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평생 간직하고픈 시 - 개정판
윤동주 외 지음 / 북카라반 / 2023년 6월
평점 :
평생 간직하고픈 시 개정판
수국이 가득 펴 있는 표지를 보니 시를 읽기도 전에 설레인다.
[낙엽 - 유치환]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시인은 다르구나. 어쩜 이렇게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마음을 표현할까!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어딘가에 담쟁이 덩쿨이 타고 올라가고 있는 빨간벽돌벽으로 만들어진 우체국 창문 한켠에서 에메랄드빛 하늘을 바라보면서 엽서 한장에 짧은 글을 남기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을일까? 우리 나라일까? 그냥 그런 생각들이 들면서 예전 학교때 우리학교 우체국이 생각났다. 난 우리학교를 좋아했는데 참 이쁘게 만들어진 학교였다. 이젠 이전해서 공간이 훨씬 넒어지고 시설은 좋아졌겠지만 내가 다니던 그 시절 그 학교가 난 좋다.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는 그 말에 작은 위로를 받는다. 시의 매력은 모든 감정들을 잘 응축해 놓은 표현을 하는데 있으리라. 오늘 과행사도 있었고, 한주 내내 맘 먹고 있었던 일을 마주할 일이 오후에 있었다. 하느님 부디 담담하게 잘 지나가게 이끌어주세요. 모두 맡깁니다. 아침 성체조배할 때마다 당신께 모두 맡깁니다...하고 내려놓고 왔는데 와서 보면 내가 그 근심걱정을 계속 들고 있었다. 종일 그랬다. 그렇게 한주간 마음이 무거웠다. 꽃이 결실이라고 할때 이 결실을 성공이고 보면 남들이 보기 좋은 것만이 결실은 아니니라, 내가 살아가는 동안 충실하고 그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진정한 결실이자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 마음이 될때까지 얼만큼 흔들리고 또 흔릴리겠는가. 그래도 흔들렸다고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면 언젠가는 꽃이 필 것이다.
[젊은 시인게게 주는 충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음속의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대하여
인내를 가지라.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구하려 하지 말라.
그건 지금 당장 얻을 수는 없으니까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살아 보는 것이다
지금 그 문제들을 살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아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 줄 테니.
지금 이 버거움도 언젠가 삶이 나에게 해답을 가져다 주겠지. 이 또한 지나가겠지. 내 마음이 작아서 담지 못하는 여러 일들을 담을 수 만큼 담아내고 아니면 비우고 담아내고 것도 아니면 안 담으면 되지. 그렇게 내 마음 그릇을 키워나가는게 삶이리라. 지금 죽을 것 같이 괴로운 순간들도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게 되듯이, 지금을 살아내다보면 언젠가는 꽃도 피고, 해답도 알게 된다.
[정말 그럴 때가 - 이어령]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노엽고 외로운 때가 있을 겁니다.
내 신발 옆에 벗어놓았던 작은 신발들
내 편지봉투에 적힌 수신인들의 이름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던 말소리들은
지금 모두
다 어디 있는가.
아니 정말 그런 것들이 있기라도 했었는가.
그런 때에는 연필 한 자루 잘 깎아
글을 씁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손톱에 대하여
문득 발견한 묵은 흉터에 대하여
떨어진 단추에 대하여
빗방울에 대하여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연필 한 자루 잘 깎아 사소한 것들에 대해 글을 쓰다보면 정리가 되고, 조금 살 희망이 생겨 날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더라도 글을 쓰느 행위자체가 나를 위한 시간이고, 내 마음에 대한 위로가 됩니다. 다 쓰고나면 쏟아버린 감정들 덕분에 개운해진 기분도 듭니다. 그래서 글을 쓰나 봅니다.
제목처럼 매일매일 낭독하고 싶은 시, 평생 간직하고픈 시다. 장르별로 책은 다 매력이 있지만, 시는 짧고 간결하지만 모든걸 다 담고 있으니 더 매력적이다. 다양한 작가들의 여러 시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미처 다 담지 못한 다른 시들도 참 좋습니다. 이 시들을 골라낸 분이 정말 대단. 평생 간직하고픈 시를 만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