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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창조의 시간 - 자유한 삶을 위한 40일 광야 영성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21년 6월
평점 :
신앙이 매말라 갈 수록 마음의 공허함이 커진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신앙이 생활이고, 생활이 신앙인이던 삶을 살았던 내가(적고 보니 매우 신앙적으로 살았던거 같은데 그건 아니고 삶의 중심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표현이 좀 더 맞을 것 같다. 모든 일은 중심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늘 움직여도 중심을 향해 살았다고 보면 될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점점 삶이 세속화 될 수록, 하느님을 향한 중심은 완벽하게 흐트러졌고, 나는 그저 주일만 겨우 지키는 주일신자, 나이롱신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 하느님과 믿음에서 멀어지는 만큼 내 안의 빈자리, 중심이 흔들린 허전함들이 늘 바쁜 삶 가운데에서 나를 더욱 지치게하였고 자꾸만 알 수 없는 갈증으로 힘들었다.
중요한 것은 갈망을 유지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과 개념에 딱 들어맞는 분이 아니시다. 때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어렵다고 여져겨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고갈과 탈진이 유행병처럼 번지는 이유는 영적 중심성에서 멀리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길 외에는 답이 없다. 하나님께 충분히 사랑받는 자로, 존재의 부요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다. 지금 이곳에 나와 함께하고 계신다. 우리는 너무 바쁘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하나님으로 너무 멀리 벗어나 있는 나를 발견해야 한다.
- 나는 매우 곧 잘 하느님을 내 생각의 틀에 맞추려고 한다. 그래서 내 뜻과 다른 하느님의 뜻을 마주하면 그렇게 서운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내가 그런 서운함과 화를 표현할만큼 하느님께 잘 하고 있는지, 또는 내가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는 과연....이다. 조금 전에도 말 했지만 내게 십여년도 전의 '탈출기 피정'에서 마주한 광야는 매우 큰 의미로 기억되어 있다. 너무 오래 전이 되어 버려서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그 기억의 끄트머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단어 '광야' 피정 중 어느 날은 침묵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 모든 활동에서 심지어 밥먹으러 가고, 밥먹을때조차 침묵을 유지하면서 내 안으로, 내 내면과 마주하기를 그렇게 광야로 들어가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 전까지 나는 '광야'라는 말을 듣기만 했지 실제로 광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성경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공생활 중 광야시간이 얼마나 예수님께 힘이 되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느님과 멀어진 삶,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자꾸 비켜세우는 삶에서는 갈증을 느끼고, 공허해진다. 신앙인에게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하느님과 멀어진 삶을 살아가는 건 글쎄다...아마 그러다가 냉담을 하고, 그러다가 하느님과 영영 멀어지는 것이겠지. 이런 와중에도 시련이 올 때 하느님께 청한다. '하느님 한 치 앞도 제대로 못 보는 저에게 지혜를 주시어, 제 머리카락 한올한올까지도 속속들이 다 잘 아시는 당신께서 가장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소서'하고 말이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 얄밉겠다....아.... 이제 나 스스로 광야를 인식하고, 광야에서의 시간이 그저 시련만이 아니라 나의 내적성장의 시간이 되고, 신앙이 더 단단해지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내 중심에 하느님을 하느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고 다짐해본다.
이럴때 이 책이 아주 유용할 것 같다. 이 책은 매일 40일간, 내가 예수님의 광야생활처럼 하루하루 광야에 대해 묵상하고 나를 마주할 수 있도록 하루-한챕터가 끝날때 마다 질문을 통해 묵상을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피정가기도 어렵고, 영혼의 어두운밤에 빠져있는 나 같은 나이롱 신자에게 더할나위 없이 좋은, 피정용 책으로 딱이란 생각이 든다.