 호기심이라도 있는 경우라면 많은 정보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책의 특색이 여기에 있다.

베버의 본격적인 연구활동은 ‘경제분야’를 통해 개시되었다. 구체적인 주제는 엘베 강 지역 노동자에 관한 연구였다. 연구의 가설은 “원주민 농부의 도시 이주지역에는 슬라브계의 저렴한 노동력이 충원된다” 또는 “… 기타 지역의 국민이 이주해온다” 정도로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경제학을 표방했지만 내면적인 변수들의 가치는 멀티적이다. 초발 학자 시절부터 학제적인 연구감각이 돋보인다. 사실 도시 이주지역에 대한 유입 노동자의 인과성 고찰은 현재로서도 용이한 연구라 할 수 없다. 더구나 당시 인구조사에 대한 실증연구 수행의 곤란성을 고려하면 연구수행 자체가 경이롭다.

사회학은 사회적 행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과학이다(p.160). 우리는 금발의 여자와 갈색머리 여자의 미모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p. 154). 베버는 "사실과 평가의 결합에서 오는 가치판단"(p.154)을 마치 이질적인 두 영역의 강제적 결탁으로 의심해 보았던 것 같다. 이런 식의 냉정은 사회과학의 영역축소를 일으키는 통찰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경험과학은 주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밝히는 것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는 파격적인 우려는 오늘날 실증연구 분야의 학풍에 시시하는 바가 적지 않다.
베버는 행위하는 집합체는 인격이 없다는 점에서 개인을 옹호했다. 경험주의 산물을 국가에서 활용하는 방식의 거부는 당시의 정치적인 일련의 사태들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방법설정’으로서 비판하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추측해 본다.

‘비판’은 연구자의 기본적 시각이다. 다만 무조건 비판, 본질 외적 비판, 이기적 비판 등과 같은 왜곡된 비판은 에너지 낭비에 다름 아니다. 비판은 건전할 때만 가치를 갖는다.
베버의 비판은 배려있는 비판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예컨대, 짐멜의 사회학적 상호작용과 유추적 방법론을 부정하면서도 학문적 독창성을 인정하여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수 초빙시점을 피해서 비판했다.
또한 베버 자신과 상반되는 사회주의 관점의 미헬스와의 교분을 통해 학문의 절충을 시도한다. 자신과 정치적 학문적으로 다른 입장에 있던 노이라트와 톨러를 위해 법정에서 증언한다. 한때 비판했던 정치연구자 람프레이트를 수용하기도 한다. 비판했던 분야를 허용하는 것은 허용했던 것을 비판하는 것보다 더욱 불편할 수 있다.
베버의 절충은 물타기, 회색지대, 편리한 이론전개 와는 차별된다. 학문적 완전성에 가까이 가려는 절충이었던 것 같다. 차이를 인정하는 대학자의 말랑거림을 본받고 싶다. 당시 학계의 평가를 물리치고 니체와 마르크스를 인정하는 것도 베버식 절충이었다고 하겠다.

베버는 성도덕과 에로스 운동, 에로틱한 삶의 지향성을 긍정한다. 윤리적 이상주의만이 인간의 존재와 삶 그리고 행위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존중의 차원에서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부인 마리안네 베버도 위대함이 있다. 물론 베버의 유작 발간과 베버 연구유산의 확산에 기여한 바는 너무도 지당한 훌륭함이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